제144화
서로에게 첫 일격을 먹인 두 남자는 격통을 무시하며 손과 발을 움직였다.
멈추면 패배한다.
그것을 인지하고 있기에…….
파앙! 파앙!
마틴 뵈제하워는 힘껏 발을 내디디며 칼의 복부와 턱에 주먹을 찔러 넣었다.
순식간에 주도권을 빼앗긴 칼이 허공에 발이 붕 떠버렸지만.
콰앙!
칼은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삼아 몸을 힘껏 비틀어 마틴의 목을 걷어찼다.
마틴은 대수롭지 않게 몸을 뒤로 젖힌 뒤 바닥에 몸을 뒹굴어 충격을 경감시켰다.
그러고는 곧장 일어서서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
수많은 사람이 우글거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축은 커녕 응원, 함성 등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이렇게 거칠고 수준 높은 결투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꽈악!
지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땀이 배거나 말거나 주먹을 꽉 쥐고 숨을 죽인 채로 두 사람의 결투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파앗!
고무줄처럼 서로 간의 거리를 늘고 줄이기를 반복하며 서로에게 타격을 가하는 칼과 마틴.
파앙! 파앙!
칼은 정면에서 쇄도하는 주먹을 흘려넘기며 감탄했다.
‘눈으로 본 기술을 베끼고 응용하는 게 빨라.’
시간이 지날수록 마틴은 점점 움직임을 세련되게 정제하며 칼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칼이 특별한 기술을 쓰지 않아서 다행이지.
함부로 기술을 썼다면 즉시 간파당해 기술을 내어주었을지도 모른다.
메노스 템벨의 암살자 기술부터 검사의 움직임까지 마틴은 분명 그 모든 것을 터득해 2년 동안 고고한 정점을 차지했으리라.
“재밌어.”
순간 칼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정면에서 오는 마틴의 주먹을 자신의 주먹으로 가격했다.
콰앙!“힘만 세긴!”
저릿! 저릿!
자신의 몸이 크게 밀려나자, 마틴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먹을 탈탈 털었다.
고통이 조금 가신 마틴은 곧장 몸을 회전시켜 칼의 아래쪽을 파고들었다.
콰앙!
그러고는 칼의 팔을 양손으로 붙든 뒤, 엎어치기로 칼의 몸을 벽에 처박아버렸다.
‘꼴사나워라.’
벽에 등이 박힌 칼은 여유로우면서도 나긋한 눈빛으로 정면에서 오는 마틴을 쳐다봤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정렬을 꺼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투지를 불태우며 암살자들을 타도하면서 터득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는데.
잔상이 겹친 그 모습은 눈을 어지럽히며 긴장과 압박을 불러일으켰다.
본격적인 승부는 바로 지금부터였다.
마틴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콰아앙!
그리고 비로소 칼의 얼굴에 주먹을 정통으로 꽂아 넣은 마틴은…….
“흐읍!”
지금이 상대를 몰아붙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것을 직감했는지, 호흡조차 틀어막고서 주먹을 연신 내질렀다.
파앙! 파앙! 파앙! 파앙!
마나를 활용하지 않았음에도 충격으로 터져 나온 파편들이 마틴의 주먹에 닿자마자 으스러지며 가루로 흩날렸다.
그 공격들을 막지 못하고 허용한 칼의 몸은 피멍이 잔뜩 생겨나고 있었다.
“사, 사령관님!”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이크가 노심초사한 마음으로 소리를 내질렀지만.
마틴의 눈은 더욱 매서워졌다.
……겨우.
겨우 이걸로 이 남자가 끝날 리 없어.
어째서 몰아붙이고 있는 건 자기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초조해진단 말인가.
“아아.”
움찔!
그토록 많은 공격을 허용하고도 나른한 목소리로 말하는 칼을 본 마틴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심홍색의 눈동자는 흥분으로 가득 들끓고 있었다.
입가 또한 냉정하고 무뚝뚝한 모습만 보여준 지금까지와 달리 음흉한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이 정도는 해줘야지.”
덥석!
꽈아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칼은 마틴의 주먹을 단숨에 움켜쥐었다.
“뭐?!”
당황한 마틴이 남은 손으로 주먹을 칼의 얼굴에 꽂아 넣으려고 했지만.
