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가소로운 자식.’
꿈틀.
칼의 도발에 콜챠크는 눈살을 찌푸리며 살기를 방출했다.
아스피스의 영주의 장남인 자신의 앞에서 움츠러들기는커녕, 무덤덤한 그 모습은 실로 거만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어디서 뒹굴고 온 놈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내 심기를 거슬리게 만들어봤자, 좋을 건 없을 텐데.”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뭐?”
콜챠크는 황당한 표정으로 반문했고 칼은 앞머리를 스윽 올린 뒤, 클레이브를 포함한 오르카의 조직원들을 보며 말했다.
“구성원 모두 조무래기인 데다, 간계를 부리는 수도 너무 얕아. 아, 주인 구두나 핥는 개가 격을 갖추는 건 어렵나?”
울컥!
“이게 어디서!”
정곡을 찔렸는지, 마틴과 대치하려고 한 조직원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크아아악!”
칼은 가볍게 그 일격을 회피한 뒤, 짐짝처럼 거치적거린다는 표정으로 그를 걷어찼다.
“…….”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분명 칼이 말한 대로 격이 떨어진다고 해도 오르카의 조직원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이 중에는 오러 유저도 어느 정도 있었고, 음지의 집단이라고 불릴 만큼 힘도 갖추고 있다.
그런 존재들을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취급하다니.
꿀꺽!
저도 모르게 긴장한 오르카의 수장 클레이브는 칼에게 물었다.
“저, 정체가 뭐냐?”
“칼리언트 슈타크다.”
이름을 말하길 무섭게 오르카의 사기가 크게 뒤떨어졌다.
“슈, 슈타크?!”
“아, 아니 잠깐만 그 전에 메노스 템벨을 소탕한 게 루콘의 광견이라던데. 설마!”
그들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일제히 동공을 떨며 칼을 쳐다봤다.
심홍색의 머리칼과 눈동자.
수많은 적의 앞에서도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는 담대함.
그 모습은 소문 속의 이실리아의 수호기사이자 루콘의 광견의 모습과 무척이나 판박이였다.
“슈, 슈타크!”
반면, 콜챠크는 칼이 슈타크 가문의 사람인 것을 알자 으스스 몸을 떨었다.
따지고 보면 아스피스의 번영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슈타크가가 외부의 적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스피스의 영주는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하지만.
슈타크 가문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이 지니고 있는 명성이나 힘, 그리고 위세까지 어느 하나 카랄레스 가문이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놀란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칼에게 보호받고 있던 팡고는 슈타크 가문에 대해 익히 들어온 소문에 대해 읊조렸다.
“귀, 귀신의 후예.”
반면, 마틴은 아직까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칼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콜챠크를 쳐다봤다.
“이제야 분위기 파악이 됐나?”
“어, 어차피 너 혼자잖아. 여기서 죽이고 행방불명으로 처리해버리면…….”
“하아.”
칼은 어이가 없는지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날카롭게 벼려진 눈동자로 콜챠크를 쏘아봤다.
오싹!
그 위압감에 콜챠크는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에게 칼이 말했다.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했나? 버러지. 여기 있는 녀석들이 슈타크 가문이란 이름 때문에 나를 어쩌지 못 하는 거라고 생각하나?”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주눅이 든 콜챠크는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클레이브를 쳐다봤다.
삐질삐질.
클레이브는 칼에 대한 공포로 얼굴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 상태로 그는 콜챠크에게 진실을 일러주었다.
“슈타크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에클라 세트와 맞먹는 존재라고 여겨지며, 전설의 마물이라고 일컬어지던 게어트너를 단신으로 쓰러뜨린 존재입니다. 저희의 생사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 정해지는 겁니다.”
“그게 무슨!”
필패.
클레이브는 저항하는 것 자체를 포기한 건지, 모든 것을 손에 놓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제를 잘 알고 있군. 쟁탈전에 참여할 거냐?”
칼은 한쪽 입꼬리를 마지막 기회를 물었고.
“철수한다.”
클레이브는 망설임 없이 조직원들을 뒤로 물렸다.
당황한 콜챠크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클레이브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는 짓이야! 그동안 너희를 후원해주는 게 나라는 것을 잊었어!”
