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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19화 (119/197)

제119화

뚝뚝.

종유석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칼이 발을 내디딘 곳은 이실리아의 잃어버린 곳 중 하나인 검의 성지였다.

“우욱!”

신전 부근에 발을 내디딘 릴리는 몸에서 타라가 자라난 채로 죽은 시신을 보고는 역겨움을 못 참고 헛구역질을 했다.

“호흡을 가다듬으세요.”

곁에 있던 델피나는 그런 릴리의 등을 토닥이며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줬다.

한편 베리오가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맥캘리는 성지 주변을 맴돌았다. 사람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타라의 꽃을 발견한 그녀는 꽃을 꺾은 다음 유심히 관찰했다.

그 눈초리는 매우 예리하고 냉정했다.

‘보통내기는 아니군.’

과거를 묻지는 않았지만 맥캘리 역시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해주었다.

“…….”

모두가 골똘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맥캘리는 자신이 생각한 가설을 내놓았다.

“타라는 다 죽어가는 생물에게 기생해서 성장하는 식물이야. 일반적으로 기력이 있는 생물에게는 빌붙기가 어렵거든.”

한 번 뿌리를 내리기 어려울 뿐이지.

뿌리를 뻗고 나면 타라는 기생한 생물이 죽을 때까지 영양분을 뺏는다.

한데, 어째서일까?

그녀의 말을 들은 칼은 묘하게 오장육부가 꿈틀거리고 식욕이 가시며 근육이 빳빳하게 긴장되었다.

마치 불길한 사건이 일어날 전조를 알아챈 들짐승처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식물이 번식하기 위해서는 꽃가루를 운반하는 벌이 필요하잖아. 기생수목인 타라에게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게 있다면?”

“…….”

잠깐의 침묵 뒤.

릴리와 모든 에클라 세트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맥캘리의 질문에 딱 들어맞는 답은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칼은 인상을 왈칵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게어트너.”

그 존재는 과거 여신 프리데아와 맞서 기생수 타라를 키운 정원사로 알려진 거인이었다.

맥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인간을 죽여서 기생수목인 타라를 심는다. 베리오가 경계하라고 한 건, 분명 게어트너겠지.”

잠시 후.

칼 일행은 프리데아를 모시는 신전에 도달했다.

“지난번이랑 다르군.”

칼은 두둥실 떠오른 신전의 블록들을 쳐다보다 곧 휑하니 빈 구멍을 바라보았다.

추측건대, 그 자리에 있던 것은 게어트너였을 것이다.

“그사이 빼돌렸군.”

칼은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머리칼을 이마 뒤로 쓸어 넘겼다.

당시에는 전투의 의한 피로가 심히 누적된 데다가 베리오의 몸 상태를 염려해 조기에 철수했는데, 그것이 이런 화근을 키우게 될지 몰랐다.

한편, 신전 부근을 돌아다니던 릴리는 머리가 부서진 프리데아의 조각상을 어루만지다가 검집 부근에 적힌 글귀를 발견했다.

고대 요정어로 적혀 있어, 읽을 수 없었다.

“칼. 소피코리 좀 빌릴 수 있을까?”

칼은 목걸이를 풀어 그녀에게 던져주었고.

소피코리를 받아든 릴리는 호박색 보석을 통해 글귀를 읽기 시작했다.

“$#@.”

입에서 본인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어려운 단어가 흘러나왔다.

드르르륵.

여신 조각상이 들썩이며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위험하니까 떨어져 있어.”

칼은 재빨리 릴리를 뒤로 옮겼다.

파직!

콰아앙!

무너진 조각상 안에는 자수정으로 이루어진 비수 두 자루가 놓여 있었다.

“……이건.”

칼은 그중 한 자루를 손으로 들어 보였고, 맥캘리는 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디센트캔슬인가.”

“어떻게 아는데?”

맥캘리는 한쪽 어깨를 들썩이며 칼의 질문에 답했다.

