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화
카카카카카캉!
고막을 찢어버릴 것 같은 금속음이 거리 곳곳으로 울려 퍼졌다.
파직!
서로 잡아먹을 듯이 충돌하는 두 개의 오러.
그로 인해 발생한 충격파가 거리에 있는 벽과 조형물까지 부서뜨렸다.
웅성웅성.
“어떤 놈들이 대낮부터 칼부림이야!”
“잠깐!”
때마침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칼과 대모나스의 격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건 그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칼과 대모나스의 격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결말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저릿!
블러디아와 검을 맞댄 칼은 손목에 아릿한 통증을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크르르르르.
새빨간 검광을 이루고 있는 블러디아에게 완전히 의지를 빼앗긴 대모나스는 사납게 울부짖었다.
‘방금 전에 죽인 동료의 피까지 흡수해서 더 강해진 모양이군. 그렇다면…….’
스륵.
칼은 검을 쥔 손의 힘을 빼 대모나스의 균형을 무너뜨린 뒤.
휘리릭.
그대로 검을 왼손으로 쥐고선 자세를 낮추며 그것을 휘둘렀다.
서걱!
“크아아악!”
오른쪽 대퇴부가 베인 대모나스는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쇄애애애액!
그때 블러디아가 검신에 빛을 발하더니 대모나스의 상처가 치료되었다. 그러자 그는 다시금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카앙! 카앙!
둘 사이에서는 살벌한 불똥이 튀겼다.
칼은 지그시 미간을 좁혔다.
‘통증도 느끼지 않고 죽을 때까지 움직인다니…….’
고민 끝에 칼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움직이지 못하게 완전히 박살을 내버리면 되지.”
칼은 검을 움직여 블러디아를 밀어낸 뒤, 인정사정없이 대모나스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크아아아악!
그 충격으로 대모나스는 이빨이 깨지고 얼굴은 피로 흥건해졌다.
이내 칼과 자신의 차이가 현격하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칼을 경계하던 녀석은 지켜보고 있는 주변을 살피다가…….
“꺄아아아아악!”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여인을 향해 발을 박차며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콰앙!
그때 재빨리 달려든 칼은 검을 휘둘러 블러디아의 궤도를 뒤튼 뒤,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죽고 싶어 용을 쓰는구나. 버러지.”
쩌적!
콰앙!
그러나 오만한 말과 달리 칼의 검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두 동강이 나버렸다.
전날 밤에 이미 당장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바꾸지 않는 게 큰 화근이 됐다.
대모나스는 칼을 비웃으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크크크크, 꼴좋구나. 나 블러디아에게 감히 대적할 수 있다 싶었더냐?”
콰앙!
칼은 연신 주먹으로 검의 옆면을 쳐내며 치명상을 피했다.
그러나 몸 곳곳에는 작은 상처가 하나둘 늘어났다.
“크하하하하, 나는 블러디아! 더욱 많은 피를 흘려 가장 뛰어난 마검으로 추앙받겠지. 와라. 네놈의 피를 섭취해서 더 순도 높은 마검이 될 테니.”
피식.
어처구니가 없어서 칼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피 빠는 모기 새끼가 주제도 모르는군.”
“뭐?”
“네놈은 녹슨 쇳덩이보다 약간 위에 불과해.”
“칼리언트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휘익!
검 한 자루가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칼의 앞으로 떨어졌다.
디아나의 목소리를 들은 칼은 재빨리 잡아채었다. 그러고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내었다.
스릉.
맑고 투명한 검명이 울려 퍼졌다.
군중 사이에서 칼을 지켜보던 디아나는 싱긋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검의 이름은 비어벨. 슈미트님의 첫 명검이에요.”
‘좋은 감각이다.’
가볍게 쥐는 순간 깨달았다. 이 검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휘둘러도 된다는 사실을.
칼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덤벼.”
“그까짓 검으로는 나 블러디아를 꺾을 수 없다! 크아아아!”
대모나스는 칼을 죽이기 위해 블러디아를 휘둘렀다.
그러나 살벌하게 눈을 치켜뜬 칼이 비어벨을 휘두르자, 강렬한 금속음과 함께 나가떨어져 벽에 처박혔다.