콜챠크의 처절한 외침에도 오르카의 조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모습을 감췄고, 클레이브는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저 남자의 지인을 건드렸다가는 그 조직 자체가 송두리째 무너집니다. 실제로 이실리아에서 그런 경우가 있었고요. 오죽하면 저 남자가 이실리아에 머물렀을 때는 음지의 사람들이 숨을 죽이며 살아야 했겠습니까? 송구스럽습니다만 저희의 관계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클레이브?! 거기 서!”
콜챠크는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언성을 높였지만, 클레이브는 순식간에 자리를 벗어났다.
“악의 하수인들에게 의리를 바랬나? 이것 참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이군.”
칼은 딱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기, 기다려. 나도 여기서 그만둘 테니, 더, 더 이상 다가오지 마.”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콜챠크는 연신 뒤로 물러섰지만.
탁.
얄궂게도 그의 등은 이내 벽에 닿았다.
칼은 슬슬 거리를 좁히며 그에게 위협을 가해왔다.
“그, 그만둬. 아무리 슈타크 가문이라고 하지만 카랄레스 가문과 인연을 져버릴 수 없어. 그, 그래. 내 여동생하고 혼약을 맺게 도와주지. 첩과 사이에 낳은 년이지만, 얼굴은 제법 반반해. 혈연을 맺는다면 분명 슈타크 가문에도 도움이 될 거야.”
“왜 너와 내 이야기를 하는데, 가문의 이야기가 오고 가는 거지? 이건 네놈이 선택한 길 아니던가?”
“그, 그만둬. 내가 가지고 있는 재산을 전부 줄 테니…….”
“어차피 쟁탈전이다. 승자가 독식하고 결정짓는 룰이지. 협상은 의미 없어.”
“졌어. 졌다고!”
“그건 네가 결정짓는 게 아니야. 내가 결정짓는 거지.”
절망이 등을 엄습했다.
콜챠크는 난생처음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숨통이 조여 왔다.
도망치고 싶지만 벽이 되어줄 사람은 없고, 퇴로에는 없어도 될 벽이 우뚝 있었다.
탁, 탁.
칼은 궁지에 몰린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나른한 표정으로 발가락 끝으로 지면을 두어 번 때리며 콜챠크에게 물었다.
“뜬금없지만 한 가지 물어보지. 너 화장실은 자주 가냐?”
갑자기?
‘살려주려 건가?’
콜챠크는 떨떠름하면서도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자, 자주 안 가는데.”
콰직!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칼의 발이 정확하게 콜챠크의 사타구니를 아작내버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악!!!”
평생 겪어보지 못한 엄청난 격통에 콜챠크는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절규했고.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잔혹한 말을 내뱉었다.
“그럼 필요 없겠다 싶어서.”
“…….”
“…….”
칼이 내뱉은 말에 마틴과 팡고는 눈 밑에 그늘이 진 상태로 말문을 잃었다.
* * *
소중한 부위를 잃은 콜챠크는 폐인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후 칼의 행보는 더욱 가관이었다.
완벽한 수습을 위해서라면, 콜챠크를 죽이고 모습을 감추는 것이 정석이지만.
그 정석을 깔끔하게 무시한 칼이 선택한 방식은 직접 콜챠크의 머리칼을 끄집어 당기며 질질 끌고 카랄레스 가문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사색이 된 팡고는 어떻게든 칼을 만류했지만.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왔음에도 불구하고 일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풀렸다.
처음 카랄레스는 장남이 불구가 됐다는 사실에 크게 격노했다.
하나, 칼이 슈타크 가문의 막내아들이라는 것을 듣고 나서는 어떻게든 화를 주체하려고 했다.
슈타크 가와 정면충돌은 곧 가문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도권을 잡은 칼은 곧장 협박과 거짓을 섞어 카랄레스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콜챠크가 오르카라는 조직과 손잡아 벌인 악행과 콜챠크를 불구로 만든 것은 오르카 조직이라는 것 등.
이야기를 전해 듣던 카랄레스는 모욕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정황상 아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칼이 분명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칼은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칼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주는 것이었다.
그는 분노와 수심이 깊은 표정으로 칼을 보며 말했다.
“아들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칼리언트 경. 혹 바라는 점이라도 있으신지…….”
칼은 눈매를 좁히며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콜챠크 님의 무사한 쾌유를 빕니다만, 불구가 됐다는 소식을 들으면 타 귀족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심각하게 우려스럽습니다.”
빠직! 빠직!
카랄레스는 분노로 얼굴에 핏대가 가득 솟아났다.
