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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61화 (61/197)

#제61화

망령은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했으나, 진실은 좀처럼 밝혀지지 않았다.

아집과 욕망으로 이루어져 인간을 죽음으로 유혹하는 존재인 망령.

결론만 말하면 망령은 고통을 느낀다.

일반적인 공격에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영혼에 피해를 주는 공격에는 육체의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고통을 느낀다.

[그, 그만.]

비드낙은 사지와 얼굴이 토막이 난 채로 칼에게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콰직!

[크아아아아악!]

칼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비드낙의 등에 검을 찔러 넣었다.

‘이별은 마친 것 같은데.’

그는 오열하고 있는 베게누를 보고서 검을 찌르는 걸 멈췄다.

“슬슬 열릴 때인가.”

[여, 열리다니. 너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비드낙은 흠칫 놀라 고개를 든 순간.

균열의 틈새에서 기묘한 바람 소리와 함께 강력한 힘이 베게누와 망령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살려줘. 거기만큼은 가기 싫어!]

지옥의 입구가 열렸다는 것을 안 망령들은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끼에에에엑!]

하나, 강대한 힘 앞에는 꼼짝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비드낙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빨아들이는 힘에 저항하기 위해, 사기로 만든 끈을 전신에서 방출해 주변 바위나 나무 등에 묶었다.

[끄아아아악! 어째서 문지기로 선택받은 나까지!]

앞머리를 이마 뒤로 쓸어넘긴 칼은 입가에 조소를 지으며 비드낙의 의문에 답해주었다.

“네가 문지기가 된 건 어디까지나 망령들을 통솔할 정도의 강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지. 너의 그릇을 보고 건네준 게 아니니까.”

[크아아악! 다, 당신은 대체?!]

서걱! 콰앙!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날카로운 검이었다.

칼의 검이 비드낙이 구현한 사기의 끈을 전부 절삭시켰다.

계속 살벌한 표정을 짓던 칼은 처음으로 싱긋 웃으며 비드낙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재밌는 곳이야. 잘 즐겨봐.”

[크아아아악! 네 녀석!]

비드낙은 분노하여 칼을 노려보았으나, 결국 거센 바람을 버티지 못하고 지옥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끼에에에에엑!]

풍압에 휩쓸린 데스마스크의 혼령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지옥의 틈새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살려줘, 제발. 이 악마 자식!]

다수의 망령이 죽을 때 순간 그들이 겪은 악몽이 칼의 머릿속으로 펼쳐졌다.

따스한 햇살과 풍성한 작물을 맺는 땅, 그린데피아.

그곳에서 새빨간 피와 같은 색을 띤 마검을 든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흐음, 인간 세상은 사건이 끊이질 않는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칼의 앞에 거대한 할버드를 든 미노타우로스의 혼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

칼은 무덤덤하게 그를 바라봤다.

척!

미노타우로스의 혼령은 칼에게 예를 갖추며 입을 열었다.

[새로운 망령의 왕으로 임명된 발바두스가 귀빈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동료의 복수는 하지 않는 건가?”

고분고분한 그의 태도에 칼은 눈썹을 꿈틀거렸고 발바두스는 고개를 저으며 설명했다.

[비드낙은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고 인간사에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런 악령에게 벌을 내려 주신 당신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으면서?”

[본래라면, 비드낙을 퇴치하는 것은 저의 역할입니다. 하지만 영악한 비드낙이 지옥의 입구를 봉쇄하는 바람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 앞에 나타난 이유는 뭐지?”

흠칫!

칼의 말에 발바두스는 육중한 덩치에 맞지 않게 몸을 떨었다.

제아무리 망령의 왕이라고 해도 칼에게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닥쳐라. 본의 아니게 도와주게 되었지만, 그렇다 해서 네놈이 나에게 요구를 할 입장이라 생각하나?”

칼이 언짢아하는 표정을 짓자, 발바두스는 아예 양쪽 무릎을 모두 꿇었다.

동시에 발바두스의 심복이 칼에게 자그마한 궤짝을 내밀었다.

“이건 뭐지?”

칼의 질문에 발바두스의 심복이 궤짝을 열어젖혔다.