무적일 것 같았던 블러디아는 순식간에 이가 나가버렸다.
“겨우 이까짓 걸로! 나 블러디아를!”
블러디아는 대모나스를 강제로 일으키며 다시금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이미 그 앞에는 칼이 조롱하는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비어벨에서는 심홍색의 오러가 서서히 뿜어져 나왔다.
그동안은 검이 버티지 못해서 제대로 오러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어벨은 칼의 오러를 버텨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붉은빛을 발했다.
저기에 베이면 죽는다.
“자, 잠깐!!”
그것을 직감한 블러디아는 다급히 소리치며 칼의 의지에 간섭을 시도했다.
블러디아는 타인의 의지에 개입해 자신을 쥐게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마검이었다.
‘나를 쥐어라. 그딴 검보다 나를 쥐는 게 훨씬 이득이야. 더욱 많은 피를 흡수하면, 그것보다 훨씬 강해질 수 있어.’
칼의 정신세계에 들어선 블러디아는 유혹의 목소리를 냈다.
‘무, 뭐지?’
그러나 그 어디에도 칼의 마음의 형태는 존재하지 않았다.
화르륵.
대신 존재하는 건 지옥의 불길을 연상케 하는 붉은 마력뿐이었다.
어느새 칼의 심층 세계에 도달한 블러디아는 유혹의 목소리를 냈지만.
‘어, 어디 있지?’
심층 세계 어디에서도 칼의 마음의 형태는 보이지 않았다.
화르륵.
존재하는 것은 지옥의 불길을 연상케 하는 붉은 마력.
끝을 알 수 없는 마력은 마치 바다와 같이 넓었다.
‘뭐, 뭐야?’
하지만 이내, 그 크기가 바다보다도 넓다는 것을 깨달은 블러디아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눈치채고 시야를 더 넓게 퍼뜨렸다.
화륵.
동시에 블러디아는 자신이 한 남자의 손아귀에 있음을 눈치챘다,
옥좌에 앉아 있는 손의 주인은 여섯 날개를 가진 거대한 악마였다. 그는 입꼬리를 올리며 블러디아를 조롱했다.
“아직도 너 따위가 내가 손에 쥘만한 검이라 생각하나?”
‘다, 당신은 대체! 넌 누구야!!’
광활한 존재의 크기에 놀란 블러디아는 경악했다.
악마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내 이름은 칼리언트 슈타크다. 한때는 마계를 멸망시킨 최강의 마왕이었으나, 지금은 빌어먹을 시간의 신 차이트에게 패해 갱생하고 있는 가련한 인간이지.”
‘…….’
가련하다는 말은 정말 공감하기 어려웠다.
블러디아는 자신이 칼의 앞에서 한낮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말문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는 심층 세계에서 쫓겨난 상태였다.
“하, 항복.”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칼에게 자비를 간청하는 것뿐이었다.
서걱!
콰아아아아앙!
그러나 칼의 일검은 블러디아와 대모나스는 물론 건물까지 반 토막 내버렸다.
비어벨을 손에 쥔 채로 무너진 건물더미를 보는 칼의 표정은 한없이 냉담했다.
“후우.”
칼은 블러디아를 상대하며 체력 소모가 너무 컸던 것인지, 작게나마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
그리고 이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던 관중들은…….
“와아아아아아아!!”
“대모나스를 쓰러뜨렸다.”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대모나스의 정체에 대해 일러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전투를 계속 지켜보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쓰러진 남자가 대모나스임을 깨달았다.
“겨우 쓸만한 걸 만들어주는군.”
칼은 비어벨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고, 디아나는 재빨리 칼에게 다가와 말했다.
“카, 칼리언트님. 몸은 괜찮으신가요? 상처가 꽤 많은데, 응급처치라도.”
타악.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린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남겼다.
“수고했다.”
“아, 아니에요.”
얼굴을 발그레 붉힌 디아나는 다른 의미로 안절부절못했다.
칼은 서서히 거리를 빠져나갔다.
