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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25화 (125/197)

제125화

붉은 서킷이 밀고 들어온 곳은 마법사로서 절대 접근을 허용해서는 안 될 심장.

그리고 심장을 빙글빙글 돌고 있던 9개의 써클은 칼이 일으킨 마나 브레이크에 의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

“쿨럭!”

몸 내부로 전해지는 충격을 이기지 못한 페트로의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피가 잔뜩 흘러나왔다.

마나를 통제할 수 없었던 그는 그대로 허공에서 추락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중력을 제어해 충격을 경감한 상태로 착지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우웩!!!”

그러나 써클이 깨진 그는 반푼이 마도사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깊은 내상을 입은 노인에 불과했다.

“허억, 허억.”

페트로는 쓰라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젠장.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뭐가 잘못된 거냐고!!”

그는 억하심정으로 하늘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데제스를 바라보았다.

데제스의 눈에는 아까까지의 흥미진진하다는 시선은 사라지고 냉혹한 감정만이 서려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 자비라는 듯 데제스는 페트로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아무래도 퇴물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듯싶군요. 다 늙었으면 조용히 다음 세대에게 맡기면 되는 겁니다. 다 가지려고 하는 그 욕망 때문에 모든 걸 망친 거겠죠.”

반푼이는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렇게 여긴 건지, 데제스는 자우버와 함께 모습을 감췄다.

“크크크크, 크하하하하하하.”

그 뒤로 페트로는 한참 동안 웃음을 터뜨렸다.

저벅.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칼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내 패배일세.”

페트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에게는 더한 적이 기다릴 걸세. ……데제스 싱클레어, 그가 기다리고 있네. 대비를 늦게 하면 자네는 물론이고 라흐만 대륙이 피로 물들여지겠지.”

“이제 와서 현자인 척 지껄이지 마.”

칼은 그의 말을 단숨에 끊어버렸다.

‘패자는 말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

페트로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묻고 싶네. 자네 정체가 뭐지?”

“칼리언트 슈타크. 그걸 말고 나를 지칭할 수 있는 이름은 없어.”

그래. 그렇겠지.

칼의 옹고집에 페트로는 어렵게 입을 뗐다.

“……나는 게어트너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괴물에게 패배를 한 거로군.”

“…….”

구태여 대꾸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칼은 팔짱을 끼며 숨통이 끊어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때 백색의 마도사라며 모두의 칭송을 받던 영웅의 추락은 그야말로 비참했다.

바로 그때,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뱀파이어 폰이 칼의 앞에 착지했다.

그는 칼에게 정중하게 예를 갖추며 입을 열었다.

“이 시간 이후로 메노스 템벨은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 아니라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왔습니다.”

“안 돼.”

또 무슨 수상한 짓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단칼에 거부했다.

“그 전에 널 살려준다고 누가 말했지?”

분노로 타오르는 칼의 눈을 보던 폰은 바들바들 떨며 칼에게 인장이 박힌 반지를 땅에 내려놓았다.

“메노스 템벨의 활동 자금을 꺼내 활용할 수 있는 인장입니다. 이걸로 부족하시다면, 저에게 금제를 가하셔도 상관없습니다.”

폰은 그대로 눈을 감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악당에게도 의리는 있다는 걸까? 페트로의 시신을 수습하고자 하는 폰의 의지는 진심인 듯 보였다.

‘갱생은 어렵군. 그냥 죽이면 깔끔하게 끝나는 건데.’

한숨을 쉰 칼은 폰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순식간에 그의 이마에서 서킷이 완성됐다.

“……이, 이건.”

체내에 있는 마력이 자신의 의지를 배제하자 폰은 진심으로 놀란 듯 보였다.

“다음에 내 눈에 띄면 죽는다.”

칼은 마지막으로 그를 흘끔 노려보다 그대로 폰을 스쳐 지나갔다.

폰은 정중히 칼에게 예를 갖춘 뒤, 페트로의 시신을 안고서 자취를 감췄다.

* * *

페트로의 사후.

