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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37화 (137/197)

제137화

시가지로 향하던 중 제이크는 문득 든 호기심에 질문을 꺼냈다.

“프리메이슨을 이용하려면 정해진 암구호를 알아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하실 참입니까?”

프리메이슨.

어마어마한 검은돈을 품고 있는 거대 금융 길드로 그곳을 지키고 있는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강자다.

또한 길드가 털리는 일이 생기면, 모든 길드원들이 동원되어 반드시 그 대가 이상을 치르게 만드는 잔혹함도 무척이나 유명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규칙을 무시하면 처절한 응징을 가한다.

“VIP에게는 그런 규정 없어.”

“네?”

칼의 대답에 제이크는 적잖이 놀랐는지 반문했다.

그러나 칼은 말없이 팡고가 가르쳐준 리버티라는 상점에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무엇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상점에 머물던 점주의 친절한 응대에 제이크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뭘 파는지 당최 알 수 있어야지.’

리버티는 어떤 상품을 파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건물 구조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있는 곳은 다수의 문 사이였기 때문이다.

“은행을 이용하지.”

칼은 일전에 폰이 자신에게 건네준 메노스 템벨의 인장을 점원에게 보여주었다.

스윽.

그것이 무언인지 알아본 점원은 날카롭게 인장을 직시하다가…….

“은행을 이용하려고 오셨군요. 이쪽입니다.”

문과 문 사이를 가리켰다.

“거기가 무슨…….”

제이크가 황당한 표정으로 따지려고 들 때.

벽이 마치 물에 젖는 종이 마냥 제멋대로 일그러지더니 곧 지하로 향하는 거대한 통로와 계단이 드러났다.

쩌억!

태어나서 이런 광경은 처음 본 제이크는 턱을 떨어뜨리며 경악했다.

반면 칼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계단으로 발길을 향했다.

저벅저벅.

계단으로 내려갈 때의 발소리는 통로 안에 은은히 울려 퍼지며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으스스한 그 분위기에 제이크는 잔뜩 긴장하며 칼에게 물었다.

“사, 사령관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지?”

“어째서 이런 곳에 저 같은 놈을 대동하고 온 겁니까?”

“훈련이야.”

“네?”

“앞으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할 거거든. 이런 것에 익숙한 놈이 필요해.”

“그, 그렇군요.”

‘왜 하필이면 나야.’

제이크는 칼의 말에 속으로 절규하면서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잠시 후.

계단 끝에 다다르자 여러 갈래의 길이 튀어나왔다. 하수도 안에 있는 것처럼 구린내가 올라왔다.

바싹 긴장한 제이크는 어느 순간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내, 내가 이상한 건가?’

어째서인지 몸 곳곳에 오한이 스며들고 묘하게 열도 나는 것 같았다.

“낯익은 기운이군.”

그 와중에 칼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다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와라.”

저벅저벅.

칼의 목소리에 반응한 건지, 집사복을 갖춰 입은 말총머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프리메이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안내를 맡고 있는 바르라고 합니다.”

“안내해.”

칼의 무심한 말에 바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바르는 좌측으로 걸음을 옮겼고, 칼과 제이크는 그런 바르의 뒤를 쫓았다.

* * *

“허억, 허억.”

리버티의 운영을 맡고 있는 점원, 알베트는 휴식 시간을 이용해 골목 사이를 뛰고 있었다.

타앙!

그리고 급하게 어느 저택의 계단을 힘껏 오른 뒤, 문을 열어젖혔다.

“모렐!”

방 안에는 위스키병이 바닥에 한가득 널브러져 있었고, 침대에서는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는 다크 엘프가 엿보였다.

“무슨 일이야?”

모렐이라고 불린 다크 엘프는 급박해 보이는 알베트와 달리 따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 진짜 왔어. 메노스 템벨의 인장을 가진 남자가…….”

“?!”

예상치 못한 소식에 모렐은 곰방대를 테이블에 올린 뒤, 몸을 벌떡 일으켰다.

“폰, 그 자식이 왔다고!”

