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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54화 (54/197)

#제54화

고된 항해가 끝나고 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배 안에서는 무리를 이룬 선원들이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이번에 새로 합류한 칼 일행을 향하고 있었다. 낯선 이들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 명은 그들의 기대를 확실히 충족해주고 있었다.

꿀꺽! 꿀꺽!

슈미트는 목울대를 꿀렁거리며 맥주를 시원하게 원샷을 했다.

“크하하하하! 그래서 이 몸이 만든 공예품은 여느 영애라도 다 탐이 날 정도로 근사하거든. 내가 지금 요상한 녀석을 만나서 그렇지. 내 진가는 여기서 나온다고.”

그러고는 대차게 웃으며 철사를 구부려 근사한 머리띠 장식을 만들었다.

“오오!!”

“내 것도 만들어줘!”

“제 아내랑 딸 것도 만들어주면 안 되겠습니까?”

그 솜씨에 매료된 선원들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들 것도 만들어 달라고 재촉했다.

“밥 먹는 시간이야! 이것들아! 이따가 해줄게. 이따가.”

호통을 친 슈미트는 이내 선원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슈미트님은 뱃사람 체질인가 보네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사람들과 친해진 그를 보며 디아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까지 자각을 하지 못했다. 여기서 제일 시선을 끌고 있는 건 그녀 자신이라는 것을…….

어린 소년들이 일제히 그녀에게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너 귀여운데, 몇 살이야?”

“혹시 사귀는 사람 있어?”

“그, 그게…….”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대답을 해주었겠지만, 그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 디아나는 잠깐 겁을 집어먹었다.

“밥 먹어! 이것들아! 손님들한테 치근덕거리지 말고!”

결국 보다 못한 베게누가 호통을 치자…… 선원들은 자리로 돌아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베게누는 디아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거기, 너!”

“네, 네.”

평소에도 이렇게 호통치는 목소리인가?

디아나는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답했고, 베게누는 칼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시끄러워지니까 거기 있지 말고 여기서 먹어!”

“하, 하지만.”

칼의 옆자리가 부담스러웠는지, 디아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앉아.”

“네!”

그러나 칼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녀는 곧 반색하며 칼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에 베게누는 뚱한 표정으로 칼을 쳐다봤다.

“……하고 싶은 말 있습니까?”

이제 막 만난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같이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서로 알아가는 자리.

그럼에도 베게누는 거리낌 없이 칼에 대해 핀잔을 날렸다.

“페트로한테는 아주 뛰어난 인재라고 추천을 받았다네. 물론, 그 녀석을 믿기는 하지. 그래도 혹시나 싶어 조사를 해봤는데, 자네 하는 짓이 아주 막장이더구먼.”

칼에 대해 조사를 한 베게누는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칼의 행적은 그만큼 독보적이었기 때문이다.

예카테리나 2세가 추대된 학회에서 파르테스 교수들한테 막말을 날리고, 아카데미에서 검술교관의 교육 방식에 트집을 잡았으며.

심지어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강한 학생집단을 상대로 거리낌 없이 시비를 걸었다.

그뿐이면 다행이지만.

세계적으로 촉망받는 검술 대회에서 검을 집어 던지고, 주먹으로 상대를 개 패듯이 패버리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런가요?”

정작, 그 사정의 주인공은 태평하게 고기를 입에 넣고서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베게누는 끄응 소리를 내다가 이야기를 재개했다.

“……사실 될 수 있으면 소드 마스터를 고용해서 가고 싶었네.”

베게누의 기준에 칼은 한참 부족한 존재였다. 그런 눈치를 알아챈 칼이지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이 세계에서 소드 마스터는 인간을 뛰어넘은 상정 외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마왕의 마력을 개방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칼로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어째서 고용하지 못한 겁니까?”

칼의 질문에 베게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요구했기 때문이네. 그런 무리한 금액을 썼다가는 상단 운영에 피해를 입으니.”

“그럴 겁니다.”

소드 마스터는 국가에서 인정한 무력 자산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콧대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오만했다.

슈타크 가문을 예로 들면, 루드거 슈타크를 꼽을 수 있었다.

“페트로에게 도움을 요청하니, 자네를 소개해주더군. 근사한 인재가 있다고 말이야. 근데…….”

차마 말은 못 했지만, 베게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애로만 보였고 실력 역시 확인하지 못한 채로 배에 태웠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위험하다는 걸 스스로 자각하고 있으면서, 어째서 악몽의 협곡으로 가려는 겁니까?”

“흥! 당연히 돈 때문이네. 그런 미지의 장소일수록 값진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 소문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불로초라는 것도 있다더군.”

“영감님은 불로불사가 목적입니까?”

베게누는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래 살아서 뭐하겠나? 내 목적은 오직 돈! 상인은 타산적인 생물이거든.”

엄지와 검지로 둥글게 만 그는 욕망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휘익!

고개를 돌려 술상을 본 베게누는 홱 인상을 찌푸리더니 주방 쪽을 향해 소리쳤다.

“술이랑 고기를 좀 더 내와! 에잇! 제대로 먹지 못해서 내일 일을 못 하면, 내 손해가 얼마나 큰지 알아?”

그는 직접 소매를 걷어붙이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디아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탐욕이 대단한 분 맞죠?”

스스로 말하고도 확신할 수 없는지, 그녀는 칼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칼도 갈피가 잡히지 않는지, 미간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뭔가 맥락이 맞지 않단 말이지…….”

부유한 상인이 뭐가 아쉬워서 스스로 사지에 발을 들이민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  *  *

연회가 끝나고 선원들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히끅!”

장식을 만들다 지친 슈미트 역시 철사를 손에 쥔 채로 곯아떨어졌다.

