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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56화 (56/197)

#제56화

탐색을 마친 칼 일행은 곧장 거점으로 귀환했다.

[켈켈켈, 나랑 놀자.]

거점 주변으로 데스마스크 혼령들이 맴돌고 있었지만.

스스스스.

디아나가 사전에 준비한 ‘악령 물리기’ 마법 때문에 그들은 거점 주변으로는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슈미트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너 진짜 마법사였구나.”

“그럼 지금까지 뭐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디아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슈미트를 쏘아보다 곧 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꽈악!

경갑을 착용하고 있는 칼은 지금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갈 기세였다.

그르르릉.

우려하는 디아나와 달리 바그로바는 기대가 됐는지, 같이 데려가 달라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칼의 주변을 맴돌았다.

스윽.

칼은 어김없이 발로 바그로바를 밀어냈다.

곁에서 칼을 지켜보던 베게누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자네. 정말 그 괴물을 잡으러 갈 셈인가?”

상인으로서 오랫동안 세상을 떠돈 베게누는 그간 많은 몬스터를 보아왔다.

고블린부터 시작해 오크, 오우거, 트롤까지,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고용한 용병들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처치했었다.

하지만 이번 몬스터는 그 격이 달랐다.

샤벨 타이거를 단번에 찍어 누른 정체불명의 몬스터.

베게누는 그 실체를 보지 못했지만, 칼은 그 몬스터가 자신이 타깃으로 삼은 ‘쿠라빌’이라고 확신했다.

“잡으러 갈 겁니다.”

단호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칼을 보고 베게누는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자신이 목표한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쿠라빌을 잡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이콘은 악몽을 잡아먹는 환수종의 몬스터.

페트로가 쿠라빌을 이곳에 봉인하게 된 것도 이곳이 녀석의 사냥터였기 때문이다.

봉인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다만 한 가지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는데, 바로 녀석이 이 무시무시한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대량의 먹이는 피가 되고 근육이 된다.

바이콘이라는 종의 특성상 또한 악몽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마력이 급격히 늘어났다.

‘아마 그 녀석도 바이콘이 저렇게 클 거라고 예상은 못 했겠지. 썩을 영감탱이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죽마고우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페트로가 원망스런 베게누였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고, 칼은 그걸 멀뚱히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 온 이유가 뭡니까?”

“뭐긴 뭐야. 돈 때문이지.”

“그렇다면, 이번에 크게 벌게 해드리죠.”

시종일관 같은 대답을 하는 그 고집에 웃음을 터트린 칼은 바스타드 소드를 손에 들고서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갔다.

“전부 따라 나와.”

예상치 못한 칼의 명령에 슈미트가 눈을 부릅떴다.

“응? 방해되니까. 따라 나오지 말라고 할 것 같았는데.”

“도움이 필요하거든. 디아나, 받아.”

칼은 목에 걸고 있던 마석 목걸이를 디아나에게 던졌다.

양손으로 그것을 받아든 디아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칼리언트님. 이건…….”

“네 역할이 가장 중요해.”

의미심장한 칼의 미소에 부담이 됐는지, 디아나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  *  *

악몽의 협곡에 도착한 지, 어언 하루가 지났다.

결계의 영향으로 바깥에서는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해 눈치채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이곳은 낮과 밤이 모호했다.

너무 어둡지도 않고 너무 밝지도 않는 협곡.

산맥 전체가 마치 거대한 그늘이 진 대낮과 같은 느낌이었다.

실로 을씨년스런 환경이었다.

대지에서 흘러나오는 음침한 마나에 디아나는 고인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명당이네요.”

“아무래도 너도 미친 똘끼에 감염됐나 보구나.”

슈미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살짝 삐친 디아나는 볼을 쀼루퉁 부풀리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흑마법사에게는 명당이라는 거예요. 흑마법에 필요한 마력을 충당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러냐? 어이! 영감. 너는…….”

건성건성 들은 슈미트가 이번에는 베게누에게 뭐라고 하려 할 때였다.

“쉿!”

“우웁!”

베게누가 잽싸게 입술을 손으로 꼬집는 바람에 슈미트는 괜히 헛숨만 삼켰다.

‘뭐하는 짓이야!’

그리고 화를 내려는 순간이었다.

