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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05화 (105/197)

#제105화

루콘 최강의 무가, 슈타크 가문의 저택.

이곳은 루콘의 황제가 머무는 궁전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훨씬 장엄하고 컸다.

변경벡의 영토인 만큼 언제 어디서든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해 집사와 시녀마저 무를 단련하며 숭상하는 가문.

만약, 슈타크가가 없었다면 루콘은 역사상 두 번의 전란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라흐만 대륙의 역사에서 사라졌으리라.

그 정도로 유서가 깊고 막강한 권세를 누리는 만큼 가문의 규칙은 매우 엄격했다.

형제, 자매들은 기본적으로 사이가 좋지 않지만.

가문의 중진이 진행하는 회의에서 결정된 일에는 토를 달 수 없으며 그것을 따라야 한다.

하나, 이런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불변의 진리를 깡그리 깨뜨리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슈타크가의 막내아들인 칼리언트 슈타크였다.

쿠구구구구.

붉은 눈과 머리칼을 가진 슈타크가의 일족들은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빠득!

“막내 주제에 지나치게 건방지군.”

장남인 라마스는 알테어의 임시 사령관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회의에 참여했건만, 정작 이 안건의 주인공인 막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도망간 거 아니겠습니까?”

둘째인 리슈타는 팔짱을 낀 채로 분노를 곱씹고 있었다.

일찍이 가문에서는 칼을 시험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으니 올라오라고 통보를 했다.

처음에는 서신이 전달되지 않아 답장이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그렇게 수차례에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묵묵부답이었다.

참다못한 라마스는 경고라는 문구까지 삽입하니, 그제야 답장이 도착했다.

그것도 바로 어제저녁에 말이다.

“크흠!”

회의를 중재하고 있던 집사, 와튼은 외눈 안경을 고쳐 쓴 다음 헛기침 후 입을 열었다.

“칼리언트 님으로부터 온 답장입니다. 편지 내용을 그대로 읽는 것뿐이니, 오해는 삼가길 바랍니다. 짧게 한 문장의 글귀가 적혀 있더군요.”

사람 좋은 미소로 가문 운영을 도맡아오던 와튼도 이 순간, 식은땀을 흘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편지의 내용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바빠. 귀찮으니까 건들지 마. 불만 있으면 돌아가는 날에 한꺼번에 덤벼. 난 피하지 않아.”

쿠쿵!

슈타크가의 형제와 자매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칼리언트 슈타크.

이 중에는 그 이름을 미처 외우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정작 이놈의 막내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과 누님들에게 선전포고한 것이나 다름없는 편지를 보냈다.

지금까지 슈타크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기에…… 형제, 자매들은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칼에 대한 분노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유일하게 웃음을 터뜨린 이는 상석에 앉아있는 루드거 슈타크였다.

저번 회의에는 불참한 그는 관망만 하고 있을 뿐, 딱히 어떤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순탄하게 돌아가는 게 슈타크 가문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빠득!

장녀인 락티아는 이빨을 갈며 루드거에게 고했다.

“지금 당장 그 건방진 놈을 불러들여 버릇을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됐다. 학업에 매진 중인 동생을 불러들이면 되겠느냐?”

“……아버님.”

루드거는 양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녀석은 파르테스에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성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건 내 눈으로 확인하고 온 것이니, 의심할 필요는 없다.”

요약하자면, ‘잘하고 있는 애를 굳이 왜 건드리냐?’는 말이었다.

빠득!

그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는지, 둘째 아들 리슈타가 말했다.

“그렇지만 가문의 결정을 이렇게 무시하는 녀석을 가만두어서는…….”

“호오.”

리슈타가 이견을 제기하자, 루드거는 가소롭다는 듯 은은히 마력을 방출했다.

쿠구구구구!

마나에 살짝 그의 의지가 깃든 것만으로…….

오싹!

라마스와 키이라를 제외한 자식들은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입술을 떨었다.

루드거는 오른손으로 턱을 받치며 말했다.

“나는 칼리언트에게 3년의 시간을 할애했다. 그 시간을 마음껏 쓰는 건, 녀석의 자유. 내 의지가 개입하지도 않았는데 누구 마음대로 가문의 결정을 운운하는 거지?”

“…….”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침묵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

가문의 뜻이 가주의 뜻보다 우선시 될 수는 없었고, 가주가 두렵다는 이유로 대답을 회피했다가는 겁쟁이로 낙인찍힐 게 뻔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의견을 제기한 리슈타가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려고 하는 찰나.

