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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24화 (124/197)

제124화

화르르르륵!

콰아아앙!

델피나가 방출한 불꽃들이 단숨에 안개의 미로에 갇혀있던 이들을 섬멸시켰다.

[끼에에에엑!]

플레임 웨이브.

이름 그대로 파도처럼 정원 전체를 뒤덮은 불길은 페트로가 시전한 노화의 결계마저 깨뜨렸다.

페트로는 원형의 실드를 펼쳐 불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델피나를 바라보았다.

‘마나에게 사랑을 받고 있군.’

단순히 강력한 화력을 퍼붓는 게 아니었다.

마나 자체가 델피나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환경을 유리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 재능을 칭송하고 제자로 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페트로는 인내심의 한계가 무너진 상황이었다.

모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스스로 쌓은 업보는 천천히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신념이 부정당한 것에 분노가 극에 다다랐다.

“하찮은 것들.”

근본을 아는 것이야말로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거늘.

미래나 생명 존중 같은 것으로 그 기회를 버리다니.

“실로 어리석은 아이야.”

우웅.

페트로의 완드가 빛을 발하더니 원형의 실드가 델피나의 주변으로 만들어지더니 플레임 웨이브와 함께 그녀를 가둬버렸다.

“?!”

화륵!

이대로 있다가는 불꽃에 휩쓸리는 사람은 자신이 될 거라 생각한 델피나는 그래비티 코어를 생성해 반투명한 실드를 부수려고 했다.

하지만.

끼기기기긱!

페트로의 실드는 부서지기는커녕 그래비티 코어를 통째로 밀어붙이며 델피나를 압박해왔다.

더 놀라운 것은 그래비티 코어가 그녀의 통제에 벗어났다는 것이다.

‘소유권을 뺏겼어?!’

페트로는 딱하다는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나이에 벌써 중력을 다루다니…… 그 나이 때의 나는 상상도 못 했지. 하나 까마득한 세월 동안 쌓아온 경험은 압도적인 재능의 차이를 메울 수 있지. 이 마법은 너의 중력 마법을 상회하는 마법이 섞여 있단다.”

마치 가르침을 주는 듯한 따뜻한 말이었지만.

그것은 엄연히 적에 대한 엄포였다.

델피나는 뒤늦게 실드를 시전해 충돌에 대비했지만.

콰아아아앙!

그래비티 코어와 페트로의 실드는 그녀의 실드를 깨부수며 그녀를 공격했다.

우득.

기괴한 소리와 함께 그녀는 기절했다.

“델피나!!”

“이 자식!!!”

에릭은 경악하며 델피나에게 다가갔고, 베르데는 곧장 페트로에게 화살을 겨누어 가슴을 노렸다.

쇄애애액!

화살이 날아오는 속도는 무척이나 빨랐지만……

“내 결계를 간파했다고 생각하나 보군. 하지만 내가 마음먹은 이상 벗어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네.”

페트로의 말이 화살이 닿기도 전에 베르데의 귀에 닿았다.

‘이게 무슨?!’

진리조차 비틀어버리는 상식 밖의 사태에 베르데는 눈을 부릅떴다.

스스슥!

베르데의 화살은 페트로의 가슴을 그대로 투과했다.

“뭐?!”

“간단한 이치네. 자네의 화살은 내가 쳐놓은 결계 속을 끝없이 방황할 걸세. 그리고 화살만 쏘면 재미없지 않나? 가끔은 정령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보게.”

온화한 말투와 함께 페트로의 등에서 거뭇한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거대한 뿔이 달린 악마가 튀어나왔다.

크기는 2미터 정도 되는 데다가 전신이 탄탄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녀석은 페트로의 명에 따라 베르데를 노려보았다.

베르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그건 정령이 아니라 악령이야! 네 녀석 금기를 얼마만큼이나 범한 거냐!!!”

분노한 베르데의 외침에 페트로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생김새 때문에 오해를 받지만 이것은 엄연히 정령일세. 어둠의 정령 게하임니스라고 한다네.”

“얕보지 마!!!”

