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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30화 (130/197)

제130화

“지, 지금 무슨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야?”

누가 봐도 노골적으로 당황하고 있는 락티아에게 칼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있는 앞에서 바로 중독시키는 건 무모한 짓일 테니까, 반응이 나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독을 썼겠지. 가령 독의 효과가 나타나는데 반나절 이상 걸리는 부를로네라던가.”

“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부를로네.

그것은 칼이 알테어에 있던 당시에 중독된 적이 있는 독의 한 종류로 다행히 극히 소량만 섭취했기 때문에 죽지 않고 살아날 수 있었다.

‘일기장을 통해서 보면, 강박에 사로잡힌 건 그때부터겠지.’

직접 겪은 일은 아니었음에도 불쾌감이 치솟은 칼의 눈은 벼려진 검처럼 날카로웠다.

“따라.”

그러고는 손에 쥔 잔을 흔들어 보였다.

움찔!

그 기백에 놀란 락티아는 뒷걸음질을 치며 말을 더듬었다.

“……저,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칼리언트.”

두근두근

당황으로 인해서 락티아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미 그녀는 칼의 기세에 제압되어 심하게 동요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키이라가 옆에서 조언을 해주었다.

“계속 분란을 일으켜 봤자,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녀의 말을 들은 칼은 잠시 고민하다가 잔을 테이블에 올려두며 락티아에게 말했다.

“배짱이 없으면 선을 넘지 않는 게 좋아.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는 게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울컥!

도발적인 말에 락티아의 얼굴이 분노로 빨개졌다.

그럼에도 도발에 넘어가지 않은 것은 여기서 계속해 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칼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스쳐 지나갔다.

뚜벅뚜벅.

다시 주변의 시선이 칼에게 집중됐다.

이미 칼의 언행은 형제자매들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었다.

우스운 것은 누구 한 명도 그 부분에 대해서 칼에게 지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뒤늦게 모습을 드러낸 루드거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지금껏 슈타크 가내에서는 계승자의 난이라고 해서 수많은 혈족들이 서로 죽이고 죽이는 비극이 벌어지곤 했었다.

그런 참혹한 비극을 막기 위해 오늘 같은 날을 만들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경쟁 구도가 형성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슈타크 가문의 막내아들.

위치로도 계승권으로 가장 열세에 있는 칼리언트에 의해 경쟁 구도가 깡그리 박살이 났다.

그것은 굳이 루드거가 말을 해주지 않아도 형제, 자매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구축해온 지지기반의 힘을 이용해도 칼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살벌한 늑대들 사이에 있는 광견의 존재감은 특히 돋보이고 있었다.

주륵.

음산한 기운을 발산하며 다가오는 칼을 보던 루드거의 손은 어느새 축축해 있었다.

‘잘못하면 나도 잡아먹히겠군.’

긴장해서 흐르는 땀이 아니었다.

칼의 장래가 너무 기대되어서 흥분하고 있는 것뿐이다.

어느새 칼은 루드거의 앞에 서 있었다. 루드거는 자신의 앞에서 예를 갖추는 칼에게 물었다.

“칼리언트. 일전에 했던 약속은 잊지 않았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약속은 과거, 파르테스 검술 대회를 구경하러 온 루드거와 한 약속이었다.

그것은 알테어에 숨겨져 있는 마도 유산을 가져오는 것.

“저는 슈타크가가 누리던 영광을 쟁취하겠습니다.”

“?!”

조용한 대답이었지만.

대답에 숨겨진 뜻을 알고 있던 몇몇 형제는 턱을 떨어뜨리며 크게 경악했다.

그 대답에 유일하게 만족하여 웃는 것은 루드거 슈타크뿐이었다.

* * *

가족끼리의 만찬은 끝이 났다.

옷을 갈아입은 칼은 지쳤는지 침대에 몸을 눕혔다.

“피곤하군.”