바로 옆에 있던 라마스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했습니다.”

“이유는?”

대답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었지만, 라마스는 묵묵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막내의 성장이 궁금했습니다. 무작정 믿고 기다리기에는 3년이란 시간은 깁니다. 영지민들 또한 칼이 믿음을 줄 수 있는 인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테니까요.”

라마스는 칼의 공백 자체에 딴죽을 걸었다.

슈타크는 루콘 최강의 무가.

약한 자는 도태되는 게 당연한 곳이지만, 루드거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막내아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다.

가주가 결정을 번복했다.

그 사실 자체만으로 많은 자식들은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었다.

자식에 대한 특별한 혜택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라마스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걸까?

루드거는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구나. 하지만 슈타크 가문에는 한 가지 엄격한 규칙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

“네. 그렇기에 이번 편지의 답장에는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슈타크 가의 규칙.

다른 혈족이 있는 자리에서 내뱉은 선언은 철회가 절대 불가능하며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이 자리에 서지 않았지만, 칼은 모두의 앞에서 혈족 전체와 대련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약속이었다.

지금의 상황이 우습다고 생각했는지, 루드거는 아직까지 털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너희들이 이렇게 막내를 사랑할 줄은 몰랐구나.”

“…….”

표정 관리가 되지 않는지,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루드거는 슬쩍 날카로운 이채를 드러내며 모두에게 물었다.

“아니면, 녀석의 성장이 두려운 것이냐?”

“?!”

“?!”

정곡을 찌른 말이었을까?

형제, 자매 대다수가 크게 놀라 동공이 확대되었다.

루드거는 흡족스러운 표정으로 발길을 옮기며 마지막으로 모두에게 한마디를 남겼다.

“기회는 공정하게 열려있다. 가주의 자리에 앉고 싶으면 분발해야겠지.”

노골적인 발언에 일부는 야심을 드러냈고, 또 일부는 이런 하찮은 도발에 넘어갔다는 것에 분개했다.

“흐음.”

반면 슈타크가의 3녀, 키이라 슈타크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칼자루를 만지작거렸다.

“말을 더럽게 안 듣는 동생이네. 그토록 충고했는데, 오히려 불 속에 기름을 끼얹으니 말이야. 오라버니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나요?”

“글쎄. 별 흥미 없는데.”

라마스는 눈을 감으며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부정했고, 키이라는 싱긋 웃으며 도발을 걸어왔다.

“여전히 거짓말을 못 하시네요.”

일순간 두 남녀의 눈빛이 충돌했고.

스릉!

어느새 검을 빼든 두 남매는 서로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

“혀, 형님. 진정하십시오.”

“키이라. 검을 내려놔.”

두 남매의 살벌한 눈싸움에 다른 형제들은 다급히 둘 사이를 만류했다.

슈타크 가에서 가장 강한 이 둘이 싸우면 누구 한 명은 반드시 죽을뿐더러 가문의 전력에도 큰 공백이 생긴다.

그리고 패자는 키이라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유일하게 이 둘을 만류할 수 있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피를 나눈 혈족이 아닌 집사, 와튼이었다.

“검을 넣어주십시오. 가문 내에서 혈족 간의 결투는 금하고 있습니다.”

와튼의 말에 두 남녀는 살기를 방출하는 것은 멈췄지만, 아직도 검을 겨누고 있었다.

라마스는 애석하다는 말투로 키이라에게 말했다.

“한심하구나. 아직도 너는 약해 빠진 부하들이 죽은 이유를 나한테 찾고 있으니.”

“무슨 소리일까요?”

싱긋!

키이라는 아름다운 미소를 내비치며 검을 검집에 넣고는 나지막이 말을 내뱉었다.

“아! 그래도 그날, 제 자랑스러운 충신들을 죽인 진범을 찾으면, 제 이름을 걸고 반드시 죽일 거랍니다. 작년에는 우리 귀여운 막내가 오크 로드의 목을 박제해서 선물로 줬다는데, 저도 그 목을 박제해서 평생 보관해야겠어요. 호호.”

일순간 날카로운 안광을 드러낸 키이라는 검지로 아직 거두지 않은 라마스의 검을 퉁 쳤다.

우우웅!

살짝 내친 것뿐인데, 날카로운 공명음이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이윽고 라마스도 검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왜일까?

