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타앗!
“흐아아아앗!”
제이크는 비탈길을 발목이 돌아갈 정도로 질주하며 목청이 터져라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쿠워어어어어!
비명을 지르게 하는 원인은 바로 뒤에 추격해오는 거대한 야생 곰이었다.
겨울잠을 막 깨고 나왔는지, 녀석은 게걸스럽게 침을 흘리며 흉포한 야성을 뿜어내고 있었다.
“살려주십시오! 사령관님!”
제이크가 다급하게 달려간 곳에서는 칼이 모닥불을 불쏘시개로 찌르고 있었다.
“잡아. 알테어에 사는 것보다 훨씬 약한 놈이구먼.”
칼의 냉담한 한마디에 제이크는 어이가 없다는 소리쳤다.
“저건 곰입니다! 전 일개 행정병이고요!!”
“전투 행정관이잖아.”
“정정이 의미 없습니다! 어푸!”
처절하게 한마디를 내뱉은 제이크는 철퍼덕 바닥에 엎어졌다.
크워어어!
그 기회를 틈타 야생 곰의 육중한 발이 제이크의 등을 덮쳐왔다.
‘제, 젠장!’
자신의 최후를 직감한 제이크는 덜덜 떨며 흉포한 곰의 행동을 지켜봤다.
콰아앙!
그 순간, 언제 다가온 건지 모를 칼의 주먹이 곰의 면상에 적중했다.
크르르르르?
이빨이 우수수 깨진 곰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칼을 쳐다보다가…….
주륵!
쿵!
입가와 머리에서 피를 쏟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고, 곰을 맨손으로!”
경이적인 광경에 제이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칼을 쳐다봤다.
여기서 튀어나온 칼의 말은 한층 더 가관이었다.
“눈 안 감는 거 보니까 소질 있네. 조금만 더 하면 잡을 수 있겠다.”
“어디가요?! 왜 제 행정 능력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전투 능력을 육성하려고 하시는 겁니까!”
제이크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칼을 쳐다봤다.
사실 곰에게 쫓게 된 경위도 곰을 잡아 오라는 칼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이 양반이 미쳤나?’라고 생각하며 농으로 여겼지만, 그것은 제이크가 칼을 몰라보고 한 생각이었다.
‘왜 우리 사령관님이 루콘의 광견인지 알겠군.’
상식 밖의 명령이 감당하기 어려웠던 제이크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깨달았습니다. 사령관님 할 말이 있습니다.”
“뭔데? 그만둔다고 하면 죽인다.”
0.1초도 안 돼서 제이크의 생각은 간파당했고.
‘씨잉.’
제이크는 눈물을 찔끔 흘리며 머릿속의 답을 번복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혼자서 곰을 때려잡는 경지에 도달해 보이겠습니다.”
“그래야지.”
칼은 고개를 끄덕였고.
“가죽 해체 작업 진행하겠습니다.”
제이크는 단검을 꺼내 들어 곰의 사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피잇!
살점을 푸욱 찔러 도려내자 피가 얼굴에 튀었지만, 제이크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단검을 움직이며 생각했다.
‘이제는 익숙하다. 익숙해.’
처음에는 피와 시체만 봐도 질겁했지만, 칼이랑 같이 다녀서 그런지 나름 배짱도 생기고 체력과 전투 실력이 이전이랑 비교도 되지 않게 향상됐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제이크는 침울한 표정으로 나무 밑동에 앉아있는 칼에게 질문을 건넸다.
“사령관님.”
“왜?”
“예산을 구하러 간다고 해서 슈타크 가문의 본가로 가는 줄 알았는데, 왜 남부까지 오게 된 겁니까?”
“거기에 돈이 있거든. 주인이 없으니까 내가 쓰려고. 행선지는 아스피스야.”
칼은 반지를 엮은 목걸이를 꺼내 보이며 피식 웃었다.
* * *
아스피스.
그곳은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탄생하게 된 도시이며 루콘의 곡물 창고로 불린다.
농업적 풍요로움은 곧 신의 은총으로 떠받들어져 종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그래서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인 레피나도 신전이 존재했다.
그 외에도 광장과 포장된 가로, 수로 등.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가 다양했다.
