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남자의 집안에서 쌓은 부는 정당한 일의 보상이라고만 여기기는 어려웠다.
금주법이 시행됐을 때는 밀수한 술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았다.
돈만 된다면 대상을 가리지 않았다.
빈민가의 부랑자에게는 싸구려 럼주를, 호화로운 귀족에게는 값진 포도주를 팔았다.
술값을 내기 위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부랑자들은 자신의 딸까지 노예로 팔았고, 귀족은 쌓아두었던 비축 식량마저 팔아버렸다.
돈을 버는 건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쟁 중에 들려온 승전보 소식을 숨기고 패전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로 인해 일순간 가치가 떨어진 땅을 사들여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땅을 판 자들은 절망한 나머지 모두 자결했다.
생필품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가혹할 정도의 가격을 제시해 이익을 남겼다.
빈민가에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프로메스가의 욕망의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마침내 전쟁물자까지 손에 대었다.
프로메스.
어느 순간 그들은 죽음의 상인이라고 불렸다.
베게누는 자신의 가문이 저질러왔던 만행들을 외면했다.
후환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안 해봤다. 자신은 그저 상인으로서 장사를 했을 뿐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에밀리가 거실에 전시해둔 갑옷과 칼, 그리고 화살 등을 보며 말했다.
“아빠. 여기에 찔리면 많이 아프겠지?”
어린아이다운 솔직한 감상이 담긴 말에 베게누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에밀리의 말이 그의 마음을 일깨워주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남의 아픔을 외면하는 건 물론, 그걸 이용하기까지 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저지른 죄에 대한 대가가 찾아왔다.
하지만 저주의 대상은 베게누가 아니라 에밀리였다.
“하아, 하아.”
비드낙의 저주를 받은 에밀리는 물을 마시며 근근이 버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빠, 아빠.”
곁을 지키고 있던 베게누는 어린 딸의 손을 잡았다. 너무나 미약하고 가녀린 생명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자꾸 못된 목소리가 괴롭혀요. 괴로워요.”
“……조금만. 조금만 참아다오. 에밀리.”
그 뒤로 프로메스는 상단 일을 부상단주에게 맡기고 에밀리의 병을 낫게 하려고 동분서주했다.
이실리아의 의료진을 데려오기도 하고, 산크투아리움의 고위 사제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어떻게든 비드낙의 저주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에밀리의 상태를 본 이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
결국 에밀리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에밀리!!! 으흑!”
곁에서 이를 지켜본 베게누는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절망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베게누는 자신의 과오를 뼈저리게 통탄했다.
마음 같아서는 에밀리를 따라 자결을 할까 싶었지만.
-참으로 고결하고 순수한 영혼이야. 이 영혼이 더럽혀질 때까지 유린해주마. 다음 생은 꿈도 꿀 수 없을 거다. 영원히 이 비드낙의 손아귀 안에서…… 크하하하!
머릿속에 저주의 실체가 남기고 간 말이 아른거렸다.
빠득!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할 참이냐. 베게누 프로메스.’
그는 이를 갈며 자신을 야단쳤다.
애초에 절망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에밀리를 구해야 했다.
울컥!
어린 딸의 시신을 보니 다시금 가슴에 한이 맺혔지만, 베게누는 차가워진 에밀리의 손을 만지며 각오를 다졌다.
“아빠가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니?”
그는 딸의 이마에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하며 재회를 고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군.’
베게누의 악몽을 지켜본 칼은 가슴이 묘하게 답답했다.
어째서 부모란 인간들은 자식을 지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지, 세피로트의 열매에서 태어나는 마족으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녀도 그랬지.’
머릿속으로 자신의 어머니인 사라 슈타크를 떠올린 칼은 심정이 더욱 복잡해졌다.
은근슬쩍 베게누를 쳐다보니 그는 결의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론 두려움이 없을 리는 없었다. 그가 상대해야 할 상대는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초월적인 상대로부터 딸의 영혼을 구해야만 했다.
여행을 하면서 베게누를 지켜봤던 칼은 생각했다.
‘이 남자는 진심으로 갱생하고 있다.’
늘 입으로는 돈이란 단어를 남발하며 신경질을 내지만, 정작 베게누는 탐욕에 대해 확실한 경계선을 짓고 있다.
