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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47화 (47/197)

#제47화

“나는 규율을 중히 여기는 자. 천칭 한가운데에서 결코 헛된 것에 눈을 돌리지 않을지니.

사명에 충실한 종으로서.

죄의 무게를 모르는 헛된 것을 이 땅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이 한목숨, 기꺼이 내던지리라.”

베젤의 기도는 한밤중까지 쭉 이루어졌다.

마치 떨어진 물방울이 호수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처럼, 그의 전신에 감돌던 신성력이 선박 전체로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그것은 기도문이자 주변의 아군을 가호하는 신성 마법, 살바티오.

주교급 이상이 펼칠 수 있는 신성 마법으로 이 가호 아래에서 성기사들은 신성력이 증폭된다.

의도적으로 사용한 건 아니고, 그저 습관처럼 행하는 기도에서부터 발현된 것이었다.

하나, 바로 베젤의 바로 옆에 서 있는 티미드에게는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상반된 속성은 서로를 지우기 위해 싸우기 마련이다.

베젤에 밑에 있으나 티미드의 근본은 흑마법사.

그러다 보니 그의 체내에서는 두 기운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베젤의 신성력이 워낙 막강한 바람에 티미드는 온몸이 갈가리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미쳐버리겠군.’

아무리 부하로 대해주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설마 이 정도로 공기 취급을 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콰앙! 콰앙!

[크아아악!]

[적이다! 빨리 잡아!]

바로 그때, 바깥에서 들려오는 묘한 비명소리와 굉음에 움찔 몸을 떤 티미드는 다급하게 베젤을 불렀다.

“주교님. 배 안에서 누군가 난동을…….”

“기도가 끝나지 않았다.”

기도문을 읊고 있던 베젤은 눈을 감은 채로 티미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기도가 끝날 때까지는 움직일 수 없다. 네 녀석이 처리하도록.”

이런 비상 상황에서도 기도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니…….

“아, 알겠습니다.”

티미드는 베젤의 말에 대답한 다음 바깥으로 나섰다.

바깥과 연결된 문을 열어젖힌 티미드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며 경악하고 말았다.

“뭐, 뭐야!!!”

카아앙!

성기사들은 누군가의 숨통을 끊기 위해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상대는 바스타드 소드로 찔러 들어오는 창을 비스듬히 흘려보내더니…….

타앙!

그것들을 모아 갑판에 찍어 눌렀다.

우우우웅!

그로 인해 주변에 기분 좋은 검명이 울려 퍼졌다.

“이, 이 자식 왜 이렇게 힘이 세!!”

창을 붙들고 있던 성기사들은 안간힘을 쓰며 바스타드 소드에 깔린 자신들의 창을 빼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꽈악!

성기사들을 제압한 것은 그들보다 작은 소년이었다. 심홍색의 불길을 연상케 하는 머리칼과 눈동자.

바로 칼이었다.

갑판 곳곳에 고꾸라진 성기사들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으아아아아악!!!”

항전하는 성기사들 중 일부가 뒤늦게 칼의 뒤에서 검을 찔러 넣으려고 했지만, 검을 회수한 칼은 갑판에 박힌 창의 창대에 올라타 내달리더니.

타앗!

성기사의 어깨를 짓밟고 돛대 위로 올라섰다.

마치 날다람쥐 같은 날렵한 움직임에 성기사들은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석궁을 가져와! 지금 당장 저 원숭이 같은 놈을 쏴 죽여!!”

그 와중에 숙달된 지휘관이 적절한 명령을 내렸지만.

쫘악!!!

칼은 돛대에 달린 돛을 바스타드 소드로 휙 그어 갈가리 찢어버렸다.

“미친 새끼!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배의 기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돛을 잃은 지휘관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성기사들의 얼굴에도 어둠이 드리워졌다.

펄럭!

찢어진 돛이 그늘이 되어 그들을 덮어버린 것이다.

“크아아아악! 이것 뭐야?!”

“빨리 빠져나와!”

혼란에 빠진 그들은 병장기로 돛을 찢으며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내기 시작했다.

타앗.

그때 갑판 위로 깃털처럼 사뿐히 착지한 칼은 자연스럽게 베젤 주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뛰어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산책을 하는 것처럼 느긋한 걸음걸이었다.

“네 이놈! 어딜 가려는 것이냐!”

“멈추지 못할까!”