푸르르르르.

폭포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위치. 그곳의 물을 마시고 있는 쿠라빌을 보며 입을 다물었다.

언 듯 보면 하얀 눈에 칠흑색 갈기를 휘날리는 말로 보이겠지만, 머리에는 짙은 잿빛의 거대한 양 뿔이 달려 있었다.

웅장한 그 뿔은 무엇이든 분쇄시킬 것만 같았다.

특히 날카로운 뿔 끝은 특히나 돋보였는데, 슈미트는 드워프 특유의 감각으로 그 뿔의 강도를 짐작해 내었다.

슈미트는 넋을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단련된 철과도 비슷한 강도를 지니고 있군. 하지만 샤벨 타이거를 죽인 건 저게 아닌 것 같은데…….”

슈미트가 의문을 표출한 순간.

그의 시선을 눈치챈 쿠라빌이 정확히 두 사람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들켰어요! 빨리 도망가요!”

디아나는 재빨리 미리 시전해둔 애시드 포그를 전개했다.

스스스스스.

황산이 섞인 짙은 안개가 쿠라빌의 주변을 맴돌았지만.

파앙!

갑자기 공기가 터지더니 풍압과 함께 애시드 포그가 날아갔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쿠라빌이 디아나를 뿔로 들이받으려고 했다.

“어림없다! 요것아!!!”

콰아앙!

베게누는 재빨리 디아나를 안으며 지면으로 엎어졌고, 슈미트는 뿔을 해머로 있는 힘껏 내려쳤다.

콰아아앙!

파지지직!

드워프 특유의 근력이 실린 막강한 일격.

하지만 그것에 맞은 쿠라빌의 뿔은 부러지기는커녕, 스파크가 번쩍 튀면서…….

파앗!

오히려 슈미트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해머를 놓쳐버렸다.

“크으으윽!”

손이 저릿저릿한 슈미트는 분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히이이잉.

쿠라빌은 이게 끝이냐는 듯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다가 곧 앞발을 들어 올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씨익!

“함정이란 걸 눈치챘어야지. 멍청아.”

?!

촤르르르륵!

슈미트가 입꼬리를 비틀기가 무섭게 쿠라빌의 근처에 숨겨두었던 쇠사슬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곤 그대로 뒷발을 옭아매어 끌어당겼다.

히이이이잉!

콰아앙!

앞발을 들어 올린 탓에 균형을 잃은 쿠라빌은 넘어졌고, 그대로 풍덩 빠졌다.

촤르르르륵!

칼은 쿠라빌을 속박한 사슬을 쥐고서 폭포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로 인해 사슬에 묶인 쿠라빌 역시 폭포 아래로 추락했다.

히잉!

그러다 폭포 중간 튀어나온 바위에 떨어진 쿠라빌은 곧장 몸을 일으킨 다음 발을 박찼다.

파아아앙!

쿠라빌이 거대한 물살을 가르며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자 사슬을 붙잡고 있던 칼도 딸려 올라가게 되었다.

느닷없은 물보라에 시야가 제한당한 칼은 이를 으득 갈며 소리쳤다.

“디아나!”

“네, 네!”

디아나는 칼이 건네준 결계의 마석을 발동했다.

그와 동시에…….

콰아아아앙!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던 쿠라빌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충돌하여 추락했다.

콰아앙!

즉각 몸을 일으킨 쿠라빌은 디아나 쪽을 쳐다봤다.

우우우웅.

쿠라빌을 중심으로 거대한 결계가 펼쳐져 있었다.

우득, 우드득.

몸을 일으킨 칼은 가볍게 몸을 풀며 쿠라빌에게 말했다.

“넌 지금 활동을 제한하는 결계에 걸렸어. 쿠라빌.”

칼은 쿠라빌의 가슴 부근에 새겨진 마법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 너는 100미터 밖으로 나가지 못해.”

희번득!

자신의 자유를 방해받은 것에 극도로 분노한 쿠라빌은 눈에서 붉은빛을 내뿜었다.

스릉.

그러거나 말거나 칼은 바스타드 소드를 빼 들며 말했다.

“만약 여기서 나를 이긴다면 풀어주지.”

파앙! 파앙! 파앙!

