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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51화 (51/197)

#제51화

“월반이라니 무슨 소리지?”

월반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칼은 미간을 좁혔다.

자신은 딱히 월반을 원하지 않았는데, 학교 측에서 선심 쓰듯이 나오니 어이가 없었다.

칼은 3년 동안 힘을 키우기 위해 이것에 온 거였다.

그런데 그 기간을 멋대로 1년을 단축한다는 것은 그다지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데제스 역시 무뚝뚝한 표정으로 루시아에게 반발했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인데, 어째서 멋대로 진행하시는 건지요?”

“호호호. 눈빛이 상당히 적대적인데.”

루시아는 싱긋 웃으며 마이페이스를 유지했다.

옆에 서 있던 헨리는 두 후배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버럭 소리쳤다.

“너 이 자식들! 어디 감히! 루시아 선배 앞에서 건방을 떨어?!”

이제 곧 3학년 실세가 되는 입장에서 한소리를 하려는 의도였지만.

“빠져.”

“조용히 해주시죠.”

“…….”

아랑곳하지 않는 두 후배의 가시 돋친 말에 당황해 꼬리를 말아버렸다.

벌써부터 관계가 역전된 모습을 본 루시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물론 당사자의 의사가 중요하겠지. 하지만 학장님이랑 면담을 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어?”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자, 자, 그러니까 일단 사이좋게 가자고.”

말에서 내린 루시아는 자연스럽게 칼과 데제스의 손을 붙들고 천천히 끌고 가려고 했지만.

파앗!

칼은 그녀의 손길을 뿌리쳤다.

“?!”

“너! 이 자식! 어디까지 건방지게 굴 참이야!”

루시아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헨리는 칼에게 버럭 소리쳤다.

칼은 미간을 지그시 좁히며 루시아에게 말했다.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신경 끄시고.”

스윽.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헨리를 쳐다봤다.

“거기 너.”

“너, 너?!”

상상도 하지 못한 호칭에 헨리는 발끈했다.

쿠구구구구구.

그 순간 칼은 전신에서 살기를 발산하며 심홍의 눈으로 그를 쏘아봤다.

히이이이이잉!

“어? 어? 왜 이래?!”

“워! 워!”

그 기백에 놀란 말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기수들은 말의 고삐를 끌어당기며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꿀꺽!

‘우, 우연이겠지.’

헨리는 지금의 현상이 칼이 일으킨 사태라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는지, 목구멍으로 고인 침을 삼켜 넘겼다.

“실세든 뭐든 난 상관하지 않아. 다만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이번에는 어디까지나 저 여자의 체면을 봐서 넘어가 주는 것뿐이야.”

“……저 여자는 너무 정 없는 호칭이네.”

루시아 역시 회장님이나 선배 같은 칭호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저 여자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기분이 참 묘했다.

할 말을 마친 칼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

헨리가 아직까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자, 데제스도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선배.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싸아.

입은 웃고 있는데, 눈빛은 묘하게 차가웠다.

데제스 역시 별 흥미가 없는지, 곧 헨리에게서 등을 돌렸다.

주륵.

그제야 정신을 차린 헨리의 등에는 식은땀이 흥건히 흐르고 있었다.

쿵.

두 사람의 기세를 감당하지 못한 헨리는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  *  *

파르테스의 학장실.

월반과 관련된 면담은 제법 오래 걸렸다.

먼저 면담을 받는 이는 데제스.

칼은 로웰과 모리스 그리고 루시아와 함께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째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거지.”

찌릿!

칼은 푸념을 내뱉으며 루시아를 노려봤다.

“그래도 두 살 많은 누나인데, 그렇게 살벌하게 노려볼 것까지야…….”

날카로운 시선이 은근히 상처가 됐는지, 루시아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 순서도 그녀가 정한 것이 아니라 학장 페트로가 정한 것이기 때문에 내심 억울하기도 했다.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때, 가만히 팔짱을 끼고 대기하고 있던 모리스가 루시아에게 질문을 건넸다.

“뭔데?”

“월반 이야기를 꺼낸 건 회장님인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가 궁금하네요.”

“흐음, 리들러 교수님이 회의 내용을 알려줬나 보네. 비밀이라고 해봤자 아끼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니까.”