마침 돛에서 벗어난 성기사들이 차례로 칼을 습격했지만.

칼은 몸을 조금 젖혀 일격을 회피한 뒤.

서걱!

검을 휘둘러 순식간에 그들을 진압했다.

파르르르르.

바로 정면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티미드는 칼의 기세에 꿀꺽 침을 삼켰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준수한 미소년이었다. 그러나 외양과 다르게 지닌 기운이 지나치게 살벌한 느낌.

‘마법을 쓴다고 해서 이길 수 있을까?’

티미드는 흑마법을 쓰는 것을 포기하고 울먹이는 어조로 말했다.

“사, 살려줘. 나는 그 베젤이란 놈한테 억지로 사로잡혀 있는 것뿐이야.”

“그래?”

칼은 걸음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의 말에 의문을 표하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들었던 거랑 이야기가 다르네. 티.미.드.”

오싹!

칼이 자신의 이름을 부른 순간, 티미드는 숨이 턱 막혔다.

“어, 어떻게 내 이름을…….”

“디아나한테 들었거든. 등이 굽은 꼽추인 흑마법사 티미드. 아무리 봐도 너잖아.”

“사, 살려…….”

칼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죽을 만한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절망의 선언.

칼의 말에 티미드는 눈앞의 남자가 자신의 숨통을 끊을 거란 사실을 눈치채고는…….

“으아아아아악!!!”

전력을 다해 칼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  *  *

콰앙! 콰앙!

어째서일까?

베젤은 오랜만에 기도하던 도중 잡념을 품게 되었다.

맨 처음은 가벼운 동요였다. 그러나 소동이 끊이긴커녕 점차 커지자, 결국 그의 마음은 당혹으로 물들었다.

우우우웅!

결국 기도가 끊기면서 전신을 뒤덮고 있던 신성력이 증발하듯이 사라졌다.

“…….”

말문이 막힌 베젤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굴욕이었다.

‘신의 이름 아래에서 평생 몸과 마음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했건만. 아직도 수양이 부족한 건가.’

결국 그는 스스로 기도를 포기하고 눈을 떠버렸다.

두둑!

베젤은 결국 이마에 핏대가 잔뜩 세운 채로 소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감히 주제도 모르고 신성한 기도를 끊다니!!!”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배를 어지럽혔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를 끊어서였다.

콰아아앙!

그리고 그에 대해 대답을 해주듯이 기도실의 문이 박살 났다.

“…….”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한 건지, 베젤은 지그시 미간을 좁혔다.

데구르르르.

그런 그의 발치로 무언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피와 함께 발치에 닿은 것은…….

“……티미드.”

바로 티미드의 머리였다.

어떤 최후를 맞이한 건지, 티미드의 얼굴에는 눈물을 흘리고 괴성을 토해낸 흔적이 남아있었다.

퍼억!

그 모습이 실로 역겨워 베젤은 티미드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곤 문 쪽을 노려보며 말했다.

“웬 놈이냐?”

칼이 느긋하게 부서진 문틈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활짝 핀 홍련 같은 칼의 눈동자를 기억하고 있던 베젤의 얼굴에는 어느새 희열이 가득 들어찼다.

“내가 누군지 알겠어?”

만날 당시에는 가면을 착용하고 있었기에 물어본 거였지만.

“내 배에 검을 쑤셔 넣은 자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베젤은 미소를 지으며 메이스를 들어 올렸다.

산크투아리움의 주교.

그것은 다른 종교에서와 달리 제사장임과 동시에 무력을 겸비한 강자를 뜻했다.

콰앙!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그는 망설임 없이 메이스를 휘둘렀다.

콰아앙! 키이익!

‘빨라?!’

칼은 가까스로 메이스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의 몸은 먼발치까지 밀려났다.

“신께서 나를 보호하시니. 적의 피를 당신께 제물로 바치겠나이다.”

우웅.

베젤이 나직하게 기도문을 읊자 그의 몸이 다시 신성력으로 뒤덮였다.

거기에는 몸을 보호하는 계열의 신성 마법은 물론 근력 강화 마법까지 중첩되어 있었다.

콰앙! 콰앙! 콰앙!

신성 마법을 두른 베젤의 메이스 세례가 소나기처럼 퍼부어졌다.

카카카카캉!

슈미트가 공들여 만든 바스타드 소드의 탄력이 아니었으면, 진작 검이 부러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단단해!’