많은 병력을 잃기는 했지만, 재건을 위한 이실리아의 움직임은 무척이나 신속했다.

게어트너와 칼에 의해 부서진 곳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고.

가하라스가 자리를 잡은 건물들은 그대로 남겨둔 채 공사를 진행하였다.

파르테스의 학생들 역시 마을을 재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정작 이곳을 지켜낸 영웅들은 현재 병원에서 신세 한탄 중이었다.

“아파. 먹여줘. 캐서린.”

병실에서 델피나는 칭얼칭얼 앓는 소리를 내며 문병을 와준 캐서린에게 사과를 먹여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아플 때는 정말 떼를 잘 쓴다니까.”

캐서린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깎은 사과를 델피나의 입에 넣어줬다.

“맛있어!”

델피나는 무척이나 흡족한 표정으로 사과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선배도 귀여운 후배에게 문병선물 정도는 갖다 주셨어야죠.”

그러고는 다시 기분을 전환해 칼을 보며 말을 쏟아냈다.

빠직!

가만히 듣고 있던 칼은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반박했다.

“내가 환잔데 누구한테 문병선물을 해?”

게어트너와 페트로를 상대하면서 입을 상처와 축적된 피로로 칼은 몸 곳곳에 붕대를 두른 데다 목발까지 짚고 있는 상태였다.

에릭과 베르데 역시 부상이 심각해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래도 귀여운 후배가 걱정돼서 온 거니까 용서해드릴게요.”

“하여간.”

상큼하게 웃는 저 얼굴을 보고 뭐라고 할 수 없었던 칼은 한숨을 쉬었다.

아삭아삭!

그러다 자신의 밑에서 사과를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바그로바를 쳐다봤다.

“돼지를 기르고 있는 건지, 사자를 기르고 있는지.”

“사자도 많이 먹어요.”

“잡식은 아니잖아.”

“…….”

반박하기 어려운 말에 델피나는 잠시 말문을 잃었다.

그러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칼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파르테스는 어떻게 될까요?”

이 사건의 주모자인 페트로는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실리아는 사건을 일으킨 원흉이 페트로라는 걸 공표하지 않았다.

파르테스의 학장이 섬을 어지럽히는 혼란의 주체라고 한다면 여왕인 예카테리나 2세의 명성이 크게 훼손될뿐더러…….

민심에도 크게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페트로는 게어트너와 타라를 쓰러뜨리던 와중에 숨을 거둔 거로 되었다.

‘정치란 것은 복잡하군.’

전생이라 닥치는 대로 부수면 그만이지만.

인간사에서는 부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뒤의 일도 생각해야 한다.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기도 하겠지.’

성미에 맞지 않는다면 때려치우면 그만이다.

하지만 기껏 델피나가 질문을 건넸으니, 칼은 자신이 아는 한에서 대답을 해주었다.

“지금은 맥캘리가 페트로를 대신해서 안정시키고 있어. 조만간 학장 자리도 권유를 받겠지.”

“거절하겠네요.”

맥캘리의 성질을 알고 있던 델피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끼익.

병실 문이 살포시 열리며 에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흐흠, 파르테스의 새로운 학장이라면 룩스 루나에의 미라이 그라펜 교수님으로 정해졌어.”

“어떻게 그런 걸 다…….”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델피나는 당황한 나머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고, 에리는 얄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 방법이 있지. 칼. 잠깐 시간 되면 볼 수 있을까?”

묘하게 진지한 그 눈빛에 칼은 목발을 짚으며 바깥으로 나갔다.

* * *

칼이 에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 장소는 2층에 있는 칼의 병실이었다.

영웅의 병실에 걸맞게 방은 무척 넓었고 과일도 한가득했다.

에리는 칼의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창문 밖을 살피고 있었다.

아직까지 곳곳이 엉망진창이었지만, 점점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도시의 모습은 나름 운치가 있었다.

“좋겠네. 이런 곳에서 경치도 즐기고.”

“딱히.”

무심코 책을 읽던 중 도심의 경치에 감탄하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칼은 짤막하게 답했다.

“그나저나 여기는 무슨 일이야?”