베르데는 곧장 활시위에 화살을 걸어 페트로의 미간을 쏘려고 했지만.

게하임니스의 거대한 발톱이 먼저 베르데의 상반신을 휩쓸었다.

“쿨럭!”

베르데는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네 녀석!!”

상황이 불길하게 돌아가자, 에릭은 아인벨레를 고쳐 쥐며 페트로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콰아아앙!

하나, 그 일격이 닿기도 전에 게하임니스가 꼬리로 아인벨레를 내려쳤다.

그 충격으로 에릭의 양팔이 부러졌다. 이어서 게하임니스의 꼬리가 창처럼 에릭의 복부를 관통했다.

“크으으윽!”

에릭은 분하다는 표정으로 게하임니스의 꼬리를 빼려고 했지만…….

콰아앙!

그 전에 이미 게하임니스가 에릭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상황은 그것으로 끝이났다.

새로운 역사라고 칭송되는 에클라 세트는 페트로 한 명에게 밀려 모두 쓰러지고 말았다.

“…….”

사슬에 묶여있던 칼은 심홍색의 눈길로 페트로를 쏘아보고 있었다.

“버겁군. 에클라 세트라…… 너무 일찍 모습을 드러냈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죽을 운명에 처하다니.”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페트로는 이번에는 칼에게 말했다.

“이 게하임니스도 게어트너는 쓰러뜨리지 못한다네. 근데 어째서 에클라 세트도 아닌 너가 게어트너를 쓰러뜨릴 수 있었던 거지?”

오랫동안 타라와 게어트너를 연구해온 페트로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게어트너의 잠을 깨워 이 섬을 부수려는 건 그의 계획이 아니라 데제스의 계획이었다.

데제스조차 확신을 가졌던 계획을 이 남자는 어떻게 타파했단 말인가.

“궁금하냐?”

칼은 무뚝뚝하게 그를 쏘아보다 자신의 몸을 뒤덮은 사슬을 손으로 붙들었다.

“소용없네. 그것은 마력을 흡수하는 구속구네. 발버둥 쳐봤자 마력만 흡수당하고 기력을 잃을 걸세.”

“어쩌라고?”

칼은 같잖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웃어?’

페트로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바로 그때 칼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양의 붉은 마력이 피어올랐다.

절그렁, 절그렁.

칼의 마력을 흡수하던 사슬은 마치 불에 달구어진 것처럼 붉어지더니…….

카아앙!

결국 사슬은 버티지 못하고 모조리 끊어졌다.

콰아아앙!

구속에서 해방된 칼은 손에 쥐어진 사슬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사슬에 담긴 심상치 않은 마력을 감지한 게하임니스가 재빨리 페트로의 앞에 서서 대항하려고 했지만.

콰아앙!

-키에에에에엑!

게헤임니스는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몸이 찢어져 역소환 당했다.

주륵.

갑작스런 역소환의 부작용으로 페트로는 입가에 피를 한 움큼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어느 순간 칼은 그의 앞까지 발을 내디디며 말했다.

“아무래도 데제스도 네놈도 내 마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측정 못 했나 보군.”

오싹!

페트로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그가 잊고 있던 공포란 감정이었다.

‘내가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난 내가?’

“두렵나?”

칼은 타오르는 듯한 심홍색의 눈동자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죽기 싫었으면, 설쳐대지 말았어야지.”

붉은 오러가 실린 비어벨이 날아들었다.

페트로는 재빨리 결계를 쳐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카아앙!

붉은 오러의 검격은 그의 결계를 유리창처럼 깨부쉈다.

‘결계가 깨졌어?!’

뒤늦게 페트로는 블링크를 시전해 칼과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서걱!

한발 늦었는지, 그의 팔이 잘리며 나가떨어졌다.

“……네 녀석!”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페트로에게서 여유는 사라졌다.

객관적으로 보면, 지금의 상황은 페트로가 압도적으로 칼을 몰아붙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도 그럴 게.

방금 전에 대폭 마력을 활용한 부작용 때문에 칼은 가쁘게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전신은 게어트너와의 사투로 상처를 입어 격통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체력까지 고갈 직전인 상황.

