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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75화 (75/197)

#제75화

입학식 당일 아침.

“멋져요! 공자님!”

휴가에서 복귀한 레인은 거울 앞에 서 있는 칼을 보며 감탄사를 남발했다.

거울 앞에는 파르테스의 교복을 쫙 빼입은 칼이 서 있었다.

정작 레인의 감탄에도 칼은 장갑을 끼며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이를 지켜보고 있던 맥캘리는 달달 떨며 말을 걸어왔다.

“조, 조금은 긴장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학과 홍보는 물론 입학식 축사까지 다 도맡아 해야 하는데?”

우려 섞인 시선에 칼은 코웃음 치며 걱정을 일축했다.

“난 너의 제자야.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나?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고.”

“건방지긴.”

쑥스러운 듯 맥캘리는 고개를 홱 젖혔다.

실룩실룩.

어느새 그녀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귀여워 보였던 레인은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칭찬에 약하네요. 교수님.”

“크흠!”

맥캘리는 애써 근엄한 자세를 보였지만, 효과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갸르릉.

쿠션에 누워 곤히 잠을 취하고 있던 바그로바는 길게 하품을 하며 앞발로 얼굴을 부비부비 비볐다.

“괜히 긴장하고 있는 나만 바보가 된 느낌이네.”

맥캘리가 허무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 준비를 마친 칼이 입을 뗐다.

“그럼 가볼까?”

갸르릉!

그 한마디에 바그로바는 몸을 일으키며 단숨에 따라나서려고 했다.

“넌 얌전히 있어야지. 바바.”

레인은 바그로바를 품에 안으며 행동을 저지했다.

그르릉!

바그로바는 ‘끼잉’ 소리를 내며 발버둥 쳤다.

스윽.

칼은 그런 바그로바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맥캘리와 함께 입학식이 곧 시작되는 파르테스 광장으로 향했다.

*  *  *

웅성웅성.

2000명도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파르테스 광장.

활기가 샘솟는 이곳에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입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학생들 앞으로 놓인 단상 위에는 졸업을 맞이한 전 학생회장, 루시아가 사회자로 앞에 있었다.

“……아름답다.”

그녀의 우아한 미를 본 이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칭찬 일색이었다.

“저기도 만만치 않은데?”

눈썰미가 좋은 입학생 중 한 명이 룩스 루나에 학파 쪽을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도 자연히 그쪽으로 쏠렸다.

입학생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릴리아나가 서 있었다.

정갈하게 갖춰 입은 교복 차림과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흑발에서는 차분한 기품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존재감을 돋보이는 것은 그녀들이 아니었다.

저벅저벅.

바로 무리를 이끌며 걸어오는 은백발의 소년, 데제스푸아르였다.

그 뒤로 스첼레투스 학파의 학생들이 마치 군인들처럼 각을 맞추며 뒤따르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뿐인데, 숨이 막힐 것 같은 기세에 학생들의 몸이 경직됐다.

“저게 그 소문의 데제스푸아르야?”

“우와, 존재감 장난 아니다.”

“근데 왜 3학년 선배들마저…….”

“3학년 실세는 분명 헨리라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불과 며칠 만에 권력의 판도가 뒤바뀌었다는 것을 알 리는 없었다.

그러나 감정이 결여된 푸른 눈을 본 학생들은 데제스야 말로 파르테스의 실세라는 걸 알아차렸다.

사회자로 참여해 그걸 지켜보고 있던 루시아는 두려움을 느꼈다.

‘역시 넌 파르테스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어. 데제스푸아르.’

그녀는 월반을 시켜 졸업을 앞당김과 동시에 3학년들로 하여금 그를 견제하려 했다. 그런데 헨리마저 이렇게 빨리 짓눌리다니…….

‘이제 졸업한 나한테 간섭할 권리는 없어.’

“후우.”

냉정하게 자신의 입장을 파악한 루시아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디까지나 오늘은 입학식을 진행하는 사회로 참여한 것이다.

음성 확대 마법을 사용한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맑게 갠 하늘이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축하하는 것 같습니다. 파르테스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짝짝!

한참을 이어진 박수갈채가 서서히 멈추자, 그녀는 입학식의 행사를 진행했다.

