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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31화 (131/197)

제131화

슈타크 본가에 머문 지 어언 사흘이 지났다.

조금 더 여독을 풀어도 나무랄 사람은 없었지만.

칼은 곧장 알테어로의 복귀를 선택했다.

안개가 무성히 낀 아침, 마차 앞에서는 칼과 사라가 이별을 하고 있었다.

아들과 이별이 아쉬웠는지, 그녀는 칼의 망토를 고쳐 매주며 쉼 없이 말을 하는 중이었다.

“바쁘다고 끼니 거르면 안 되고. 식사에 독이 들어있을 수 있으니 항상 은 식기 한 번씩 갖다 대보고, 전투에 나갈 땐 검을 꼭 챙기고. 그리고 바바 밥 잘 챙겨줘야 된다.”

“…….”

이래저래 뒤죽박죽 하고 싶은 말이 뒤섞여 심각한 사안이 나오기도 하고 황당하다 싶을 정도의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쯤 되니, ‘날 걱정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침울해하고 있는 그녀를 본 칼은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었다.

“검은 잊어먹을 리 없고 저놈은 알아서 잘 먹습니다.”

갸르르릉!

때마침 눈을 핥은 바그로바는 혀로 느껴지는 한기에 크게 놀라 털을 꼿꼿이 세우며 칼에게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사라는 행복한 표정으로 물었다.

“후후후, 귀여워. 저건 어느 품종 고양이니?”

갸아아앙!

고양이 아니라고!

바그로바가 항변하듯 크게 울부짖었지만.

“길바닥에서 주워왔습니다.”

칼은 고귀한 혈통을 무시하는 막말을 내뱉었다.

갸아아앙!

아니라고!

분노한 바그로바가 칼의 다리를 물려고 했지만, 일찌감치 녀석의 행동을 예상한 칼이 발로 사뿐히 바그로바를 밀었다.

녀석은 허우적거리며 다리를 버둥거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주변에 있던 호위무사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았다. 그 중 바그로바의 품종을 간파한 병사가 주변 동료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저거 노빌레 레오네 아니야?”

“아무도 따르지 않는 고귀한 성품을 지녔다고 하는데…….”

“도련님한테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평소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강박을 지니고 활동했던 슈타크가의 막내아들은 2년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귀환하자마자 가주가 보고 있는 앞에서 형제자매들에게 선전포고하지 않나.

맨손으로 인조 아다만티움을 여섯 장이나 격파하는 엄청난 실력을 보이기도 했다.

칼은 이전과 비교해 힘도 격도 깡도 현격히 달라져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칼은 예를 갖추며 등을 돌렸다.

사라는 그런 칼의 등을 붙잡을 것처럼 손을 뻗다 곧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자주 놀러 올 거지?”

“한동안은 바쁠 것 같습니다.”

칼은 피식 웃으며 그대로 마차에 올라탔다.

* * *

휘이이잉!

세찬 눈보라에 루콘의 최종방위라인이자 최악의 흉지인 알테어의 병사들은 다시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병력도 충당이 안 돼 이 만에 달했던 병사들은 칠천 명 내외밖에 남지 않았고.

극심한 추위로 인해 동사하는 이들도 급격히 증가했다.

그나마 루콘 최강의 무가인 슈타크가가 통솔하는 땅이기에 이 정도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거였다.

평범한 귀족이었다면 이미 스스로 목을 매 자결을 한다거나 영지 운영을 포기하고 도망을 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이곳은 죽음과 공포가 도사리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곳에 뚫린다면, 루콘의 방어가 극심하게 무너지기에 루콘은 슈타크가에 재정을 지원해주고, 슈타크 가문은 그 재정을 이용해 알테어를 운영하고 있었다.

휘이잉!

그리고 오늘도 험난한 전투가 연이어 펼쳐졌다.

