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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69화 (69/197)

#제69화

그린데피아 외곽에 있는 숲.

푸르르.

개울가에는 말이 투레질하며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그 옆에서는 에릭 듀란트가 창을 연신 휘두르며, 숲에 있는 나무를 연쇄적으로 부러뜨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부러뜨린다는 개념과는 조금은 궤가 달랐다.

휙휙!

살벌한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창에 닿은 나무는……

우지끈.

콰앙!

부러지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가 터지며 넘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에릭의 창끝에는 오러조차 실리지 않았다.

“후우. 이걸로는 분이 풀리지도 않는군.”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대모나스를 쓰러뜨리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가 가득했다.

모처럼 이름을 떨칠 기회였거늘, 단 한 번의 실수로 그 기회가 어떤 남자에게 넘어가고 말아버렸다.

“다 부술 셈이냐?”

때마침 그 남자는 에릭의 옆에서 한쪽 손을 허리에 얹으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 부셔도 내 마음은 영 개운치 않을 거 같아서 여기까지만 할 생각이야.”

칼리언트.

줄곧 그의 머릿속에 후회를 남게 한 남자였다.

외견으로 봤을 때는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다.

하지만 저 오만한 성정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백은 감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렇게 강한데, 나와 같은 부류가 아니라는 게 가장 이해가 안 돼.’

대모나스와 전투를 발휘할 때, 칼이 발산한 마력에는 ‘성운’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보다 훨씬 위험한 광포한 힘이 느껴졌다.

칼은 그 힘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어 대모나스를 처리했다.

그는 현재 허리춤에 대모나스의 죽음을 화려하게 장식한 검을 착용한 상태였다.

슬쩍 검을 살핀 에릭은 문득 든 호기심에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상당한 명검을 손에 넣은 것 같은데, 그 검의 이름은 뭐지?”

“비어벨.”

칼은 검이 마음에 들었는지 비어벨을 어루만졌다. 그는 촉각을 통해 검의 예리함을 다시 확인했다.

에릭은 칼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너 이름이 뭐지?”

“칼리언트 슈타크.”

“슈타크라면 루콘 최강의 무가…… 그렇군.”

“참고로 내 힘은 가문과 아무 상관도 없어. 연관 짓지 마.”

“……가문의 힘이 아니면 대체.”

에릭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아무래도 좋아. 여기까지 온 건 나를 배웅하기 위해서인가?”

“그냥 시끄러워서 와봤을 뿐이야.”

무뚝뚝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모습에서는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분별이 안 되는군. 뭐 상관없나?’

나름 대인배의 면모를 갖춘 에릭은 한쪽 어깨를 으쓱이며 칼에게 말했다.

“나는 조만간 이실리아 소속의 푸른 물결 기사단 단장이 될 예정이야. 에클라 세트로서 말이지.”

“흐음.”

칼은 처음으로 흥미롭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여태껏 세상에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있던 폭주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말인즉, 세상에 큰 혼란이 다가온다는 암시와도 같았다.

그들의 행동은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루드거를 제외하고는 슈타크 가문에서 이 녀석을 이길 녀석은 없어.’

루콘 최강의 무가의 가주가 직접 상대해야만 결착이 나는 상대.

아직 어린 에릭 듀란트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몇 성을 이룬지 모르지만 기사로서 역량은 최상급.

처음 실력을 겨루었을 때는 아마 본신의 힘에 일 할도 발휘하지 않았을 것이다.

냉정하게 에릭의 실력을 파악한 칼은 흥미가 돋는지 투지가 끓어올랐다.

휘리릭!

그리고 그것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에릭은 칼의 목 끝에 창날을 겨누며 말했다.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붙어볼까? 한 수 가르쳐주지. 난 너한테 아직 앙금이 남아있거든.”

“어째서?”

“내가 처음으로 진 상대니까.”

스릉.

칼은 비어벨을 검집에서 뽑아내며 입을 열었다.

“어울려주지.”

씨익.

두 남자는 싱긋 입꼬리를 올렸다.

