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67화 (67/197)

#제67화

짹짹.

아침을 알리는 새의 울음소리에 맞춰…….

“끝났다!”

우렁찬 슈미트의 함성이 대장간 곳곳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새들은 일제히 상공을 향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귀 아파요. 슈미트님.”

슈미트는 양손으로 귀를 막는 디아나에게 완성된 검을 내밀었다.

“그 녀석에게 이놈을 전해다오.”

검을 받아든 디아나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슈미트님이 직접 전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무리야.”

털썩!

짤막한 대답과 함께 슈미트는 그 자리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꼼짝도 못 할 것 같아.”

“일어나세요. 여기서 자다간 감기 걸려요.”

“후후후후, 드워프는 원래 명검을 완성한 다음 그 자리에서 뻗는 게 문화라서.”

“거짓말이잖아요.”

“…….”

디아나의 잔소리에도 슈미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잠을 청했다.

“후우.”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검을 잠시 내버려 둔 뒤, 슈미트의 다리를 잡아 숙소로 질질 끌고 갔다.

“…….”

포도밭으로 가던 한스는 우연히 그 광경을 보고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묻으러 가는 거 아니지?”

엄청난 오해에 디아나는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히며 버럭 화를 냈다.

“당연히 아니죠! 보기만 하지 말고 좀 도와주세요.”

한스는 하는 수 없이 슈미트를 업었다.

침을 주륵 흘리며 자고 있던 슈미트는 잠꼬대를 했다.

“……뭐라고 속삭이는데?”

“잠시만요.”

디아나는 슈미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검의 이름은…….”

휘잉!

때마침 강렬한 바람이 몰아닥쳤지만, 확실히 알아들은 디아나는 방긋 입꼬리를 올리며 슈미트에게 화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름도 확실히 칼리언트님께 전달해 드릴게요.”

*  *  *

어두운 감옥 안.

콰앙! 콰앙!

“우웁!!!”

붉은색 마검 블러디아를 손에 쥔 사내가 입에 재갈을 문 채 고통에 찬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는 마치 광대처럼 얼굴에 온통 분칠이 되어있었다.

평소에는 거리에서 환영을 받는 재간둥이었지만, 지금은 마치 악령이 강령한 것처럼 서슬이 퍼렜다.

“젠장! 왜 갑자기 통제가 안 되는 거야.”

밖에서 그 풍경을 지켜보고 있던 중년의 남자는 불안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곁에 서 있던 젊은 남성은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한계입니다. 어젯밤 사건으로 인해 이미 말버러 공작이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중년의 남자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안 돼! 조금만 더 하면 이 땅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여기서 끝내면 곤란해. 이 천혜의 땅은 우리 거였어! 네놈은 분하지도 않은 것이냐!”

“그, 그것도 그렇지만.”

“어떻게든 오늘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준비 단단히 해놓도록.”

“아, 알겠습니다.”

중년 남자의 옹고집에 젊은 남성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지, 질리엇 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지?”

질리엇은 눈살을 찌푸리며 눈앞의 남자를 쳐다봤다.

우스꽝스런 복장으로 단검을 잔뜩 든 모습을 보니, 자신들의 신세가 무척이나 처량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자 두 명이 입구로 오더니 들어오겠다며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알아서 쫓아내.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중년 남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등을 돌리려는 순간.

콰앙!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  *  *

대모나스는 예고 살인에 실패했다.

민중의 다수는 안도했지만, 반대로 안 좋은 여론 역시 퍼져나갔다.

공식적으로 대모나스를 붙잡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불안해하는 사람 역시 많았다.

말버러 공작은 치안군을 더 풀어 경계를 더욱 강화함으로써 가까스로 민심을 달래고 있었다.

“대모나스는 죽었지만, 한 명이 아니다라…….”

간밤에 있었던 대모나스의 습격에 대해 보고를 받은 말버러 공작은 미간을 꼭 누르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래도 공주마마가 무사하셔서 천만다행입니다.”

“걱정을 끼쳐서 죄송해요. 설마 공작가까지 침투할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송구스럽습니다.”

“탓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 덕에 녀석의 정체를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요.”

“누군지 간파한 겁니까?”

“네.”

에리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범인은 공작가에서 일하던 정원사예요. 사건 당시에 성내에 있던 인원을 수색했는데 아직 행방이 묘연한 것은 그밖에 없으니 확실해요.”

“일개 정원사가 그런 엄청난 일을 벌였단 말입니까?!”

“출신을 따지니, 이곳의 토착민이고 아직까지 샤텐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설마 내부에서 벌어진 소행이라는 것을 상상치 못했던 말버러 공작의 근심은 더욱 깊어졌다.

“하지만 그는 검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입니다. 그런 그가 칼리언트 공과 에릭 공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것까지는 밝힐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내막이 있다는 거예요.”

에리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정원사의 마음을 부추긴 세력이 있어요. 그동안 꼭꼭 억눌러왔던 그에게 악마의 속삭임이 있었던 거죠.”

“제가 이곳을 통치하던 도중 들어온 외부의 세력에 대해서는 모두 조사해 봤지만 딱히 의심 가는 곳은 없었습니다.”

상인, 용병, 그리고 타국의 사신까지.

그린데피아에 들른 수많은 사람 중에 의심이 갈만한 인물은 전혀 없었다.

“딱 하나 있어요. 의심을 벗어나며, 많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세력이요. 바로…….”

“설마?!”

말버러 공작이 그제야 눈치챈 듯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자 동시에 에리가 입을 열었다.

“집시들이에요.”

집시.