자신의 상단을 위해 일해주는 인부들을 돈보다 더욱 소중히 여기는 남자.
‘……답답해.’
그런 그를 보며 칼은 가슴이 한없이 먹먹했다.
* * *
악몽의 협곡.
음산한 바람이 부는 협곡의 끝에는 거대한 균열이 있었다.
겉으로 볼 때는 평범한 동굴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이승과 저승의 틈새였다.
그 안에는 데스마스크의 혼령이 한가득 모여 있었다.
[히히히히, 들어올 거야?]
[언제든 환영이야.]
[산 자가 들어온다!]
듣기 싫은 끔찍한 목소리에 고막이 절로 떨렸지만.
베게누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칼 일행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까지 호위해줘서 고맙네. 이만 가봐도 좋아. 너희들은 충분히 자기 역할을 했어.”
“……정말 괜찮겠냐? 아무리 봐도 저기는 사람이 들어갈 곳이 아니야.”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을 느낀 슈미트는 베게누를 만류했다.
“계약은 여기까지야. 더 이상 간섭하지 마.”
그러나 베게누는 단호한 목소리로 물러나라고 했다.
“마음대로 해! 이 고집불통 영감탱이!”
슈미트는 단단히 삐졌는지 고개를 홱 젖혔다.
“슈미트 님, 마지막까지 싸울 필요는 없잖아요.”
쓴웃음을 지은 디아나는 스크롤과 단검을 꺼내 베게누에게 건네주었다.
“……약소하지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저랑 슈미트님이 준비한 거예요. 스크롤에는 악령을 쫓는 마법이 담겨있고, 단검에는 성수가 발라져 있어서 망령을 상대하는데, 어느 정도가 대처가 가능할 거예요.”
“기다려봐. 이것도 내가…….”
베게누가 전표를 써주려고 하자, 디아나는 고개를 저었다.
“돈은 됐어요. 그냥 무사히 돌아와 주세요.”
멈칫!
생각지도 못한 말에 베게누는 잠시 몸을 떨었다.
어느새 눈이 시큰했는지, 눈시울에 눈물이 가득 들어차려고 했다.
“흥! 후회나 하지 말든지.”
베게누는 홱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고마웠다.”
마지막으로 하는 말에 살짝 진심을 담은 그는 망설임 없이 균열 안으로 들어섰다.
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슈미트는 그런 칼을 힐끔 쳐다보며 입을 뗐다.
“정말 이대로 보낼 거냐?”
슈미트는 마지막에는 칼이 어떻게든 할 거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또한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디아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런 둘에게 칼은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계약대로 하기로 했잖아.”
“그치만…….”
이대로 가다가는 베게누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디아나는 가까스로 말을 삼켰다.
자신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칼리언트. 왈가불가할 자격 따위는 없었다.
시무룩한 그녀의 머리 위로 칼은 손을 얹었다.
“?!”
“계약대로 할 거야.”
슬쩍 고개를 올려보니, 칼의 입가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 * *
사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죽은 자의 숫자는 산 자의 수를 아득히 초월한다.
지옥으로 가는 입구를 찾는다고 해도 딸의 영혼을 찾는 게 가능하긴 할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베게누는 자신에게 불길한 예언을 한 주술사를 찾아갔다.
마음 같아서는 원망과 욕을 쏟아붓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에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막대한 돈을 건네며 딸의 영혼을 되찾을 방법을 물었다.
그 집념에 주술사 노파마저 크게 놀랐다.
이미 저주는 에밀리 프로메스에게 가해졌다.
그로 인해 프로메스가는 저주로부터 해방되었다.
한데, 돈에 미친 죽음의 상인이 막대한 돈을 대가로 딸의 영혼을 찾을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결국 그 집념을 이기지 못한 주술사 노파는 한 아티팩트를 만들었다.
에밀리의 손톱을 이용해 만든 아티팩트인 나침반을 들고서 베게누는 균열 속을 탐사했다.
드드드득.
근처에 에밀리의 영혼이 있는지, 나침반의 바늘 끝이 심하게 들썩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스스.
[용케 여기까지 왔네. 아빠.]
