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화
맥캘리가 만들어 낸 신기술 서킷.
칼은 처음에는 서킷이 어떤 마법인지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갈고닦은 분석력과 마나를 다루는 타고난 자질을 통해 서킷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맥캘리는 확실히 체인 라이트닝을 시전했다.
처음에는 전광만 번뜩일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불발이라고 여겼지만.
그것은 섣부른 오판이었다.
그녀의 체인 라이트닝은 단지 수백 갈래로 얽히고설킨 서킷을 통해 전송 중이었을 뿐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먼저 머릿속에 구상해둔 서킷을 주변에 펼친다.
그다음 허공에 생성된 수백 갈래의 서킷 중 한 개의 선로를 통해 체인 라이트닝을 실어 보냈다.
이 과정을 통해 원하는 지점에서부터 마법이 발현되게 만드는 기술, 그게 서킷의 정체였다.
‘굳이 거미줄 모양은 아니어도 되겠군.’
“흐흐흐, 어떠냐?”
서킷을 선보인 맥캘리는 깜짝 놀란 칼을 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
그리고 이 순간만큼은 칼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마왕 시절. 칼은 타고난 엄청난 마력으로 마계를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진 칼조차 이런 식으로 마력을 조작하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
그것은 비단 칼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어느 마법사건 마찬가지였다.
문득 칼은 위화감을 느꼈다.
슬쩍.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맥캘리를 바라보았다.
‘……이 녀석.’
칼 역시 책과 수업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라흐만 대륙의 역사와 수준을 접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눈으로 봤을 때, 맥캘리의 연구는 너무 독보적이었다.
아니…… 궤가 달랐다.
방금 보여 준 마법은 적어도 100년 뒤에나 나올만한 마법이었다.
‘꼬맹이 스승이라면, 마법 수준을 수백 년 이상 앞당길 수 있어.’
그런데 어째서 주변에서는 그녀의 이런 능력을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예상되는 답은 두 가지였다.
맥캘리가 구축한 이론을 알아보기에는 이 시대 사람들의 수준이 낮았다거나.
혹은 주변의 시기와 보복이 두려워 스스로 자신의 재능을 제어했다 정도로 보였다.
이쯤 되니 칼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결론이 떠올랐다.
‘전자라면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걸지도 모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호호호, 다시 한번 이 몸의 위대함을 알아봤겠지.”
맥캘리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칼을 향해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칼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에클라 세트.”
“음.”
예상치 못한 단어가 튀어나오자 맥캘리의 얼굴이 당혹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칼의 시선을 회피했다.
“슬슬 배고픈데 밥이나 먹을까. 호호.”
누가 봐도 일부러 모르는 척을 하는 게 확연히 보였다.
딱히 추궁할 생각은 없기에 칼은 그냥 넘어갔다.
맥캘리 역시 자신의 정체에 대해 캐묻지 않기 때문이다.
칼은 피식 웃으며 이실리아의 여왕, 예카테리나 2세가 머물고 있는 성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실리아. 생각보다 무서운 나라일지도 모르겠어.’
에클라 세트를 두 명이나 보유한 나라, 이실리아.
인재 육성을 위해 설립되었다고 하는 파르테스도 사실 에클라 세트를 찾아내기 위해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 *
입학식까지 일주일.
모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 칼은 맥캘리의 수업 내용을 곱씹고 있었다.
-서킷의 발상 자체는 대단한 게 아니야. 마나 연공식을 사용하면 마나가 인체의 혈맥을 타고 흐르면서 마력으로 정제가 되잖아. 그 형태를 외부로 끄집어내는 것에 불과해.
그 말을 들은 칼은 자연스럽게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걸 이해했다.
허공에 숱하게 깔려 있는 마나.
그것들은 하나같이 불규칙하면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그 마나 입자들을 체내 마력으로 엮어 하나로 만드는 것이 서킷.
지면이든 허공이든 상관없이 생성된 서킷에는 마법을 실어 원하는 곳에 다다르게 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적의 의표를 찌를 수 있으며…… 반대로 상대의 마법을 서킷을 통해 분산시켜 위력을 감소시키는 것 역시 가능하다.
