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다크 엘프, 모렐의 갑작스런 등장에 바르는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가디언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길드 멤버가 가지고 있는 이머전시 스톤을 이용해야 될 텐데.”
“아아, 그거라면 여기 가지고 있지.”
바르는 이머전시 스톤이라 불리는 붉은 보석의 목걸이를 흔들며 바르에게 보여주었다.
우웅.
이내 다시 한번, 보석이 광채를 뿜어내자…….
끼이이이익!
배를 둘러싼 가고일들의 이마에 박힌 보석이 동조하듯 빛이 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가고일들이 일제히 칼이 타고 있는 배를 급습했다.
콰칭!
칼은 그 즉시 팔찌의 일 회분의 트리거를 발동했고.
확산하는 붉은 파장에 닿은 가고일들은 예외 없이 몸이 경직됐다.
“이 틈에!!”
바르는 재빨리 노를 저었고 경직이 풀린 가고일들 중 일부가 빠른 속도로 덮쳐왔다.
서걱!
콰앙!
비어벨로 앞의 두 마리를 순식간에 베어버린 칼은 손목이 통증으로 인해 아릿해지자 눈살을 찌푸리며 가고일에 대해 분석했다.
‘트리거로 일으킨 마나 브레이크도 보석에 내재된 마법에는 크게 영향은 못 주는군. 강도도 비어벨로 힘을 줘야지만 벨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야.’
“……인조 아다만티움.”
“그, 그걸 어떻게?!”
바르는 경악하며 칼을 쳐다봤다.
“보물 창고로 신속하게 움직여.”
“네!”
칼의 명에 바르는 노를 저어 가고일 사이로 배를 움직였다.
카앙! 카앙! 카앙!
칼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가고일을 비에벨로 모조리 베는 기염을 토해냈다.
‘너무 빨라. 어디서 날아오는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가고일의 속도는 능히 사람의 시야를 교란시킬 정도였다.
게다가 몸도 인조 아다만티움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견고함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 강적을 상대로 칼은 연신 비어벨을 휘두르며 바르와 제이크를 상처 없이 지켜내고 있었다.
하지만 전투가 점차 격렬해지자 배가 기우뚱 기울어지며 칼의 균형감각을 어지럽혔다.
이때, 균형을 잃은 칼의 옆구리에 가고일의 손톱이 스쳐 지나갔다.
콰칭!
칼은 다시 한번 트리거를 발동해 가고일들의 몸을 경직시킨 후.
콰앙!
즉각 주먹으로 가고일의 얼굴을 격파했다.
“사, 사령관님. 괜찮습니까?”
“피, 피가?!”
“나와!”
상처를 입어 상당히 예민했는지, 칼은 버럭 짜증을 냈다.
“네, 넵!”
당황한 제이크는 그 즉시 뒤로 물러났다.
그 뒤로도 경직이 풀린 가고일들이 곧장 칼을 덮치기 시작했다.
계속 기만을 당하는 게 분했는지, 칼은 서킷을 이용해 가고일들을 엮더니 품에 있던 스크롤을 꺼내 그대로 찢어버렸고.
콰아아앙!
서킷에 몸이 묶인 가고일들은 폭발헤 휘말려 몸이 폭파된 채로 후두둑 강물에 떨어졌다.
팔락, 팔락.
하지만 아직 금융 길드의 가디언들은 자신들의 보안은 완벽하다고 자랑하려는 건지, 아까보다 더 많은 숫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몰려왔다.
“거,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주십시오.”
“그건 곤란하지. 거긴 내 보물 창고거든.”
타악.
그때 잠깐의 방심을 틈타 나룻배까지 도약한 다크 엘프 모렐이 단검으로 칼의 이마를 노렸다.!
칼은 동요 없이 그의 손목을 꽉 붙들어 제압했다.
꽈악!
“히, 힘이 세군.”
예상치 못한 칼의 악력에 모렐은 어떻게든 힘을 쥐어 단검을 들이밀려고 했지만.
그의 손은 옴짝달싹 못 하고 칼에게 붙들려 있었다.
