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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97화 (97/197)

#제97화

빽빽한 수목으로 우거진 파라디스는 마냥 생명이 약동하고 자애로운 환경이 아니었다.

이곳은 엄연히 트롤과 같은 위험한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는 아주 위험한 지역으로…… 특히 지금과 같은 밤에는 더욱 위험했다.

밤의 파라디스는 너무나 어두워 어떤 것도 식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에 해당했다.

지금 이곳에는 어떤 경우의 수나 변수도 통용되지 않는 존재가 서 있다.

그것도 무려 둘씩이나.

화아아아악!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두 존재가 발하는 강렬한 진녹색의 마력과 심홍색의 마력이 서로 얽히고 섞이며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었다.

그 빛이 향하는 곳은 바로 킬러비 군락이었다.

위이이잉!

킬러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개를 파닥이며 두 사람에게 몰려왔다.

평상시에는 유충들의 식사를 위해 먹이를 수집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지만.

이들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 있다.

그것은 어떤 상황이 오든 여왕을 지키는 것.

이들은 본능적으로 칼과 베르데가 여왕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라는 걸 감지한 듯 했다.

‘정확히는 이 녀석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겠군.’

칼은 자신의 품에 있는 유리병을 꺼내 들었다.

위잉!

유리병 안에 있는 조그마한 킬러비는 이곳에 여왕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 것인지 뱅뱅 돌고 있었다.

칼은 이지적인 눈빛으로 킬러비들을 살피며 베르데에게 말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움직여야 할 거야. 쓸모없으면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고.”

“끝까지 오만하군.”

이쯤 되니 베르데는 기가 막히다는 반응을 보였고, 칼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오만인지 아닌지 네 눈으로 보고 판단해.”

쨍그랑!

그와 동시에 칼은 손아귀에 힘을 쥐어 유리병을 깨부쉈다.

위잉!

유리병에서 해방된 자그마한 킬러비는 곧장 여왕벌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칼은 그 즉시 발을 박차며 벌을 쫓기 시작했다.

‘빨라?!’

속도라면 자신이 칼을 월등히 추월한다고 생각했던 베르데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뒤를 따랐다.

위이이이이잉!

두 소년이 향하는 곳이 여왕벌이 있는 벌집이라는 걸 증명하듯 킬러비 떼가 정면으로 돌진해왔다.

스윽! 스윽! 스윽!

칼은 발꿈치를 틀어서 몸에 제동을 걸어 지면 위로 미끄러졌다.

흙먼지가 퍼져나가며 킬러비들의 시야를 가리는 와중에 칼은 다수의 서킷을 그물처럼 만들어내 눈앞에 펼쳤다.

쫘악!

이어서 칼은 미리 준비한 마법 스크롤, ‘체인 라이트닝’을 찢었고.

사아아악!

스크롤에서 흘러나온 마력은 그대로 서킷을 타고 이동해 골고루 퍼졌다.

파직!

콰아아앙!

서킷에 몸이 닿은 킬러비들은 단숨에 잿더미가 되었다.

우우우우웅!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본능보다 여왕벌을 지켜야 된다는 사명감이 더 강한 것인지 상대한 킬러비보다 더욱 큰 개체가 칼을 덮쳤다.

“흥!”

칼은 비어벨을 꺼내 베려고 했으나.

어느새 베르데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단숨에 화살을 건 활시위를 놓았다.

쇄액!

콰콰콰콰쾅!

한 번에 쏘아진 세 줄기의 화살이 칼의 눈앞에 있는 킬러비들을 꿰뚫었다.

스팟!

그 뒤로 둘은 대화 없이 여왕벌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벌을 맹렬하게 쫓았다.

위잉!

공중을 나는 벌을 쫓다 보니 낮은 언덕 같은 장애물이 튀어나왔지만.

파지지직! 콰앙!

두 사람은 그것들을 단숨에 뛰어넘으며 화살 세례와 전격의 그물로 킬러비들을 쓰러뜨렸다.

‘……이 녀석. 그냥 강하다는 말로 부족해.’

칼과 나란히 숲을 질주하고 있던 베르데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칼의 움직임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동안 동족 중에서 어느 누구도 베르데와 합을 맞추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서걱! 서걱!

콰앙!

칼은 거침없이 킬러비들을 절단해 버리며 질주하고 있었다.

푸푸푸푸푹!

베르데는 그 움직임에 맞춰 칼의 시야에 방해가 되는 킬러비들을 화살로 저지했다.