평생을 유랑하는 자들로 생계를 위해 잡일이나, 점성술, 불법 진료를 하거나, 때때로 길거리에서 기예를 선보이거나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들은 방황하는 이들답게 신분 또한 명확하지 않아서 통제조차 어려웠다.

빠득!

“내 이것들을!”

즉각 군사를 대동하려는 말버러 공작을 향해 에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집시들에게라면 이미 그 남자들이 가 있어요.”

“그 남자들이라고 하면…….”

“칼과 에릭이요. 그 둘은 아직 경쟁 중이잖아요.”

“…….”

말버러 공작은 잠시 침묵을 지켰고, 에리는 창밖을 보며 방긋 웃었다.

“아마 오늘은 영웅이 탄생하는 날이 아닐까 싶네요.”

*  *  *

집시들이 지은 거대한 천막.

화려한 축제를 위해 그들은 오늘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중이었다.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아직 공연이 개막되기 전입니다.”

입구 쪽에서는 칼과 에릭이 안으로 들어가겠다며 거대한 덩치를 지닌 집시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공연이라면 이미 시작됐잖아.”

“네? 그게 무슨 말…….”

넌지시 내뱉는 칼의 한마디에 거대한 덩치의 남성이 의아해할 때였다.

덥석!

콰앙!

칼은 그의 얼굴을 손으로 집은 뒤 그대로 기둥에다가 처박았다.

“커헉!”

그러곤 의식을 잃은 집시를 대충 내팽개치며 에릭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어느 순간 집시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칼과 에릭을 바라보고 있었다.

휘리릭!

에릭은 창대를 한 바퀴 돌린 뒤, 그대로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너 생각보다 막 나가는 스타일이구나.”

“너는 버러지들의 눈치를 보면서 일하나 보지?”

“아아. 이렇게 도발하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데.”

상황에 맞지 않는 느긋한 대화에 더 이상 참기 어려웠는지, 집시들의 우두머리인 질리엇이 그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손님, 여기서 행패를 부리시면 곤란합니다. 나가주시겠습니까?”

“행패라…….”

칼은 기가 찬 듯 피식 웃으며 비아냥거렸다.

“어지간히도 배가 많이 아팠나 봐? 이 땅이 잘 되는 게.”

“지금 무슨…….”

태연한 척 말을 하는 집시들의 눈빛이 점점 더 표독스러워졌다.

칼은 더 강하게 비아냥거렸다.

“인조마검인 블러디아. 성능은 확실하지만 통제가 어렵다는 게 문제였겠지. 자신들이 사용하기는 싫으니 이실리아에 원한이 있는 샤텐의 토착민들을 이용하려고 한 거고.”

흥분한 질리엇은 결국 노호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슨 개소리야!!!”

뚜뚝.

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엄지를 깨물어 피를 냈다.

“나와라, 블러디아. 피라면 얼마든지 있다.”

붉은 핏방울이 바닥에 뚝 떨어진 순간.

콰앙!

서걱! 서걱! 서걱!

“크아아아아악!”

매서운 살기가 들이닥쳐 집시들을 단숨에 도륙해버렸다.

그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단숨에 칼에게 돌진했다.

콰앙!

에릭은 곧장 남색의 마력을 발산하며 응수했다.

콰아아아아앙!

두 개의 거대한 힘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충격파로 인해 천막이 순식간에 찢겨 나갔다.

크르르르르.

살기가 치솟은 곳에는 어느새 대모나스가 블러디아를 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붉은 눈으로 에릭을 노려보며 침을 겔겔 흘리다가 갑작스럽게 달려들었다.

빠직!

콰앙!

에릭은 기습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으나, 창끝이 단숨에 박살이 나서 너덜너덜해졌다.

“무구의 힘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닿기만 해도 부서진다.

아무리 현란한 기술을 지녔다고 해도, 닿는 것만으로 무기가 망가진다면 이기기 어려웠다.

“빠져. 이제 내 차례야.”

그때 검을 빼든 칼이 자연스럽게 앞을 나섰다.

에릭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슬그머니 발을 뒤로 뺐다.

이곳에 오기 전에 한 가지 약속을 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칼과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대모나스의 정체를 알아냈다. 넌 실패했으니까 순순히 협조나 하도록 해. 대모나스는 내 사냥감이야.

-만약 거절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무능한 쓰레기로 남겠지.

그때 당시에 에릭은 칼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지금처럼 불만만 가득 안은 채로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에릭은 순순히 기회를 양보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기에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대모나스의 정체는 대체 뭐지? 어떻게 저런 실력의 남자가 둘 이상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건 간단해. 대모나스는 어디까지나 허상이야. 실질적으로 대모나스를 조종하면서 살인 사건을 일으킨 녀석은…….”

칼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블러디아 쪽으로 향했다.

“블러디아라는 거군.”

에릭은 이제야 풀리지 않던 의문이 모두 해소되는 것만 같았다.

심장을 관통당하고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격하게 움직일 수 있던 것도, 엄청난 실력을 지닌 사람이 여럿이 있던 것도.

블러디아가 사람을 통제하고 있었다면 모든 게 설명이 가능했다.

한편.

“크아아아아아악!”

대모나스는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칼의 피를 보며 격하게 비명을 토해냈다.

피식.

칼은 그런 대모나스를 보며 얄궂게 웃더니 조롱의 한마디를 남겼다.

“마시고 싶으면 발악해봐.”

그 말을 기점으로…….

쫘아악!

콰아앙!!!

천막이 찢겨 나가며 대모나스와 칼의 공방이 거리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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