칼은 그런 모렐를 비웃었다.
“머저리. 그냥 이 녀석들로 날 괴롭히는 게 더 효과적인 방법이었는데.”
타악!
“어?”
칼은 그대로 모렐에게 발을 걸어 나룻배 바닥에 넘어뜨렸다.
바닥에 엎어진 모렐은 크게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고, 배는 그 충격에 크게 흔들거렸다.
“빨리 와!”
위기상황이란 것을 감지한 모렐은 이머전시 스톤을 이용해 가고일들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콰칭!
칼의 양팔에서 발동된 트리거의 파장에 가고일들은 이마에 있던 보석들이 깨지며 그대로 강물에 빠졌다.
“이, 이게 무슨?!”
믿을 수 없는 현상에 바르마저 당황했고, 칼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지금의 현상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일 회분으로 안 되면, 삼 회분의 트리거를 중첩시켜서 발동하면 그만이야.”
주륵.
하지만 힘의 여파가 상당히 컸는지, 칼의 이마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나왔다.
“사, 사령관님.”
제이크는 불안으로 가득 찬 눈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칼의 몸 상태도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분노로 가득 찬 칼의 눈빛이 제일 위험하게 느껴졌다.
“위, 위험해.”
바르는 불안한 표정으로 제이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제, 제압한 거 아닙니까? 근데 어째서?”
“……알테어에서 절대로 지켜야 되는 규칙. 칼리언트 슈타크의 분노를 사지 마라.”
지금까지는 말로만 들어서 그 뒤의 일이 상상이 가지 않았지만.
현재, 분노하고 있는 칼의 눈빛은 누가 봐도 심상치 않았고 놔두면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죽여.”
정작, 칼의 분노를 산 모렐은 자신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자각조차 못 하고 끝까지 칼을 도발하고 있었다.
“이 악물고 버텨라. 한 방에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뭐?”
칼은 주먹을 꽉 쥔 뒤, 서서히 들어 올리며 위압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자, 잠깐!”
그제야 불길함을 눈치 챈 모렐이 항복을 선언하려고 했지만.
콰아아아앙!
칼의 주먹은 인정사정없이 모렐의 얼굴에 꽂혔다. 그 충격으로 인해 갑판마저 관통당해 배까지 완전히 작살났다.
* * *
‘어머니. 앞으로 돌아가면 효도를 하겠습니다.’
꾸르르르륵.
강물에 빠진 제이크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눈을 감으려다…….
“수, 숨. 쿨럭!”
감상에 빠져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강물 밖으로 미친 듯이 헤엄치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기 직전이 되면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던데, 그 말은 틀림없이 진실이었다.
“푸하!!”
이내 물 밖으로 빠져나온 제이크는 재빨리 땅 위에 손을 올리며 숨을 한껏 들이켰다.
“늦어. 왜 꾸물거리고 있는 거야.”
이미 물 밖으로 빠져나온 칼의 손에는 흰자위만 남긴 채 기절한 모렐의 목덜미가 붙들려 있었다.
‘당신 때문이잖아!!’
아무리 화나도 그렇지.
자신이 딛고 있는 배의 갑판마저 부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다니.
생각만 해도 이가 갈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소매치기의 술수를 간파하고, 갑작스런 가고일의 기습도 피해내며 물속에서 의식을 잃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은 것은 모두 칼의 훈련 덕분이었기에 무턱대고 따질 수도 없었다.
정확히는 따져봤자 저 무시무시한 주먹이 날아올 것 같으니, 그냥 입 다무는 게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바르는 어디 있습니까?”
철썩!
“저는 여기 있습니다.”
때마침 물속에서 가까스로 헤엄쳐 나온 바르는 땅 위로 올라와 자신의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했다.
손에는 모렐이 가지고 있던 이머전시 스톤을 들고 있었다..
제일 늦게 나온 것은 표류 중에 떨어진 이머전시 스톤을 회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잠수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웅.
바르는 이머전시 스톤을 사용해 자신들에게 적의를 표하던 가고일을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끄응.”