바로 뒤에서 나타난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음산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
죽은 딸의 목소리에 베게누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바늘 끝은 그녀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베게누는 단검을 쥔 손을 벌벌 떨면서 소녀를 찌르려고 했다.
덥석!
소녀의 형상은 베게누의 손을 붙들어 저지했다.
그녀는 서운한 듯 입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아빠. 두 번이나 나 죽이려는 거야? 무서워.]
가녀린 음성, 떨리는 기색.
그 모든 것이 그가 기억하는 에밀리와 판박이였다.
‘젠장!’
그 모습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져 미쳐버릴 것 같았다.
까득!
베게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소리쳤다.
“닥쳐! 에밀리를 흉내 내지 마! 이 악귀 자식! 내 딸 어디 있어?!”
[……아빠. 누구 앞에서 소리치는 거야? 주제를 알아야지.]
에밀리의 목소리는 점차 굵고 흉측한 남자의 목소리로 변모했다.
그와 동시에…….
우드득!
엄청난 괴력으로 베게누의 손목을 분질렀다.
“크아아아아아악!”
단검을 떨어뜨린 베게누는 고통을 토해내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에밀리의 형상을 한 소녀는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아, 원래라면 같이 온 녀석들까지 같이 가지고 놀 텐데. 기분 나쁜 녀석이랑 어울리고 다니더구나.]
“크으윽!”
소녀는 베게누의 주변을 맴돌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딸을 구하는 일에 다른 사람들이 말려들게 하지 않겠다. 그 뜻이 갸륵하여 여기까지 너를 들여보내 준 것이다. 하하하하하!]
소녀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싸아.
그러다가 노란 동공을 치켜뜨며 말했다.
[뭐해? 딸은 이 앞에 있어.]
울컥!
이것이 적의 도발이란 것을 알고 있음에도…….
타닷.
단검을 허리춤에 넣은 베게누는 나침반을 손에 쥔 채, 헐레벌떡 뛰었다.
다다다다닥.
나침반의 바늘 끝은 정신없이 흔들렸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빛이 나오고 있었다.
베게누가 그 끝에 다다랐을 때…….
[꺄아아아아아악!!]
이글거리는 화염 속에서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소녀가 있었다.
“에밀리!!!!”
[오지 마! 오지 마! 아빠!!]
불길 속에서 고통에 힘겨워하면서도 에밀리는 베게누가 오는 것을 저지했다.
바로 옆에서 흉측한 인상을 한 소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노란 동공은 더욱 커졌고, 입가는 완전히 찢어져 이제 완전히 귀신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하하하! 저 아이는 사람들이 죽을 때 느끼는 감각을 모두 느끼고 있지.]
“크아아아아악! 비드낙! 죽여 버리겠어!!”
기염을 터뜨린 베게누가 남은 손으로 단검을 쥐었지만.
우드득.
“크아아아악!”
비드낙은 남은 왼손마저 부러뜨렸다.
[크하하하하하! 그래. 나는 망령의 왕, 비드낙이다. 한낮 인간 따위가 나를 저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어림없는 소리!!]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낮 망령 따위가 주제 파악도 못 하고 제멋대로 지껄이는군.”
“?!”
낮고 굵은 제삼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비드낙이 등을 돌렸고.
콰앙!
뒤를 돌아보기 무섭게 그의 얼굴에 주먹이 꽂혔다.
폭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드드득!
느닷없이 날아온 발길질에 비드낙의 목이 반 바퀴 돌아갔다.
[너, 너는?! 여, 여긴 어떻게 찾아온 거야?! 넌 누구야?!]
목이 반 바퀴 꺾인 비드낙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자신이 주관하는 이 공간에 허락받지 않은 자는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묻잖아! 넌 누구야!!!]
다시 한번 이어지는 호통에 칼은 심홍색의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닥쳐라, 망령. 누가 입을 열어도 된다고 했지?”
[…….]
가소롭다는 칼의 반응에 비드낙의 표정이 처음으로 일그러졌다.
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베게누는 믿기지 않는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너. 계약은.”
“아아, 이것 말씀입니까?”
칼은 피식 웃으며 손에 쥐고 있는 계약서를 들더니…….
쫘아아아악!
그대로 찢어버리며 말했다.
“없는 계약을 어떻게 지키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