그 와중에도 숨통이 끊어지지 않은 개체들이 두 사람을 가로막으려고 했지만.

콰직!

칼은 그런 킬러비들의 머리를 밟아 으깨버린 뒤, 단숨에 절벽에 몸을 던져 아슬아슬하게 비탈길에 몸을 미끄러뜨렸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부터 킬러비들이 쇄도했다.

파직!

콰아앙!

어김없이 서킷을 타고 발현된 체인 라이트닝에 몸이 잿더미가 되었다.

이윽고 비탈길 끝에 다다르니, 조그마한 킬러비가 수목 사이에 감춰진 거대한 벌집 앞에서 멈췄다,

달콤한 과실, 리르가 잔뜩 맺혀있는 나무들 사이.

그곳에는 황토색 밀랍으로 지어진 거대한 구체 형태의 벌집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까드득!

안쪽을 들여다보니 그곳에는 꿈틀거리는 킬러비들의 유층과 함께 비대한 몸집을 가진 여왕 킬러브가 숨어 있었다.

순식간에 자신의 자식인 킬러비들이 절반 이상 죽어 나가자, 여왕벌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까드드득!

동족을 위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실체를 본 베르데 역시 분노로 몸을 떨고 있었다.

우우웅!

그와 동시에 사냥을 나갔던 모든 킬러비들이 여왕과 그 벌집을 지키기 위해 몰려들었다.

꽤나 먼 곳에서 지금의 광경을 보면 하늘에 마치 거대한 다리가 놓인 것처럼 보이리라.

그만큼 눈앞에 있는 킬러비들의 모습은 웅장하고 광대했다.

“남은 건 한 장인가.”

칼은 쯧 혀를 차며 가슴 품에 있는 스크롤을 든 채로 어떻게 격파해야 할지 고심이 깊어 보였다.

“겁먹은 거면 빠지지.”

베르데는 호흡을 고르며 애써 태연한 반응을 보였다.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를 살폈다.

마음속으로 칼은 여기까지 자신과 속도를 맞추며 엄호한 것만으로도 베르데가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족히 열흘 가까이 제대로 자기는커녕,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해 지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칼이 승기를 다잡을 때까지, 기절하지 않고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바로 그때.

위이이이이잉!

이대로 있다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일 거라 생각한 것인지, 여왕벌이 스스로 벌집에서 튀어나와 파리디스의 허공을 날았다.

위이이이잉!

뒤이어 수백 마리의 킬러비들이 그녀를 호위하듯 감싸며 이동에 나섰다.

“유충을 버리고 도망가는 건가?”

예상치 못한 지능적인 행동에 베르데는 적잖이 당황했고.

스윽, 스윽, 스윽.

재빨리 허공에 서킷을 생성한 칼은 마지막 남은 스크롤인 ‘체인 라이트닝’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다시 수십 마리의 킬러비들이 전격의 그물에 걸려들어 잿더미로 사라졌지만.

여왕벌은 아슬아슬하게 서킷의 범위에서 벗어나 벌써 저만치 날아가고 있었다.

“칫!”

칼은 혀를 차며 재빨리 비어벨을 휘둘렀다.

서걱!

검격은 정확하게 주변 나무에 맺혀있는 리르 하나를 떨어뜨렸고, 칼은 그것을 손으로 집어 여왕을 향해 있는 힘껏 투척했다.

퍼억!

리르는 정확하게 여왕벌의 등과 날개를 강타하며 터졌다.

하지만 이 강인한 집단의 여왕답게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돌을 던졌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뭐 하는 거야?”

베르데가 어이없는 눈초리로 쳐다보자, 칼은 무뚝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네 차례야. 끝내. 내가 자신 있는 분야는 아니거든.”

“뭐?”

당황한 베르데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이미 달려서 쫓아갈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킬러비 여왕.

다수의 킬러비들과 뒤섞여 분간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일 법했지만.

베르데의 눈은 정확히 여왕을 구분할 수 있었다.

한 번 물들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리르의 원액.

그 과즙이 여왕벌의 날개와 등에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

판단을 마친 베르데는 재빨리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들어…….

까드드드득!

팔의 힘이 한계에 달할 정도로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숲을 혼란으로 몰아붙인 여왕은 1킬로미터 밖으로 날아갔으나, 그것은 베르데에게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는 엘프 사이에서 최강의 전사라고 인정받은 자.

동시에 이 시대가 공인한 7명의 천재, 에클라 세트였다.