갑작스럽게 달라진 환경에 의외로 심신이 긴장하고 있던 건지, 침대에 눕자마자 몸이 흐느적거리는 것 같았다.

갸르릉.

바그로바는 그런 칼의 머리맡에 다가와 그대로 몸을 눕혔다.

쫓아낼까 고민하던 칼은 부드러운 털과 따뜻한 체온 때문에 그냥 베개로 삼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새끼였지만, 덩치가 꾸준히 크고 있으니 아마 같이 자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똑같군.’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칼은 슈타크가의 분위기가 마계와 비슷하다는 생각했다.

정이란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상대를 죽이기 위해 투쟁을 벌여왔던 삶.

그것이 당연하여 조화를 이루는 법은 전혀 배우지 못했다.

칼은 문득 그랬던 자신이 과연 슈타크가를 평정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리.’

말을 안 들으면 패버리는 게 편하지.

사근사근 대화를 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다.

‘아카데미에서는 딱히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파르테스에 있던 일을 떠올리던 칼은 이내 잠에 취했다.

하늘에서 쏟아진 일곱 줄기의 성운에 사람들이 열광하며 그 존재들을 에클라 세트라며 찬양했다.

하지만 이런 이들과 달리 태어나기 전부터 그 존재를 부정당한 남자가 있다.

남자를 낳은 것은 생명을 낳는 거대한 나무인 세피로트였다.

마계의 질서는 세피로트에서 태어날 때의 계급이 높은 마족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열매의 등장에 모든 마족들이 긴장했다.

지금까지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푸른 녹음을 자랑했던 세피로트의 잎사귀가 마르고 급격히 쇠해졌다.

세피로트를 관리하던 마족은 크게 당황해서 원인을 분석했고.

얼마 안 가 세피로트에 맺혀있는 한 열매가 원인인 걸로 밝혀졌다.

우웅.

불길하다 싶을 정도로 강대한 기운을 품고 있는 열매.

마계의 규정상 세피로트의 열매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마계를 지배하고 있던 마왕들은 병력을 이끌고 열매를 터뜨리려고 했다.

이 사실을 눈치챈 사내는 알 속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처음 사내가 눈을 뜨고 본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서슬 퍼런 검을 들거나 혹은 광대한 마법을 자신에게 겨누는 마족들.

아직 미성숙한 몸을 가진 사내는…….

파앗!

곧장 등에 여섯 날개를 펼치며 눈앞에 있는 모든 마족들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그것이 마왕 벨리앗의 탄생이었다.

지금껏 태어나면서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불길한 징조에 마왕들은 더 많은 병력을 파견했다.

벨리앗은 망설이지 않고 죽고 죽이고 또 죽였다.

예측을 넘어선 벨리앗의 기행에 마왕 중 한 명이 직접 자신들의 군단을 이끌고 찾아왔다.

하늘에는 마족들이 깔려 있었고, 자신보다 월등히 큰 마왕은 벨리앗을 향해 서슬 퍼런 살기를 내뿜었다.

그 순간 벨리앗은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모든 생명의 죽음으로 인식했다.

세상의 마족들이 자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경험이 축적되고 더 강해지면서 부하로 자처하고 온 이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그들을 받아들였지만, 곧 무리 안에 자신을 해치려는 자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자신을 따르는 수하 전체를 증발시켜버렸다.

그렇게 사내는 혼자서 모든 적을 학살해왔다.

손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새빨갰다.

태어나면서부터 단 한 번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그 손은 단 한 번도 피가 묻지 않는 날이 없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악의에 남자는 싸우고 죽이는 것 외에는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 * *

‘머리가 아프군.’

뒤숭숭한 꿈 때문인지 칼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흐흐흐흠.”

하지만 어지러웠던 마음은 어느 여인의 콧노래에 잠잠해졌다.

‘따뜻해.’

파르르르.

