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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50화 (50/197)

#제50화

시험이 끝나고 맞이한 휴일.

파르테스를 빠져나온 칼이 도착한 곳은 허름한 2층 저택이었다.

외부 벽은 온통 낙서로 도배되어 있었고, 집안에 들어가니 천장에는 거미줄이 져 있는 데다…….

먼지가 너무나 많이 쌓여 바닥에 발자국이 남을 정도였다.

‘마왕 체면이 있지. 갱생 때려치울까.’

마음 같아서는 다 부숴 버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부숴버리기는커녕 깨끗이 청소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칼. 요령 피우지 마.”

그리고 그런 칼을 돕기 위해 릴리까지 손수 나선 참이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머리에 두건까지 쓰고 있는 모습은 무척이나 의욕이 가득해 보였다.

청소의 시작은 일단 환기부터였다.

릴리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에휴.”

칼 역시 별수 없이 빗자루를 들었다.

“카, 칼리언트님까지 이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때마침 시녀복을 갖춰 입은 디아나가 다가와 재빨리 빗자루를 붙들었다.

“여긴 내 집인데?”

칼의 반문에 디아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 그래도 여기는 앞으로 저랑 슈미트님이 머무는 곳이 될 거잖아요. 이, 이렇게 휴일인데 오셔서 청소까지 해주시다니…….”

괜히 미안한 마음에 디아나는 고개를 수그렸다.

“이런 싸구려 집에서 머물게 한 내 잘못이 크지.”

과하게 자신을 낮추는 그녀의 태도에 칼은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슈타크 가문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주고는 있지만. 가문 내에서 입지가 좁은 만큼 펑펑 쓸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은 슈미트와 디아나를 계속 좁은 곳에서 생활하게 둘 수도 없었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어디 있는데?”

칼이 언급한 그 녀석이 슈미트라는 것을 알아챈 디아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저, 정원 쪽이요.”

“거기도 뭐 가시넝쿨이 많기는 한데, 그거 치우려고 간 건가?”

홱!

디아나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칼의 시선을 회피했다.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 칼은…….

끼익!

그대로 반대편에 있는 창문을 열어젖혀 정원 쪽을 살폈다.

1미터 크기의 아름다운 목재 집 앞에서 슈미트가 망치를 빙그르르 돌리며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크하하하하하! 이것이 이 슈미트님이 진정으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지. 어떠냐, 바바. 새로 만든 집은?”

바그로바는 정말 신이 났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집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귀여워.”

그 모습을 보며 릴리는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빠직!

반면, 칼의 이마에는 핏대가 솟구쳤다.

“네가 살 집이나 챙겨!!!”

잠시 후.

뽀득, 뽀득, 뽀드득.

뒤늦게 청소에 가담한 슈미트는 집안 곳곳 광이 날 정도로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칼에게 맞은 머리에는 혹이 돋아있었고, 얼굴은 불만으로 가득해 보였다.

“손이 제법 맵구나. 고약한 놈.”

“시끄러워.”

서로 투덕거리면서도 부지런히 움직여서 청소를 마무리했다.

“후우. 제법 깨끗한데.”

릴리는 깨끗이 정돈된 방을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침대 같은 가구만 들이면 되겠네.”

“아, 그거라면 필요 없어. 반나절이면 뚝딱 만들 수 있으니까.”

슈미트는 벌써부터 의욕이 가득한지, 공구를 꺼내 들며 씩 웃었다.

“드워프는 대장장이 일이 주업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건 아닌가 보네요?”

릴리의 질문에 슈미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래 내 전문 분야는 보석 세공, 수공예품이랑 장식품 등을 만드는 거거든.”

“그래서 검을 더럽게 못 만드는 거였군.”

“네가 엉망진창으로 쓰는 거잖아!! 무슨 수수깡으로 만든 검을 준 것도 아닌데, 왜 허구한 날 부러뜨리고 오는 거야?”

슈미트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버럭 반박했다.

“좀 더 강했으면 좋겠다니까.”

칼은 과격한 전투 속에서도 멀쩡한 내구성과 탄력을 지닌 검을 상상했다.

만약 그것을 손에 쥔다면, 그랜드 마스터의 검술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칼의 마음을 읽었는지, 슈미트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반드시 스승님의 검을 뛰어넘은 걸 만들어 그 손에 쥐여줄 테니.”