콰아아앙!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쿠라빌은 거칠게 달려들어 뿔로 칼을 들이받았다.

카아앙!

칼은 혼신의 힘을 다해 바스타드 소드로 그 일격을 맞받아쳤다.

쏴아아아아아!

그러나 쿠라빌의 속도와 힘에 밀린 칼은 그대로 쭉 밀려 결계의 끝부분까지 밀려났다.

히이이잉!

쿠라빌은 희뿌연 김을 토해내며 칼을 향해 조롱하듯 울음소리를 냈다.

‘역시 성격이 장난이 아니네.’

다 잡은 적에게 일부러 희망을 주고 도망치게 만드는 잔혹함.

도망치는 적을 기다렸다가 따라잡아 죽이는 흉악함.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 제 아래로 보는 오만함.

쿠라빌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한 칼은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고른 것 같구나.”

칼의 심홍색 눈이 번득였다.

스륵!

콰앙!

호흡을 갈무리한 그는 곧장 반격할 준비를 했다.

다시금 돌진해 오는 쿠라빌의 공격을 흘려낸 칼은 상대의 목을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치이이이익!

예상치 못한 칼의 힘에 쭉 밀려난 쿠라빌은 발에 힘을 주고서 겨우 멈춰 섰다.

치이이이이익!

다시 한번 칼과 대치한 쿠라빌의 눈빛이 진중하게 변했다.

눈앞에 있는 칼이 지금까지 만난 적들과 차원이 다름을 눈치챈 것이다.

푸르르르.

그럼에도 쿠라빌은 그래서 어쩌라는 듯이 발로 지면을 끌며 투레질을 했다.

그 고집스러운 행동에 칼은 느긋한 움직임으로 쿠라빌에게 다가갔다.

쇄액!

콰앙!

다시 한번 공기를 분쇄하는 파공성과 함께 쿠라빌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군.’

두그닥! 두그닥!

콰앙!

쿠라빌은 자신을 속박한 결계 내부를 빠르게 움직이며 칼의 시선을 어지럽혔다.

일반인의 눈으로는 움직임을 식별조차 할 수 없는 빠르기.

콰앙! 콰앙! 콰앙!

녀석은 정면으로 칼에게 공격하는 대신, 빠르게 움직이며 빈틈을 노리고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카앙! 카앙! 카앙!

칼은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며 쿠라빌의 공격에 대응했으나.

저릿저릿!

어느새 손아귀가 찢어지고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이게 약자가 강자를 상대할 때 가지는 긴장감인가?’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칼은 냉정하게 주변을 살폈다.

쿠라빌은 막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칼의 주변을 압박했다.

그 속도는 점차 빨라져서 잔상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잔상은 그 숫자를 늘려서 이제는 그 숫자가 백여 개에 달했다.

-전투에서 직감으로 느끼고 대응하는 경우가 많지. 그런데 이 직감을 단순히 의존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분석해서 이용할 수 있다면 상대가 어디를 공격할지 알 수 있어.

맥캘리가 그랜드 마스터의 검술에 대해 이야기하던 걸 떠올린 칼은 입꼬리를 쭉 올렸다. 지금이야말로 그 말을 실천할 때였다.

‘잔상의 수가 많아 보이지만, 가짜인 것도 많다. 우선 지면에 발이 닿지 않았거나 자세가 불안정한 잔상은 생략한다.’

순식간에 수많은 잔상 중 칠십여 개를 시야에서 지운 칼은 남은 잔상을 유심히 살폈다.

‘이 중에서 공격해 올 만한 궤적은 일곱.’

스스. 스스. 스스.

어느덧 남은 잔상의 수는 일곱 개뿐이었다.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대를 유도한다.’

칼은 슬그머니 몸을 움직여 일부러 빈틈을 내어주었다.

그러자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섬광이 칼의 뒤를 덮쳤다. 그 행동을 예측하고 있던 칼은 한 박자 먼저 반응하여 검을 휘둘렀다.

빠각!

한쪽 뿔이 절단된 쿠라빌이 믿기지 않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서 있는 칼이 무척이나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겨우 이 정도로 우쭐댄 건 아니겠지?”

그 도발에 넘어간 쿠라빌은 검은 질풍이 되어 다시금 칼리언트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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