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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37화 (37/197)

#제37화

“…….”

칼의 제안에 슈미트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가까스로 탈출했는데, 나보고 다시 거기에 들어가라고?”

슈미트가 질색하며 날뛰자…….

“싫으면 어쩔 수 없지.”

칼은 미련 없이 돈주머니를 회수하고선 등을 돌렸다.

꽈악!

당연히 그냥 보낼 수 없었던 슈미트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거기에는 괴물이 있어. 내가 가기 두려운 것도 있지만, 애초에 함부로 드나들 곳이 아니야. 진심 어린 조언이니까 잘 새겨들어.”

“그래서 그게 나보다 더 두려운 존재야?”

이건 또 뭔 소리야?

“당…….”

당연하다고 답하려는 순간이었다. 타오르는 것 같은 칼의 심홍색의 눈동자와 마주친 슈미트는…….

두근! 두근! 두근!

마치 못 볼 것을 본 것마냥, 심장이 미친 듯이 박동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손에 끈적끈적한 땀이 맺혀 있었는데.

슈미트는 그제야 자신이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렸다는 것을 인지했다.

동시에 여태까지 공포라고 느꼈던 것들이 칼이 준 공포에 의해 너무나 가볍게 지워져 버렸다.

‘……이 자는 대체 뭐지?’

슈미트는 복잡한 마음을 가까스로 다스렸다.

“거기서 뭘 할 속셈이야?”

피식.

칼은 있는 그대로 속내를 밝혔다.

“재밌게 놀아보려고. 어차피 너는 너를 위해서라도 같이 가야 해.”

“내가 왜!”

슈미트가 반박하려는 순간.

스윽.

칼은 그의 목에 착용된 구속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아마 일정 시간이 지나면, 독이 주입되게 설계돼 있을걸. 제한 시간은 24시간 정도였나 그럴 거고.”

“그, 그건…….”

내심 그 점을 염두에 두고는 있었는지, 슈미트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칼이 한마디를 건넸다.

“겸사겸사 열쇠도 찾아주지. 그러니까 협력해.”

믿기지 않는 사실에 슈미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진심이야? 어, 어째서 그렇게까지.”

“답답해 보이잖아. 물고기는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쳐야지.”

빠직!

‘아주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구먼.’

안면 근육에 잔뜩 힘을 준 슈미트는 칼의 올곧은 눈동자에서 진심을 느꼈다.

“좋아! 만약 이 구속구를 풀어주면 은혜는 백 배, 천 배로 갚아주마. 내 신조에 어긋나지만, 그래도 너한테 어울리는 검을 만들어주지.”

“필요 없어. 안내나 해.”

“…….”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말하는 칼의 행동에 슈미트는 저도 모르게 오기가 생겼다.

“내가 지금은 이래 보여도 대륙에서 최고라 불리는 대장장이의 제자였다고!”

“일개 제자에 불과하다는 거네.”

울컥!

칼의 말에 슈미트는 발끈했다.

휘잉.

불어오는 바닷바람 때문에 머리카락이 눈 앞을 가렸다. 칼은 머리칼을 다듬으며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누군가의 아들이나 제자라는 수식어에 빌붙는 건 딱 질색이거든. 너의 이름을 걸고 만든 거라면 받아줄게.”

담담한 어조로 말한 칼은 그대로 등을 돌렸다.

파르르르.

그에 고집이 생긴 슈미트는 콧김을 내뱉으며 말했다.

“어린놈이 건방지기는! 두고 봐라, 누구나 탐낼 만한 검을 만들어 줄 테니까!”

어째서인지 입장이 역전이 된 것 같았지만.

이 순간 슈미트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 남자에게 걸맞은 검을 만들고 싶다고.

*  *  *

지하 검투장 파놉티콘은 철저하게 회원제로 고객을 가려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반인이 입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파놉티콘의 위치는 거주 지역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저택이었다.

