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43화 (43/197)

#제43화

거침없이 타오르는 심홍의 불길이 모든 걸 뒤덮어 불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칼과 눈을 마주치고 있던 데제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하하, 보면 볼수록 참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네. 너란 녀석은.”

“남은 건 내가 알아보지.”

칼은 그대로 데제스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스윽.

그때 데제스가 차분한 눈빛을 띠며 칼에게 질문을 던졌다.

“서로 궁금한 것에 대해 알아보자고 했지?”

“뭔데?”

약속한 것이 있었기에 칼은 데제스의 질문을 기다렸다.

“미스틱 마운틴에서 안개 사이를 헤매던 중, 몇몇이 아주 괴이한 형상을 봤다고 했어. 그건 마치 거대한 악마 같다고 하던데, 혹시 그건 네가 만들어낸 형상인가?”

데제스는 그날의 기억을 상기했다.

산기슭에 오르던 중 보았던, 여섯 날개를 가진 거대한 그림자를…….

그는 그 현상이 칼과 관계가 깊다고 추측했다.

“그렇다면 어쩔 건데?”

칼은 그 말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다.

“너에 대한 나의 흥미가 더 깊어지겠지.”

“그래? 난 너한테 티끌만큼도 관심이 없는데, 아쉽게 됐네.”

대화를 마친 칼은 그대로 별장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

데제스는 칼이 나간 방향을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  *

외출을 위해 옷을 갖춰 입은 칼은 검집에서 검을 살짝 뽑았다.

스릉.

검명이 스산하게 울려 퍼졌다.

달빛에 비친 검신은 투명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매끄러운 검신은 검 끝으로 갈수록, 칼날이 점점 좁아졌다.

한손으로도, 양손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바스타드 소드.

그것은 슈미트가 공방에서 처음 만들어 칼에게 선물한 검이었다.

강도부터 유연함까지 모든 방면에서 손색이 없는 검이지만, 검을 건넬 당시 슈미트는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검을 만들어 준 적이 없다 보니, 아직 좀 서툰 부분이 있어. 진짜 명검이 완성될 때까지 임시로 쓰고 있어.

칼은 피식 웃으며 양피지를 허공에 던졌다.

그러고는 깃털처럼 떨어지는 양피지에 검 끝을 갖다 댔다.

스스슥!

보통의 검이었다면, 양피지는 베어지지 않고 칼 위를 미끄러졌겠지만.

슈미트의 검은 손목에 약간의 스냅을 주는 것만으로 양피지를 깔끔하게 잘라내었다.

“나쁘지 않군.”

칼은 피식 웃으며 바스타드 소드를 다시 검집에 넣었다.

준비는 이것으로 끝.

그러나 칼은 출발하기에 앞서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오두막에 들렀다.

침대 옆에서는 릴리를 간호하던 맥캘리가 쥐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있었다.

칼은 쯧 혀를 차며 그녀를 안아 들어서 소파 위에 눕힌 뒤, 이불을 덮어주었다.

“……자상하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릴리는 칼에게 넌지시 한마디를 남겼다.

머리칼이 땀으로 젖어 있는 그녀는 아직도 힘겨워하는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자.”

칼의 한마디에 릴리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말을 내뱉었다.

“그럼 잘 때까지, 옆에 있어 줘.”

“1초.”

“……1초 만에는 못 자.”

냉소적인 칼의 말에 릴리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칼은 어쩔 수 없이 잠시 그녀의 옆에 다가갔다.

그제야 안심이 됐는지 릴리는 두 눈을 감았다. 호흡도 점차 안정됐고, 표정 역시 점점 편안해졌다.

그 상태로 그녀는 말했다.

“오랜만이네. 이렇게 대화하는 거.”

“바빴어.”

“내가 공부만 하니까,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 거잖아.”

알게 모르게 칼의 배려를 느낀 릴리는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그렇게 웃겨?”

“그야 내가 파르테스의 망나니한테 배려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뻐서.”

“시답지 않기는.”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치려는 거야?”

“고민 좀 해보고.”

“이미 답을 정해놓고는.”

점차 졸음이 쏟아지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잠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는 무심코 아무 말이나 늘어놓았다.

“칼. 이번에는 절대 안 질 거야.”

“…….”

이 와중에도 지지 않겠다고 선전포고하는 건가.

이쯤 되면, 내심 대단하다는 마음마저 들었다.