“축사에 앞서 여러분이 소속될 여덟 학파를 소개해 드립니다. 우선 가장 많은 학생이 소속된 엘레멘탈 스피릿입니다.”

스스스스.

자신들의 학파가 호명되자, 행사를 준비한 학생들이 일제히 마법을 시전했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피닉스의 형상, 물로 구성된 거대한 바다뱀의 형상, 거대한 회오리바람과 반구형의 스톤 브릿지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잠깐 뒤 사라졌다.

“와아아아!!”

“겨, 격차가 이렇게 많이 나는 거야?”

신입생들 역시 나름 가문에서 마법을 익혔다. 그러나 3학년 학생들의 수준은 이를 월등히 상회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스승 밑에서 배웠다고 해도…….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과 경쟁하며 실력을 쌓아온 재학생들과 비교할 건 아니었다.

“……이게 파르테스.”

어느새 입학생들은 넋을 놓고 입학식 행사에 빠져들어 갔다.

*  *  *

한참 입학식 행사 중인 파르테스.

스스스스.

인비저블 마법으로 몸을 숨기고 광장에 잠입한 메노스 템벨의 메이거스인 후크와 줄라탄은 단상 위로 데제스가 오르기만을 기다렸다.

들키지 않도록 멀찍이 떨어져 데제스를 관찰하던 줄라탄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엄청난 존재감이군.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기세를 뿜을 수 있는 거지?”

“그러니까 하얀 악마라고 불리는 거겠지.”

그에게 그런 별명이 붙여진 이유는 그와 엮인 세력은 모조리 파멸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한 암살 길드에서 그를 암살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날 아침 모두 미라와 같은 모습으로 사망했다.

비록 데제스가 했다는 증거는 없으나, 정황상 그의 소행이 분명했다.

‘어째서 그런 완벽한 자가 분노해서 우리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거지?’

의문은 계속 꼬리를 물었다.

평소의 데제스였다면 직접 사건을 일으키기보다는 상대를 유도하여 함정에 빠뜨릴 터였다.

고민하던 후크는 얼마 안 가 자신들이 소속된 메노스 템벨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 저자도 우리의 힘이 강해지는 걸 경계하고 있을 거야.”

“크크크. 그렇다면 더 투지가 생기는군.”

줄라탄은 씩 잇몸을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어차피 목숨이야 버리기로 작정했다. 온전히 목적을 이루는 데에만 전념할 생각이었다.

목적은 이곳에 있는 귀족가의 자제들을 최대한 많이 학살하는 것.

소동을 벌이면 얼마 안 돼서 데제스나 파르테스의 교수들에게 진압당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데제스는 누구도 구원하지 않아.’

굳이 희생자를 늘리지는 않겠지만, 반대로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서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다.

희생자가 많든 적든 그는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형성하는 데 더욱 몰두할 것이다.

후크와 줄라탄은 동시에 마음속으로 카운트를 셌다.

때마침 루시아의 입에서 다음 행사를 준비한 학파의 이름이 호명됐다.

“스첼레투스.”

“지금이야!!!”

파지지직!

기합을 내지른 후크는 미리 영창 해 두었던 체인 라이트닝을 발동했다.

그러자 그의 손 위로 광장 전체를 밝힐 만큼 강렬한 전격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동시에 줄라탄의 몸은 독 슬라임으로 변하더니 파도처럼 학생들을 뒤덮었다.

“뭐, 뭐야?!”

“꺄아아아악!!!”

그늘처럼 덮쳐오는 공격에 노출된 입학생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교수들 역시 예상치 못하던 기습이라 속수무책이었다.

‘끝이야!’

이어서 후크가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뇌전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스슥! 스슥! 스슥! 스슥!

허공에 느닷없이 붉은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미줄처럼 도배되었다.

콰아아아앙!

거기에 닿은 체인 라이트닝은 순식간에 파훼돼 사라졌다.

“이게 무슨?!”

당황한 후크는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파직.

콰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아악!”

어찌 된 영문인지 슬라임이 된 줄라탄에게 체인 라이트닝이 적중했다.

“줄라탄!!!”

화들짝 놀란 후크는 줄라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붉은 마력의 거미줄은 희미해져 갔다.

“내 마법을 전이시켰다고?! 대체 누가?!”

