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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12화 (112/197)

제112화

망령의 왕, 발바두스에게 받은 엘릭서의 힘은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에 기름을 끼얹어 주었다.

화악!

엘릭서를 마신 베리오의 얼굴에는 어느새 화색이 감돌기 시작했고.

복부에 찔린 상처도 점차 좁아지더니 말끔히 아물어 갔다.

다만, 예상과 달리 의식을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느낌상 눈을 뜨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고비는 넘겼다.’

칼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남은 엘릭서를 마셨다.

많은 양을 복용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피로에 지친 몸이 활력을 되찾았다.

잠시 후.

베리오를 업고 검의 신전에 도달한 칼은 얼굴을 구기며 불쾌함을 토해냈다.

눈앞에는 시체 더미가 산처럼 잔뜩 쌓여 있었는데, 베리오의 말대로 입에는 잎이 바싹 마른 꽃이 돋아있었다.

정확히 그것은 꽃이라기보다 타라가 생장하기 위한 새싹이지만.

겉보기에는 꽃과 거의 유사했다.

그 뒤로 칼은 한 시간 이상 신전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나 어디선가 돋아있는 애꿎은 타라가 지력을 흡수해 생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타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으로 향한 곳은 당연히 신전의 안쪽이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베리오를 지키며 탐사할 자신이 없어 포기한 곳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그 흉흉한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예상대로 신전의 안쪽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여신을 기리는 제단이나 동상 같은 것조차 없어서 정말 건물만 짓고 만 느낌이었다.

스스스스.

발밑으로 광활한 서킷을 구현했지만, 살아있는 것은 어떤 것도 포착되지 않았다.

“응?”

바로 그때, 서킷을 통해 마나로 이루어진 무언가가 포착됐다.

뚜벅.

발길을 옮긴 그곳에는 끊어진 쇠사슬이 널브러져 있었다.

‘……명계석?’

비어벨과 같은 신비한 금속, 누군가 오래 소유할수록 그 사람의 특성이 담긴 마나의 속성을 지게 되는데, 쇠사슬 주변에는 칠흑의 기운이 감돌았다.

누군가 만지면, 저주에 걸릴 것만 같았지만.

우웅.

칼의 붉은 마력은 곧장 칠흑의 마력을 찍어 눌렀다.

‘슈미트 녀석에게 맡겨 봐야 되겠군.’

칼은 쇠사슬을 챙겨 베리오의 가방에 집어넣은 뒤,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샅샅이 수색해 봤지만, 암만 둘러봐도 더 이상 나올 게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타라가 어디선가 생장 중일 거라 기분이 꺼림칙했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진행을 했다가는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에 작전상 후퇴가 맞았다.

* * *

도시를 빠져나와 탐사를 마친 칼이 곧장 이동한 곳은 디아나와 슈미트가 머무는 처소였다.

오밤중에 칼이 갑작스럽게 방문하자 당황하기는 했지만.

디아나는 신속하게 의식을 잃고 쓰러진 베리오를 간호했다.

슈미트는 창문 밖을 감시하다가 곧 추격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칼을 쳐다봤다.

현재, 칼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무래도 꼴을 보니, 험난한 사건을 겪은 것 같은데, 일단 옷이나 갈아입지.”

슈미트는 준비해둔 의상을 칼에게 건네주었다.

“내 옷도 있었어?”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칼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자, 슈미트는 쯧쯧 혀를 차며 답했다.

“디아나가 너를 얼마나 애지중지 모시고 있는데 그걸 몰라 주냐? 너에 관한 건 사이즈부터 시작해서 웬만한 건 다 알아.”

“슈미트님!!!”

베리오의 손을 물수건으로 닦고 있던 디아나는 얼굴을 붉히며 슈미트에게 소리쳤다.

“……충분히 알고 있어.”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은 칼은 피로 범벅이 된 옷을 벗은 뒤, 몸 이곳저곳을 물수건으로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슈미트는 게슴츠레 눈을 좁히며 물었다.

“약 먹었냐? 오늘따라 안 어울리게 왜 의기소침해?”

‘잃어버리면,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표정의 변화 없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했다.

“당분간 모습을 감추고 있어. 저 남자가 살아있다는 걸 들키면 안 되니까.”

“……알았다. 이번에는 좀 큰 사건에 말려든 것 같구나.”

이미 익숙한 건지, 슈미트는 무덤덤하게 칼의 말을 받아들였다.

베리오가 안정적으로 숨을 쉬는 것을 확인한 디아나는 곧장 칼에게 질문을 던졌다.

“칼리언트 님. 오늘은 주무시고 가시는 건가요?”

“아니.”

여느 때처럼 짤막하게 답한 칼은 팔락 소리를 내며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말했다.

“가봐야 될 때가 있어.”

* * *

한산한 밤이었다.

모두가 잠드는 시각이지만.

사각, 사각.

릴리는 학생회 활동 때문에 미처 다하지 못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곁에서 그녀를 보조하는 학생회 학생들은 ‘독종’이라며 절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동시에 조롱하려는 의도로 사용되던 ‘세컨드 프린세스’라는 별명은 점차 잊혀 가는 중이었다.

그만큼 모두가 그녀의 업무 능력에 감탄했고, 인망에 경외를 표했다.

딱 한 가지,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의문.

바로 ‘칼리언트랑 사귀고 있는 건가?’였다.

릴리는 늘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이들이 봤을 때, 항상 많이 붙어 다니는 데다가 거칠게 행동하는 칼리언트가 유독 릴리에게 약한 모습을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릴리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라며 반박했지만, 아무튼 모두가 보는 둘의 분위기는 그러했다.

