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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91화 (91/197)

#제91화

카앙!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기습은 비어벨의 검 자루에 막혔다.

카드드득!

칼은 한 손으로 베르데의 쿠크리 단검을 밀어내며 입을 뗐다.

“성격 마음에 드네.”

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밀란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만류했다.

“두, 두 사람 다 진정하세요! 지금 두 분이서 싸울 때가 아니에요.”

“빠져라, 밀란. 난 분수도 모르는 이 남자한테 격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어.”

“하, 하지만.”

“그런 이유니까. 방해하지 마.”

칼 역시 이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타앗!

이윽고 자리를 박찬 두 사람은 숲 사이를 가로지르며 공방을 벌이기 시작했다.

카앙! 카앙! 카앙!

먼저 공격의 주도권을 가지고 간 것은 베르데였다.

베르데의 쿠크리 단검이 크고 작은 궤적을 그리며 칼을 쉴 틈 없이 압박했다.

연속된 공격에 칼은 비어벨을 빼 들 틈도 없이 검집으로 공격을 막기 급급했다.

칼은 의외다 싶은 마음에 조금 진지하게 눈을 떴다.

‘궁술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근접전도 만만치 않아.’

베르데의 움직임에는 낭비는 전혀 없었을뿐더러, 낯설고 참신하기까지 했다.

카앙!

휘리리릭!

칼이 연이어 참격을 받아치자, 베르데는 무표정으로 쿠크리 단검을 손에서 놓았다.

“뭐?!”

휘두르던 중 자연스럽게 놓은 것뿐인데, 쿠크리 단검은 요란스럽게 회전하며 칼의 시야를 흐트러뜨렸다.

콰앙!

베르데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손바닥으로 칼의 턱을 힘껏 올려 쳤다.

가벼운 체중과는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타격에 뇌가 흔들린 칼은 일순간 두통을 느꼈다.

“크윽!”

베르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쿠크리 단검을 낚아채 그대로 칼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덥석!

칼은 그 즉시 혀를 깨물어 아득해져 가는 정신을 각성시키며 잽싸게 베르데의 손목을 낚아챘다.

“벌써 의식을!”

그 순간이 믿기지 않았는지, 베르데는 처음으로 냉정한 표정이 무너졌다.

“내공이 있지. 이딴 거에 당할까 보냐.”

말과는 달리 자존심이 상당히 상했는지.

콰앙!

칼은 베르데를 번쩍 들어 올린 다음 근처에 있는 너도밤나무에다가 던졌다.

“크악!”

등에 작렬하는 엄청난 고통에 베르데는 헛숨을 들이켰지만, 그에겐 숨을 쉴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을 짓밟기 위해 칼의 발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직!

콰앙!

상당히 힘을 실었는지 짓밟힌 나무는 완전히 부스러졌고, 재빨리 몸을 굴려 발길질을 회피한 베르데는 곧장 몸을 일으켜 칼과 맨손으로 공방을 주고받았다.

콰직!

칼은 베르데의 뺨을 노리고 힘껏 주먹을 휘둘렀다,

‘회피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네.’

치명타를 입히지 못했다.

주먹이 얼굴에 닿기 무섭게 베르데가 재빠르게 몸을 선회시켜 충격을 경감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근거리 전투 역시 실력이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칼보다 빠른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에클라 세트. 이게 재능의 영역에서 논다는 녀석들이군.’

콰직!

투지가 솟구치기 시작한 칼은 날아오는 베르데의 주먹을 가만히 맞아주었다.

“뭐?!”

마치 거대한 트롤을 내려친 것처럼 피해가 전혀 없는 그 모습에 베르데는 놀라서 눈을 부릅떴고, 칼은 그 상태로 비어벨의 손잡이를 잡았다.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볼까나.”

씨익!

칼이 잇몸을 드러내는 것과 동시에 비어벨의 검신이 빛을 발하자…….

베르데의 생존본능이 그에게 경고했다.

콰아아아아앙!

이윽고 붉은 오러가 번쩍이더니 지면에 기다란 선이 그려지며 대지가 붕괴됐다.

*  *  *

두 남자의 격전을 지켜보고 있던 밀란은 혼란스러웠다.

“오, 오라버니랑 저 정도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걱정이 되는 한편.

칼과 베르데의 실력이 의외로 호각이라는 사실이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베르데.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성인을 뛰어넘는 전사의 기질을 보였다.

아무리 표적이 멀리 있어도 화살을 쏘기만 하면 백발백중이었을뿐더러, 기사급인 인간을 상대로 겨우 단검을 들고서 농락하기까지 했다.

또 밀란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노예 사냥꾼들 사이에서 무류의 화신(infalible simbolo)으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파라디스의 숲에 발을 내민 인간은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는 화살에 꽂혀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화살은 한 발에 한 명을 정확히 꿰뚫으며 모두에게 공포를 안겨 주었다.

“아버지를 불러야겠어.”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누구 한 명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두려웠던 밀란이 즉각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였다.

“지켜보고 있으니, 그럴 필요는 없다.”

언제부터 있었던 건지 그녀의 아버지, 에르바가 나타났다.

그의 옆에는 슈미트도 동행하고 있었다.

“쯧쯧.”

먼저 주변을 살피던 슈미트는 혀를 차더니, 어딘가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 데서나 뒹굴고 자빠졌어.”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자신의 주인이 사투를 벌이는 것도 모르고 쿨쿨 자고 있는 바그로바가 있었다.

“지, 지금 거기를 봐야 할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요.”

밀란이 칼과 베르데가 전투를 벌이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흔히 있는 일인데 뭘.”

그러나 슈미트는 새삼스럽지 않다는 듯 슈미트는 귀를 후볐다.

“…….”

아무래도 이 드워프 역시 칼리언트의 동행답게 배짱이 만만치 않았다.