그가 속으로 ‘가증스러운 놈’이라고 연거푸 뱉고 있을 때.
칼은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카랄레스에게 요구사항을 털어놓았다.
“밖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 이런 불미스러운 소식이 다른 이들에게 퍼져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요. 이제는 욕구 해소를 못 하니, 여자 시종을 근처에 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콜챠크가 다시 모습을 보일 때, 그의 만행을 폭로할 것이며, 그가 불구가 됐다는 소식까지 퍼뜨리겠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걱정을 가장한 경고였다.
파르르르르.
수치와 굴욕에 카랄레스는 미미하게 몸을 떨었다.
“하하하하, 걱정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염려하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다행입니다.”
칼은 후룩 차를 마신 뒤, 화제를 전환했다.
“아, 그리고 영주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뭡니까?”
카랄레스는 가까스로 미소를 유지했고, 칼은 그런 그의 앞에 미리 챙겨온 금괴를 잔뜩 올려놓았다.
“이, 이건?”
휘황찬란한 그 양에 카랄레스는 눈을 부릅떴고, 칼은 양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무척 간단한 부탁이니, 부담 갖지 말고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 * *
날이 밝았다.
마틴이 머무는 곳은 간밤에 벌어진 화재로 인해 정신이 없었지만.
제이크의 지휘 아래 순식간에 화재를 진압한 덕분에 인명 피해는 경미 했다.
살고 있던 집이 대다수 타버렸다는 게 문제가 될 뿐이었다.
‘이거는 어떻게 수습해야 될지…….’
제이크는 딱하다는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마틴!”
“흐아아앙!”
밤사이 크게 놀랐는지, 아이들은 울고 불며 마틴을 끌어안았다.
“콧물 묻어. 저리 떨어져!”
마틴은 정색하면서도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저벅저벅.
바로 그때, 카랄레스와 협상을 마친 칼이 태연하게 폐촌에 모습을 드러냈다.
“협상은 어떻게 됐습니까?”
“무난했지.”
제이크의 질문에 칼은 뭘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칼과 쭉 동행했던 팡고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세상에 마틴보다 더 간이 큰 남자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 오빠는 뭘 해도 내 상상 이상의 짓을 저질러 버려.”
‘나도 동감이야.’
말로 내뱉을 수 없지만, 제이크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고 있었다.
찌릿!
그는 칼이 한번 쏘아보자, 곧 허리를 우뚝 세우며 크흠 헛기침을 했다.
칼은 곧 흥미를 잃었는지 마틴에게 향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지.”
마틴은 칼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지만, 칼은 팔짱을 끼며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 인사 따위나 받으려고 한 짓 아니야. 잊지 않았지? 내 요구사항.”
마틴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곧 호승심이 차올랐는지 씨익 웃어 보였다.
“너야말로 잊지 않았지? 이 거리의 룰을…….”
푸르른 하늘 아래.
번영과 평화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아스피스의 거리는 평상시와 달리 매우 고요했다.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상인도, 농사를 짓던 농부도, 이곳저곳에서 뛰놀던 아이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파가 서성이고 있는 곳은 한 다리의 밑이었다.
다리를 중심으로 건물 옥상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몸을 부대끼며 시선이 향한 곳에는 마틴과 칼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이미 밤사이, 칼이 벌인 소행으로 인해 아스피스에 ‘루콘의 광견’이 출몰했다는 소문이 널리 전파됐다.
그런 그가 다름 아닌 아스피스의 최강의 싸움꾼인 마틴과 결투를 벌인다는데, 어찌 흥분하지 않을 쏘랴.
오늘 하루는 생업을 중단하더라도 역사의 한 무대가 될 수 있는 이 쟁탈전을 지켜보는 것이 중요했다.
서로 시선을 마주 보고 있던 중 마틴은 칼에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까 콜챠크에게 한 말 있잖아. 너무 감이 떨어지더라. 누구한테 배웠냐?”
습관처럼 전투 전, 늘 상대를 가소로이 여기며 도발을 가하는 한마디였다.
이에 칼은 어깨를 으쓱 떨며 답했다.
“눈앞에 있잖아. 감 떨어지는 놈.”
찌릿!
순식간에 눈빛을 교차한 두 남자는 앞뒤 가리지 않고…….
콰앙!
서로의 뺨을 주먹으로 힘껏 후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