콰앙!
칼은 가볍게 목을 움직여 그것을 피해냈고 주먹은 애꿎은 벽을 후려치며 균열을 일으켰다.
“내 신고식은 과격하다. 마틴.”
살벌한 한마디와 함께 칼은…….
우드드득!
순식간에 마틴의 관절을 돌려 뽑아냈다.
“크하하학!”
태어나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격통에 마틴은 헛숨을 들이 삼켰다.
콰직!
그 틈을 타 칼은 망설임 없이 팔꿈치로 마틴의 명치를 힘껏 가격했다.
“쿨럭!”
마틴은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몸을 크게 들썩였다.
콰아앙!
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오른쪽 무릎으로 마틴의 복부를 후려쳤다.
울컥!
주륵!
심하게 내상을 입었는지, 마틴은 입가에서 한 움큼 피를 토해내며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야. 이건 철저하게 상대를 부수는 체술이야!’
뒤늦게 칼의 본질을 간파한 마틴은 어떻게든 대응법을 찾아내려고 했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마틴뿐만 아니라 아스피스의 모든 구경꾼들은 알 수 없는 오한이 덮쳐왔다.
불안의 진원지는 바로 칼리언트.
마력을 활용하지 않았으나 전신에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상대의 심신을 굴복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 순간 마틴의 머릿속에 칼이 했던 말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넌 뭘 믿고 그렇게 기고만장한 거냐? 에클라 세트라서? 그렇게 생각하면, 안타깝게도 한 명 빼고는 전부 다 내 밑이다.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했나? 버러지, 여기 있는 녀석들이 슈타크 가문 때문에 나를 어쩌지 못 하는 거라고 생각하나?
‘……거짓이 아니었어.’
찰나의 순간 깨닫게 된 한 가지.
칼리언트 슈타크.
이 남자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압도적인 무력도 마력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였다.
불길한 기운을 잔뜩 방출하던 칼의 몸은 이내…… 그 자리에서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
덥석!
“?!”
정신을 차렸을 때, 칼의 손이 마틴의 얼굴을 붙들고 있었다.
꽈아아악!
남은 손으로 어떻게든 움켜쥐고 있는 그 손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칼은 어림도 없다는 듯 우악스럽게 마틴의 얼굴을 쥐더니…….
콰아아앙!
그대로 벽을 향해 내리쳤다.
벽이 부서지면서 느껴지는 엄청난 격통에 마틴은 호소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파르르르.
그대로 몸을 떨다 의식을 잃었다.
콰아앙!
칼은 그런 마틴을 자비 없이 지면에 힘껏 내동댕이쳤다.
승부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마틴의 꼴은 더 이상 잔재주조차 부릴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아니었다.
“…….”
믿을 수 없는 그 풍경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214전 213승 1패.
지금까지 무패의 전설로 일컬어지던 마틴의 패배는 음지의 세력과 대중의 마음을 크게 들썩이게 만들었다.
한편, 쟁탈전을 지켜보던 제이크는 질렸다는 인상으로 중얼거렸다.
‘……영입할 생각은 있기는 한 거야.’
누가 봐도 기사단의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 같은 마틴을 거의 반쯤 죽일 것처럼 패놓다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아무리 자신의 상관이라고 해도 이번에는 정도가 심하긴 했다.
“마틴!!!”
곁에서 칼과 마틴의 결투를 지켜보던 팡고를 비롯한 아이들은 기절한 마틴에게 다가왔다.
마틴의 몸을 힘껏 흔들던 팡고는 칼을 홱 쏘아보며 말했다.
“마틴을 데려간다며? 이건 너무 심하잖아!!”
“그런가?”
“이 악당, 귀신!”
그때 옆에 있던 어린아이들이 일제히 돌을 집어 들어 칼에게 던졌다.
“저리 가! 마틴한테 떨어져!!”
동경하던 마틴을 완전히 곤죽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칼이 좋게 보일 일은 없었다.
탁, 탁.
칼은 기꺼이 그 돌을 맞아주고 있었다.
“이놈들!”
분노한 제이크가 무어라고 하려는 찰나, 칼은 팔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내버려 둬. 저 정도 독기는 있어 줘야지.”
