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서킷 끝에서 발동된 음성 확대 마법.
음성의 주인이 파우스트라는 것을 모두가 어렴풋이 깨달았을 때였다.
타닷!
파우스트가 다급히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허억.”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파우스트는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부랴부랴 주변의 반응을 살폈다.
“…….”
혐오가 가득 깃든 시선.
그 속에서는 자신에게 다소 우호적이었던 룩스 솔리스 학파의 학생들의 시선도 섞여 있었다.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파우스트입니다. 마지막 투표에 앞서…….”
잠시 호흡을 고른 파우스트가 특유의 포커페이스로 연설을 시작하려는 찰나.
룩스 솔리스의 학생 대표인 하가가 느닷없이 질문을 건넸다.
“타 학파에서 한 연설에서는 예산 확대 및 학생회 조직 편제, 그리고 친목과 교화를 위한 행사를 내놓겠다고 하셨습니다만. 룩스 솔리스 학파를 위한 공약은 뭐가 있는지요?”
우호적이지 않은 발언이었다.
‘분명 무슨 일이 있었어.’
파우스트는 무슨 일이 있었음을 눈치채고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물론 룩스 솔리스만의 고충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마력의 근본이 태양과 연관이 깊다 보니, 식물 자원에 대한 예산을 늘리는 한편, 룩스 솔리스 출신의 마법사를 초빙해 교육을 진행할까 싶은…….”
“그럼 그만한 예산을 충당할 방법을 일러줬으면 싶은데요?”
“모두가 알다시피 매년 예산 분배에 관한 회의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부족한 부분을 취합해 회의에 건의를…….”
“앞선 연설에서 릴리아나 후보는 학파에서 연구한 성과물을 공개해 대중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에 반해 막연히 예산을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하는 파우스트 후보의 말은 다소 억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빠직!
파우스트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마음 같아서는 소리를 치고 싶지만, 여기서 표정이 무너지면 안 된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술렁이기 시작한 군중심리를 다스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가 다음으로 입을 연 것이 스파라기다의 학생 대표인 라이만이었기 때문이다.
“스파라기다 학파를 위한 공약은 어떤 걸 준비했죠? 가급적 릴리아나 후보의 엘프들과의 교류만큼 스파라기다 학파의 학구열을 높일 수 있는 제안으로 부탁드리죠.”
“그, 그것은…….”
연이어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파우스트는 조금씩 표정이 무너졌다.
하가는 팔짱을 끼며 가소롭다는 듯 그를 노려보았다.
“저는 후보께서 가지고 있는 사상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습니다. 파르테스는 대륙에서 엄선한 최고 인재들을 교육하는 기관입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가문도 계승 받지 못하는 반푼이로 취급하는 발언을 내뱉은 것에 대해서 해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그 말에 파우스트의 표정은 유리처럼 와장창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음성이 흘러나온 거군.’
상황을 파악한 파우스트는 식은땀을 한가득 흘리며 적극 부인했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라이만은 혐오스럽다는 표정으로 파우스트를 노려보며 말했다.
“릴리아나 후보는 자신의 소문에 대해 따로 해명하는 자리를 갖기로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지,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인지 소상히 밝힌다고 했습니다. 반면 후보께서는 진심으로 저희를 대할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여기서 흔들리면 안 돼.’
꽈악!
파우스트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건 누군가의 음해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언제나 진심으로…….”
“그러면 스첼레투스 학파의 학생들이 다른 학파의 학생들에게 폭력을 가해 표를 뺏은 건 어떻게 해명하겠습니까?”
“그것 또한 모함으로…….”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이미 저의 귀에 들려온 이야기만 수백 개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이만의 거침없는 발언에 파우스트는 전신을 파르르 떨었다.
‘너무 얕봤어.’
그는 자신이 데제스를 제하면 최고의 인간이라고 생각했지만.
파르테스에는 그 이상으로 지적인 탐구심이 깊고 강한 학생들이 많았다.