같은 마법을 준비하는 마법사들이 서로의 서킷을 연결하면 마법을 증폭시킬 수 있다. 게다가 서킷으로 음성 마법을 전송하면 복잡한 전장에서도 활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무척이나 참신한 발상이며 동시에 전쟁의 판도를 뒤바꾸는 획기적인 마법이다.
하나 이것은 고유 마력을 각성한 자만 쓸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몇 가지 단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어.”
명상을 하면서 서킷을 응용할 방법을 생각하던 칼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맥캘리에게 이 자리에서 떠올린 단점을 지적하면…… 그녀는 분명 분통을 터뜨리며 단점을 메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칼은 구태여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입학식 때 이 마법을 구사해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마법을 선보이는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성취라는 건 재밌군.”
스스스스스.
어느새 칼이 앉아있는 자리 주변의 지면에는 심홍색으로 번뜩이는 거미줄 같은 서킷이 잔뜩 깔려 있었다.
* * *
파르테스 아카데미의 총장실.
이제 입학식까지 삼 일밖에 남지 않은 시점.
페트로에게 소환된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히이잉!
뒤에는 쿠라빌이 고우면서 사나운 자태로 서 있었다.
쿠라빌은 정면에 앉아서 자신을 바라보는 페트로에게 음산한 살기를 내뿜었다.
설마하니 자신을 봉인한 상대와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자연히 그동안 쌓여왔던 증오가 피어올랐다.
“…….”
그런 쿠라빌을 칼은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쿠라빌은 페트로에 대한 증오를 드러내면서도 칼에 대한 공포에 짓눌렸다.
단순히 눈빛에 힘을 준 것만으로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그 광경을 본 페트로는 못 말리겠다는 듯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허허허허, 사나운 명마를 손에 넣었군. 월반을 축하한다네.”
“감사합니다.”
칼은 표정에 변화 없이 페트로를 쳐다봤다.
‘월반은 사실상 기정사실이었으니, 겨우 그런 걸로 불렀을 리는 없겠지.’
“그래서 이곳에 부른 용건은 뭡니까?”
칼은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을 소환한 이유를 물었다.
“하하하, 성급하기는. 조금 기다리게. 한 명이 더 와야 한다네. 그보다 쿠라빌은 방해될 것 같은데, 다시 영체화시키면 안 되겠나.”
푸르르르.
쿠라빌은 불만이 가득하여 거칠게 투레질을 했다.
“알겠습니다.”
스스스스.
그러나 칼의 대답이 떨어지자 즉각 모습을 감췄다.
그런 칼이 신기했는지, 페트로는 손에 턱을 괴며 이야기를 재개했다.
“소문으로는 노빌레 레오네의 새끼를 데리고 다닌다고 하던데, 자네는 은근히 신수가 따르는 운이 타고났구먼.”
“누구도 제 운에 가담할 수 없습니다.”
운 따위가 아니라 순수한 자신의 실력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칼의 오만한 대답에 페트로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정말 둘이 붙어있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군.”
“둘이라니요?”
바로 그때.
“들어가겠습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데제스가 들어왔다.
간만에 얼굴을 마주한 칼과 데제스였으나 서로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데제스는 자리에 앉자마자 페트로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곳에 부른 용건은 뭡니까?”
“…….”
페트로는 알 수 없는 기시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 한마디를 내뱉었다.
“자네들 상당히 닮았군.”
“안 닮았습니다.”
칼과 데제스는 동시에 답하며 서로를 향해 혐오감을 드러냈다.
“크흠, 진정하게. 설마 내가 파르테스의 우등생들을 싸움이나 붙이려고 부른 줄 아나?”
못 말리겠다는 듯 두 사람을 만류한 페트로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 입학식 당일에는 3학년 중 가장 성적인 우수한 학생이 대표 선언을 하게 된다네. 원래라면 헨리 군에게 그 기회가 주어지는 게 맞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도저히 뭘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더군.”
말을 마친 페트로는 슬쩍 데제스를 쳐다봤다.
싱긋.