방금 전은 예상치 못한 칼의 기행으로 팔을 잃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페트로는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 투기를 잃지 않은 칼의 눈빛. 그것은 진심으로 상대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목덜미를 놓아주지 않을 광견과도 같았다.

“……루콘의 광견.”

가만 생각해봐도 칼과의 교전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고 확신한 페트로는 천천히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누구 맘대로! 쿨럭!”

무어라고 하려는 찰나 칼은 피를 한 움큼을 그대로 게워냈고, 그 틈을 타 페트로는 유유히 모습을 감췄다.

* * *

다시 처음부터 하면 돼.

다시금 신분을 속이고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 되겠지만.

페트로는 자신 있었다.

이실리아에서의 계획은 실패로 끝이 났다.

그것을 인정한 페트로는 절단된 자신의 팔을 만지며 씁쓸하게 웃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패하다니. 정말 안쓰럽군요.”

“?!”

바로 그때, 정면에서 들려오는 한마디에 페트로는 눈을 부릅뜨며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데제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은 지상이 아닌 허공.

데제스는 그라지아종 그리폰, 자우버의 위에 앉아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오만한 그 눈빛에 페트로는 그제야 모든 것을 깨달았다.

“허허허, 날 이용한 건가. 게어트너를 일부러 내가 찾아낼 수 있는 위치에 둔 것도, 그리고 내가 그 녀석을 깨우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벌인 짓이군.”

“학장님께서 훌륭하게 해주셨습니다. 설마하니 게어트너가 칼리언트의 손에 쓰러질 거라고는 예상은 못 했지만, 저라면 그렇게 볼썽사납게 패배했을 것 같지 않군요.”

데제스는 싱긋 웃으며 페트로의 말에 긍정했다.

“네놈!!!”

분노한 페트로가 노호성을 내질렀지만 데제스의 얼굴에는 여유가 묻어나왔다.

“……네놈. 네놈은 대체 무슨 계획을…….”

페트로는 질렸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칼리언트도 데제스도 그의 상식을 초월한 미친놈들이었다.

데제스는 그런 페트로를 보며 실망스럽다는 어조로 말했다.

“아무래도 당신의 역할은 여기까지군요. 꼬리까지 달고 오다니 에클라 세트를 너무 만만하게 보셨네요.”

“꼬리라니?”

화들짝 놀란 페트로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우웅.

보랏빛으로 선명하게 반짝이는 서킷이 길쭉하게 이어졌다.

굴욕에 페트로는 이를 빠득 갈며 중얼거렸다.

“이 요망한 년이!!”

* * *

“쿨럭!”

온몸이 통증으로 비명을 질러대 정신이 없었지만, 델피나는 가까스로 보랏빛 서킷을 손으로 쥐고 있었다.

칼은 몸을 비틀거리며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수고했다.”

델피나는 피식 웃으며 칼에게 말했다.

“일전에 가르쳐줬던 거 잊지 않으셨죠?”

씨익.

칼은 드물게 잇몸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잊을 리가 없지.”

델피나가 구축한 서킷에 손을 갖다 대자…….

해킹당한 보랏빛의 서킷은 붉은 색깔로 변화하며 페트로의 끝에 다다랐다.

콰아아앙!

그와 동시에 마지막으로 남은 팔찌가 끊어지며 지금까지 비교도 되지 않은 양의 붉은 마력의 파장이 서킷을 타고 흘러 들어갔다.

한편.

“뭐, 뭐야? 이건”

갑자기 보랏빛의 서킷이 불길한 붉은색으로 변하자, 페트로의 안색은 사색이 됐다.

재빨리 서킷을 해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파직!

붉은 서킷을 타고 온 광활한 기운은 그의 묘수를 단번에 깨뜨렸다.

파도처럼 일렁거리는 붉은 마력의 파동이 주변을 대낮처럼 밝게 비췄다.

“……안 돼. 안 돼!!”

페트로는 기겁하며 비명을 내질렀지만.

콰아아아앙!

서킷을 타고 온 붉은 파동은 자비 없이 그의 몸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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