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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39화 (39/197)

#제39화

“푸훗.”

칼의 말을 들은 마미안트 후작 부인은 의도치 않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하하!”

그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까지 맺혀있었다.

“이건 내기 제안이 아니라 협박처럼 들리는데요.”

“협박이 통할 것 같진 않은데 말이지.”

칼의 말에 마미안트 후작 부인은 안경을 고쳐 쓰더니 진지한 눈빛으로 칼을 경계하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가 있어. 둘이서 오붓하게 대화하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그녀의 명령에 잠시 당황스러워했으나, 이내 정중히 예를 갖춘 뒤 물러났다.

끼잉! 끼잉!

칼의 살기에 겁을 집어먹은 도베르만 중 한 마리가 도망치자는 듯이 그녀의 손등을 핥았다.

“훗.”

마미안트는 여유롭게 웃으며 도베르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때마침 원하는 게 생겼는데, 들어줄 수 있을까요?”

“뭔데?”

의외의 말에 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마미안트 후작 부인은 발그레 붉어진 얼굴을 손으로 살짝 가리며 말했다.

“제 개가 돼주세요.”

……이건 뭔 소리인지.

만약 다른 사람이 이 말을 들었다면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겠지만, 칼은 코웃음 치며 곧장 반문했다.

“길들일 자신은 있고?”

“후후후후, 제가 길들이지 못했던 것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답니다. 전 남편들은 다들 의기가 충만하고 심지가 강했어요. 결국에는 저에게 함락당해 저를 위해 개처럼 죽었지만요.”

“네가 죽였다는 말인가?”

“어머나. 농담도 잘하셔라. 호호”

마미안트 후작 부인은 공작 깃털 부채를 자신에게 부치며 초승달처럼 휜 눈매로 칼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조국인 루콘과 저의 조국인 아벤트로트는 견원지간. 언제 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이죠. 그런데 제가 당신이 제안하는 내기를 쉽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그건 네 선택이야.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용건만 말하지.”

“좋아요. 이야기 정도는 들어보죠.”

“지하 검투 대회에서 내가 우승하면 상금이 얼마지?”

“배당률이나 흥행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700만 골드 정도 될 것 같네요.”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할 정도로 엄청난 액수였다.

하지만 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금은 필요 없어. 대신 여기서 원하는 걸 두 가지만 가져가지.”

“어머나. 뭐가 그렇게 가져가고 싶으실까요? 호호호, 적어도 한 가지 정도는 말을 해줘야 저도 고민해 볼 텐데요.”

‘쉽게 될 리는 없지.’

칼은 혀를 차며 말했다.

“들어와.”

발언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분장을 지운 슈미트였다.

두근. 두근.

그는 마미안트 후작 부인과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 긴장해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미간을 좁히며 대화를 이어갔다.

“호오, 당신이 여기까지 들어온 것은 그 고집불통 드워프의 조력이 있었기 때문이군요. 물건을 주워주셨으니 일단 감사를 표하죠.”

칼은 팔짱을 끼며, 건들지 말라는 듯 눈을 치켜떴다.

“조건 중 하나다. 내가 이기면, 이 드워프는 내가 가져가겠어.”

“아아, 그건 안 돼요.”

“왜지?”

“결함품이니까요. 우승자에게 결함품을 주는 건 기만이죠, 그건 피놉티콘의 운영자인 제 프라이드가 용납하지 못해요.”

딱!

말을 마친 직후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드르르륵.

다수의 남자들이 다섯 개의 장식대를 들고 왔다.

장식대마다 휘황찬란한 검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그, 그건?!”

검의 진가를 알아본 슈미트는 눈을 부릅뜨더니 증오에 찬 얼굴로 마미안트 후작 부인을 쳐다봤다.

그녀는 그 시선을 가볍게 무시하며 입을 뗐다.

“라흐만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 레밍호프가 만들어낸 명검 다섯 자루입니다. 소드 마스터 중에서도 소수만 가지고 있는 검이었지만. 전 레밍호프의 검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서 말이죠. 1억 골드든 10억 골드든 아끼지 않고 구매할 수 있을 때, 구매했습니다.”

“그래서?”

칼의 물음에 후작 부인은 너무나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다섯 자루의 명검을 상품으로 걸겠습니다. 결함품인 대장장이와 명장의 손에서 탄생한 명검 중의 명검, 어떤 것을 우승 상품으로 선택할지는 나중에 두고 보도록 하죠. 호호호호.”

“…….”

슈미트는 이를 갈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안 봐도 뻔한 이야기다.

레밍호프가 만든 명검은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희소성이 높아질 것이다. 갖고만 있어도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이고.