눈꺼풀을 떨며 살며시 눈을 뜨자, 그곳에는 활짝 웃으며 그를 토닥여주고 있는 사라 슈타크가 있었다.

“……어머니.”

“후후후후, 까칠해졌어도 꿈 때문에 떨고 있는 걸 보니 칼도 아직 어린 애구나. 역시 엄마의 보살핌이 그리웠나 보구나.”

“…….”

자애로운 그 미소에 칼은 잠시 입을 꼭 다물었다.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 대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사라는 그런 칼의 머리칼을 이마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왔으면 바로 만나러 와야지. 이제 어른이 된 건가? 많이 섭섭해. 왔다는 말에 얼마나 급하게 왔는지 알아?”

“죄송합니다.”

“어라? 귀 빨간데, 열이라도 나는 거야?”

홱!

사라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이마에 손을 갖다 대려 하자, 괜스레 부끄러웠던 칼은 재빨리 고개를 뒤로 젖혔다.

“열 안 납니다.”

“정말. 까칠해졌다니까.”

사라는 잔뜩 삐진 표정을 짓다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배고프지? 아침 대용으로 준비했어.”

사라는 눈을 반짝였다.

‘설마?’

급격하게 이성을 되찾은 칼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어떤 걸…….”

“반찬 투쟁하는 거 아니지? 짜잔!”

사라는 바구니 위에 덮여 있는 천을 걷자, 통밀로 반죽한 빵 사이에 아몬드와 휘핑크림을 곁들인 셈라가 가득 담겨있었다.

달콤한 향기와 그 맛은 누구라도 홀딱 빠져들었을 테지만.

칼은 새파래진 안색으로 냉정한 답변을 남겼다.

“안 먹습니다.”

사라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왜!!”

잠시 후.

와구와구.

사라가 기껏 준비한 셈라를 게걸스럽게 먹는 것은 바그로바였다.

“후후후, 많이 먹어. 칼을 닮아서 정말 귀엽네.”

사라는 자신이 만든 셈라를 맛있게 먹고 있는 바그로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면, 칼은 셈라를 손에 쥔 채 식은땀을 흘리다가 가까스로 한 입을 물었다.

사라는 실망을 넘어서 이제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왜 독을 먹은 거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먹는 거니?”

입안 가득 퍼지는 단맛에 칼은 꼴깍 그것을 삼키곤 재빨리 홍차를 들이켰다.

“단 음식으로 반찬 투정하는 건 칼밖에 없을 거야.”

이제야 칼의 바뀐 식성을 인정하기로 한 사라는 훗훗 웃으며 칼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칼이 손수건을 빼앗으려고 하자, 사라는 볼을 꼭 꼬집고 늘렸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제 이런 것밖에 없잖아. 이런 역할까지 빼앗지 마렴.”

“……제 몸입니다만.”

반박을 하는 순간.

파르르르.

칼은 미미하게 몸이 떨리는 사라를 보곤 말에 매듭을 지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들을 다시 알테어에 보낸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보다 칼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쩔 줄 몰라했다.

천진난만해 보이지만.

슈타크 가문에 시집온 그녀가 가문의 엄격하면서도 잔혹한 규칙을 모를 리 없었다.

“……왜 돌아온 거야, 칼. 엄마는 칼이 도망가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는데.”

칼은 사라의 손등에 손을 올리며 무뚝뚝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건 제가 칼리언트 슈타크이기 때문입니다.”

“…….”

그 대답에 눈물을 흘리고 있던 사라는 크게 놀랐는지, 동공을 떨며 칼을 바라봤다.

칼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단호하고 확신으로 가득했다.

내가 살아가는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는…….

그런 느낌을 주었다.

사라는 눈물을 훔치며 칼에게 물었다.

“아직도 기사가 되고 싶은 거니?”

“되고 싶은 게 아니라 되는 겁니다.”

“그렇게까지 기사가 되려는 이유가 뭐야?”

피식.

사라의 말에 칼은 드디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제가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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