*  *  *

한스와 헬렌의 포도 농장.

“포도 냄새가 시큼하네. 달콤한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해서 와인이 되는 게 신기해.”

릴리와 에리는 통에 넣은 포도를 발로 밟아 으깨어 포도즙을 만들고 있었다.

본래는 창고에 있는 권양기를 이용해 대량으로 즙을 짜낸다.

그러나 한 번쯤, 직접 담근 포도주를 마시고 싶다는 에리의 요청에 이렇게 손수 발로 밟으며 포도주를 만드는 중이었다.

“근데, 릴리.”

“왜?”

“이번 방학은 이미 늦었다고 해도, 언제 한 번 고향에 안 돌아가 봐도 괜찮겠어?”

릴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족이랑은 인연을 끊었으니까.”

‘달라지는 건 없어.’

그리 말하긴 했지만, 어머니나 남동생이 보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짜악!

그리움에 마음이 흔들리려고 한 릴리는 자신의 양 뺨을 때렸다.

“릴리. 예쁜 얼굴을 그렇게 험하게 다루면 어떻게 해?”

에리가 걱정하는 얼굴로 바라보자 릴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출세할 때까지 보러 갈 수 없어.”

“후후, 진로부터 선택하시지? 이참에 이실리아에서 백작급 이상의 작위를 받아서 출세해버려.”

“그건 너무 과한데.”

분수가 있지.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한 릴리는 에리의 말을 장난처럼 생각하며 흘려 넘겼다.

하나, 에리의 눈은 장난기 하나 없이 무척이나 진지했다.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

에리는 릴리의 양손을 꼭 붙들었다. 그러고는 놓치지 않겠다는 절실한 눈빛으로 말했다.

“릴리는 정말 탐이 나는 인재야! 행정 쪽으로든 군사 쪽으로든 벌써 두각을 드러내고 있잖아!”

“에, 에리 조금 무서운데.”

릴리가 난색을 표하자 에리는 오히려 더욱 몰아붙였다.

“날 믿어!”

“지, 진짜 그럴까?”

그 모습에 릴리는 왠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애매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럴 리 없잖아.”

꽁!

두 소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칼은 릴리의 머리를 툭 쳤다.

‘거의 다 왔는데.’

안타까운 심정이 든 에리는 칼을 홱 쏘아보며 한마디 내뱉었다.

“흐음. 칼, 설마 질투하는 건 아니겠지?”

“자기가 갈 길은 스스로 정하라고 말하려던 참이었어.”

갸르릉!

칼이 시크하게 대답할 때, 포도밭에서 나비와 뛰놀고 있던 바그로바가 달려와 칼의 다리에 얼굴을 문댔다.

귀찮았던 칼은 발로 슬쩍 밀었으나, 어차피 밀고 당기기의 반복이었다.

에리와 릴리는 고개를 수그리고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두 사람은 칼이 눈앞에서 으름장을 놓을까 봐 차마 말은 못 하고 속마음으로 같은 생각을 했다.

‘귀여워!’

주인이나 애완동물이나 볼 때마다 방심할 때 보이는 귀여운 모습은 두 사람의 심장을 폭행하기 충분했다.

“후우. 귀찮게 하는군.”

칼은 결국 바그로바의 등가죽을 집어 들어 올린 뒤, 지그시 눈을 마주쳤다.

갸르릉!

제아무리 주인이라도 사자 체면이 있지.

바그로바는 앞발을 허우적거렸다.

칼은 결국 바그로바를 품에 안으며 등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르릉.

기분이 좋아진 바그로바는 기분 좋게 두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칼이 목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한 릴리가 눈을 부릅떴다.

“칼, 목의 상처는 뭐야?”

“아, 이거.”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칼은 미간을 지그시 좁혔다.

목의 상처는 이곳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에릭 듀란트와 대결을 펼치던 도중 입은 것이었다.

그 대결에서 승리한 것은 에릭 듀란트였다.

당시 비어벨은 종이 한 끗 차이로 에릭의 가슴 앞에서 멈췄고.

