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화
뿌우우우.
입항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항구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각지에서 몰려온 학생들이 항구에서 북적이는 진풍경은 이실리아에서만 볼 수 있었다.
“날씨가 따뜻해서 좋군.”
가벼운 외출복을 입은 칼의 뒤로 바그로바가 졸래졸래 쫓아오고 있었다.
“꺄아아아! 귀여워.”
“저기 저 남자애 쫓아가는 거야?”
“잘 생겼는데. 내 취향일지도…….”
“음, 딱히 나쁘지는 않은데, 좀 사나워 보여서.”
이번에 신입생으로 입학하는 여학생들은 칼을 보며 얼굴을 붉히거나 힐끔 쳐다보는 등, 대체로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에 남학생들의 눈초리가 살벌해졌다.
“건방지게 생겨 가지고.”
“주머니에 손 넣고 어슬렁거리는 걸 보니, 품위가 확 떨어지네.”
“어디 촌에서 기어들어 온 애 아니야?”
“아아, 그놈의 평등 정책만 없었어도 저런 놈 한 명 없애는 건, 문제도 아닌데.”
크르르르르.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칼보다 먼저 바그로바가 분노를 드러냈다.
털을 꼿꼿이 세우면서 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모습에 남학생들은 키득키득 웃으며 칼에게 말했다.
“야. 애완동물 똑바로 관리해.”
저벅저벅.
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대놓고 무시하는 기색에 분개한 남학생들은 우르르 몰려와 칼의 앞을 막아섰다.
“……뭐야?”
그제야 그들을 본 칼은 거슬린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무리 중 리더 격인 남학생은 칼이 자신을 무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자식! 설마 우리가 한 이야기는 아예 듣지도 않은 거야?’
그는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꺼져. 좁아터진 길에서 뭐 하는 거야?”
길이 좁아터진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정신이 없다는 게 맞았다.
그러나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칼의 기세는 몹시 위풍당당했다.
“아, 입학 초기라서 조심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우드득!
이때 무리 중 가장 키가 큰 남학생이 뻐근한 목을 풀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무릎을 굽혀 칼과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맞기 싫으면 눈 깔지?”
어처구니없는 도발에 칼은 한숨과 함께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아, 갱생은 어렵군.”
“뭐?”
콰아앙!
반문하기 무섭게 칼은 그의 목덜미를 붙들어 바닥에 내리찍었다.
나름 손속을 두어 얼굴이 뭉개지지는 않았지만, 입학생의 이마에는 주륵 피가 흘러내렸다.
“너 이 개새끼!!”
분노한 입학생은 어떻게든 몸부림을 치려고 했으나 칼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싹!
입학생은 칼의 완력에 자신이 완전 제압을 당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칼은 몸에서 살기를 방출했다.
“이, 이 자식!”
단지 그것만으로 주변의 이목이 칼에게 집중됐다.
“앞으로 나와 눈이 마주치면 이렇게 인사를 해야 될 거다. 빌어먹을 후배들아.”
울컥!
귀족 출신의 입학생 중 한 명이 즉각 반박했다.
“너 우리가 누군지 알고!”
“그 전에 네놈들이 내가 누군지 아는 게 순서지.”
스윽.
칼은 무리의 얼굴을 한 명씩 훑어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 명도 빠짐없이 기억했으니 피할 생각 말아. 고개가 빳빳해서 내려가지 않는다면, 몸을 숙이는 법을 알아야지.”
빠득!
도발 같은 말에 모두가 주먹을 으스러져라 꽉 쥐며 칼을 덮치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지금 뭣들 하는 거야!”
바로 뒤에서 걸어 나온 남학생이 제지에 나섰다.
2미터가 훌쩍 넘는 키와 민머리, 그리고 다갈색 피부와 지닌 프랭크였다.
“프, 프랭크 선배님!”
깜짝 놀란 입학생들은 프랭크를 향해 절도 있게 예를 갖췄다.
이미 일면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무리는 아마 스첼레투스 학파로 내정된 듯싶었다.