자신의 실력이나 안목을 자랑하기에도 그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 귀한 것을 무려 상품으로 내걸었으니, 열이면 열 모두 같은 선택을 할 게 분명했다.

“좋아.”

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미안트 후작 부인의 제안에 승낙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냥 날 배신할 생각인가?’

어느 쪽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던 슈미트는 초조함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후작 부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졌을 때의 조건은?”

“제가 원하는 건 당신이 저의 개가 되어주는 걸로…….”

“그건 불합리한 조건이라서 받아줄 수 없어.”

“그게 무슨…….”

스윽.

칼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얹으며 말했다.

“나를 내기에 걸만한 물건이 여기에 없으니까. 차라리 슈타크 가문을 건다면 모를까.”

“…….”

일순간이지만 슈미트와 후작 부인의 눈 밑에 그늘이 졌다.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프라이드라면 절대 꿀리지 않는 후작 부인마저 이 순간만큼은 잠시 정신을 놓았다.

가주도 아닌 주제에 루콘 최강의 무가를 내기 대상으로 내놓겠다고 선언하다니…….

“가문에서 먼저 너를 쫓아내지 않을까.”

좀처럼 칼의 배포가 상상이 가지 않았던 슈미트는 걱정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딱히 미련은 없어.”

시크한 칼의 답변에 후작 부인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하루 여러 번 절 웃게 해 주네요. 호호호호.”

눈물까지 글썽이며 웃은 그녀는 이내 검지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렇게 프라이드가 대단하니, 양보를 좀 해야겠네요. 제가 이기면 당신을 제 네 번째 남편으로 맞이하겠어요. 검투 대회에서 팔다리가 잘린다고 해도 애지중지 아껴주도록 하죠.”

“아아, 불쾌해라.”

칼은 몹시 기분이 나쁨을 표출할 뿐, 딱히 거절하지는 않았다.

‘여자에 홀딱 빠져가지고는!!!’

슈미트는 빽 소리를 내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잠깐 냉정하게 생각해 보니, 후작 부인의 제안이 적절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칼의 프라이드를 완전히 짓밟아 굴복시키는 것.

하지만 칼은 이에 대해 칼같이 거절했다.

뒤이어 마미안트 후작 부인이 내놓은 제안은 다름 아닌 혼인.

이 경우에는 서류상으로 칼과 혼인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지만, 프라이드는 짓밟을 수 없게 된다.

‘못 말리겠군.’

상황 파악을 마친 슈미트는 기가 막혀 자신의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어떻게 돼먹은 놈이길래 위험한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리스크까지 감수하려는 걸까.

그 고집에 절로 탄식이 날 정도였다.

“호호호, 우리의 앞날이 정말 기대되네요.”

후작 부인이 살포시 웃으며 칼에게 팔짱을 끼려고 할 때.

“잠깐!!”

슈미트는 다급한 표정으로 그녀를 제지했다.

“뭔가요? 고집불통 드워프.”

그녀가 고운 아미를 찌푸리자, 슈미트는 고인 침을 꼴깍 식도로 넘기며 말했다.

“둘이 나이 차가 얼마나 나지? 대충 봐도 어머니랑 아들뻘이잖아. 이건 당치도 않아.”

“…….”

일순간이지만 후작 부인의 안경이 불투명하게 변하며 그녀의 눈을 가렸다.

스윽.

칼 역시 궁금했는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궁금하긴 한데? 어차피 서류 작성할 때 알게 되잖아.”

“호호호, 여자의 비밀을 그렇게 함부로 파헤치면 안 된답니다.”

그녀는 애써 나긋나긋한 말투로 칼의 질문을 회피한 뒤.

싸아.

살기가 가득 감도는 눈빛으로 슈미트를 바라보며 경고했다.

“혓바닥 잘리기 싫으면, 입 닥치고 계세요.”

크르르르르르.

그녀가 살기를 발산하자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도베르만들도 이를 드러내며 슈미트를 물 기세로 쳐다봤다.

“이, 이 자식들!!!”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슈미트는 지지 않겠다는 듯이 쏘아 보다가…….

“입만 다물고 있으면 되는 거지?”

재빨리 태세를 전환하더니 칼의 옆으로 잽싸게 붙었다.

후작 부인은 가까스로 냉정을 되찾고서 칼에게 물었다.

“그럼 내기도 성사됐으니, 애피타이저 겸 다음 경기를 볼까요? 이번에는 아주 특별한 경기를 준비했답니다.”

“어떤 점이 특별하지?”

칼이 질문을 내뱉은 순간이었다.

쿵쾅!