“너와 동등해질 거야. 나란히 서고 싶어…….”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그녀는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스윽.

칼은 릴리의 머리칼을 이마 위로 살짝 걷어내며 답했다.

“꿈에서는 공부하지 마라.”

씨익.

릴리의 입꼬리는 미미하게 올라갔고, 칼은 그대로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  *  *

밤은 무척 길고 고요했다.

그러나 이런 고요한 주변과 다르게 소란스러운 곳이 하나 있었다.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선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들이켜는 술집, 바실레마.

“크하하하하.”

“자, 마셔, 마셔!”

“어차피 오늘을 즐기지 못하면, 내일은 없다!”

“다 같이 건배!”

흥청망청 마셔서 취할 대로 취한 이들은 아무 말이나 늘어놓고 있었다.

“못 말리겠군.”

바실레마를 운영하는 술집 주인은 그 광경이 기가 막혔는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은 돈을 벌기 위해 밤늦게까지 장사를 하고 있지만.

저들은 어렵게 번 돈을 여기서 흥청망청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일견 호쾌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찌 보면 씁쓸한 부분도 있었다.

정작 저들은 내일이 되면 ‘내가 왜 그랬지?’하고 후회하며 다시금 배로 오르겠지만 말이다.

‘손님은 저 녀석들이 마지막인 것 같으니. 느긋하게 있어 볼까?’

설거지를 마친 사장이 마지막 잔을 마른 천으로 닦아 선반에 올려놓을 때.

끼익!

낡은 나무문을 열어젖히며, 한 명의 손님이 들어왔다.

“어라?”

의외의 인물이라서 사장뿐만 아니라 선원들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가 술집이란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행색을 한 소년이었기 때문이었다.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심홍색인 소년은 움직이기 편하게 전투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어이, 꼬맹아. 이 시간에 여기 찾아온 이유가 뭐야? 여긴 너 같은 꼬맹이가 찾아올 곳이 아니라고.”

선원 중 한 명이 의자에 팔을 얹으며 칼에게 질문을 건넸다.

“냅둬, 냅둬. 딱 봐도 귀족가의 자식인 것 같은데, 잘못 엮이면 피곤하다.”

“아, 그렇지.”

현명한 동료의 말에 선원은 히끅 딸꾹질을 하고는 칼에게 관심을 껐다.

바실레마의 사장은 의자에 걸터앉은 칼에게 말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브로켄몽타뉴 한 병.”

“이봐.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지?”

“아니. 제대로 들은 거 맞는 것 같은데.”

소녀의 입에서 거침없이 떨어진 한마디에 사람들은 저마다 수군덕거리기 시작했다.

브로켄몽타뉴.

그것은 미스틱 마운틴에서 서식하는 헤이리히프의 수액으로 만든 이실리아의 정통주로 도수도 도수일뿐더러 가격 역시 매우 비싸 웬만한 애주가가 아닌 이상 찾지 않는 술이었다.

바실레마의 사장은 지그시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어린애한테 술 안 팝니다만.”

찰랑!

칼은 미리 준비한 금전 주머니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탁.

사장은 즉각 붉은색 술병을 테이블에 내놓고선 넙죽 허리를 숙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가 봐.”

브로켄몽타뉴 병을 든 칼은 이내 마개를 뽑더니,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젖을 움직이며 독한 술을 넘기는 그 모습에 선원들은 일제히 칼을 바라보았다.

타악.

“아아, 이건 제법 내 취향일지도 모르겠어.”

칼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소매로 입을 닦은 뒤 병을 내려놓았다.

한가득 있었던 술은 바닥을 드러났고, 칼은 살짝 취기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이, 꼬맹아. 술 그렇게 마시면 죽어.”

결국, 보다 못한 선원 중 한 명이 칼에게 충고를 남겼다.

그들은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시는 거지, 죽기 위해 마시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말을 시작으로 선원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래, 그래. 술은 어른한테 좋게 배워야지.”

“친구들이랑 그렇게 마셔대면 개 된다.”

“그러면 우리들은 개인가?”

“하하하하하!”

죽이 잘 맞는 대화에 선원들은 어깨를 들썩이더니, 이내 잔을 부딪치며 웃어대기 시작했다.

피식.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칼은 저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를 들썩였다.

“개인 거 아니까, 그만 짖어.”

“……그게 무슨 소리냐?”