“첫날부터 피곤한 일 만들지 마.”
“하, 하지만 저 자식이 빈을 곤죽으로…….”
“뭐?! 어떤 새끼가 겁대가리 없이 우리를 건드려?”
흥분한 프랭크가 거침없이 앞으로 나섰다.
이를 지켜보던 스첼레투스 학파로 내정된 입학생들은 칼을 보며 비웃었다.
이제부터 가해질 프랭크의 잔혹한 손속에 모두가 부푼 기대를 안을 때였다.
칼과 눈이 마주친 프랭크의 안색은 새파래졌다.
당황해서 무어라고 말하려는 찰나.
“입 다물어.”
칼이 먼저 입을 열자 프랭크는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칼은 그런 프랭크에게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나락까지 떨어진 네 체면을 생각해서 하는 충고야. 자존심이나 학파의 입장을 생각해서 발은 뺄 수 없고, 그렇다고 날 상대하니 감당이 안 되겠고…… 아, 덩달아 입학생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나 보지? 근데…….”
퍼억!
칼은 프랭크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아아아악!”
털썩!
프랭크는 그 자리에서 양 무릎을 꿇었다. 그 상태로 몸속의 내용물을 게워내며 고통에 몸을 떨었다.
“…….”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일제히 경직됐다.
설마 저 프랭크가 무릎을 꿇다니.
심지어 다시 일어서서 싸울 의사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척이나 생소한 광경에 학생들은 어리둥절했다.
칼은 싸늘한 표정으로 프랭크에게 말했다.
“애들 교육은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거다. 내 성격 알지? 두 번은 없어.”
“…….”
프랭크는 여전히 대답하지 못했고, 칼은 가운데 있는 학생을 향해 걸어갔다.
“뭐, 뭡니까?”
조소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투 역시 무척 공손해져 있었다.
스윽.
칼은 둥글게 만 검지 위에 엄지를 댔다.
“여기서 내가 주먹을 말아 쥐게 하고 싶지 않으면, 인사법은 꼭 기억해야 될 거다.”
그대로 입학생의 이마에 가져가 검지를 튕겼다. 두개골이 바스러질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소년의 이마가 뒤로 젖혀졌다.
“크아아아아악!”
귀족의 체면이 뭔들 중요하랴.
엄청난 격통에 그는 눈물을 흘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척!
칼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입학생들은 좌우로 갈라지며 길을 열어주었다.
“…….”
칼은 별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툭, 툭.
“웁!”
바그로바는 쓰러진 남학생의 얼굴을 발로 밟으며 칼을 쫓아갔다.
웅성웅성.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사람들은 칼이 누군지 알기 위해 속닥거렸다.
그걸 멀찍이서 달빛과 같은 머리칼을 지닌 소년과 소녀가 칼을 지켜보며 속삭였다.
“흐음, 잘생겼는데. 오빠, 저 사람 누군지 알아?”
“일단 미친 사람인 건 분명해. 그래도…….”
칼에 대한 강한 인상이 새겨졌는지, 소년은 잠시 입을 꼭 다물었다.
“뭔데? 뭔데?”
하지만 이어지는 소녀의 재촉에 소년은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내뱉었다.
“아마, 데제스 이상으로 위험한 남자일 거야.”
* * *
새 학년이 시작되고 입학식까지 이제 보름 정도 남은 시점.
방학이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이실리아에 오기까지 고된 일정을 겪어야 하는 학생들은 조기에 섬에 복귀하고는 한다.
사실 이 기간은 학생들보다는 교수들에게 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오두막.
“이런 젠장!!”
오랜만에 본 맥캘리는 다시 쓰레기장이 돼버린 자신의 생활 공간에서 절규하고 있었다.
그걸 보던 칼은 무뚝뚝하고 냉정한 말투로 가장 효율적인 말을 내뱉었다.
“좀 치우고 살지?”
“너 이 자식!!”
맥캘리는 홱 고개를 돌리더니 칼을 보고는 달려와 대뜸 멱살을 잡더니 흔들었다.