“그, 그게 무슨?!”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이 든 제이크는 황당한 표정으로 칼을 쳐다봤고.
“제이크. 마틴을 데리고 알테어로 복귀한다.”
“알겠습니다.”
칼의 명령에 제이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틴을 어깨에 들춰 멨다.
“흐아아아아앙! 가지 마! 마틴!”
그 광경을 보던 아이들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고, 더 이상 견디기 어려웠던지 가만히 있던 마틴의 부하들은 우르르르 칼에게 몰려왔다.
“기, 기다려. 마틴을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용기 있게 던진 그 한 마디에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했다.
“최악최흉의 전선으로…….”
그 말에 팡고와 부하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물들었다.
루콘의 광견이 소문 이상으로 흉흉하고 난폭한 자라는 것을 그제야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 그렇게는 못 해!”
마틴의 부하들은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칼을 막아섰다.
콰앙!
칼은 거칠게 발로 지면을 때리며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쟁탈전의 룰이다. 되찾고 싶으면 나에게 도전하면 그만이야.”
“크흑!”
찌릿찌릿.
날카로운 그 시선에 누구 한 명도 이견을 내놓지 못했다.
칼은 정당방위로 마틴을 데려가고 있는 것이고, 마틴조차 당해내지 못한 칼을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내, 내가 도전할 거야.”
같이 있던 소년 중 한 명이 주먹을 들며 칼에게 도전했다.
“뭐 하는 거야! 바보야!”
팡고는 그런 소년을 붙들어 안으며 만류했고, 칼은 유심히 그들을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그 용기가 갸륵하니 어쩔 수 없네. 따라와. 단, 나를 따르는 순간부터 너희는 마틴의 부하가 아니라 내 부하다.”
“사, 사령관님.”
이게 무슨?
모두가 당황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때, 팡고가 입을 열었다.
“자,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있는 사람들을 데려간다는 건가……요?”
왠지 모를 칼의 엄격한 분위기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칼에게 말을 높였다.
“난 그런다고 했어.”
칼은 그런 그녀를 스쳐 지나가며 뚜벅뚜벅 발길을 옮겼고.
팡고는 더없이 당황한 표정으로 칼에게 되물었다.
“어, 얼마나 데려갈 건데요? 그걸 가르쳐줘야 이별 준비도 하고.”
“전부.”
“네?”
“전부 데리고 간다고.”
칼의 한마디에 마틴과 그 부하들은 적잖이 당황했고 칼은 그대로 무뚝뚝하게 걸음을 옮겼다.
여기서 유일하게 웃고 있는 이는 기절한 마틴, 단 한 명.
생애 처음으로 패배를 깨달은 것 치고 그 웃음은 더 없이 만족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말이라도 해주던가.”
거뭇하게 그을린 건물에서 가까스로 짐을 챙겨온 팡고와 마틴 일당들은 성문 앞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칼에게 다가갔다.
“저, 정말 저희를 다 데리고 가시는 건가요? 그런데, 애들이 아직 어려서 오랫동안 걸을 체력이 안 되는데요.”
아이들은 아직까지 불안해 하는 얼굴로 칼을 흠칫흠칫 훔쳐보고 있었다.
“나도 전선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바쁜 몸이야. 걸어서 갈 생각은 없어.”
“호, 혹시 저희도 전선에 투입되는 건가요?”
팡고의 우려 어린 표정에 칼은…….
따악!
검지로 그녀의 이마를 퉁 쳤다.
“으아아악!”
그 고통에 팡고는 이마를 문지르며 고통을 꼭 참았다.
“보호해야 될 대상을 전선에 투입 시키지는 않아.”
‘보호?’
난생 처음 들어본 말에 팡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칼을 쳐다봤다.
히이이이잉!
그와 동시에 말과 나귀 등이 마차와 전투 식량을 실은 수레를 끌고 성문 밖을 빠져나왔다.
제이크는 아이들을 안아 마차에 태우기 시작했다.
“서, 설마?! 카랄레스 가문에서 협상한 게…….”
그 광경을 지켜본 팡고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칼을 쳐다봤고,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팡고에게 말했다.
“최악의 전선에 오게 된 걸 환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