특히 중간중간 수로를 오가기 위해 만든 아치형 돌다리는 고풍스런 멋을 자아냈다.
이실리아만큼은 아니지만, 아스피스의 영지민들은 번영한 이 땅에 대한 자부심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아스피스 찬가를 부르고 다니기도 했었다.
[아아, 아스피스!
세상 끝에 남은 황금의 땅이여!
절대번영을 약속한 게하르의 의지로 세워진 루콘의 방패!
우리는 당당히 이 땅에 깃발을 세우리니
번성과 축복을 누리며, 모두가 웃을세!
아스피스! 아스피스!]
“아리따운 평화네요.”
동네 아이들이 줄지어가며 장난스럽게 도시 찬가를 부르는 모습에 제이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그는 칼과 함께 아치형 돌다리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따분한 곳이지.”
알테어와 비교하면 긴장이 절로 풀릴 수밖에 없는 곳.
칼은 실제로 그 평화가 지루해 홀로 하품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퍼억! 퍼억!
때마침 다리 밑 수로 부근에서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이 서로 주먹질을 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처음에는 같잖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칼이었지만.
“흐음.”
조금 더 싸우는 과정을 지켜본 결과, 그는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침음성을 흘렸다.
“왜 그러십니까?”
제이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이유를 물었다.
“단순한 삼류가 아니야. 그리고 싸움을 하는 마음가짐도 남달라 보이고.”
흥미진진하다는 칼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이크는 ‘그런가?’라고 생각하며 조금 더 주의 깊게 싸움을 들여다보았다.
퍼억! 퍼억! 퍼억!
주먹에 피가 튀길 정도의 잔혹함.
“죽어!!”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정말로 상대를 죽일 것처럼 후려치는 야만스러움.
제이크는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칼에게 말했다.
“저 정도는 알테어에서 되게 흔하게 보는 풍경인데요.”
“이렇게 평화로운데, 어떻게 저런 야성이 튀어나올 수 있을까?”
“?!”
칼이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깨달은 제이크는 눈을 부릅떴다.
바로 그 순간.
홰액!
키가 제이크의 허리 반절도 안 되는 로브를 뒤집어쓴 아이가 제이크의 주머니를 손으로 집었다.
“어림없지!”
이미 이런 짓에 지겹게 당해본 제이크는 아이의 손을 홱 뿌리쳤다.
“크윽?!”
당황한 아이는 재빨리 발을 굴려 도망치려고 했지만, 얼마 안 가 칼에게 목덜미를 붙잡힌 채 데롱데롱 매달리는 신세가 돼 버렸다.
“요, 용서해주면 안 될까? 헤헤,”
로브를 들춰내자 어린 소녀가 최대한 살갑게 웃고 있었다.
잠시 후.
소매치기 소녀는 가로수 그늘에 등을 기대며 앉은 채로 제이크가 사준 사탕을 핥고 있었다.
사탕의 단맛에 눈을 반짝이던 소녀는 팔짱을 끼고 있는 칼에게 말했다.
“오빠 진짜 친절하네. 보통 망할 계집애라든가. 도둑고양이라고 욕하고 때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내가 때리면 죽으니까. 그런 이유로 때리고 다니면, 남아날 사람이 없거든.”
히끅!
단순하게 사실을 말해준 것뿐인데, 소녀는 등을 꼿꼿이 세우며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제이크를 쳐다봤다.
“진짜?”
설마 하는 심정으로 물었지만,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곰도 맨주먹으로 때려잡는 사람이야.”
“노, 농담이지.”
적잖이 놀랐는지, 소녀는 파르르 손을 떨고 있었다.
제이크는 무심결에 칼을 쳐다보았다.
‘그때 선포했던 대로라면, 여자나 애는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 것 같은데, 쑥스러워서 일부러 저렇게 말하는 건가?’
평소처럼 냉담한 그 표정을 보니, 성격 파악이 쉽지 않았다.
“이름은?”
칼의 짤막한 질문에 소녀는 은연중 가졌던 공포를 잊고 활짝 웃으며 답했다.
“팡고야. 나이는 열 살이고 부모님은 지병으로 돌아가신 지 오래됐어. 지금은 소매치기로 근근이 살고 있어. 어딜 가도 나같이 어린 사람은 안 써주다 보니, 먹고살기가 힘들거든.”