데제스나 칼에 의해 빛이 가려진 것뿐이지, 가공만 하면 언제든지 빛을 낼 수 있는 원석이 한가득 있었다.
바로 지금의 하가와 라이만처럼.
“전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끝까지 해명하지 않겠다는 답변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아, 그리고 스첼레투스의 학생 대표인 데제스푸아르님의 의견도 듣고 싶은데요?”
하가는 어지간히 분이 차올랐는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지금의 이곳을 보고 있는 데제스를 바라보았다.
그가 있는 곳은 언제나 위.
데제스는 멋들어진 룩스 솔리스 기숙사 테라스에 있었다.
‘데, 데제스님.’
꿀꺽!
당황한 파우스트는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고.
데제스는 싱긋 웃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답변을 드리면 모두의 오해를 살 수 있으니 삼가고 싶습니다. 다만.”
은연중 살벌한 안광을 내비치며 말을 이었다.
“그런 몹쓸 짓을 하다 발각되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파우스트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투표 결과는 5:3. 다섯 학파의 표를 획득한 릴리아나는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 * *
해 질 녘, 비밀리에 건설한 파우스트의 지하 실험실.
이실리아에서 가장 은밀한 곳에 만들어둔 아지트에서 파우스트는…….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혼비백산하며 부랴부랴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미 학생회장은 물 건너간 이야기였다.
“오빠. 괜찮아?”
때마침 방문을 열고 들어온 아나스타샤는 그런 파우스트에게 동정의 눈길을 건넸다.
“젠장 어떻게 하면 되는 거야!!!”
파우스트는 책상 위에 있는 실험 기구와 책들을 모조리 내동댕이치며 절규했다.
아나스타샤는 머리를 감싸며 절망하는 그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오빠. 아직 수습할 수 있어.”
“불가능해. 데제스 님이 날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난 오빠가 학생회장에 걸맞다고 생각해.”
“이미 틀렸어.”
“그렇지 않아, 오빠.”
“아나스타샤?”
확신이 가득 찬 어조에 파우스트는 의아함을 느끼며 아나스타샤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얼굴로 과감한 의견을 내놓았다.
“오빠 자리를 뺏은 그년을 죽여 버리면 돼. 그리고 오빠가 그 자리에 앉는 거지.”
잠시 멀뚱히 고민을 하던 파우스트는 곧……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어.”
라고 중얼거리며 얼굴을 이죽거렸다.
평소에 보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눈빛에는 광기가 가득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하아. 머리를 싸매서 나온 결론이 겨우 그런 근거 없는 소거법이라니. 너무 한심하잖아.”
“?!”
깜짝 놀란 두 남매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윤이 나는 검은 빛깔의 털을 자랑하는 바그로바가 있었다.
크르르르르.
평소에는 귀엽고 철없는 아기 사자였으나, 사납게 울부짖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덜컹거렸다.
‘뭐, 뭐야?’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파우스트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바그로바의 뒤에 있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심홍색의 머리칼과 눈빛.
이 어둠 속에서도 칼은 자신의 빛깔을 잃지 않은 채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빠드득!
분노가 치솟은 파우스트는 이를 갈며 칼에게 소리쳤다.
“슈타크의 망령이!!!”
“그건 나를 지칭하는 호칭이 아니야.”
칼은 적절하지 않은 호칭에 인상을 찌푸렸다.
“언젠가 내가 차지하게 될 가문을 언급한 것뿐이지.”
그 느긋하면서 여유로운 모습에 파우스트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분이 치솟았다.
그래 내가 패배한 건 모두 다 이 남자 때문이야!
이 녀석만 없었더라면, 모든 게 순조롭게 굴러갈 예정이었다.
“네놈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됐어.”
“푸훗! 푸하하하하!”
어처구니가 없던 칼은 그대로 웃음을 터뜨렸다.
거침 없이 웃고 있는 그 모습에 파우스트의 증오와 광기는 더욱 짙어졌다.