그 안에는 보랏빛 크리스탈 병 세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발바두스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것은 죽기 직전인 사람도 마시기만 하면, 병과 상처가 모두 치유되는 엘릭서인 라미나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체력과 근골의 발달을 돕기도 하죠. 심지어 소드 마스터라 불리는 자들이 한계를 깨고 성장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이건 네놈의 부탁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주는 거냐?”

발바두스는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사례입니다.]

“요구는 들어보지.”

[최근 들어 죽은 인간과 몬스터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인데?”

[늦어도 40년 안에는 전 세계의 인간이 죽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적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너무 빠르군.’

진심으로 놀랐는지 칼은 눈을 부릅떴다.

전생에 칼이 마계를 없애는 데 족히 삼백 년은 걸렸다.

한데, 인간이 같은 인간을 전멸시키는데, 고작 40년밖에 걸리지 않는다니…….

발바두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엄청난 위기였다.

“그 말은 숨어 있는 적을 찾아서 없애 달라는 건데, 적을 알아낼 수 있는 수단은 있는 건가?”

발바두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윽.

그러자 또 다른 심복이 궤짝을 들고 오더니 그걸 열었다.

궤짝 안에는 자그마한 거울이 놓여 있었다.

“이건?”

[혼의 일부를 끌어모아 만든 아티팩트인 페렛입니다. 거울을 비추면 거짓된 모습이 사라지고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계약을 승낙하지.”

[지, 진짜입니까?]

예상치 못한 빠른 승낙에 발바두스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이것 역시 내 갱생의 일환이겠지. 그리고 죽게 놔두고 싶지 않은 녀석들도 있으니까.”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만났던 인연을 떠올린 칼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갱생은 어렵군.”

자조 섞인 말을 내뱉은 칼은 엘릭서의 마개를 뽑아 그대로 들이마셨다.

스스스스.

체내로 들어온 엘릭서는 서서히 칼의 몸을 치유해나갔다.

*  *  *

대화를 마친 발바두스는 망령들을 통제해 협곡의 정리에 나섰다.

“너, 너 괜찮냐?”

슈미트는 바위를 손으로 잡으며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었다.

폴짝!

바그로바는 그런 슈미트의 얼굴을 밟고서 지면에 안정적으로 착지했다.

“크아아아악!”

그 덕분에 슈미트는 경사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끄응! 삭신이야!”

드워프 특유의 강인함 덕분인지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칼을 올려다봤다.

“의, 의외로 멀쩡하네.”

“네 몸부터 챙겨. 챙겨온 옷은 있어?”

“어, 없는데.”

“어쩔 수 없군.”

입고 있는 옷은 출혈로 인해 찝찝했지만, 별수가 없던 칼은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갸르릉!

바그로바는 그런 칼을 쫓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슬슬 올라가 볼까? 베게누 영감은 너가 챙겨.”

“나, 나. 방금 전에 내려왔는데.”

기껏 걱정해서 내려왔더니만.

슈미트는 섭섭한 표정을 짓다가 곧 칼이 서 있는 자리가 반짝이는 걸 보고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 잠깐 지금 발에 딛고 있는 거 설마 미스릴? 아니, 이 광채는 미스릴이 아닌데…….”

‘그때인가?’

칼은 트리거를 한꺼번에 개방했을 때를 떠올리며 슈미트에게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명계석. 죽은 자의 땅에서 생겨난 광물이야. 가공하기 전까지는 단순한 돌멩이지만 ‘한’이 새겨지면 죽은 자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지. 그리고 혼백의 강함에 따라 강도와 효능이 정해진다는 특징도 있어.”

“그렇구먼.”

슈미트는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곧 광물을 손으로 집어 자루에 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칼은 고개를 돌려 베게누를 향해 소리쳤다.

“이만 올라가죠.”

*  *  *

다시 지상으로 나왔을 때.

악몽의 협곡이란 불길한 명칭과 다르게 눈부신 빛이 그들을 반겼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칼리언트 님.”

칼을 기다리고 있던 디아나가 반색하며 말했다.

“끄응! 내 걱정은 안 하냐?”

베게누를 부축하고 있던 슈미트는 차별 대우에 인상을 찡그렸다.

“슈미트 님은 워낙에 튼튼하니까 문제없잖아요.”

“얼씨구. 이 녀석 몸은 안 튼튼하고?”

슈미트의 반박에 할 말을 잃은 디아나는 뒤늦게 태도를 바꿨다.