아직도 둘 사이에서 흐르는 흉흉한 기세는 범람하고 있는 홍수 같았다.

제아무리 귀족 집안이라지만, 그 눈빛은 결코 가족을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무척이나 씁쓸한 혈족 간의 분쟁이지만.

슈타크 가에는 비틀린 자들만 존재했다. 이 와중에 와튼은 한 가지 호기심이 생겼다.

‘막내 도련님이라면, 어떻게 나왔을까?’

이들이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화제의 중심은 칼리언트 슈타크였다.

*  *  *

오닉스 스퀘어 학파.

방과 후 칼이 어김없이 맥캘리에게 수련을 받던 중이었다.

최근에는 서킷을 사물에 부여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 훈련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 수련으로 인해 참담한 비극을 맞이한 것은 바로 맥캘리였다.

빠직! 빠직!

그녀는 이마에 핏대가 잔뜩 돋은 상태에다 얼굴은 흥분으로 달구어져 좀처럼 식히지 못하고 있었다.

연구실 내부에 있는 그녀가 자랑하는 마법 도구들에는 칼의 서킷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어째서 큰 문제가 되냐면.

서킷이 새겨진 마법 도구에는 칼의 마력 특성인 ‘마나 브레이크’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실리아의 여왕인 예카테리나 2세와 소통하는 데 쓰는 수정구마저 서킷이 그려진 바람에 통신 마법조차 사용이 불가능했다.

“이 미친 망나니 제자가!! 이게 얼마나 비싼 마법 도구들인데, 아예 못 쓰게 만들어놨어!!!”

추정피해액은 어마어마했지만.

“물어주면 되잖아.”

여기서 그놈의 돈 많은 녀석 특유의 재수 없는 말투가 그녀를 한 번 더 분노하게 했다.

“사과를 하라고! 이 자식아! 사과로 끝나고 넘어갈 일도 아니지만!”

그녀는 칼의 멱살을 쥐며 힘껏 흔들었다.

반면 칼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은 하고 있었다.

“언제봐도 교수님과 칼은 사이가 좋네요.”

그동안 낯익은 그 모습이 그리웠었는지, 릴리는 입가에 웃음기를 감추지 못했다.

“어디가 사이가 좋아!!”

맥캘리는 곧장 반박하며 칼에게 소리쳤다.

“당장 원상 복구해놔!! 안 그러면 파면이야! 파면! 너 같은 거 쫓아내는 게 어려운 일 같냐?”

사실 얼마 전까지는 맥캘리가 가지 말라고 애원했었다.

“호호호, 칼 선배도 생각보다 사고뭉치네요.”

맥캘리와 동행한 1학년생, 델피나가 맥캘리의 수정구를 들어 올렸다.

‘뭐 하려는 거지?’

모두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지켜볼 때.

델피나의 보랏빛 마력이 칼의 서킷에 서서히 잠식하더니, 곧 칼의 서킷이 사라지고 수정구의 기능이 원상 복구됐다.

“어, 어떻게 한 거야?”

자신도 수습하지 못해 쩔쩔매던 일이거늘.

델피나가 간단하게 해결해버리자, 칼은 적잖이 당황했다.

반면, 맥캘리는 단번에 그녀가 벌인 수법을 간파했다.

“너의 서킷에 간섭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렸어. 그리고 자연스럽게 소실시켜버렸지.”

“정답입니다.”

델피나는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게 말이 돼요?”

믿기지 않는 재능에 릴리는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말은 쉽지만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칼의 서킷에 간섭한 것부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델피나의 역량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짐작하게 해주었다.

“이 정도로 놀라면, 곤란한데요.”

델피나가 완드로 바닥을 한 번 두들기자…….

순식간에 구현된 보랏빛의 서킷이 칼의 서킷을 그대로 소멸시켜버렸다.

“…….”

이 순간만큼은 맥캘리마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선배 할 말은요?”

“……나중에 나한테도 가르쳐줘.”

엉뚱한 답변에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델피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다시 한번 극장에 같이 놀러 가주면 가르쳐드릴게요.”

둘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를 때, 릴리는 경직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  *  *

작은 소동이 끝이 나고 칼은 잠시 맥캘리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됐다.

“입학하고 나서 벌써 상급 기사 실력이라…….”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그녀의 표정이 진지한 터라 칼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무슨 부탁?”

스윽.

맥캘리는 한 남자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 섬에 있는 동안, 한 남자를 호위해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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