에릭의 창은 칼의 목에 상처를 내고서 나무에 깊숙이 꽂혔다.

-이래 보여도 대륙에서 찬사하는 전설 중 하나야. 이 정도는 해줘야지. 그래도 내 승리라고 보기는 어렵나.

당시 에릭은 스스로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다.

-변명할 것도 없이 내 패배다.

반면, 칼은 깔끔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그러자 에릭은 더 개운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나보다 족히 다섯 살은 더 어리잖아. 성장 속도로 보면 이미 날 뛰어넘었으니, 굴욕적인 건 나야.

콰직!

창을 뽑은 에릭은 품에서 말버러 공작가의 인장이 찍힌 패를 건네주었다.

-약 1년 뒤, 각 국가에서 초청된 인사들이 보는 앞에서 에클라 세트들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장소는 이실리아. 너라면 충분히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있어. 그것은 미리 준비해둔 초대장이니, 받아둬.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내용이라 칼은 패를 받아 품에 집어넣었다.

에릭은 피식 웃으며 등을 돌렸다.

-또 보자고. 칼리언트 슈타크.

에릭과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수건으로 발을 닦고 나온 릴리는 한숨을 쉬며 칼을 꾸짖기 시작했다.

“정말 몸 좀 험하게 굴리지 말라고. 다시 가서 치료하자. 약도 안 발랐지?”

“훈련의 일환으로…….”

찌릿!

칼이 고집을 피우려는 순간 에리와 릴리의 눈빛이 동시에 매서워졌다.

“……가면 되잖아.”

망령의 왕인 비드낙도 마검 블러디아도 칼의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눈빛에 칼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아벤트로트 제국은 때아닌 영지전으로 인해 민심이 크게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혼란의 이유는 단순히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서가 아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영지전의 승자는 홉킨스 자작.

패자는 리차드 후작이었다.

영지의 규모는 리차드 후작이 홉킨스 자작의 열 배는 뛰어넘었고, 백성들 수 역시 그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경제력도 군사력도 훨씬 우위.

조건만 보면 완전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그런데 리차드 후작이 패배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상한 점은 하나 더 있었다.

리차드 후작가의 성.

제일 위에 걸린 리차드 후작의 깃발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원래라면 그 옆으로 홉킨스 자작의 깃발이 올라와야 정상이지만.

홉킨스의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대체 왜?

많은 백성들이 의문을 표했지만, 소수를 제외하고는 알 길이 없었다.

그 소수가 모인 후작가의 집무실에는 은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닌 소년이 권태롭게 앉아 있었다.

정작 영지전의 승자인 홉킨스 자작과 그 아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양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다리를 꼬고 앉은 소년의 발밑에는 리차드 후작의 아들, 헨리가 벌벌 떨며 이마를 바닥에 대며 엎드려 있었다.

“27일 만에 승리라…… 학교에 돌아가기 전에 몸풀기로 적당한 것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선배님.”

파르르르르.

‘미친 새끼!’

헨리는 어마어마한 공포에 이빨을 딱딱 부딪쳤다.

그의 이름은 헨리 리차드.

아벤트로트의 유력 귀족인 리차드 가문의 자제였다.

그런 그의 머리를 짓밟고 있는 것은 바로 데제스푸아르였다.

이번 전쟁의 승리의 주역이기도 한 그는 헨리의 머리를 발로 꾹 누르며 교만한 표정을 지었다.

“기선제압을 하겠다고 시비를 걸어서 복수하는 건 아닙니다. 그냥 우연히 제 친구 홉킨스를 돕기 위해서 왔는데 여기 계시더군요.”

‘의도된 거잖아.’

하지만 절대 속마음을 입으로 발설할 수 없다.

너무 분했던 나머지 헨리는 눈물을 주륵 흘렀다.

데제스는 여전히 헨리의 머리에 발을 올린 채로 입을 열었다.

“이제 방학이 끝났으니, 다시 즐거운 학교생활을 만끽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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