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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95화 (95/197)

#제95화

씨익!

‘뒤치다꺼리는 확실히 해주겠다는 거군.’

아까는 광견이라던가, 위험한 자라는 등의 험담을 들어 기분이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일이 수월하게 풀릴 것을 직감한 칼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입꼬리를 씩 올렸다.

반면 레너드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닥치고 시키는 대로 신속하게 처리하라니?’

공문에 적힌 글귀가 베게누의 것임을 의심하지는 않았다.

‘그 베게누 프로메스가 이렇게까지 밀어주다니.’

레너드는 지금까지 수십 년을 같이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베게누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깊은 신뢰를 주는 것은 처음 봤다.

베게누는 매사에 신중한 터라 레너드의 의견은 존중하되, 상단 운영의 방침을 고려했을 때 무모하다 싶은 점이 있다면 확실하게 선을 긋는 남자였다.

실제로 금융업 분야에 도전하자는 레너드의 의견에 베게누는 단호히 거절한 적이 있었다.

레너드는 살짝 질투 어린 시선으로 칼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단순히 건방지고 콧대가 높은 귀족가의 도련님인 줄 알았는데, 뭔가 있는 건가?’

의구심은 차고 넘쳤다.

어쨌건 무려 그 베게누가 공문으로 이 남자의 존재가치를 공인했다.

그렇다면 레너드가 앞으로 취해야 할 자세는 하나밖에 없다.

스윽.

레너드는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을 접어두고 베레모를 벗은 뒤, 정중히 인사를 했다.

“시간을 지체하게 된 점, 그리고 여러모로 불편을 끼친 드린 점에 대해서 사과드립니다. 칼리언트님, 프로메스 상단에 어떤 용무로 오신 건지.”

“……킬러비.”

움찔!

예상치 못한 화제에 레너드는 등골이 오싹했다.

칼은 자루에서 유리로 된 작은 병을 꺼내 들었다.

안에는 검은 액체가 담겨 있었는데, 칼은 그것을 살살 흔들며 말했다.

“녀석들의 독이야. 이거에 맞는 해독제를 삼천 회 분량을 준비해서 파라디스에 있는 행정관료, 캐로트에게 보내. 이건 내가 써놓은 서신이니까 같이 전달해주고. 기한은 최대한 빨리. 비용은 이 신분패에 예치된 예금을 사용하지.”

“사, 삼천 회 분 말씀입니까?!”

칼이 엄청난 양의 해독제를 요구하자 레너드가 눈을 부릅떴다.

칼의 옆에 있던 밀란도 크게 놀라 칼을 쳐다보며 말했다.

“카, 칼리언트 님. 서, 설마?!”

해독제가 필요한 사람은 누가 봐도 파라디스에서 킬러비들과 사투를 벌이는 엘프들이었다.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레너드를 쳐다보며 물었다.

“불가능한가? 돈이 부족하면, 사비로 충당하지.”

울컥!

묘하게 자신을 시험하는 것 같은 말투에 레너드는 속이 살짝 불편했다.

“에밀리 님의 패에 예치된 금액은 칼리언트 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즉각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주눅이 들었던 밀란의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그 외 다른 용무가 있으십니까?”

칼의 요구가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했는지, 레너드는 다음 칼의 요구를 기다렸다.

“1년 반 전, 포르타 왕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모든 물자의 흐름을 알고 싶어. 프로메스 상단뿐만 아니라 다른 상단까지 모두.”

방대한 업무 분량에 밀란은 크게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쯤 되면, 레너드도 당황을 넘어서서 흥분을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의외로 그는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3시간 안쪽으로 준비해놓겠습니다. 자료가 모두 준비될 때까지 이곳에서 편히 휴식을 취해주시길 바랍니다.”

“3시간?”

예상치 못한 빠른 대답에 칼 역시 당황하고 있었다.

‘한 방 먹인 건가?’

결국 고생은 자신들이 죽도록 하는 거긴 하다. 그래도 칼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 레너드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프로메스 상단 외에도 여러 상단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이건 상단의 극비사항이니 비밀 엄수를 부탁드립니다.”

그는 검지를 입에 붙이며 조용히 물러섰다.

*  *  *

프로메스 상단 내부에 위치한 서재.