“크흠.”

칼의 질문에 에리는 침대에서 일어나 양쪽 치맛자락 끝단을 잡으며 칼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시 한번 이 나라를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것은 왕녀로서 표할 수 있는 최대의 예의.

이 순간만큼은 장난스럽고 말괄량이 같던 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칼은…….

“왜 또 내숭이야? 그만해.”

눈치 없게 한마디 했다.

에리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칼의 가슴을 가볍게 퍽퍽 쳤다.

“여기를 맞으면 아프다며?”

실제로 아프기도 해서 어울리지 않게 칼은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가끔은 어울려 주란 말이야.”

에리는 삐진 얼굴로 칼을 쏘아봤고 칼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인사가 끝이야?”

“당연히 아니지. 훈장 수여식이 있으니까 도망가지 말라고 말하려고 왔어. 너도 데제스처럼 갑자기 사라질 것 같거든.”

‘눈치가 참 빨라.’

칼은 못 말리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졸업 논문도 통과했겠다, 몸만 회복되면 즉각 알테어로 복귀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냥 복귀하면 후회할 거야.”

“왜?”

괜스레 궁금한 마음에 칼은 저도 모르게 에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게어트너와 타라를 쓰러뜨린 영웅인 데다, 파르테스를 조기 졸업하는 최고의 인재니 그에 걸맞는 행사를 준비할 예정이거든.”

‘이미 절반쯤은 광견으로 알려져 있을 텐데.’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분하기는 했지만, 이미 칼은 ‘별들의 모임’ 이후로 루콘의 광견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상황이었다.

“영광스런 자리는 피하는 게 아니야. 어머니께서 파격적인 선언을 할 예정이거든.”

“…….”

거듭되는 에리는 확신에 칼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갈팡질팡 움직였다.

* * *

어두컴컴한 저녁의 해안.

쏴아아아아.

이름 모를 외딴 섬. 바다가 보이는 낭떠러지에는 자그마한 무덤이 놓여 있었다. 그 무덤 앞에서 폰은 피식 웃으며 한 남자의 일생이 담긴 서류를 읽고 있었다.

그것은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버려진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아무에게도 사랑을 받지 않는 아이.

사랑을 몰랐으나 자신을 사랑해줄 이를 갈구하던 소년. 그는 자신의 부모를 찾으려고 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특별할 건 없었다. 이 세상에서 자신과 같은 아이들은 너무나 많았으니까.

문득 소년은 궁금했다.

모든 게 처음부터 펼쳐진 풍경이라면, 과연 이 광경은 어떻게 펼쳐질까?

그것이 최악의 비밀 결사인 메노스 템벨의 신념이었지만, 알고 보면 그 의도는 무척이나 순수한 것이었다.

너무나 순수했기에 광기가 되어버린 것뿐이다.

그리고 그 광기의 주인공인 페트로는 어렸을 적 품었던 마음조차 잊어버리고 오롯이 자신의 지식욕을 채우려고 했다.

폰은 그렇게 결론을 지어버렸다.

“사랑을 받고 싶다라…….”

스스로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으면서 씁쓸했는지, 폰은 무덤 앞에 두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른이 되면, 자기 마음에 솔직해지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스스로 감정을 속이다 보니까 스스로 자기 마음을 오해해버린 거라고 할까요?”

점차 동이 트기 시작하여 해변으로 눈부신 광채가 아른거렸다.

이제 진성 뱀파이어도 아닌 일반 뱀파이어 상태인 폰의 몸은 햇볕을 버티지 못하고 타들어 가고 있었지만 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눈에는 지독한 탐욕의 마도사였지만. 적어도 당신이란 남자가 살았다는 증인이 되고 싶으니 끝까지 곁에 남겠습니다.”

어느덧 하늘 위로 완전히 해가 떠올랐다.

바스락.

팔다리가 점차 검은 잿더미가 되어 흩날리는 폰은 머릿속으로 칼과 데제스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그 녀석들의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화르륵.

이내 폰은 얼굴마저 완전히 잿더미가 되어 흩날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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