인비저블 마법이 풀려 모두의 앞에 모습이 드러났음에도 후크는 당황해 눈치채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저벅저벅.

그런 두 사람의 앞으로 칼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스스.

손에는 붉은빛 마력이 결집되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붉은 마력을 퍼뜨린 사람이 칼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네, 네 녀석은 대체…….”

“저 사람 대체 누구야?!”

“방금 우리 구한 거 맞지?”

“그런데 어떻게 한 거야? 너무 빨라서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르겠어.”

빠득!

사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에 후크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대체 왜! 뭐 때문에 이렇게 일이 안 풀리는데! 왜!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거야!”

이에 칼은 옆머리를 긁적이며 짜증 섞인 표정으로 답했다.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냐? 멍청한 놈.”

울컥!

“으아아아!”

흥분한 그는 전방위로 파이어 애로우를 소환해 쏘아댔다.

화르르륵!

“피, 피해!!!”

모두가 동요하는 와중에 칼의 전신에서 방출된 마력이 허공과 지면에 거대한 서킷을 구현했다.

서킷이 유지되는 것은 불과 2, 3초의 시간.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서킷에 닿은 파이어 애로우가 칼이 원하는 지점으로 전송되었다.

그곳은 물론 줄라탄이 서 있는 곳이었다.

콰콰콰쾅!

“크아아아아악!!!”

느닷없이 떨어지는 파이어 애로우에 줄라탄의 몸 곳곳에 구멍이 송송 뚫렸다. 동시에 그의 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씨익!

그 모습을 바라보던 루시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정정, 순서가 변경되었습니다. 오닉스 스퀘어의 칼리언트입니다.”

“……오닉스 스퀘어?”

“칼리언트?”

입학생들은 하나같이 벙찐 표정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있는 칼을 바라보았다.

다수를 등진 채 모두를 지키고 있는 그 모습에서는 위엄이 느껴졌다.

“제, 젠장!!! 후퇴해! 줄라탄!!”

목숨을 걸겠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부질없이 소모할 수는 없었다.

“크으으으윽!”

줄라탄은 경이적인 생명력을 선보이며 슬라임에서 그리폰으로 변해 단숨에 하늘로 날아가려고 했지만.

쇄액!

카아아앙!

데제스가 휘두른 아르젠트 파우라의 동결 저주에 날개가 얼어붙더니 이내 깨져버렸다.

푸욱!

데제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줄라탄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위, 위대한 메노스 템벨에 영광을…….”

그리폰 상태로 입을 열던 줄라탄의 몸이 널브러졌다.

“제, 젠장!!! 이대로 끝날 줄 알아?!”

분노에 찬 후크가 소리치자 지면에서 거대한 데스웜들이 튀어나왔다.

“꺄아아아악! 이건 뭐야?!”

대략 10미터 정도 되는 크기를 자랑하는 데스윔들은 입을 쩍 벌리고 학생들을 덮치려고 했다.

그걸 본 데제스와 칼이 손을 쓰려는 순간이었다.

느닷없이 강력한 바람이 불더니 데스윔의 몸을 휘감고는 칼날처럼 몸을 도려내었다.

“?!”

예상치 못한 상황에 데제스와 칼마저 눈을 부릅떴다.

데스웜을 처리한 마법을 쓴 것이 교수진이 아니라 한 명의 어린 소녀였기 때문이다.

알이 없는 안경을 끼고 파르테스의 교복을 갖춰 입은 소녀는 한 손에는 떡갈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칼을 향해 말했다.

“이참에 저도 화려하게 신고식을 치르려고요. 칼 선배.”

“……델피나.”

칼이 잠시 어이없어할 때, 후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여, 여기는 괴물들 천지인가.”

“글쎄요. 정확히는 우리가 특별한 거겠죠.”

델피나는 칼과 데제스를 한 번씩 쳐다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도, 도망쳐야 해.’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달은 그가 서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할 때였다.

콰아아앙!

어느새 접근한 칼이 그의 얼굴을 손으로 붙잡고는 벽에다가 강하게 찍어버렸다.

“죽일 줄만 알고 자기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해서 벌벌 떨고 있나, 버러지?”

칼은 우악스럽게 손아귀에 힘을 주었고.

“크아아아악!!”

두개골이 깨지는 고통에 후크는 절규를 내지르다 이내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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