“신화에서는 프리데아가 게이트너와 타라를 쓰러뜨릴 때 때 사용한 비수로 알려져 있어. 만약 그게 맞는다면, 그것도 마도 유산 중 하나일 거야. 신화의 내용을 따르면 게어트너와 타라의 심장에 찔러넣어 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

“심장을 찔리면, 누구나 죽는다만?”

“게어트너와 타라는 신화 속에서 구현된 오염된 마물이야. 소드 마스터가 와서 갈가리 찢어놓아도 완전히 죽이지는 못해. 길게는 수백 년, 적게는 수년 내로 부활해서 다시금 오늘 같은 사태를 만드는 거지.”

“훗날을 기약했다는 건가.”

여신의 존재 유무는 알 수 없지만, 게어트너와 타라는 실재한다.

하지만 신화와는 달리 고대 시절의 인간들은 타라와 게어트너를 완전히 쓰러뜨리지 못하고 도시와 함께 통째로 이곳에 매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추후를 대비해 게어트너와 타라를 완전히 소멸시킬 비수를 이곳에 감춰놓은 거로 보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타라와 게이트너는 이곳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네요.”

델피나는 다소 염려스런 표정으로 이마를 매만졌다.

이곳에서 헤맨 지, 어언 이틀이 지났다.

성과는 분명 있었지만, 정작 화근이 되는 엄청난 재해 요소가 보이지 않으니 난감하기만 할 뿐이다.

“이러다가는 이곳은 파라디스 이상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베르데 역시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짝!

다소 산만해지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맥캘리는 손뼉을 마주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너무 무리하는 건 좋지 않아. 이미 여왕 폐하께 보고는 올라갔으니 본격적으로 이 섬도 대처를 취할 거야. 그리고…….”

“그리고 또 뭐요?”

마지막에서 묘하게 말을 끄는 느낌을 주자, 릴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맥캘리는 입꼬리를 방긋 올리며 말했다.

피식.

“망나니 제자의 졸업이 곧 다가오니 챙겨줘야 하지 않겠어? 내 유일무이한 제자가 졸업한다는데, 안 챙겨주면 곤란하지. 오늘은 다 접고 일단 술이다!!”

빠직!

“결국 술이 마시고 싶다는 거잖아.”

칼은 어이가 없단 표정으로 맥캘리의 볼을 다시 한번 꼬집었다.

“으갸아아아!!!”

* * *

던전 탐사를 마친 후 이틀이 지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파르테스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에 모두가 술렁이며 당혹해하고 있었다.

첫 번째 변화는 이실리아의 병력이 시내 곳곳에 배치되었다는 것.

아카데미의 교수들도 수업을 잠정 중단하고 방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두 번째 변화는 학교 내에서 최고로 군림하고 있던 데제스가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와 함께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사라졌다기보다는 졸업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지만, 데제스를 따라 파르테스의 학생 중 십 분의 일 가까이가 사라졌다.

그로 인해 바빠진 것은 학생회였다.

“업무는 일시중단이야.”

“회, 회장님.”

릴리의 단호한 선언에 학생회 임원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모두가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 했지만, 릴리가 지닌 온화한 카리스마에 임원들은 곧 조용히 물러났다.

똑똑.

얼마 안 가, 학생회장실 문 너머로 두어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델피나가 속삭이듯 말했다.

“들어가도 되죠?”

“그렇게까지 과하게 할 필요 없어.”

릴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들어오라는 제스쳐를 취했고, 델피나는 안으로 들어와 말했다.

“칼 선배랑 베르데 선배는 브로켄 마운틴 쪽으로 갔어요. 진짜 그쪽에 그것들이 있을까요?”

델피나의 질문에 릴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햇빛이 들지 않는 습한 지대에서 타라가 자란다고 했잖아. 그리고 그런 위험한 마물을 숨길 수 있는 장소라면, 당연히 브로켄 몽타뉴 외에는 없다고 생각해.”

종합해서 결론을 내놓은 것은 릴리였다.