누군가한테는 기적을 행사한다며 칭송을 받겠지만, 사실상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그저 바라보고 손이 가는 대로 움직이면, 어느새 화살이 적의 명치를 꿰뚫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류의 화신(infalible simbolo).

표적을 겨눈 화살에서 점차 짙은 녹색의 오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등 언저리까지 확산된 그 광채는 무언가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 승리였다.

쇄액!

활시위를 놓은 순간 화살은 하늘을 내달리는 빛줄기가 되었다.

우우우우웅!

위화감을 느낀 킬러비들은 스스로 방패막이가 되려고 했지만.

쇄액!

푸욱!

화살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여왕에게 꽂혔다.

키에에에엑!

베르데의 오러가 몸을 헤집자, 여왕은 고통에 몸부림을 치다…….

콰앙!

그대로 몸이 터지며 산산이 와해했다.

*  *  *

짹짹짹!

기나긴 전투가 마침내 끝이 났다.

“여, 여긴가?”

킬러비들이 갑자기 이상 행동을 보이며 퇴각을 하자, 엘프들은 손쉽게 그것들을 제압했다.

에르바는 그것이 여왕의 죽음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깨닫고는 재빨리 수색대를 이끌고 칼과 베르데의 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수색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숲 사이로 찐득찐득한 액체를 잔뜩 뒤집어쓴 칼과 베르데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르데는 상당히 지쳤는지, 칼에게 부축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베르데!”

무사히 돌아온 아들 본 에르바는 반색하며 달려갔다.

“야. 귀찮으니까 이제 네가 걸어.”

털썩!

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어깨동무를 풀고 베르데를 집어던졌다.

손가락 하나 까닥일 힘도 없던 베르데는 그대로 내동댕이쳐지는 굴욕을 겪었다.

“…….”

반색하던 엘프들은 경직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베르데는 딱히 적의를 품은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칼에게 말했다.

“……네 녀석. 언젠가 죽인다.”

상당히 창피했는지, 그의 귀는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말만 많아서는.”

칼은 그런 그를 보면 핀잔을 내뱉었다.

에르바는 여기서 가장 연장자답게 둘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말을 걸었다.

“무, 무사해서 다행이네. 그보다 자네와 베르데의 몸은 뭐가 묻은 건가?”

“밤새 유충들을 죽였으니까 그렇죠. 체액에서 썩은 내가 진동을 해서 짜증이 나네요.”

칼은 험상궂게 인상을 찌푸렸고, 에르바는 다시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씻을 준비를 해놓겠네…… 정말 감사하네.”

끝말의 여운이 묘하게 깊었다.

한 집단의 장로인 그는 남들 앞에서 고충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고충이 해소되자, 절로 울컥하는 건 아무리 연장자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됐고.”

물론 분위기 읽을 줄 모르는 칼은 에르바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베르데를 노려보며 말했다.

“유학? 어떻게 할 거야?”

안 오면 뒈진다.

“…….”

칼의 으름장을 놓는 그 시선에 베르데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탄식하며 말했다.

“결론은 이미 정해진 거 아닌가?”

*  *  *

포르타 왕국, 콜레리크 후작의 대저택.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지하 시설은 완전히 검게 변하여 유해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색에 나선 병사들은 저들끼리 수군덕거렸다. 그들은 본연의 임무보다 다른 목적에 더 치중하고 있었다.

“그래도 후작가 건물이니까. 뭔가 떡고물 같은 게 떨어져 있겠지.”

“하긴, 생존자가 어디 있어. 다 뒤졌으니 주인 잃은 보물이나 주워야지.”

사리사욕을 품은 그들이 샅샅이 수색 아닌 수색을 펼칠 때였다.

꼼지락.

“어? 야, 네 발치에 뭔가 손이 움직이는데?”

“뭔 개소리야? 죽었는데 손이 어떻게 움직여?”

황당한 말에 입가에 실소를 머금은 바로 그 순간.

콰직!

지면에 널브러져 있던 두 손이 두 병사의 목을 움켜쥐었다.

“크아아아아악!”

“이, 이건 뭐야?!”

갑작스런 상황에 그들은 발버둥을 쳤지만, 그것은 헛된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다.

스윽.

왜냐하면 생기를 강탈당한 그들은 쭈글쭈글해지더니 이내 미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목을 붙들고 있는 알몸의 사내는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어. 그 개자식. 칼리언트 슈타크라는 놈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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