알베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야. 다른 놈이 왔어. 붉은 머리를 가진 남자였어.”

“그 녀석은 누구야?!”

모렐은 인상을 홱 찌푸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폰이 뜻을 같이한 비밀 결사 메노스 템벨의 수장은 갑자기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지 않나.

활동 자금을 관리하는 폰은 아예 모습을 감춰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다.

리더의 부재는 조직의 붕괴를 불러일으켰고, 구성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모렐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조직원들과 달리 메노스 템벨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다.

수장이 죽었으면 자신이 그 자리를 대체하면 그만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활동 자금을 프리메이슨에서 빼돌려야 했다.

그러나 인장을 가지지 않았다면, 자금을 빼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힘으로 프리메이슨을 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미친 짓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인장을 가지고 있는 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드디어…….”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일이 실현되자, 모렐은 주먹을 쥐었다 피며 의지를 다졌다.

“약속 잊지 않았지? 보물창고의 보물 일 할을 넘긴다는 약속 말이야.”

모렐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푸욱!

대답과 함께 모렐은 어느새 뽑은 단검을 알베트의 머리에 과감하게 찔러 넣었다.

“……어?”

주륵.

알베트는 그대로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었다.

모렐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죽은 녀석하고의 약속을 지킬 필요는 없지.”

모렐은 알베트의 주머니에서 아티팩트와 신분증을 꺼낸 뒤, 자리에서 벗어났다.

* * *

바르의 안내를 통해 도달한 곳은 거대한 크기의 집무실이었다.

어두컴컴한 지하는 여러 개의 등불이 밝히고 있었으며, 책상에는 2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체구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히죽 웃으며 드러난 잇몸에는 금니가 한 개가 박혀 있었다. 남자는 펑퍼짐한 몸 위로 은회색 다람쥐의 모피로 만든 외투 만텔 다누를 걸치고 있었다.

거기에 각 검지와 약지에 두 개의 금반지를 끼고 있는 모습은 그가 호화로움과 사치를 즐기는 남자라는 것을 쉬이 짐작하게 해줬다.

탁탁.

그는 미리 만들어둔 시가에 불을 붙인 뒤 한 모금 들이키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후우. 슬링거라고 합니다. 프리메이슨 루콘 지점 점장이죠. 그나저나 무슨 용무로 오셨는지요.”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며 말하니,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한층 더 심해졌다.

“돈을 찾으려고 왔어.”

칼은 메노스 템벨의 인장을 들어 보였고, 바르는 그 인장을 받아 슬링거에게 건네줬다.

의외로 어울리지 않게 손수건으로 인장을 집어 조목조목 살피던 슬링거는 의외다 싶은 표정으로 말했다.

“진짜 메노스 템벨의 인장이군요. 한데, 어째서 폰이 아닌 당신이 온 거죠? 칼리언트 슈타크.”

‘사령관님의 이름을 알고 있어!!’

정체를 밝히지 않았는데, 어떻게 간파를 당한 것일까?

오히려 당사자인 칼보다 제이크는 훨씬 우려스런 표정으로 칼과 슬링거를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 녀석은 죽었고 내가 인계자야.”

얼핏 보면 억지로 뺏었다는 말로 들리지만.

프리메이슨에서 발급해 준 인장은 결코 어수룩하지 않았다.

소지자가 인장을 누군가한테 인계할 때는 마법적인 효력이 깃들게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인장을 강탈해간다면, 인장은 그 즉시 효력이 사라져 평범한 반지가 된다.

현재 슬링거가 들고 있는 반지에는 그러한 반응이 전혀 없었다.

그것이 칼이 폰에게서 인장을 약탈한 것이 아닌 전달받았다는 증거였다.

‘듣던 거랑 차원이 다르군.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기백을 지닐 수 있는 건지.’

슬링거는 시가를 입에 문 상태로 칼을 쳐다봤다.

억센 눈빛과 다부진 체격, 팔짱을 끼고 있는 그 모습은 어떤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스윽.