“이제야 조용해지는군.”

졸리지도 않는지, 베게누는 와인을 홀짝 들이켰다.

곁에서 그를 지키고 있던 선원은 류트를 꺼내 들며 말했다.

“한 곡조 뽑을까요?”

“잔잔한 걸로 부탁하지.”

버럭 화내는 것도 지쳤는지, 베게누는 고개를 끄덕였다.

띠잉!

선원이 류트의 한 줄을 퉁기자, 매끄러운 음이 배 안을 잔잔히 울렸다.

베게누는 만족스런 웃음을 띠며 칼에게 말했다.

“저 녀석은 이 배의 유일한 음유시인이거든. 솜씨가 썩 괜찮아.”

“…….”

악기를 조정하는 그 모습을 칼은 멀뚱히 쳐다봤다.

인간과 마족의 극단적인 차이라고 할까?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은 인간은 마족을 뛰어넘는 악을 품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었다.

진정으로 악의를 가진 마족의 만행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뛰어넘었다.

칼이 생각한 마족과 인간의 차이는 바로 문화였다.

세피로트의 열매에서 태어난 마족들에게는 가족이란 개념이 없었다.

힘의 논리로 모든 게 결정되는 세계이기에 문화를 남기는 것은 의미가 없다.

만들어내는 즉시, 덧없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인간의 삶 역시 비슷하지만 그들은 갈등 속에서도 찬란한 문화를 빚어낸다.

‘이게 내가 보지 못한 가능성일 수도 있겠군.’

칼이 한창 진지한 표정을 지을 때, 음유시인의 입에서 꾀꼬리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물은커녕 비도 내리지 않는 사막.

찬란한 금빛을 품은 소년의 입에서 위대한 예언이 시작됐으니…….

그것은 무시무시한 재앙으로부터 세상을 지켜내는 영웅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개의 빛줄기에.

세상이 시선을 주목했다네.

그것은 세상을 밝힐 일곱 영웅의 탄생을 알리는 징조.

그러나 아직은 끝매듭을 짓지 못한 이야기.

혼란이 가득한 세상.

질투와 시기, 그리고 탐욕.

결집해야 될 일곱 개의 별은 서로를 잡아먹는 굴레에 갇혀있다네.

아! 시인은 통탄하도다.

누군가 그들의 싸움을 말려다오!

누군가 그들의 사명을 일깨워다오!

누군가 이 갈등의 틈새를 바늘땀 없이 촘촘히 메워다오!]

여느 음유시인처럼 그는 음률에 몸을 맡기며 연이어 노래를 불렀다.

다만, 노래를 듣던 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빌어먹을 시간 꼬맹이가.’

가사에서 언급한 찬란한 금빛의 소년이 차이트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이트가 칼에게 이 노래가 전해지도록 퍼트렸다고 봐도 무방했다.

‘영웅이 될 녀석들의 갈등을 막으라는 건가?’

“디아나.”

“네?!”

애잔한 얼굴로 노래를 감상하던 디아나는 화들짝 놀라 칼을 쳐다봤다.

“노래에서 언급한 일곱 명은 실제로 있는 녀석들인가?”

“네, 네. 아마 ‘에클라 세트’라고 생각해요.”

“에클라 세트?”

잠잠히 노래를 감상 중이던 베게누는 쯧쯧 혀를 차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에클라 세트는 폭주하는 일곱 명의 천재를 일컫는 말이다. 아직은 그 진가를 발휘하지 않고 모습을 꼼꼼히 감추고 있지만, 언젠가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세상은 혼란으로 뒤덮이겠지.”

“저렇게 노래를 만들어 부를 정도인데, 어째서 정체를 모르는 겁니까?”

“각 국가에서 철저히 그 존재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지. 모처럼 태어난 인재가 암살에 노출될 수도 있고, 또 영웅의 탄생을 반기지 않고 철저히 죽이려는 국가도 있으니까. 하지만 머잖아 녀석들은 모습을 드러낼 걸세.”

정체를 감춘 일곱 명의 천재.

‘파르테스에 있는 그 녀석도 포함되겠군.’

칼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데제스푸아르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

베게누는 말을 마친 후 착잡한 표정으로 곰방대를 질근질근 깨물었다.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데제스가 아닌 저를 배에 태우기로 한 겁니까?”

“음유시인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끈적끈적한 살기의 집합체. 데제스의 눈은 마치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곤충을 보는 것 같았지. 그런 위험한 자가 내 상선에 발을 내미는 건 사양이야.”

‘눈썰미가 보통은 아니군.’

칼은 데제스의 속내가 어떻든 별 흥미는 없지만.

대중이 보고 있는 데제스푸아르는 자비가 넘치고 우수하며 인성적으로도 본보기가 되는 훌륭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사람을 보아왔던 파르테스의 교수들조차 그렇게 여기고 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바보인 게 아니라…….

데제스가 인간을 다루는 수법이 무척이나 교활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디아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호, 혹시 칼리언트님도.”

“난 아니야.”

“……네.”

칼의 대답에 디아나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까드득, 까드득.

칼은 옆에서 뼈다귀를 깨물어 부수는 바그로바의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이상이지.”

확신에 가득 찬 발언.

“주,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말했어요. 죄송해요.”

디아나는 칼의 그릇을 잘못 쟀다고 스스로 반성하면서도 눈을 반짝였다.

“하하하하하.”

그들을 지켜보던 베게누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상인으로서 활동한 지, 어언 40년.

이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띠링.

때마침 연주도 끝난 참이라 분위기는 잠잠해졌다. 베게누는 만족스런 미소를 띠며 칼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내 무례를 용서해 주게나. 자네는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남자야.”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말뿐만이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죠.”

칼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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