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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48화 (48/197)

#제48화

쏴아아아아!

강렬한 폭발과 함께 격류에 휘말린 성기사들은 모두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꼬르륵.

반면 칼은 숨을 참은 채로 팔다리를 휘저으며 수면 위로 향하고 있었다.

‘오닉스 스퀘어 심법은 오묘하군.’

보통이라면 호흡곤란으로 죽는 게 당연했다.

꿈틀.

하나, 호흡을 갈무리하며 심법을 유지하니…….

어느 정도 물속에서 숨을 참고 버티는 게 가능했다.

“푸하!”

그리고 마침내 칼이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민 순간이었다.

“이 빌어먹을 이교도 자식! 존재해서는 안 될 악마 자식이!!”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는 배의 파편 위에서 메이스를 든 베젤이 칼의 머리를 향해 그것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썩어도 주교라는 거군.’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칼은 재빨리 바스타드 소드로 맞받아쳤다.

콰아앙!

하지만 신성력이 깃든 공격이 엄청났기에 완전히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꼬르르륵!

상처를 입은 칼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다시 바닷속에 가라앉았지만.

오히려 이것을 계기로 물속에서 움직이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렇게 움직이는 거군.’

콰앙!

발밑으로 마력을 발산하면서 생긴 추진력으로 자신의 몸을 밀어낸 칼은 단숨에 해면 위로 솟구쳐서 베젤의 맞은편에 떠 있는 파편에 올라탔다.

빠득!!!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베젤은 이빨을 갈았다.

이단과의 싸움에 이골이 난 자신과 부하들이었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일을 겪고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푸하. 후우, 이제야 살만하군.”

한편 칼은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고 있었다.

베젤은 그런 칼을 보며 물었다.

“……정체가 뭐지? 네놈은 결코 존재해서는 안 될 악, 절대악이다.”

칼은 피식 웃으며 그의 말에 반박했다.

“비열한 선보다 나아.”

“비열하다고? 뭐가 비열하다는 거지?”

베젤은 기가 막혔는지 폐부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칼은 하나씩 그들의 문제를 꼬집었다.

“무고한 이를 마녀로 삼아 죽인 점.”

“이교도를 배척하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일이다.”

“죄도 없는 사람을 끌어들여 저주를 전파한 점.”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 또한 당연한 법, 신께서 감싸줄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진심으로 한마디 했다.

“너희 신은 병신이냐?”

울컥!

“이 배은망덕한 이교도가!!”

진심으로 분노한 베젤이 배의 파편을 디디며 쾌속으로 칼에게 접근했다.

놀랍도록 빠르고 안정적인 움직임이었지만.

칼의 감각은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예리해져 있었다.

‘보인다.’

전생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약자에서 강자로 진화하는 단계.

타닷.

베젤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부터 호흡, 눈동자의 움직임 등 모든 움직임이 예측되었다.

“으아아아아!!!”

순식간에 칼에게 도달한 베젤은 재빨리 메이스를 휘둘렀다.

‘건방진 놈! 감히! 감히!’

베젤은 머릿속으로 칼의 머리를 으깨버리는 생각을 하느라고 미묘하게 들리는 소리를 인식하지 못했다.

서걱!

그것은 무언가가 검에 베이는 소리였다.

“어?”

광기로 충만하던 베젤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칼의 머리를 향해 휘두르던 메이스가 손목과 함께 빙그르르 회전하더니 바닷물에 풍덩 빠져버렸다.

쏴아아아.

“크아아아아아악!!!”

피가 쏟아져 나오는 절단면을 부여잡은 베젤은 어떻게든 지혈을 하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칼은 바로 뒤에 있던 닻에 달린 사슬을 들어 베젤의 몸을 둘둘 감아버렸다.

“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깜짝 놀란 베젤은 기도를 멈추고 다급하게 칼을 쳐다봤다.

“네, 네놈! 이러고도 네놈이 용서받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정녕, 네놈의 업보가 사라질 것 같으냐!!!”

‘죽고 싶지 않아!’라는 말을 가까스로 포장한 한마디였지만.

칼은 드물게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갱생 중이기는 한데, 아마 불가능하겠지.”