“만 년 걸리려나?”

“드워프도 만 년은 못 살아!! 반년이다. 반년 안에 반드시 만들 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슈미트의 선언에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지.”

“어째 이거 내가 당한 것 같은데.”

슈미트는 얼음이 두둥실 떠 있는 맥주를 홀짝 들이켜다가 릴리를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

“도대체 이놈이 어디가 좋다고 사귀는 거야?”

“쿨럭, 쿨럭.”

릴리는 갑작스러운 물음에 사레가 들리는 바람에 붉어진 얼굴로 기침을 했다.

“사, 사귀다니요? 그, 그런 거 아니에요.”

릴리는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갸르릉.

반면 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바그로바의 배를 문지르고 있었다.

“…….”

릴리는 어째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저나, 두 분은 칼이랑 어떤 관계세요?”

릴리는 디아나와 슈미트를 번갈아 쳐다보며 아까부터 간직했던 호기심을 드러냈다.

두 사람 대신 칼이 고심하다 적절한 대답을 내뱉었다.

“월척 두 마리.”

“언제까지 물고기 취급하는 거냐! 좋은 말 많잖아! 위대한 드워프님이라던가, 여동생같이 귀여운 마법사라던가.”

“귀, 귀엽지 않아요. 자중해주세요. 슈미트님!”

노골적인 발언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디아나는 다급히 슈미트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만류했다.

“그럼 어떤 관계인데?”

릴리가 디아나에게 질문을 건넸다.

질문을 받은 디아나는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저희는 칼리언트 님의 부하입니다. 칼리언트님이 어디를 가더라도 곁에서 보필할 겁니다.”

“부하는 누가 부…… 우웁!!”

디아나는 반발하려는 슈미트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 조금 무서운 성격일지도 모르겠는데.’

잠시 당황했던 릴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졸업한 후에도 칼이랑 함께 가는 거구나. 칼, 나도 따라갈까?”

그러다 갑자기 장난스럽게 웃으며 넌지시 칼을 쳐다봤다.

“지옥행이니까 그만둬. 애초에 데리고 갈 생각도 없고.”

“칫! 나중에 다리를 붙들면서 사정해도 내가 안 가줄 거다. 뭐.”

딱 잘라 거절하는 칼의 답변에 서운한 마음이 든 릴리는 볼을 부풀렸다.

바로 그때.

귓가로 날갯짓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르릉!

바그로바는 소리를 감지했는지 벌떡 일어서며 털을 꼿꼿이 세우기 시작했다.

스윽.

칼이 창문 쪽을 쳐다보니 창틀에 날렵하게 생긴 매가 앉아 있었다.

“저건 뭐냐?”

“레인이 훈련시키고 있는 매야. 급한 용무가 있으면 편지를 전달하라고 했거든. 요즘은 레인이 저 녀석한테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서 바그로바가 마음에 들지 않나 봐.”

“……거기까지 내 알 바 아니고.”

슈미트가 매의 발에 걸려있는 쪽지를 풀자 용무를 마친 매는 다시 하늘로 활강했다.

“자.”

슈미트가 건넨 쪽지를 받아든 칼은 그것을 펼쳐서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가만히 쪽지에 적힌 글씨를 읽던 칼은…….

“푸훗!”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 어떤 내용인데?”

모두가 호기심은 자연히 쪽지의 내용에 집중됐고, 칼은 릴리에게 쪽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2학년 선배들께서 자기들이 취미로 하는 마상창 시합에 초대한다는데.”

“가, 갑자기 왜?”

릴리는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한 해가 지난다. 그러면 2학년은 3학년이 되어 파르테스의 전반적인 실세가 될 것이다.

‘찍힐 만한 짓은…… 많이 하긴 했지.’

그동안 칼의 제멋대로인 행동을 생각하면, 당연히 경계를 할 만했다.

“어째 선배들이 불쌍해지네.”

하지만 어째서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머릿속으로는 칼에게 철저하게 깨지는 선배들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 오라고 하는데?”

“내일.”

칼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지, 입꼬리를 올렸다.

마상창 시합이란 대목에서 흥분한 것은 슈미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콧김을 내뿜으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마상창 만들어줄까? 다 꿰뚫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걸로 하나 만들어주지.”