“…….”

정곡을 찌르는 말에 모리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걸 본 루시아는 모른 척하며 입을 열었다. 회의 내용을 알려주었다고 해서, 교수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데제스랑 칼리언트가 유례없는 인재라서 그래. 주변 사람이랑 격차가 너무 크다는 거지.”

“하지만 본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을 추진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요? 선 결정 후 조치는 파르테스의 방식과 맞지 않습니다.”

이번에 이의를 제기한 이는 로웰이었다.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했지만, 이 부분만큼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자 더 이상 표정을 숨길 수 없었는지, 루시아는 냉철한 눈으로 칼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야. 이 괴물들을 방치했다가는 이 학교에 악영향을 끼치니까 그러는 거지.”

“…….”

갑작스럽게 바뀐 루시아의 분위기에 모리스와 로웰은 적응하지 못했다.

“데제스의 목적은 재학하는 동안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는 거겠지? 칼리언트는 목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행동 방식이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봐.”

“그게 무슨…….”

“말했잖아. 나는 이 두 괴물이 학교를 망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너희도 알게 모르게 생각하고 있을걸. 이 두 사람이 없어야 학교가 조용해진다는 걸.”

“…….”

“…….”

이번에는 로웰과 모리스가 말문을 잃었다.

표현 방식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데제스와 칼리언트가 학교에 끼치는 영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 자체는 부정할 수 없었다.

“시답지 않기는.”

칼은 별 흥미가 없는지,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

나름 욕먹는 걸 각오하고 말한 루시아는 무척이나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 말에 서운하거나 하진 않아?”

칼은 팔짱을 끼며 냉정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가 나한테 뭔데?”

“어? 어?”

직설적인 질문에 루시아가 말을 더듬으며 황급히 답을 찾으려고 할 때, 칼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다음을 생각하면 될 뿐이지. 신경질 낼 이유도 없어. 무엇보다 넌 내년에 없는 사람이잖아.”

“없다기보다 졸업이라고 해주지 않을래?”

칼의 냉정한 말투에 루시아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내가 이 면담을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냐는 거야.”

“너 진짜 오만하구나.”

끼익!

바로 그때 학장실의 문이 열리며 데제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자. 모리스.”

“……면담…… 아무것도 아니야.”

모리스는 조용히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 면담 결과를 물어보려고 하다가 이내 질문을 삼켰다.

데제스는 피식 웃으며 한쪽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정도는 물어도 상관없어. 참고로 난 월반하기로 결정했어. 누군가의 선배가 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서 말이지.”

그 시선은 은근슬쩍 칼을 향하고 있었다.

칼은 신경도 쓰지 않고 루시아를 보며 말했다.

“내 차례 맞지?”

“으, 응.”

자기 차례를 확인한 칼은 데제스를 지나서 학장실로 들어갔다.

*  *  *

파르테스의 학장실.

칼의 눈앞에는 ‘백색의 마도사’라고 불리는 세계가 낳은 걸출한 마법사가 앉아 있었다.

이름은 페트로 스타니슬라프.

파르테스가 추구하는 학문의 방향은 모두 이 남자에게서 비롯된다.

결정적으로 칼과 데제스를 월반시키기로 한 이도 바로 이 남자였다.

“아버지를 닮아서 무척이나 듬직하군.”

안부 인사를 하는 페트로에게 칼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데제스는 어떤 조건으로 월반을 승낙한 겁니까?”

다소 무례한 태도라고 지적할 만도 했지만, 페트로는 그 또한 칼만의 매력이라고 여기며 입을 열었다.

“알려줄 수 없네. 아카데미 학장이 학생을 편애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넬 여기로 부른 건 어디까지나 월반에 대한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어서네.”

“월반을 거부하겠습니다.”

망설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답변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천천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페트로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하하, 그 정도의 실력을 갖췄으면서도 이 학교에 오래 남아 있고 싶은 이유가 뭔가?”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도직입적인 대답에 페트로는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나는 자네에게 어떤 제안을 할 걸세. 그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월반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하지만 자네가 싫다고 해서 다른 학생들 옆에 자네를 오래 놔둘 수 없다네.”