아울베어가 성곽 쪽에서 모습을 드러내었기 때문이다,

곰의 체격에 부엉이의 외형을 갖춘 이 몬스터는 크기도 속도도 일반 곰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엄청난 식성 때문에 오크 무리를 학살하고 다니기로 유명했다.

한마디로 훈련이 된 병사들도 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녀석의 날쌔면서도 과격한 움직임에 구축 중이던 성벽이 이곳저곳 부서졌다.

크아아앙!

하지만 녀석은 인간의 마을로는 침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앞에는 그보다 훨씬 작은 붉은 머리의 기사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크아아아앙!

격정에 취한 아울베어는 기사를 향해 어금니를 들이밀었지만.

푸욱!

기사의 검은 단칼에 아울베어의 이마를 쪼개버리며 최후를 선사했다.

쿠웅!

머리가 절단된 아울베어는 육중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더러워.”

검에 아울베어의 피가 잔뜩 묻은 프루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허공에 힘껏 휘둘러 피를 털어냈다.

새하얀 눈에 퍼져 나가는 붉은 핏방울이 이곳이 알테어라는 것을 모두에게 인식시켜주었다.

“괘, 괜찮습니까? 사령관님.”

프루아의 명으로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은 쭈뼛대며 면목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약해 빠진 것들.’

빠득 이를 간 프루아는 병사들을 공기 취급하며 고개를 돌렸다.

다그닥, 다그닥.

그때 기사단이 프루아 쪽으로 몰려왔다.

척!

말에서 내려 프루아에게 예를 갖춘 기사는 황급히 보고를 올렸다.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오크 군단의 진압은 완료했습니다.”

“수고했어.”

‘한숨 덜었군.’

프루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추위로 굳은 어깨 근육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눈보라가 불어 닥치고 있는 험난한 요새를 보며 생각했다.

‘이곳이 알테어인가?’

칼리언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알테어의 사령관을 임시로 맡게 됐지만.

이곳을 통솔하면서 프루아는 새삼스럽게 자신의 위치를 자각했다.

그동안은 슈타크 가문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라고 자부하고 다녔지만, 이곳은 그런 프루아의 자존심을 깡그리 부숴버렸다.

‘여기는 절대로 정복할 수 없는 땅이야.’

보통의 경우라면, 이곳에 우수한 인재를 배치해 알테어를 정복하게끔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이곳의 위험은 그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파르테스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지략가를 배치해도 고작 1년도 안 돼서 정신이 붕괴되는 곳이 바로 이곳 알테어다.

루드거 슈타크마저 이곳을 평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아예 전략을 바꿔 차라리 버릴 패를 소진하면서 근근이 버텨나갈 것을 선택했다.

그때, 전령이 다가와 프루아에게 말을 걸었다.

“사령관님.”

“뭐지?”

프루아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자, 전령은 짐짓 당황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새로운 사령관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

그의 말에 프루아도 조금 놀랐는지 눈을 부릅떴다.

‘정말 왔다고. 이 흉지에…….’

* * *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앞에서 칼은 불쏘시개로 장작더미를 정리하고 있었다.

갑주를 벗고 가벼운 의상으로 갈아입은 프루아는 슬쩍 칼을 훔쳐봤다.

‘달라졌다.’

일전에 이곳에 떠나기 전에 마주쳤던 칼의 압도적인 기백을 떠올린 프루아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그도 그럴 게.

지금의 칼은 이전보다 키도 훨씬 커졌고, 몸 역시 근육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봤자 애송이야.’

프루아는 유약했던 칼의 모습을 떠올리며 빠득 이를 갈며 말했다.

“설마 이렇게 빨리 돌아올 줄이야. 차라리 따뜻한 곳에서 자살하는 게 빠르지 않았을까?”

“내 땅인데, 빨리 와야지.”

“이게!”

오만불손한 말투에 프루아는 인상을 왈칵 찌푸리며 주먹에 힘을 주었다.