스승과 제자의 애틋한 재회를 바란 건 아니었다.
‘피곤하군.’
말을 하면 더 피곤해질 것만 같아서 칼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왜?”
“크흑!”
맥캘리는 털썩 주저앉으며 신세 한탄을 시작했다.
“나는 논문을 쓰느라 꾸역꾸역 애를 썼건만, 제자란 놈은 인사도 없이 방학을 즐기러 갔잖아!
.”
“억울하고 질투 났다는 말은 이해했고.”
빠직!
맥캘리는 이마에 핏대가 솟구쳤지만, 일단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 와중에 그놈의 입학식 행사는 안 하냐고 다른 학회에서 갈구기나 하지. 그래서 단시일 내에 화려한 마법을 구안했건만, 생각해보니 학생은 망나니 제자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참이야.”
“천재는 맞는데, 가만 보면 바보라는 거고.”
빠직!
“이 자식! 감히 스승을 대놓고 비하하다니.”
분개한 맥캘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자…….
“읍!”
칼은 맥캘리의 입에는 건포도든 빵을 입에 넣고 머리 위에는 와인 병을 올려놓았다.
“먹고 정신 차려. 재밌는 걸 보여줄 테니까.”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웁!!!(선물이라고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뭐 기특하기만 하다만. 그나저나 이거 어디서 난 빵이야? 엄청 맛있는데. 혹시 더 있어?)”
방금 전까지 화내던 사람 맞나?
칼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다 먹고 난 다음에 말해.”
맥캘리는 입안에서 맴도는 곡물빵과 건포도의 조합에 만족하며 꼭꼭 씹었다.
꿀꺽!
그리고 그녀가 빵을 목구멍으로 넘긴 순간.
머리 위에 있던 와인 병이 균형을 잃고 눈앞으로 떨어졌다.
콰아아앙!
맥캘리는 온몸을 던져 그것을 사수했다.
“어지럽히지 마!”
그러자 소매를 걷어 청소하려던 칼은 저도 모르게 그녀를 야단쳤다.
* * *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마도사 혹은 검사가 지니고 있는 마력의 고유 특성을 각성시키는 것.
다른 하나는 잊혀진 그랜드 마스터의 마나 심법을 완전히 복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력한 마법에만 집착하는 다른 학파와는 추구하는 목적의 궤가 달랐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이 있었으니…….
유일하게 이 학파에 소속된 칼리언트는 남들과 다른 독보적인 강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콰칭!
콰아앙!
손목에 두른 팔찌가 끊어짐과 동시에 확산하는 붉은 마력 파장에…….
콰콰콰콰쾅!
맥캘리가 준비한 전격 마법들이 파훼 되었다.
“……약 빨았냐? 갑자기 왜 이렇게 세졌어?”
본래라면 제자가 이룩한 성취에 기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맥캘리는 질투가 가득한 시선으로 칼을 쳐다봤다.
방학을 가기 전까지 2성에 머물렀던 경지가 단숨에 4성을 이루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파르테스와 칼과 견줄 수 있는 학생은 데제스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 부른 이유는?”
딱히 칭찬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기에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씨익!
예상과 달리 맥캘리는 얄궂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새로운 기술을 전수할까 싶어서. 입학식에 써야 하는 기술이기도 하거든? 분명 유용할 거다. 망나니 제자야.”
“뭔데?”
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직!
맥캘리는 다시 한번 체인라이트닝을 시전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선홍빛 마나가 일제히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칼은 그 마나가 평소와 다른 점을 눈치챘다.
‘거미줄 같은 느낌이었어.’
너무 빨랐기에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마나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하지만 정작 주변에 별 반응이 없어서 칼이 내심 실패인가 생각할 때였다.
콰아아아앙!
느닷없이 칼의 뒤에 있던 암석이 부서지며 체인라이트닝이 칼의 머리칼을 스쳐 지나갔다.
“?!”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진위를 간파하지 못한 칼은 크게 당혹했고, 그런 칼에게 맥캘리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두 번째 기술은 서킷이다. 제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