칼은 페트로가 자신과 데제스가 학교에 영향력을 끼치는 걸 경계하고 있음을 눈치챘다.

‘딱히 눈에 띄는 짓은 안 한 것 같은데.’

칼은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제멋대로 행동을 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죠,”

“난 자네의 아버지나 데제스의 이력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네. 그리고 자네가 위험한 지역의 사령관으로 발령 났다는 것도 알고 있지.”

“…….”

페트로가 언급한 곳이 알테어라는 것을 깨달은 칼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페트로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힘이 부족해서겠지. 험악한 알테어에서 살아나갈 힘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암살자의 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힘이…….”

생각보다 자신의 내막을 자세히 알고 있는 모습에 칼은 미간을 지그시 좁혔다.

‘보통 영감이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능구렁이일 줄이야.’

페트로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 역시 파르테스가 자네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강화하는 데 안성맞춤인 곳이라고 생각하네. 그러면 이건 어떤가? 자네가 졸업한 다음 1년 동안, 교관으로 고용하겠네. 급여는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페트로가 깃펜으로 써 내린 한 달 급여는 무려 60골드.

중상층 서민이 벌어들이는 급여의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배우는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건 한 과목만 하면 되니, 시간이 꽤 많이 남을 것이다. 그 시간을 활용한다면 학생으로 지내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스윽.

천천히 시선을 올리니, 얄궂게 입꼬리를 올린 페트로가 보였다.

‘이 뒤에 제시할 패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쉽게 낚여줄 수는 없지.’

칼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페트로에게 조건을 내밀었다.

“교관 제안은 사양하겠습니다. 남은 1년의 유예 기간은 제가 아버지와 협상을 하면 될 일이니까요.”

“흐음. 그것도 그렇군. 그럼 자네가 원하는 건 뭔가?”

명확하게 선을 긋는 태도에 페트로는 기대가 된다는 눈빛으로 칼을 쳐다봤다.

“지금보다 더 강해지는 방법을 제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역시 그건가.”

페트로는 미리 준비라도 한 듯 무언가가 그려진 그림을 내주었다.

진한 검은색 갈기에 몸에는 기하학적인 문신이 있는 이각수의 그림.

언뜻 보면, 유니콘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게 뭡니까?”

“바이콘이라고 불리는 환수종이네. 학자들이 연구하고 싶어 안달이 난 녀석이지.”

“그런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이 녀석의 존재 자체입니다.”

“역시 자네는 눈치가 빨라.”

칼의 지적에 페트로는 그림 속 존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놈은 바이콘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녀석이지. 이름은 쿠라빌, 지금까지 아무도 등에 태우지 않은 독한 녀석이라네. 팬텀 스티드와 혼혈이라 몸을 은폐하는 능력이 있어서 잡느라 꽤나 애먹은 기억이 있다네.”

“……직접 잡으신 겁니까?”

페트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본격적인 조건을 내밀었다.

“이 녀석을 상대하다 보면, 자네에게 부족한 점을 분명 메울 수 있을 거라네. 하나 우습게 보지는 말게. 여타의 몬스터들이나 환수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니.”

“그 말씀은…….”

“쿠라빌은 내가 자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비장의 패지. 녀석이 봉인된 장소와 봉인을 해방하는 방법을 일러주겠네. 굽든 삶든 사로잡든 알아서 해.”

“…….”

설마 환수종을 협상 패로 내놓을지는 꿈에도 몰랐던 칼은 잠시 당황했다.

페트로는 느긋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자네를 위해 준비한 월반 시험이기도 하다네. 통과하지 못한다면 느긋하게 파르테스에서 학교생활을 즐기면 되고. 허허허.”

두둑.

뼈가 실린 도발에 칼의 이마에는 핏대가 두드러졌다.

‘이 능구렁이 영감탱이가!’

칼은 그제야 데제스가 페트로의 제안을 승낙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월반을 거부하는 학생에게 혹할 수밖에 없는 제안을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도록 도발을 한다.

여기서 거부하면 자존심에 금이 가게 된다.

“월반하겠습니다.”

그것만큼은 결단코 용납할 수 없었기에, 칼은 제안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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