슬링거는 다시 인장을 바르에게 넘겼고.

그것을 받아든 바르는 다시 칼에게 인장을 넘겨주었다.

“안내하겠습니다.”

바르의 말에 제이크가 따라가려 했지만, 칼은 팔짱을 낀 채 슬링거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슨 불쾌한 점이라도 있었는지요.”

슬링거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칼은 넌지시 한마디를 던졌다.

“그 힘. 대체 뭐지?”

“?!”

가볍게 내뱉은 한마디에 바르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황했고, 슬링거는 미간을 좁히며 칼에게 말했다.

“힘이라니 무슨 소리인지요?”

“……마도 유산이랑은 다른 인외의 힘이군.”

겉보기에는 비대한 몸집을 지닌 인간으로 보이지만, 슬링거의 전신에는 왠지 모를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후후후후. 손님, 뛰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으시군요.”

실실 웃던 슬링거는 양손을 모아 턱을 기대며 말했다.

“한데, 그게 출금이랑 그렇게 관련이 있는 이야기일까요?”

“딱히 상관은 없지.”

간섭을 하지 말라는 뉘앙스에 구태여 충돌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 칼은 본래의 용무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 * *

프리메이슨의 금고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에 있는 수로를 이용해야 했다.

쏴아아아아.

마치 강을 보는 것 같은 크기에 제이크는 으스스 몸을 떨었다.

‘여기는 알테어만큼 불길한 곳이네.’

칙칙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흐르는 물소리는 범인에게는 공포로 다가왔다.

현재 칼은 바르의 안내 하에 나룻배를 타고 금고로 이동 중이었다.

칼은 지하수로의 규모를 살피다가 노를 젓고 있는 바르에게 물었다.

“이 지하수로의 규모는 어디까지지.”

“아스피스 전체입니다.”

“아스피스의 영주는 알고 있는 건가?”

“애초에 아스피스의 번영을 책임지고 있는 것은 프리메이슨입니다. 그리고 영주의 암묵적인 동의 없이 이런 대규모의 시설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죠.”

“보물창고의 소유주들은 누가 더 있지?”

“고객 정보 누설은 엄금입니다.”

칼은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내 다음 질문을 건넸다.

“보물창고를 누가 털려고 하면 어떻게 되지?”

“가디언이 지키고 있죠. 그들의 눈은 어디에나 널려 있으며 상상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것들인가?’

제이크는 수로 곳곳에 놓인 가고일 석상들을 바라보았다.

석상의 크기는 소인만 한 것부터 성인보다 큰 것까지 다양하게 있었는데, 수로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그 숫자는 어림짐작해도 천을 웃도는 것 같았다.

머리 언저리에는 붉은 광채의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우웅.

때마침 붉은 보석에 빛이 발하고 있었다.

까닥! 까닥!

드르륵.

순간 고블린처럼 작은 가고일의 석상이 귀와 날개를 움직이며 제이크 쪽을 바라보았다.

주륵.

‘서, 설마 날 본 거야?’

제이크는 식은땀을 흘리며 떨떠름한 얼굴로 바르에게 물었다.

“그, 근데 저게 왜 움직이는 거죠?”

제이크의 질문에 바르는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

“그럴 리가요? 침입자가 들어올 때를 제외하고는 얌전히 있도록 설계된 건데요?”

키에에에엑!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고일의 석상이 포효를 내지르며 제이크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날아왔다.

홱!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제이크는 잽싸게 고개를 수그렸고.

콰아앙!

칼의 주먹이 가고일의 얼굴에 처박혔다. 가고일은 박살 나버렸다.

그와 동시에 수로에 배치된 가고일의 석상들이 하늘로 날아오르더니 배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당황한 바르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난색을 표했다.

“크크크크”

그와 동시에 뒤쪽에서 나룻배가 다가오며 다크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이 벌인 짓이냐?”

칼은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그를 쏘아봤고.

“모렐이다. 메노스 템벨의 유산을 되찾으러 왔다.”

모렐 역시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칼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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