‘진정하자. 칼이랑 친구야. 친구.’

오늘도 어김없이 그런 질문을 받은 릴리는 심란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열심히 필기에 집중했다.

똑똑.

사각, 사각…….

똑똑.

……사각.

그러나 잡념을 떨치기 무섭게 곧장 창문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자, 릴리는 필기를 잠시 멈추고 새파래진 안색으로 창문 밖을 살폈다.

바깥에는 세찬 비바람이 불어 닥쳐서 바람 소리가 불길하게 들리고 있었는데.

콰쾅!

“꺄아아악!”

깜짝 놀란 릴리는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정체불명의 사내가 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곧장 테라스의 문을 열며 소리쳤다.

“감기 걸리잖아. 바보야!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데?”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칼의 손목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다.

잠시 후.

할 말만 하고 가려고 했던 칼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릴리는 칼의 젖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손수 닦아주었다.

“방에 남자를 들이는 건, 규칙 위반 아닌가.”

릴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검지를 말아 칼의 머리를 툭 쳤다.

“애초에 그런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들어온 칼이 문제가 있는 거잖아. 기숙사 관리 감독은 어떻게 따돌리고 온 거야?”

남학생과 여학생의 기숙사는 멀찍이 떨어진 데다…….

혹여나 모를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근위병들이 감시까지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제집처럼 경비를 뚫고 들어온 칼을 보며 릴리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감시가 소홀할 때, 재빨리 담 타고 넘어온 거지.”

“……대단하다. 대단해. 그래서 퇴학당할 위기를 감수하고 여기 온 이유가 뭐야?”

“아무도 믿지 마. 그 말이 하고 싶어서 왔어.”

“……무슨 소리야?”

대뜸 없는 한마디에 릴리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당황했다.

“그리고 섬에서 행방불명이 된 사람들 중에서 이 학교와 관계가 있는 인물들인지 조사해줘. 누구한테도 들키면 안 돼.”

“…….”

평소보다 진지한 칼의 모습에 릴리는 입을 꼭 다물었다.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고, 이렇게까지 방문한 것은 그 위험에 대해 경고를 하려는 게 분명하다.

“페트로 학장님마저 경계하라는 거네.”

“…….”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았어.”

“그럼.”

칼은 몸을 일으켜 다시 방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비가 그치면 나가.”

“괜찮아.”

“진짜! 고집 좀 그만 부려.”

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고, 짜증이 확 치민 릴리는 그대로 칼을 쫓아가다가 그대로 미끄러져 칼의 등을 와락 껴안았다.

“?!”

당황한 릴리는 얼굴을 화끈 붉혔고, 칼은 조심히 그녀의 손을 떼어낸 다음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꽈악!

생각 외로 완고하게 힘을 주고 있어 난감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네 고집도 만만치 않군.”

“……시끄러워. 바보야.”

괜스레 부끄러워진 릴리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고 칼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 * *

새벽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오닉스 스퀘어 학파에서 칼은 오랜 시간 동안 맥캘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베리오가 무엇을 조사하려던 것의 정체부터, 결국 이실리아에 타라가 자라고 있었다는 이야기까지 들은 그녀의 표정은 드물게 심각하고 진지했다.

“왜 이 섬에 불순한 것들이 많이 드나드는 건지.”

“다른 나라라고 그런 게 없다는 보장은 없지.”

무덤덤한 칼의 모습을 보며 맥캘리는 면목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고맙다, 베리오를 살려줘서. 역시 너한테 맡기는 게 정답이었어.”

“천만에. 나도 흥미가 생겼거든.”

본래부터 차이트가 칼에게 내린 사명은 세상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

무척이나 추상적인 명령이지만, 타라가 세상에 끼치는 해로운 영향력을 살펴보면 이 일은 칼이 수행해야 될 사명 중 하나였다.

“타라를 하나 파괴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 이외에 남은 건…….”

“다른 개체는 없었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는 거네.”

“그렇지.”

칼과 맥캘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타라의 특성 때문이었다.

섬의 지력을 빼앗아 비옥한 토지를 메마르게 만드는 기생수목, 타라.

힘이 강해지면 인간을 습격하기까지 하는 식물이지만, 처음에는 무척이나 미약하게 시작을 한다.

따라서 타라를 키워내려면 아무도 눈치를 채기 어려운 곳부터 시작을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육체에 기생해 자라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칼이 탐사했던 던전이 제격이었다.

“아무도 믿지 마라, 망나니 제자야. 그 능구렁이 영감탱이가 몰랐다는 게 더 이상하게 느껴지니까.”

“알고 있어. 릴리한테도 말해놨어.”

“그럼 다행이고.”

맥캘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차를 후룩 들이켰다.

“수습이 될지 모르겠지만, 여왕 폐하께도 일단 나중에 보고를 드릴 거야.”

그녀는 평소에 보이던 철부지 같은 모습 대신, 무척이나 냉철하고 현명한 교수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던지.”

이 순간만큼은 칼도 그녀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타라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 이제 다음 이야기를 해볼까?”

“뭐가 또 있는 거야?”

칼은 지그시 눈매를 좁히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맥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이야기를 해나갔다.

“약 일주일 뒤, 각국에서 파견된 외교 관료들이 모인 연회가 펼쳐질 거야. 너는 내 제자니까, 당연히 그 자리에 참석해야 되고.”

“이유는?”

“세계가 주목하는 자리니까.”

의미심장한 말에 칼은 딱 한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에클라 세트.”

격동의 시대 도약을 위한 주축이자, 그 열쇠인 천재들이 집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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