그곳에서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살펴보던 칼은 조금이라도 수상한 물품의 거래가 표기된 양피지를 발견하면 밀란에게 넘겨주었다.

사락, 사락, 사락, 사락, 사락.

마치 대충 종잇장만 팔락이는 느낌이지만, 칼의 동공은 순간의 정보를 캐치했다. 그 모습이 마치 매의 눈 같았다.

‘대체 못 하는 게 뭐야?’

그런 칼의 속독 능력에 밀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보 탐색 능력부터 시작해 전투 능력까지, 그녀의 오빠인 베르데조차 이렇게 많은 이렇게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무서운 것은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곁에서 업무를 보조하고 있던 레너드 역시 기가 막혀 저도 모르게 탄식했다.

‘처음부터 빨랐는데, 요령을 터득하고 나서는 완전히 신의 경지군.’

시간은 어느덧 자정이 됐다.

칼은 밀란이 다시 추려낸 물품 거래서를 다시 꼼꼼히 확인해보았다.

‘이, 이 자식 사람이 아니야.’

레너드는 결국 탈진 직전에 이르렀다. 그는 이미 피로가 누적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밀란 역시 가까스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바로 그때.

똑똑.

두 번의 노크와 함께 문이 살짝 열리며 케이크와 홍차가 담긴 쟁반을 키노가 들고 왔다.

“차, 차와 디저트를 준비했습니다.”

‘슬슬 쉬는 건가?’

케이크를 보며 밀란도 눈빛을 반짝였다.

칼은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냉담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달아. 갖다버려. 아니 둘이 알아서 처리해.”

“…….”

“…….”

달콤한 케이크를 마치 쓰레기 보듯 쳐다보는 시선과 말투에 레너드는 질렸다는 듯 치를 떨었다.

‘그래도 가지고 온 사람의 성의가 있지.’

그는 밀란과 마주 앉아 케이크를 깨작이며 서류를 살피는 칼을 구경했다.

딱히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뭐라고 할까?

정신을 차리면, 자연히 시선이 칼 쪽으로 쏠려 있었다.

“칼리언트 님은 뭐 때문에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겁니까?”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표현을 잘 못 하시는 것뿐이지. 상냥하신 분이라고 생각해요.”

“인간과 엘프가 보는 상냥함의 기준은 다른 것 같습니다.”

“아마 똑같을 거예요.”

밀란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고, 레너드는 칼을 지그시 쳐다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뭐 조금 멋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바로 그때.

스윽, 스윽, 스윽.

깃펜으로 포르타 왕국의 지도 이곳저곳에 선을 긋던 칼은…….

씨익!

어떤 때보다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방금 전까지 호감 넘치던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던 레너드와 밀란이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 정도였다.

“아아, 찾았다. 이 개자식들.”

지도에 원형으로 표기된 지점.

그것들은 수상한 물품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수상한 거래의 품목은 주로 킬러비 유충을 키우기 위한 먹이와 환경 등을 구성하는 데 쓰이는 재료들이었다.

*  *  *

잔잔한 새벽.

포르타 왕국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의 지하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거래 품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아직 상품으로 전락되고 싶지 않은지, 죽을 둥 살 둥 버티고 있더군요. 하지만 괜찮을 겁니다.”

다소 권위적인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는 갈색 수염의 중년 남성의 이름은 모베 콜레리크 후작으로 포르타 왕국의 왕권 강화에 기여한 핵심 인물이었다.

바깥에서는 그의 자애로운 인상을 보고 호감을 표출하는 서민들도 꽤나 많았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알면 안 되는 은밀하고 추잡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주체할 수 없는 이상 성욕.

그는 짓밟고 죽이는 행위에서 쾌락을 느꼈다.

이 지하에는 아이, 노인, 여성, 이종족이 죽어 나갔다.

시체가 남지 않은 것은 따로 만들어둔 소각장에서 그것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렸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 숫자는 도합 삼백에 이르렀다.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이상 성욕은 점점 커져 결국 일상생활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됐다.

또한 비밀을 지키기 위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지출까지 하게 됐다.

돈이 필요해.

쾌락을 만끽해야 해.