베젤의 빈틈을 찾던 칼은 예상을 웃도는 그의 실력에 살짝 당황했다.

“훗!”

오히려 역으로 약점이 드러난 것은 칼이었다.

콰앙!

베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칼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우직끈!

갈비뼈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칼은 그대로 갑판 위를 나뒹굴었다.

“쿨럭, 쿨럭.”

칼은 한 손으로 피가 흐르는 입가를 가리며 상대를 경계했다.

베젤은 그 자리에서 칼에게 조소를 날리며 말했다.

“무슨 배짱으로 이곳에 기어들어 온 건지 모르지만,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으니 이참에 진리를 일깨워주지.”

타다다다닷.

뒤늦게 성기사들이 칼과 베젤이 있는 곳으로 몰려 들어왔다.

베젤은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한 뒤, 칼에게 말을 꺼냈다.

“천하의 오러 유저조차 내가 만들어낸 성역, 세크루스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네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네놈이 저지른 ‘살생’의 과오가 너의 몸을 옭아맬 거다.”

탁, 탁.

베젤은 칼의 모습이 만족스러운 듯 메이스로 자신의 왼손을 살포시 두들기며 대화를 계속 진행했다.

“네놈들은 살아있어서는 안 되는 잡초다. 한번 돋아난 잡초는 주변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지. 신이 나에게 부여한 진정한 직업은 정원사다. 잡초를 싸그리 박멸하는 게 나의 사명이지.”

광기 어린 선언이었다.

정작 이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인 칼은 ‘푸훗’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그리고 그 웃음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베젤은 다시 표정을 구겼다.

“아무래도 네놈이 단단히 실성했나 보구나.”

“아아. 웃기잖아.”

칼은 눈가에 눈물을 살짝 닦으며 진심을 말해 주었다.

“그 싹이 마를 때까지라…… 맞는 말이야. 마족들 성향이 너희랑 너무 닮아서. 옛날 일이 떠올랐어.”

“무슨 궤변을…….”

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베젤의 말을 끊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싹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하루도 살생을 멈춘 적이 없어.”

어느새 칼은 태연한 눈으로 베젤을 바라보았다.

“…….”

그와 동시에 베젤은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크루스의 영향을 받았다면, 보통은 조금이라도 경직되어야 한다.

그러나 칼은 조금도 영향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스스스.

뒤늦게 칼을 중심으로 카르마가 피어올랐다. 베젤은 칼이 뿜어내는 카르마의 양이 신성 마법으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함을 알아차렸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

놀랍게도 칼의 카르마는 이 광활한 바다보다 거대했다.

주륵.

여유가 가득했던 베젤의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흥건했다.

“네, 네놈 그 카르마의 양은 대체 뭐지?!”

그의 질문에 칼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스윽 닦아내며 말했다.

“알아서 뭐할 건데?”

“결단코 용서치 않으리라! 이 세상의 사람을 전부 죽여도 그만한 카르마를 쌓을 수는 없다! 네놈은 필시 악마! 산크투아리움의 이름 아래 절대 용서치 않으리라!!!”

어째서일까?

경고를 가하는 베젤의 목소리는 처절한 외침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칼은 피식 어깨를 떨며 답했다.

“확실히 상대는 최강대국의 이단심문관 집단.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감히 도전할 수 없겠지. 근데 말이야.”

웅성웅성.

칼은 성기사들과 베젤에게서 벗어나 벽 쪽으로 느슨하게 걸어가며 말했다.

스윽.

“난 딱히 상관없거든.”

안광에서 살벌한 살기를 뿜어낸 칼은 가슴팍에서 양피지를 꺼낸 뒤 묶인 끈을 이빨로 잡아당겼다.

양피지의 정체는 바로 마법 스크롤.

우웅.

그 순간 마법 스크롤은 차츰 빛을 발산하며 새겨진 마법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서, 설마!’

뒤늦게 칼의 의도를 파악한 베젤은 황급히 성기사들에게 외쳤다.

“막아라!!! 익스플로전이다!!!”

익스플로전이 펼쳐지기 약 1초 전.

칼은 음산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성기사단을 향해 한마디를 남겼다.

“죽고 죽이는 섬멸전이라면 대환영이야.”

그 말과 동시에…….

콰아앙!!!

쏴아아아아아아!

폭발이 일어나더니 배 안으로 격류가 치솟으며 이내 모든 것을 수몰시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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