수레 위에 놓여 있던 철제 우리가 열리더니 갈색 갈기를 지닌 거대한 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빌레 레오네. 최고 등급의 환수종인 신수죠. 이제는 이빨과 발톱이 다 낡아버린 늙은 사자에 불과하지만요.”

크르르르.

볼품없다는 소개와 맞지 않게 압도적인 노빌레 레오네의 포스에 겁에 질린 관중들은 으스스 몸을 떨며 경기장을 지켜봤다.

그리고 이런 엄청난 덩치를 지닌 사자의 상대는 한 명의 남자였다.

입에 재갈을 물고, 피부는 하야며 덩치가 거대한 그 남자에게서는 마치 코끼리 같은 박력이 느껴졌다.

“끄응!”

인부들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쇠사슬을 이용해 그를 통제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완전히 경기장 안에 들어서자…….

드르르르륵!

경기장의 강철로 된 출입구가 닫혔다.

후작 부인은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제가 준비한 예비 챔피언, 잭이에요. 후후후후.”

빠직!

잭은 입에 물고 있던 재갈을 손으로 쥐어뜯으며 포효했다.

“우와아아아!!!”

크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노빌레 레오네의 포효가 경기장 안을 가득 울렸다.

서로를 향해 살기를 발산하는 사람과 짐승, 아니 두 마리의 짐승들은 곧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콰직!!!

노빌레 레오네는 이빨로 두꺼운 잭의 팔을 물어뜯으며 출혈을 일으켰다.

콰앙! 콰앙! 콰앙!

잭은 엄청난 힘이 담긴 주먹으로 사자의 얼굴을 가격하며 노빌레 레오네를 떼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제아무리 늙고 비루한 사자라고 해도 그 격을 생각하면, 인간이 절대 대항할 수 없는 생물이다.

두둑! 두둑! 두둑!

하지만 잭은 기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자신의 힘줄을 끊어버린 노빌레 레오네를 한 손으로 들어 올리더니…….

콰앙!

그대로 내던지고서는 주먹으로 얼굴을 힘껏 가격했다.

크아아아앙!

노빌레 레오네는 잭의 흉부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우드드득!

분명 뼈가 분쇄되고 살이 갈가리 찢겼으나 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콰아아앙!

오히려 빈틈을 노려 집채만 한 노빌레 레오네를 지면에 내동댕이쳤다.

우와아아아아아!!!

그 엄청난 사투에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휘리리리릭!

콰앙!

그와 동시에 지켜보고 있던 파놉티콘의 관리자들이 거대한 도끼 두 자루를 경기장 안으로 집어 던졌다.

푸욱!

지면에 꽂힌 그것을 빼든 잭은 거침없이 노빌레 레오네에게로 향했다.

“그, 그만둬!!!”

피투성이인 노빌레 레오네의 모습을 슈미트는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외면했다.

“후후후후.”

반면에 후작 부인은 얼굴을 붉히며 흥분했다.

칼은 팔짱을 끼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야.”

“뭐죠?”

“여기서는 도핑도 허용되나? 룰도 없는 거 같고…….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네.”

의미심장한 질문.

‘무슨 꿍꿍이지?’

후작 부인은 수상한 표정으로 칼을 쳐다보다가 이내 빙그레 웃어 보였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

“룰을 만드는 건 강자의 특권이에요. 어떤 무기를 사용해도 상관없고, 어떤 잔학한 학살이 일어나도 상관없다는 거죠. 지금처럼 말이에요. 후후”

그리고 다시 희열을 만끽하려는 순간.

“그거 참 다행이네.”

콰직!

콰앙!

칼의 말과 함께 손목에 있던 촉매가 끊어지며 트리거가 발동됐다.

그러자 경기장에 피어오른 붉은 마력의 파장에 노출된 이들이 전부 경기를 일으켰다.

쨍그랑!

그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앞에 있는 유리창이 와장창 깨져나가는 바람에 도베르만들이 다급하게 마미안트 후작 부인의 보호에 나섰다.

“이게 무슨?!”

당황한 후작 부인이 몸을 일으켰을 때.

휘이이이잉!

칼은 힘껏 자리를 박차 경기장을 향해 도약했다.

이때까지도 잭은 침을 흘리며 노빌레 레오네를 도끼로 찍어 내리려 하고 있었는데…….

우드득.

콰앙!

칼의 발길질에 목을 얻어맞은 잭은 굉음과 함께 지면을 나뒹굴었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당황한 후작 부인이 칼에게 소리쳤다..

스릉.

칼은 글라디우스를 꺼내 들며 주변에 있는 검투사, 그리고 잭에게 선전포고했다.

“전부 올라와, 버러지들아. 시간 끄는 건 질색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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