고민하던 도중, 그는 구속구를 착용한 채로 길을 걷고 있는 엘프를 발견하고는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파라디스에서 거주하고 있는 엘프들을 모두 붙잡아 노예로 만드는 거였다.

엘프 노예는 희소성 덕분에 몸값이 상상을 초월하는 데다가, 엘프를 유린하고 죽이는 것으로 쾌락까지 만끽할 수도 있었다.

계획을 세우기 위해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음지의 상인인 폰을 불러들였다.

그는 콜레리크 후작의 계획을 보다 구체적인 방향으로 수립해 나갔다.

제일 먼저, 알테어에서 산란을 준비 중인 킬러비 여왕을 밀수해 파라디스에 풀어놓았다.

그러자 계획대로 킬러비는 파라디스에 사는 엘프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조만간 킬러비의 숫자가 좀 더 많아지면, 엘프들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콜레리크 후작은 영지의 병사를 총동원하여 엘프들을 모조리 생포할 계획이었다.

“크크크크, 이렇게까지 예상이 맞아떨어지다니, 자네는 정말 유능하군. 폰.”

“과찬입니다.”

정중하게 대답한 폰은 검은 산양의 가면을 고쳐 썼다.

완벽한 신뢰를 얻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 그가 가면을 쓰고 활동하게 된 것은 보복당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그의 특색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어버렸다.

“한데, 그놈은 잡을 수 있겠나? 우리 계획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그 엘프 자식.”

콜레리크 후작은 녹색의 머리칼의 강인한 엘프를 떠올렸다.

나약한 다른 엘프들과 다르게 유난히 사나운 그 엘프는 거침없이 킬러비들을 사냥함으로 계획을 더디게 만들었다.

“……그것은 조금 특별한 개체로 보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웃돈을 얹어주지. 어떻게든 살려서 내 앞에 데려와.”

“네?”

폰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콜레리크 후작은 자신의 윗입술을 혀로 스윽 핥으며 말했다.

“딱 내 취향이거든.”

‘이 녀석 남색가이기도 했었지.’

폰은 혐오스런 표정이 지어지려는 걸 가까스로 참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저런 게 음모의 실체라니. 더럽게 추잡하군.”

지하 공동에서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야?!”

당황한 콜레리크 후작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이곳은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신이 총애하는 호위 병력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입니다.”

당황한 기색으로 주변을 살피던 폰은 선반 위에 앉아있는 소년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변 등불에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을 뿐임에도 그 존재감은 상당히 짙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심홍색의 머리칼과 눈동자는 무척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체구가 작은 어린 엘프가 혐오에 찬 얼굴로 콜레리크 후작을 노려보고 있었다.

콜레리크 후작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호위 병력은 어떻게 뭘 하는 거야!!”

“알 것 없잖아.”

칼은 장소를 알아내기 무섭게 쿠라빌의 영체화를 이용해 은밀히 저택 내부로 침입하였다.

성격대로라면 깡그리 부수고 침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외교 문제나 국가 분쟁 등,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생길 수 있기에 우선은 지켜본 뒤 나중에 결정을 내릴 참이었다. 그러다 결국 칼은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탁!

칼은 밀란을 안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깃털처럼 사뿐히 착지했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보구나.”

콜레리크 후작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공포심을 느끼며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빨리 튀어나와서 이 녀석을 죽여!!!”

우르르르.

그의 명령에 순식간에 문을 열고 나타난 다수의 병사들이 칼에게 창과 검을 겨누었다.

“카, 칼리언트 님.”

칼은 염려하는 밀란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은 뒤, 폰의 가슴 부근을 가리켰다.

그의 목에는 자그마한 유리병이 걸려 있었다. 그 안에는 한 마리의 벌이 위잉 소리를 내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한 벌로 보였으나 외양은 완벽하게 킬러비와 판박이였다.

“그게 여왕벌을 찾을 수 있는 벌인가? 내놔, 뒤지기 싫으면.”

“무, 무슨 소리야!!”

당황한 폰은 재빨리 손으로 그것을 가렸다.

“흐아아압!!!”

그와 동시에 병사들이 물밀듯 칼을 덮쳤고.

“병신들. 도망을 갔어야지.”

칼은 그들을 힐난하며 비어벨을 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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