“흐음,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에요. 슈미트님.”

“성의가 없잖아! 요것아!”

“귀 따가워, 난쟁이 똥자루야!”

슈미트는 빼액 소리를 치다 베게누에게 한 소리를 들었다.

“시끄러워. 잠깐 휴식을 취한 뒤 귀환한다.”

“네! 저희는 식사 준비하고 있을게요. 자, 같이 가요. 슈미트님. 바바도 따라올래?”

“내가 식모냐?”

디아나가 등을 밀자 슈미트는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걸음을 옮겼다.

갸르릉!

밥이라는 말에 바그로바도 폴짝 뛰며 그들을 쫓아갔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는 칼과 베게누만이 남았다.

양팔에 붕대를 감은 베게누의 얼굴은 아직까지 눈물로 젖어있었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딸과 만날 수 있었어. 이 은혜는 어떻게 갚아야 할지…….”

“됐습니다.”

슬슬 보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칼은 베게누의 단호하게 말했다. 보상이라면 이미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낀 경이로움이었어.’

그동안 겪은 인간 사회의 악은 마족과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지독하다고 생각했지만.

베게누가 보여준 딸에 대한 사랑은 칼의 가슴을 충분히 울렸다.

‘나쁘지 않군.’

칼의 얼굴에는 평소 독설을 내뱉을 때의 오만함이 전혀 없었다.

진심으로 만족했다는 얼굴이었다.

웃고 있는 칼을 지켜보던 베게누는 그 점을 꼬집을까 했지만.

무척이나 보기 드문 모습이었기에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에밀리는 좋은 곳으로 갔겠지.”

“갔습니다.”

확신에 찬 발언.

“……고맙네.”

베게누는 다시 한번 왈칵 눈물을 흘리며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노을을 바라보았다.

*  *  *

“상단주님!”

악몽의 협곡에 벗어나 프로메스 상단이 거주하는 천막에 도착하니, 상단의 일원들이 기뻐하며 그를 끌어안았다.

“왜 주책바가지야! 수입은 두 배로 불려놓았겠지?! 이것 놔!”

얼굴을 붉힌 베게누는 자신을 안은 인부의 이마를 탁탁 내려쳤다.

“보기 좋구먼. 뭘 그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슈미트가 능글맞게 놀리자…….

“닥쳐!!!”

베게누는 일갈을 내뱉었다.

잠시 후.

이별을 고하는 잔치가 펼쳐졌다. 디아나와 슈미트는 상단의 일원들과 어울리며 춤을 추기까지 했다.

칼은 바위에 걸터앉아 바그로바가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성장기인 녀석은 끝도 없이 먹었다.

“뭐해? 가서 먹지 않고. 돈을 벌려면 우선 제대로 먹어야지.”

그런 칼에게 베게누가 맥주잔을 들고 찾아왔다.

잔을 받아든 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됩니다.”

“안 돼!”

의외의 호통에 맥주를 들이켜려던 칼은 손을 멈췄다.

베게누는 한 손을 허리에 얹으며 칼에게 훈계하기 시작했다.

“부하들은 네가 직접 챙겨줘야지.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마.”

“제가 그렇게까지 대단한 사람으로 보입니까?”

칼의 물음에 베게누는 대답 대신 프로메스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신분 패를 내밀었다.

“……뭡니까? 이건.”

“에밀리를 위해 남겨둔 예금의 사용 권한이 있는 신분 패네. 리젤 녀석보다 자네가 더 요긴하게 쓰겠지.”

사실상 차기 상단주라는 걸 인증해주는 물건임을 짐작한 칼은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프로메스를 이을 생각은…….”

“그냥 써주게. 원래 에밀리를 위해 벌어들인 돈일세. 자네라면 보다 좋은 일에 쓰리라 믿네.”

“……어째서 그런 확신을 하십니까?”

칼은 뚱한 표정으로 베게누를 쳐다봤다.

씨익!

그러자 베게누는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네는 내 인생 전부를 걸고 투자할 만한 남자니까. 내 안목은 절대 틀리지 않지.”

칼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흥청망청 쓸 겁니다.”

“내 선택은 변함이 없을 걸세.”

서로를 쳐다보던 두 남자는 피식 웃더니…….

챙!

이내 거품이 흘러넘칠 정도로 힘차게 잔을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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