데제스는 오히려 더 해보라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페트로 역시 한 번 떠보려는 생각이었기에 다시 시선을 돌려 자연스럽게 용건을 밝혔다.
“그래서 입학식 당일, 두 사람에게 그 기회를 주기 위해 불렀다네.”
“받아들이죠.”
데제스는 기회를 피하지 않고 받아들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수재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기회는 좀처럼 없기 때문이다.
칼은 지그시 미간을 좁히며 비아냥거렸다.
“마치 의도한 것처럼 흘러가네.”
데제스는 코웃음 치며 칼에게 반박했다.
“나는 대세를 피할 생각은 없거든.”
페트로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여기까지는 누군가 의도한 분위기로 흘러가는 건 맞네. 한데, 그 당사자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버렸는데, 한 번 들어줄 수 있겠나?”
“…….”
의미심장한 말에 잔뜩 이마를 찌푸린 데제스는 마음에 안 든다는 시선을 던졌으나 페트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파르테스의 학장이라는 명성이 그냥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데제스는 곧 감정을 숨기며 페트로에게 반문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란 무엇입니까?”
“영향력이 큰 중대한 행사라는 것을 알고 이를 엉망으로 만들려는 음모가 있다네. 자네 둘이라면 그 음모의 실체를 밝혀 범인을 잡는 게 가능할 것 같군.”
“아카데미 측에서 해야 될 일 아닙니까?”
칼의 반문에 페트로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말하지 않았나? 나는 자네들에게 기회를 주는 거라고.”
“?”
칼과 데제스, 둘 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페트로는 음산한 기운이 서린 눈으로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파르테스 학생 중에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다면 내 입장이 무척 곤란해진다네. 그렇게 된다면 입학식을 축소시키는 방법밖에 없지.”
학장으로서 당연히 취해야 할 판단을 한 것이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을 알아차린 칼과 데제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에는 뜻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둘이지만, 입학식을 무사히 개최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데제스의 경우는 걸출한 인재들을 포섭해야 했고, 칼의 경우는 지금까지 익힌 서킷을 선보일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 녀석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고 싶지는 않군.’
모처럼 맥캘리가 애써 구상한 마법이니 입학식에서 선보이고 싶었다.
“입학식은 그대로 진행해주십시오. 그리고 찾아낸 범인은 제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데제스는 푸른 동공을 번뜩이며 페트로를 쏘아봤다.
“얼마든지.”
페트로는 씨익 웃으며 칼을 쳐다봤다.
“자네는? 어떻게 할 텐가. 거절하면 입학식은 데제스에게 맡길 수밖에 없네.”
“그건 싫으니 저도 나서죠.”
“하하하하, 알겠네.”
칼의 속내를 간파한 페트로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칼은 그제야 데제스를 빤히 쳐다봤다.
모처럼 칼의 도발이 마음에 들었는지, 데제스는 입꼬리를 추켜세웠다.
‘이제 나는 보이지도 않나 보군. 뭐 아무래도 상관없으려나.’
페트로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양손을 모았다.
데제스는 반쯤 뜬 눈으로 칼을 흘겨보며 말했다.
“여전히 괴팍하네. 서로 마지막 1년인데 잘 지내보자고. 그동안 굼떴던 것은 미안하게 됐어.”
지금부터 만만치 않을 거다.
또한 이 경쟁에서도 지지 않을 것이다.
포부를 밝힌 데제스에게 칼은 지그시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네놈도 에클라 세트냐?”
칼의 질문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스스스.
데제스 주변으로 은백색의 마력이 밀집되며 아름답게 반짝였다.
평소보다 더 확연한 존재감을 선보인 데제스는 칼에게 손을 스윽 내밀며 말했다.
“에클라 세트이기도 하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야. 내 본명은 데제스 싱클레어, 성국 산크투아리움의 차기 교황이지.”
“?!”
예상치 못한 본명 발언에 칼은 눈을 부릅떴지만, 데제스의 말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스윽.
슬그머니 내밀어진 그 손은 마치 악수를 취하자는 듯 보였다.
“공정한 승부를 해보자고. 칼리언트 슈타크.”
데제스는 씩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