맥캘리는 이 사실을 예카테리나 2세에게 보고해 브로켄 몽타뉴 근처에도 다수의 군사를 배치했다.

섬의 자원이 고갈될 정도로 지력을 강탈당하고 있으니, 이실리아도 뒤늦게나마 경각심을 표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걸 옮긴 사람은 누구일까요? 메노스 템벨의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

잠시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릴리가 델피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이 묘하게 씁쓸하고도 아름다워 보여 델피나는 조금 당황했다.

“델피나.”

“네.”

“지금부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나를 따라와 줘.”

다소곳한 부탁에 델피나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서 회장님 말씀을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 * *

거의 반쯤 전시 상황에 놓인 것이나 다름없는 이실리아.

파르테스에도 그 긴박한 분위기가 전해졌다.

학생들은 통금이 걸렸고, 교수진은 치안을 위해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그리고 그들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은 페트로 스타니슬라프는….

후룩.

김이 나는 홍차를 마시며 맞은편에 앉아있는 릴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상 델피나는 그 뒤에 서 있었다.

“…… .”

둘 사이에는 묘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무겁지는 않았는데, 왜 그러지?’

괜스레 긴장을 한 델피나는 완드를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바쁜 가운데 업무 중단을 했다지. 학생들의 대피로를 확보하는 것도 자네가 책임지고 해야 된다 생각하네만?”

페트로에게서 나온 말은 뼈를 찔렀다.

하지만 릴리는 표정에 변화 없이 묵묵히 반박했다.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지?”

“제가 생각하는 적은 그것들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강력하신 분이니까요.”

“무슨 소리인가?”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학장님께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허허허, 자네가 나한테 궁금한 게 뭐가 있을까?”

페트로는 흥미롭다는 듯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학장님의 사상입니다.”

“사상?”

“어려운 게 아니에요. 학장님께서 마법사로서 평생 이루고 싶은 숙원이라고 할까요?”

“아하하하하, 그게 궁금한 거였구먼. 하하 그래.”

페트로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테이블 위에 간식용으로 놓인 삶은 달걀을 집으며 말했다.

“원초적으로 밝히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면, 알이 먼저일까? 닭이 먼저일까? 라는 내용으로 시작해야 될 걸세.”

델피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아마 평생 밝힐 수 없겠지.’

무척이나 단순하지만, 이 시대가 탄생할 때부터 살아간 자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역사에서 손꼽히는 마법사들도 이 질문에 대해서만큼은 명확한 근거를 내놓아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

릴리는 차분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최근에 알게 된 어느 비밀 결사가 목숨을 걸고 이루려는 신념에 대해 듣고 곰곰이 생각해 봤어요.”

“뭔가?”

갑자기 이야기가 주제에서 벗어났으나, 페트로는 오히려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릴리의 말에 경청했다.

“메노스 템벨이 주창하는 신념은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평등. 원래 저는 그게 계급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가 동격이 되자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제대로 생각해 보니, 언뜻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처음부터 모든 것을 없애고 난 뒤 시작하는 평등이라면 전제를 잘못 잡았을지도 모르겠다고요.”

“설마?!”

깜짝 놀란 델피나는 눈을 부릅떴고, 페트로의 눈 밑으로는 음영은 점점 짙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릴리는 양손을 모았다.

파르르.

그녀는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이지적으로 빛났다.

“세계는 너무 넓으니, 섬 하나를 대상으로 실험해보자는 발상도 해볼 만하죠.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있다 보면, 기회가 반드시 올 테니까.”

“자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

스멀스멀.

목소리가 점차 탁해지면서 노쇠한 노인이라고 치기에는 압도적인 기세가 전신에서 흘러나왔다.

릴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이실리아를 괴멸시키려는 메노스 템벨의 수장은 페트로 스타니슬라프, 바로 당신입니다.”

히죽.

그녀의 말에 페트로는 잇몸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아, 너는 너무나 영특한 아이구나. 그 때문에 명줄을 단축시킬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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