그때 코뼈가 완전히 작살 난 모렐이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상황파악이 끝났는지, 이빨을 빠득 갈다…….
파앗!
재빨리 바닥을 뒹굴어 칼에게서 떨어진 뒤, 몸을 일으켰다.
“이, 이걸로 끝났다. 생각하지 마라.”
“아직 한 방 더 남았는데.”
칼은 도주할 수 없음을 명백하게 알려주려는 건지, 쥐고 있는 돌을 우드득 부스러뜨렸다.
“누구한테 덤빈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너희 수장을 죽인 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칼은 낮은 목소리로 살기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오싹!
모렐은 그제야 자신이 건드리면 안 되는 미친개를 건드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즉시 도주하려고 했다.
바로 그때.
쏴아아아아.
커다란 배 하나가 칼이 있는 부두에 다다랐다.
주변을 밝히는 횃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비대한 몸을 가진 슬링거였다.
“보물 창고가 유난히 시끄럽다고 하는데, 도굴꾼 나부랭이가 침투했군요. 이것 참 면목이 없습니다.”
파앗!
모렐은 그 즉시 단검을 들어 슬링거의 목에 겨누었다.
“움직이지 마! 죽고 싶지 않으면 배를 넘겨라.”
“그만두는 게 좋을 겁니다. 당신이 아무리 메노스 템벨의 실력자라고 해도 슬링거 님의 적수가 되지 못합니다.”
“뭐!”
모렐이 원했던 반응 대신 동정하는 눈빛으로 바르가 만류했다.
“하하하하하.”
슬링거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에 들고 있던 시가를 단검으로 싹둑 잘랐다.
치이이익!
그러곤 그는 자신의 부하가 들고 있는 횃불에 시가의 단면을 들이대 불을 붙인 뒤,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대었다.
“지금 무슨 짓이야! 죽고 싶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모렐이 윽박질렀다.
“후우.”
슬링거는 연기를 화악 내뿜으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모렐을 바라보았다.
“메노스 템벨의 수장인 페트로씨와는 격이 한참 다르군요. 아, 지금은 도굴꾼 나부랭이로 전락했느니 예우는 필요 없겠군요.”
“입 닥쳐!”
거침없는 도발에 흥분한 모렐은 그 즉시 슬링거의 목에 단검을 찔러 넣었지만, 단검은 피부에 박히기는커녕 오히려 두 동강이 나버렸다.
“이게 무슨…….”
당황한 모렐이 뒷걸음질 치며 동요하는 순간.
우드득, 우득.
“오러로도 제 피부는 뚫을 수 없습니다.”
슬링거는 부러진 단검을 이빨로 씹는 기이한 모습을 엿보였다.
쿠직, 쿠직.
콰아아아아앙!
이내 슬링거의 옷이 완전히 찢기며 3미터 크기의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얼굴부터 온몸까지 뾰족한 뿔이 돋은 마른 체형.
은은히 광택이 서려 있는 갈색의 외형이 얼마나 견고한지는 굳이 찔러보지 않아도 짐작하게 해주었다.
가까이서 그 모습을 지켜본 모렐은 전의를 상실한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씨익.
[프리메이슨의 보물 창고에 발을 들이다니! 오늘 내가 겪은 수치와 굴욕은 네놈의 죽음으로 갚아라!!]
콰직!
그 말을 끝으로 슬링거의 이빨이 모렐의 전신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 * *
우적우적.
모렐의 최후를 지켜보던 제이크는…….
우욱!
식인을 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기 어려운지 헛구역질을 했다.
모렐을 완전히 섭취한 슬링거는 뒤늦게 칼리언트에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이런 추한 모습을 보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은은하게 메아리 치듯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전신의 신경을 자극했다.
오들오들.
제이크는 공포를 이기기 어려웠는지 몸을 벌벌 떨었지만.
피식.
칼은 팔짱을 낀 채로 입가를 올리며 말했다.
“마족의 힘이군.”
“?!”
예상치 못한 말에 슬링거와 바르는 크게 놀라 눈을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