눈물까지 흘리며 웃던 칼은 검지로 눈물을 닦았다.
“이건 확실히 웃겨서 나는 눈물이군.”
“……무슨 소리야? 실성이라도 한 거냐?”
“아, 있어. 개인적인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네놈, 어디까지 날 기만할 생각이냐?”
분노한 파우스트가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자 칼은 씨익 웃었다.
“오, 오빠. 더 이상 다가가면 안 돼.”
불안함을 느낀 아나스타샤가 차분히 파우스트를 달래며 물러서려고 했지만.
“아나. 너는 어디론가 도망가 있어.”
이미 분노에 몸을 맡긴 파우스트를 말리는 건 불가능했다.
누가 봐도 자신을 무시하고 있는 칼의 태도에 파우스트는 그 이유를 물었다.
“……뭐 때문에 웃은 거지?”
“1등이 되고 싶어 1등을 죽인다? 뭔가 우스운 말이지만 틀린 건 아니지. 근데 너는 1등만 없애면 자기가 1등이 될 거라고 착각하는 꼴등이잖아.”
“입 닥쳐!!!”
분노를 자극하는 그 한마디에 파우스트는 언성을 내질렀다.
카아아앙!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유리관들이 차례로 깨지며 안에 갇혀 있던 키메라들이 일제히 칼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르르르…… 카아아아앙!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 바그로바가 전신에서 붉은 마력을 발산하며 기선을 제압했다.
“노빌레 레오네라, 그것도 꽤나 요긴한 재료로 쓰일 것 같군.”
파우스트가 히죽 웃는 순간이었다.
콰아앙!
칼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파우스트의 몸은 남아있는 유리관 등을 깨뜨리며 벽과 충돌했다.
“쿠헉!”
예상치 못한 기습에 파우스트는 토혈하며 가까스로 숨을 쉬었다.
“꺄아아아아악!”
기겁한 아나스타샤는 제 자리에 쪼그려 앉은 채로 오들오들 떨었다.
‘소, 소문으로는 성격이 괴팍하긴 해도 여자는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었지?’
그녀는 칼에 대해 들은 소문을 믿고서 도주하려고 했다.
쿠구구구구구.
“흐읍!”
그러나 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기세에 도주는커녕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두 남매를 지켜보던 칼은 분노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누구를 죽이려 했다고?”
피식.
뒤늦게 칼이 분노를 참고 있던 것을 깨달은 파우스트는 약 올리듯 웃으며 말했다.
“그 천박한 서민 년이 뭐가 좋다고? 아 혹시 너의 첩이 될 예정…….”
콰아아앙!
말을 끝맺기도 전에 칼의 주먹이 파우스트의 얼굴을 박살 냈다.
충격으로 잇몸에서 이빨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파우스트는 오들오들 떨었다.
‘뭐, 뭐야? 이 괴물 새끼. 단 두 방에 내가…….’
첫 번째는 기습을 허용한 거라고 쳐도.
두 번째는 확실히 흑마법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칼의 펀치는 보호막을 단번에 박살 내고 아까와 같은 충격을 주었다.
‘도망가야 해. 난 아직 할 게 많아.’
쿨럭, 쿨럭.
피가 섞인 기침을 내뱉은 파우스트는 자세를 낮추며 엉금엉금 기어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툭.
그러다 팔꿈치가 누군가의 구두와 부딪쳤다.
당황한 파우스트가 위를 쳐다보자 데제스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데, 데제스 님!”
이제 살았다.
파우스트가 반색하며 데제스를 쳐다보는 순간.
콰직!
느닷없이 나타난 새의 발톱이 파우스트의 얼굴을 붙잡았다.
파우스트의 시야로 새하얀 깃털이 가득 찼다.
“데, 데제스 님. 이거…….”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기, 기다려 주십…….”
“식사 시간이야. 많이 먹으렴, 자우버.”
데제스는 싱긋 웃으며 말을 하자마자.
콰직!
자우버의 발톱이 그대로 파우스트의 얼굴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