“회, 회개 중이라면 내가 도와주겠다. 난 산크투아리움의 주교. 나라면 너의 업보를…….”

“필요 없어. 내가 갱생하려는 건, 다시 한번 그 빌어먹을 꼬맹이와 결판을 내기 위해서니까.”

지극히 이기적이면서도 오만한 이유.

“아, 그리고 너를 끝장내는 것도 내 갱생의 일환이야.”

칼은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닻을 들었다.

“그, 그만둬!!!”

베젤은 마지막까지 만류했지만…….

풍덩!

칼은 자비 없이 닻을 바다로 집어 던졌다.

촤르르륵.

사슬 역시 닻을 따라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네놈! 네놈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악마 자식!!”

베젤은 절규하며 힘껏 칼을 비난했다.

촤르르르륵.

그러나 이내 쇠사슬이 곧 팽팽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다급하게 몸을 엎드려 몸을 지탱했다.

가까스로 몸이 바다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베젤이 서 있던 배의 파편이 조금씩 해면으로 가라앉으며 물이 쏟아졌다.

“으아아악! 안 돼! 제발 이러지 마!!!”

베젤은 갓 잡은 물고기처럼 펄떡이며 칼을 쳐다봤다.

코와 입으로 점차 바닷물이 들어왔다. 칼은 그런 베젤을 보며 말했다.

“아마 너한테 당하던 마녀들도 이런 식으로 빌었겠지. 그때 넌 어떡했지?”

“……?!”

칼의 물음에 베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고.

이내 버티지 못하고 바닷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칼은 무척이나 허무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아직도 갱생 중이라니. 참나, 차라리 전 세계랑 전쟁을 벌이라는 사명을 주지. 빌어먹을 시간 꼬맹이.”

머릿속으로 차이트를 떠올린 칼은 다시 한번 발끈하다가 조류에 밀려 점차 멀어져 가는 이실리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꽤 멀겠군.”

쏴아아아아.

그 한마디를 내뱉은 순간 거대한 파도가 칼을 휩쓸어버렸다.

*  *  *

칼과 슈미트가 처음 만난 해변 동굴.

타닥, 타닥.

모닥불 앞에서 디아나는 슈미트와 함께 생선을 굽고 있었다.

“이런 말을 드려서 죄송하지만,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요?”

디아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슈미트의 눈치를 살폈다.

“앗, 뜨거!”

생선을 뜯어 먹던 슈미트는 입 밖으로 뜨거운 김을 뿜다가 가까스로 그것을 꿀꺽 삼켜 넘겼다.

“그 녀석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한다면 반드시 하는 놈이라 확실히 끝장내고 올 테니까.”

“어떻게 그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어요?”

상대는 무려 산크투아리움의 이단 심문과 심판을 집행하는 성기사단.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칼이 상대하기에는 버거웠다.

적어도 디아나의 생각하기에는 말이다.

“이해를 포기하는 게 더 빨라. 네가 봤을 때, 그놈은 어떤 인상이더냐?”

디아나는 조금 부끄러웠는지,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강하고 상냥한 분이요.”

“그러냐? 난 폭군에 오만한 망나니, 나르시시스트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 잘 봤네.”

“커헉!”

바로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한마디에 슈미트는 씹고 있던 음식물이 목구멍에 걸려 고역을 치렀다.

“카, 칼리언트님!”

디아나는 얼굴을 환히 밝히며 칼을 쳐다봤다.

그곳에서는 상반신을 드러낸 칼이 물에 잔뜩 젖은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 피곤해.”

단순히 피곤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이실리아까지 헤엄쳐 오느라고 밤을 꼴딱 새운 덕분에 팔다리는 근육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은 칼의 정신력 덕분이었다.

칼은 앞머리를 쓸어올리며 모닥불 근처에 앉았다.

따뜻한 온기를 쬐니 성난 마음과 지독한 피로감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슈미트는 그런 칼의 눈치를 보며 질문을 건넸다.

“티미드랑 성기사단은 어떻게 됐냐?”

“몰살시켰는데.”

“…….”

너무나 태연자약하게 엄청난 말을 하는 바람에 슈미트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자 디아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칼리언트님.”

칸투버그와 티미드.

반드시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던 숙적이 사라졌다.