요란한 와중에 칼이 던진 한마디가 주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선원들의 눈빛은 방금 전과 달리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유, 유혈 사태가 일어나면 안 되는데.’

안 좋은 분위기를 직감한 바실레마의 사장은 은근슬쩍 테이블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스윽.

그러거나 말거나 칼은 검지를 추켜세우며 말했다.

“브로켄몽타뉴 한 병 더.”

“히끅!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눈치 없는 주문에 사장은 덜덜 떨며 테이블 위에 술병을 내려놓았다.

“어이, 꼬맹아. 어른이 질문하면 대답을 해야지.”

선원들은 눈꼬리를 삐죽 세우며 칼을 향해 몰려들었으나, 칼은 겁을 먹기는커녕 느긋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희 노예상이잖아.”

“…….”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에 모두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이실리아에서 노예 거래는 엄연히 불법.

타국의 귀족이 노예를 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용인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몇몇 예외를 빼고는 철저히 금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실리아에는 많은 노예상이 몰려들었다.

기나긴 항해 중 물자 등을 보급하려면 반드시 이실리아를 거쳐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꼬맹아. 자꾸 되지도 않는 위험한 소리를 하면 곤란한데.”

그들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칼에게는 어림없었다.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노예 중에 마녀의 후예도 있다고 들었거든? 내놔. 난 지금 그게 필요해.”

“?!”

확신에 가득 찬 위헌한 발언에 선원들은 일제히 사색이 되었다.

그중 우두머리 격인 선원이 칼을 손짓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지금 당장 잡아!”

“아니, 죽여!!!”

“으아아아악!”

선원들은 벌떼같이 칼에게 달려들었다.

타이밍을 맞춰 칼이 엄지로 브로켄몽타뉴의 마개를 뽑아 튕겨 내자…….

퍼억!

“크아아아악!”

마개는 정면에서 칼을 덮치려고 했던 선원의 이마에 적중했다. 그리고 이내 난투가 벌어졌다.

*  *  *

술집의 바깥에는 정보 길드의 간부인 레르노만이 복잡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늘도 그는 칼과 정보 거래를 했지만, 이번 계약은 경우가 조금 달랐다.

수수께끼의 저주 ‘야고’가 퍼지는 사건. 이것은 정보원들을 아무리 풀어도 내막을 파악하지 못했던 일이다.

정보가 곧 돈이 되는 정보 길드에 있어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것은 상당히 곤란한 일이었다.

더욱이 레르노만이 있는 곳은 사건의 중심지이기에 단편적인 정보라도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을 들여 조사했음에도 그는 어떤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칼이 내막을 찾아내는 데 협조하라는 제안을 했다.

처음에는 거절할 심산이었지만, 칼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언급하는 바람에 자연스레 협조할 수밖에 없었다.

참고로 마녀의 후예와 관련된 정보는 레르노만이 칼에게 건네준 정보였다.

그리고 현재.

우당탕탕!

쾅!

칼은 역시나 성격대로 거칠게 선원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괜찮을지 모르겠네. 그래도 힘깨나 쓰는 장정인 데다가 오러 유저도 있다고 하던데.’

시간으로 약 5분 뒤.

‘끄, 끝났나?’

술집 안쪽이 조용해지자…….

끼익!

레르노만은 식은땀을 흘리며 낡은 나무문을 열어젖혔다.

“으아아아악!”

그리고 얼굴에 혈흔이 잔뜩 묻은 칼을 보고는 경악하며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내 피 아니야.”

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을 내었고, 레르노만은 찔끔 눈을 뜨며 말했다.

“모, 몸은 괜찮습니까?”

“쓸데없는 소릴.”

차갑게 답한 칼은 선원 중 한 명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바깥으로 질질 끌고 갔다.

“크아아아악! 이거 놔! 이 괴물아.”

끌려가는 선원은 절규하며 몸부림쳤지만.

“턱을 부숴버리면 조용해지려나?”

“…….”

칼이 나지막이 한마디 하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거지?’

레르노만은 칼을 쫓아가기 전, 술집 내부를 살폈다.

“끄응.”

이곳저곳 부서진 술집 내부.

전신이 피투성이가 돼버린 선원들은 고꾸라진 채로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테이블 가운데에는 변상의 의도였는지, 은화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엄청나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르노만은 질리는 기분에 쓴웃음을 지으며 칼을 쫓아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