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수인계 준비해. 끝마치면 바로 꺼지고.”

빠직!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프루아는 칼의 멱살을 쥐며 말했다.

“아무래도 정신이 회까닥 돌았나 본데, 어렸을 때 나한테 구타당했던 기억을 잊어버린 거냐?”

크르르르르.

프루아가 노골적인 살기를 발산하자, 반응한 것은 칼이 아니라 밑에 있던 바그로바였다.

아직 어린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바그로바는 당장이라도 프루아를 물어뜯을 것처럼 살벌하게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호오, 귀여운데 네 애완동물이냐? 주인을 닮아 건방지네!!”

날카롭게 눈을 치켜뜬 프루아는 칼의 멱살을 풀고 발로 힘껏 바그로바를 걷어차기 위해 다리를 들었다.

그 순간.

“크하아악!”

어떻게 된 영문인지 프루아의 몸은 벽에 박혀 있었다.

그 충격으로 벽에 걸려 있던 동물 머리 박제가 후두둑 떨어졌다.

“크흑!”

실수로 혀를 깨문 프루아의 입술 사이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뭐야? 방금 그 움직임!’

바그로바를 걷어차기 직전 프루아는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자신의 머리를 붙들고 우악스러운 악력으로 날려버리는 칼을.

‘그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저건 대체 뭐야?!’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강함에 프루아는 크게 놀라 동공을 파르르 떨었다.

아무리 방심을 했다고 하지만 칼의 움직임은 프루아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저벅저벅.

칼은 그대로 걸음을 옮겨 프루아의 멱살을 쥐었다.

“두 번은 없다. 인수인계해.”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르는 심홍색의 눈에 프루아는 점차 전신이 압박당하는 것만 같았다.

“크윽! 준비해야 되니까 내일까지 시간을 줘.”

“그러시던가. 수작 부리면 죽는다.”

프루아의 멱살을 잡은 손을 푼 칼은 그대로 등을 돌려 자신의 방으로 향했고 바그로바는 꼬리를 살랑거리며 칼을 쫓아갔다.

* * *

칼과 대면이 끝난 후.

콰앙!

프루아는 자신의 집무실에 마련된 책상을 주먹으로 박살 내며 성을 토했다.

“죽여버리겠어! 그 자식!”

칼에게 굴욕을 당한 그는 지금 당장 검을 뽑아 복수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를 늪에 빠뜨리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얼핏 보아도 무인으로서 역량은 이미 칼이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라마스 형님만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키이라 이상이야.”

일전에 키이라와의 검술 대련에서 중에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패배를 한 것을 떠올린 프루아는 이를 갈았다. 여기서 더욱 그를 열 받게 하는 것은 루드거로부터 온 편지에 적힌 문구였다.

「알테어에서 기사단을 꾸리고 있다지. 미련 없이 칼리언트에게 넘기고 돌아오거라. 다시 그만큼의 지원을 하마.」

빠득!

“어째서 이 녀석한테만 이런 혜택을 주는 거야.”

이 험난한 땅에서 기사단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최소한의 예산을 제외한 나머지 예산은 모두 기사단을 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험난한 땅에서 엄청난 전투를 경험한 기사단을 그렇게 홀라당 칼에게 넘긴다니…….

그동안 프루아가 공들인 탑을 무너뜨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크.”

호명하기 무섭게 문이 열리며 중후한 턱수염을 가진 기사, 마크가 프루아의 앞에 섰다.

“부르셨습니까?”

“난 너를 누구보다 아끼고 있다.”

“감사합니다.”

히죽.

예를 갖추며 답한 마크에게 프루아는 음산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사람 하나를 사지로 몰아줄 수 있을까? 내 사랑스러운 막내 동생을 말이야.”

광기 어린 눈빛과 웃음에 마크는 조금 긴장한 듯 움찔했지만.

씨익.

이내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프루아에게 답했다.

“어떻게 주인의 명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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