그리고 목표가 사라진 지금, 그녀의 마음은 황량해졌다.

갈까마귀의 부리는 성기사단의 손에 무참하게 살해당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삶의 목적을 잃은 디아나의 눈은 초점이 점차 흐려졌다.

그런 그녀를 흘깃 바라보던 칼은 슈미트를 보며 말했다.

“슈미트. 당분간 이 녀석은 네가 맡는다. 돈이 부족하다면 말해라. 얼마든지 지원하지.”

“네?”

“뭐?”

예상치 못한 칼의 발언에 디아나와 슈미트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칼은 뭘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부터 내 부하로 쓸 생각이었어. 마법 스크롤 제작부터 시작해서 여러 방면으로 재능이 출중하잖아.”

디아나, 그녀의 능력은 죽음의 경계선이라고 불리는 알테어에서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성기사단을 박살 낸 마법 스크롤도 사실 디아나가 제작한 것이었다.

당황한 디아나는 재빨리 양손을 저었다.

“그, 그럴 수 없어요.”

“조, 좋은 기회인데, 왜?”

슈미트가 질책하듯 디아나에게 따지자, 그녀는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

“저, 전 사회에서 외면을 받는 흑마법사인걸요. 제가 살아갈 수 있는 땅은 이 세상에 없어요.”

“…….”

그녀의 말에 슈미트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칼은 그런 그녀를 싸늘한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일전에 말하지 않았나?”

“네? 어, 어떤 거였죠? 죄, 죄송해요!!”

그 눈빛에 겁을 집어먹은 디아나는 사과를 건넸다. 그러자 칼은 일전에 그녀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해주었다.

“시키면 바로 대답하고 요구 따위는 하지 마.”

“?!”

그 말을 떠올린 디아나가 휘둥그레 눈을 뜨자, 칼은 나지막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닥치고 따라와.”

울컥!

그 순간, 견고하게 세웠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다.

어떻게든 혼자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무색하게 칼은 그녀의 고민을 바보 같은 것이라고 치부해 버렸다.

배려 없는 권유와 타인의 의사 따위는 존중하지 않는 폭거.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말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뚝. 뚝.

어느새 디아나의 뺨에는 구슬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아 디아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답했다.

“디아나 모르프 베네피카. 주군의 명을 받듭니다.”

*  *  *

산크투아리움의 성기사단이 탄 배가 침몰한 사건의 진상 조사 때문에 파르테스의 시험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그러다 열흘이 지난 후에야 마침내 시험 날이 다가왔다.

뚜벅뚜벅.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데제스는 차가우면서도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스첼레투스 학파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양손으로 안고 있는 릴리와 마주치고는 발을 멈췄다.

“건강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

데제스는 상쾌하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릴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데제스.”

딱히 차갑게 대할 이유는 없었기에 릴리는 인사를 받아주었다.

“…….”

그 반응에 데제스는 조금 당황했다.

평소에 보았던 그녀는 늘 그를 시기와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며 경계했기 때문이다.

“여유가 느껴지는군.”

“여유는 무슨.”

릴리는 피식 웃어 보였다.

저벅저벅.

바로 그때, 칼이 로웰과 함께 데제스 무리를 스쳐 지나갔다.

칼은 평소와 같이 무뚝뚝한 표정이었고, 데제스는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신 로웰과 모리스 등이 서로 눈을 부딪치며 으르렁거렸다.

“같이 가, 칼.”

릴리는 다급히 칼을 쫓아갔다.

“가끔은 발을 맞춰주라고!”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타박에 칼은 끄응 소리를 내며 걸음 속도를 늦췄다.

그러고는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와 눈을 맞췄다.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그 시간이 은근히 길어지자, 당황한 릴리는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툭.

칼은 그녀의 머리를 손등으로 툭 치며 말했다.

“아프지 마라.”

그러고는 다시 무덤덤하게 걸어갔다.

“으윽! 바보 취급이나 하고.”

“나보다 바보 맞잖아.”

“이번에는 내가 이길 거라고.”

부끄러웠는지 릴리는 얼굴을 발그레 붉혔다.

바로 뒤에서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데제스는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저 녀석을 경쟁자로 보고 있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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