* * *
대모나스가 쓰러진 뒤, 말버러 공작가의 모든 병사는 사태를 수습하는 데 동원되었다.
우선 집시로 위장해 영지에 잠입한 샤텐의 첩자들을 모조리 체포했다.
다소 반발이 있긴 했으나 에릭이 나서서 모두 진압한 덕에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나머지 이들은 부서진 마을을 원상 복구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어두운 저녁.
말버러 공작가로 칼과 에릭이 다시 돌아왔다.
“그린데피아에 평안과 안정을 되찾아줘서 정말 감사하네.”
“대모나스의 정체가 마검이었다니.”
에리는 앞으로 어떻게 일을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지금은 공치사를 논하는 자리.
자신의 입으로 약속한 것이 있기에 에리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칼을 쳐다봤다.
‘어, 어떡하지. 나 진짜 칼이랑 결혼하는 건가.’
평소라면 익살맞게 웃으며 장난을 쳤겠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가볍게 넘어갈 수 없어 보였다.
“칼리언트. 원하는 게 있나요?”
그녀는 애써 그런 감정을 숨기고 칼에게 포상에 대해 물었다.
에릭은 불안한 시선으로 칼을 쳐다봤다.
그렇게 모두의 시선이 칼에게 주목됐고, 칼은 손가락으로 에리를 가리켰다.
“무례한?!”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에드윈이 질책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먼저 칼이 말을 했다.
“자질구레한 건 끝났으니, 그만 빠져. 그거면 돼.”
이게 무슨 말이지?
무척이나 건방진 말투에 모두가 혼란스러워했다.
씨익.
그 속에서 유일하게 뜻을 알아들은 에리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네. 이제 이러고 있을 필요 없겠네. 외숙부님, 뒤를 부탁해도 되나요?”
말버러 공작 역시 그 의미를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 * *
갸르르릉.
포도밭 일을 끝마친 릴리는 강아지풀을 흔들며 바그로바와 놀고 있는 중이었다.
강아지풀을 뜯어 먹으려는 바그로바가 무척 귀여웠으나, 기운이 없는지 그녀의 인상은 수척했다.
“심심해. 칼도 없고 에리도 없고.”
때마침 대장간에서 나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슈미트와 디아나가 릴리에게 말을 건네 왔다.
“하암, 여기서 뭐하고 있어? 이제 곧 저녁 먹을 시간인데 들어가야지.”
“같이 가요. 릴리아나 님.”
“들어가야지. 잠깐만.”
릴리는 피식 웃으며 바그로바를 안아 들고 그들과 나란히 걸어갔다.
꼬르륵.
밤새 망치질을 하느라 지쳤는지, 슈미트는 배를 움켜잡으며 릴리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오늘 음식은 뭐냐?”
“오늘은 건포도를 잔뜩 했다고 하더라고요.”
“흠, 나쁘지 않군.”
벌써부터 군침이 돋는지 미소를 짓던 슈미트는…….
“이번에 샐러드 나오면, 다 드셔야 해요.”
릴리가 내뱉은 한마디에 몸을 움찔거리다가 헛기침을 했다.
“크흠.”
디아나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슈미트에게 말했다.
“그러다 키 안 커요. 슈미트님!”
“이미 다 컸어! 이것아!!”
끼익!
슈미트가 버럭 화를 내며 문을 열어젖히자…….
“왔어. 릴리.”
테이블로 음식을 나르고 있던 에리가 환한 미소로 세 사람을 맞이했다.
“에, 에리.”
당황한 릴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와인을 마시고 있는 칼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말 정도는 해주라고. 깜짝 놀랐잖아.”
“왜 싫은가 봐?”
칼은 피식 웃었고 릴리는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때를 가리지 않는 장난기가 발동한 에리는 눈가에 눈물을 흘리며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릴리. 내가 와서 싫은 거야? 흑흑.”
“그, 그런 거 아니야.”
릴리는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달래기 위해 애썼다.
“푸훗!”
그 모습을 보던 칼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을 발그레 붉히던 릴리는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건포도를 뜬 수저를 칼의 입에 집어넣었다.
“……달아!”
혀에 감도는 달콤함에 칼은 질색하며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