별 관심도 없던 터라 칼은 곧장 화제를 전환했다.
“다리 밑에서는 왜 저렇게 싸우는 거지?”
“아, 저거. 흔히 말한 남자들의 낭만이거든. 슉슉!”
팡고는 장난스럽게 주먹을 연달아 허공에 내지르며 대답했다.
“우리 같이 흔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을 스트레이 독이라고 부르거든. 가끔 이런 부류들이 갱단을 만드는데, 이곳 아스피스에서는 정정당당하게 주먹으로 승부를 내서 이기는 사람한테 모든 걸 넘기는 법칙이 있어. 잃기 싫은 사람은 무조건 싸워서 이겨야 해.”
“나 참.”
팡고의 말에 제이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마음에 드는 방식이네.”
의외로 칼은 그들의 방식이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팡고는 그런 칼이 신기한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오빠 신기하네. 보통 귀족들은 야만스럽다고 싫어하는데.”
“내 마음이야.”
칼의 짤막한 답에 팡고는 입꼬리를 빙그레 올리며 말했다.
“참고로 지금 이곳 아스피스를 정복한 건 마틴이야. 엄청나게 세서 이곳 영지 병사나 기사들도 함부로 못 건드린다고.”
“…….”
팡고의 말에 칼과 제이크가 동시에 미간을 좁혔다.
병사까지 제압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범주지만.
기사부터는 대개 마나 연공식을 터득해 본격적으로 오러를 활용할 수 있는 유저가 대다수다.
그런 기사가 한낱 길거리의 건달에게 제압당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곳은 루콘의 곡물 창고로 불리는 아스피스.
여기 기사들은 심성은 몰라도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흥미롭군요.”
“볼 수 있으면 좋겠군.”
칼은 기대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탕을 완전히 이빨로 깨부순 다음 와그작, 와그작 소리를 내며 씹고 있던 팡고는 칼을 쳐다보며 말했다.
“만나게 해 줄까? 주선해 줄 수 있는데.”
“시간이 남으면. 그보다 한 가지 더 묻지.”
“뭔데?”
팡고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칼을 반짝반짝 쳐다봤다.
얼굴만 보면 천사라고 생각될 정도로 귀엽지만, 엄지와 검지를 둥글게 말고 있는 손은 참 영약한 꼬맹이가 아닐 수 없었다.
칼은 날카롭게 응시하는 것으로 그녀의 행동을 위축시켰다.
“끄응. 오빠 눈 너무 무섭네.”
팡고는 졌다는 듯이 고개를 수그렸고 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질문을 건넸다.
“프리메이슨은 어디 있지?”
“히, 히익!!”
내가 뭘 들은 거지?
그녀는 마치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으로 귀를 문지르며 주변을 쳐다봤다.
프리메이슨.
뒤 세계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수많은 악인과 범죄자가 몰리는 금융 길드이기 때문이다.
‘자, 잘못 건드린 건가?’
꿀꺽!
칼을 악독한 범죄자로 오해한 팡고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잔뜩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
그리고 바로 옆에서 칼의 말을 들은 제이크도 사색이 된 채, 칼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게 어디 있는지 난 몰라!’
“지, 진정하자. 팡고, 오우거 앞에 있어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어.”
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팡고를 쳐다보며 말했다.
“……겉이랑 속말이 바뀌어서 튀어나온 것 같은데? 안 잡아먹으니까. 빨리 말해.”
칼의 재촉에 팡고는 눈을 질끈 감으며 입을 열었다.
“시, 시가지에 있는 리버티라는 간판이 있는 상점이 있어요. 암구호 같은 건 모르고요. 정말이에요.”
“알았다.”
칼은 팡고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대로 제 갈 길을 갔다.
파르르.
아직까지도 눈을 감고 떨고 있던 팡고가 실눈을 떴을 때는 이미 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대신, 바닥에는 은화 열 닢 정도 담긴 주머니가 떨어져 있었다.
“칫, 간수나 잘하지. 소매치기로서 완전 굴욕이네.”
맥이 빠진 팡고는 주머니를 주우며 툴툴댔지만.
씨익.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지 입꼬리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