‘아, 아버지라면.’

밀란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에르바를 쳐다보았다.

“…….”

에르바는 어떤 동요도 없이 칼과 베르데의 전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 이대로 두고 봐도 괜찮은가요?”

“킬러비들의 활동은 뜸해졌으니 괜찮을 것 같구나.”

‘제 말은 그게 아닌데요.’

내가 이상한 건가?

밀란이 어리둥절할 때, 에르바는 상당히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처음인 것 같구나. 에클라 세트도 아니면서 베르데를 몰아붙일 수 있다니.”

표정과 말투는 냉정했지만, 그 속에는 놀라움과 당혹이라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옆에서는 슈미트가 그 말을 받았다.

“파르테스에는 저런 재목이 이미 상당수 모여 있습니다. 에르바, 이제는 우물 밖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 아이한테도 그게 좋을 것 같고요.”

그 말에 에르바는 수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베르데.

자신의 아들은 이미 일족 내에서는 당해낼 자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베르데는 자만하는 경향이 있었다.

물론 그것이 결코 상대방을 경시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베르데는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만약 자신이 없으면 엘프 전체가 무너질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에르바는 그 점을 몇 번이고 고치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가만히 있던 에르바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앞으로 엘프들을 이끌어갈 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런 미래를 타지에 맡기는 게 정말로 올바른 선택일까? 나는 아직도 그런 고민을 하고 있네.”

“그것을 선택하는 건 본인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내키는 대로 하면 되지.

슈미트는 마지막으로 그렇게 혼잣말을 덧붙였다.

*  *  *

타악! 타악! 타악!

칼과 맨손으로 공방을 수백 차례나 주고받던 베르데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근접전으로는 승산이 없다.’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타격도 서로 비슷하게 적중했다.

하지만 베르데는 칼의 압도적인 체력과 지구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쯤 되면 제아무리 강인한 인간이라도 팔다리가 후들거려야 정상이었다.

콰아아앙!

그러나 칼은 아직도 처음과 같은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가까스로 양팔로 그것을 가드 해낸 베르데는 이를 갈았다.

‘괴물 같은 놈.’

의도치 않은 칭찬이었다.

베르데는 난생처음으로 인간이 괴물 같다고 느꼈다.

그 역시 소드 마스터를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 당시 베르데는 상대와 직접 마주치지 않고 멀리서 활을 쏴서 유린하다가 숨통을 끊었다.

베르데의 공세에 내몰린 소드 마스터는 정신이 무너져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도망치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칼은 정신력부터 전투 경험까지 그때의 소드 마스터와는 수준이 차원이 달랐다.

“본격적으로 해야겠군.”

타앗!

결단을 마친 베르데는 곧장 등을 돌리더니, 능숙하게 나무 위로 올라가 조용히 몸을 감췄다.

“다람쥐처럼 내빼기는.”

그 날렵함에 칼은 혀를 차며 당황했다.

자신 역시 타인에 비해 가볍고 재빠르다고 생각했건만.

베르데는 그런 칼을 농락하는 것처럼 대놓고 등을 돌리고 모습을 감췄는데도 도저히 그를 쫓을 수 없었다.

‘녀석의 기량도 기량이지만. 이건 나의 기량 부족이기도 하지.’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달은 칼은 이내 눈을 감았다.

어차피 어두컴컴한 밤이기 때문에 주변을 식별하는 것은 어려웠다. 더군다나 궁수가 모습을 감췄다면 이다음 펼칠 수는 너무나 뻔했다.

‘저격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칼은 쿠라빌과 격전을 벌일 때 사용했던 ‘예측’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그의 기감을 건드린 것은 좌측 사각으로 날아오는 세 줄기의 화살.

카앙!

비어벨을 꺼내든 칼은 단숨에 그것들을 후려쳐냈다.

푸욱!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세 개의 화살을 모두 튕겨냈음에도 또 다른 화살이 정확히 칼의 대퇴부에 꽂혀 통증을 유발하고 있었다.

눈살을 찌푸린 칼은 나뭇가지 위에 서 있다가 몸을 튕겨 자취를 감추는 베르데와 눈이 마주쳤다.

놀랍게도 베르데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자리를 옮긴 뒤 눈대중으로 칼의 위치를 파악하여 화살을 쏜 것이다.

‘독이 발라져 있다면, 내 패배였겠지.’

형용할 수 없는 굴욕감에 칼은 부르르 떨면서도 급히 나무 기둥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기동력을 잃었으니 지금은 최대한 호흡을 고르며 베르데의 위치를 식별해야 했다.

하지만 베르데는 칼에게 결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피잇!

베르데는 다시 한번 칼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 칼의 팔을 스쳤으나 가까스로 피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주륵.

화살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옮기면서도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쇄액!

그 와중에도 화살이 칼의 이마를 꿰뚫기 위해 날아왔으나.

카앙!

이번에는 정확히 화살을 두 쪽으로 갈라내는 데 성공했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쏘아낸 거군. 추격을 경계하는 건가.’

타앗!

다시 한번 나무 기둥 사이로 모습을 감춘 칼은 천천히 호흡을 골랐다.

‘날아온 궤도를 생각하면 서쪽, 나무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아마 80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 노리고 있군.’

베르데는 다시 그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한때 노예 사냥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무류의 화신은 그런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칼은 그런 전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업적을 쌓은 자.

한 세계를 멸망시킨 마왕의 평정심이 이 정도로 무너질 리는 없었다.

“일단 한 방 갈겨볼까?”

칼은 피식 웃으며 손목 부근에 흐르고 있는 피를 할짝 핥더니, 곧 마력을 방출했다.

방출된 붉은 마력은 이내 서킷을 이루더니 곧 파라디스 전체로 광활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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