“가구나 만들어.”

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바로 그때, 릴리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근데 말이야. 칼.”

“응?”

“너, 탈 수 있는 말은 있어?”

“없는데.”

“…….”

뒤늦게 드러난 중요한 사실에 자리에 모여 있던 이들이 일순간 말문을 잃었다.

*  *  *

다시금 하루가 지났다.

로웰과 함께 칼이 향한 곳은 학내에 있는 거대한 결투장이었다.

이곳은 연습용 마상창과 말들을 이용한 시합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현재 파르테스에서는 마상창 시합이 검술 대회보다 인기였다.

다만 시합 특성상 부상이 잦아, 숙련된 기마술과 창술을 익힌 학생만이 시합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연습을 못하게 하진 않았다.

오늘 모인 것 역시 어디까지나 동아리 활동의 일환이었다.

결투장에 들어서니 다수의 말들이 경기장 곳곳을 질주하는 모습이 보였다.

말 위에 탑승한 학생들은 모두 칼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로 내년이 되면 파르테스의 실세가 될 이들이었다.

“칼. 데제스도 여기 왔는데.”

칼이 들어온 입구의 맞은편에 있는 입구에서 데제스가 모리스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데제스는 자기보다 높은 학년도 굴복시킨 건가?”

칼의 질문에 로웰은 화들짝 놀라 검지를 입술에 갖다 붙이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선배들도 자존심이 완강해서 데제스랑 마주칠 일은 잘 없었어.”

히이이잉!

바로 그때, 한 청년이 투구에 달린 갈색의 갈기를 휘날리며 관람석에 있던 칼을 향해 다가왔다.

투구를 벗은 그는 칼에게 인사를 건넸다.

“칼리언트지? 소문으로는 익히 들었다. 내 이름은 헨리. 거기 데제스도 이쪽으로 와주지 않겠나?”

데제스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칼 쪽으로 다가왔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데제스는 적당히 예의를 차리며 칼과 헨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말에서 내린 헨리는 차가운 미소를 띠며 칼과 데제스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나는 내년에 파르테스의 실세가 될 사람이야. 물론 후배들과도 친교를 쌓을 참이고.”

“그래서 뭐?”

칼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주변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째서인지 마상창을 들고서 연습하고 있던 선배들의 시선이 데제스와 칼에게 몰려 있었다.

주륵.

숨이 가쁠 정도의 중압감에 로웰은 식은땀을 흘렸다.

어느새 헨리의 눈꼬리가 매섭게 올라가 있었다.

“근데 말이야. 요즘 후배란 것들이 싸가지가 없어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특히 너희들 말이야.”

그의 시선은 정확히 칼과 데제스를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허리를 굽혀주면 넘어가 줄 참이야.”

‘기선 제압을 하려고 초대한 거였어.’

로웰은 그제야 헨리가 무슨 의도로 이 둘을 초대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헨리는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칼과 데제스에게 말이다.

여기서 이 둘을 짓밟지 않는다면, 자신의 권위가 추락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유치해 보이지만.

이것이 차후 귀족 사회에 진출할 때, 어마어마한 차이를 준다. 따라서 헨리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둘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꺼져.”

“거절하겠습니다.”

울컥!

발끈한 헨리는 둘을 향해 마상창을 휘둘렀고.

카앙!

때마침 말을 타고 온 학생이 헨리의 창을 튕겨냈다.

“?!”

깜작 놀란 헨리가 눈을 부릅뜨자 말에 탄 여인이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함부로 사람에게 마상창을 휘두르면 안 되지. 헨리.”

“크윽!”

그녀의 기세에 헨리는 잇몸을 드러내며 치가 떨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여인이 투구를 벗자 환한 빛을 발산하는 금발이 흘러내렸다.

“만나서 반가워. 파르테스의 우등생들은 예상보다 훨씬 거칠고 잘생겼네.”

그녀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내 이름은 루시아. 파르테스의 학생회장이야. 아무래도 너희 소식 때문에 헨리가 많이 긴장한 것 같으니까 이해해줘.”

“어떤 소문을 말하는 겁니까?”

데제스의 질문에 루시아는 검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칼리언트, 데제스, 너희는 한 학년 월반하게 될 거야. 내년부터는 헨리와 같은 학년이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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