초청받은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잠입은 일절 불가능했다.

“마음 같아서는 깽판 치는 게 편하기는 하다만, 그러면 본말전도가 되어 버리겠지.”

문지기들이 대저택 주변에 서서 사람들이 오가는 걸 확인하는 모습을 보며 칼은 고민에 빠졌다.

슈미트는 그런 칼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너 대체 여기에 오려고 한 진짜 용무가 뭐야?”

“검투 대회에 참가하려고.”

“진짜 별종 중의 별종이구먼. 인마, 거기서 죽어 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 자살 시도라도 할 생각이야?”

“실전 경험을 쌓아야 하거든.”

‘……정말 이 녀석을 믿어도 되나.’

머리가 어지러웠지만, 슈미트는 이내 마음을 정리했다.

“좋아. 안내는 끝났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도 잠입해서 이 구속구의 열쇠를 찾겠어.”

“방법은?”

“일단 만만한 놈을 하나 패야지.”

“?”

종잡을 수 없는 답변에 칼은 고개를 갸웃했다.

*  *  *

지하 검투 대회가 열리는 파놉티콘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존재했다.

대부분은 부유한 고객들이었지만.

그중에는 내기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

덜덜덜덜덜덜.

“이번에는 제법 걸출한 놈이라고 했는데.”

왜소한 체격과 뾰족한 앞니가 유난히 두드러진, 비버 같은 생김새를 지닌 남자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한때, 이 지하 검투 대회에 참가해 어마어마한 재화를 축적했었다.

주로 쓰던 방식은 검투 대회에 도전하는 사람을 고용해서 승리 수당을 받는 거였다.

이길 때마다 수당은 배로 늘어난다.

물론 선수를 고용한다는 건 그 선수의 모든 것을 고용주가 책임져야 하기에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일이었다.

‘나는 유능했어. 유능했다고!!’

파놉티콘이 본격적으로 흥하기 전.

흥행이 불확실하던 시절, 그는 오러 유저를 고용해 가볍게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에 획득한 우승 상금은 무려 10만 골드.

이는 거대 상단의 반년 치 순이익과 맘먹는 금액이었다.

부를 거머쥔 그는 그 돈을 유흥과 도박에 흥청망청 사용했다.

만약 돈을 모두 탕진하더라도 다음에도 같은 방법으로 다시 벌 수 있을 거라는 덧없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해에는 검투 대회의 진가를 알아본 자들이 대거 출현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인생은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거듭 검투 대회에 도전했다. 하지만 준수한 성적을 내더라도 빚은 탕감되기는커녕, 불어나기만 할 뿐이었다.

어느덧 햇수로 7년째.

어마어마한 빚을 진 그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었다.

‘마지막이야.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끼익!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그가 고용한 검투사가 들어왔다.

“오오! 데이빗! 과연 소문대로 덩치가 크구나!”

2미터에 육박하는 큰 키와 거대한 덩치를 지닌 중장갑의 전사.

그 모습에 비버를 닮은 사내는 눈빛을 빛냈지만.

퍼억!

뒤에서 누군가 걷어차는 소리와 함께, 데이빗은 흰자위를 보이며 바닥에 철푸덕 쓰러졌다.

“뭐, 뭐야?! 누구야!! 누가 데이빗을 이 꼴로 만들어 놨어!”

기겁한 사내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저벅, 저벅.

그때 열린 문으로 칼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서, 설마 네 녀석이 데이빗을!!”

남자는 경악하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칼을 바라봤고.

찰랑!

칼은 돈이 든 주머니를 그의 앞으로 던지며 말했다.

“그 녀석에게 준 고용비의 두 배야. 검투 대회에는 내가 참가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그게 무슨.”

황당한 요구에 남자는 얼떨떨한 표정을 짓다가 곧 반색하며 말했다.

“그, 그래. 차라리 잘 됐어. 나한테 고용되는 게 어때? 만약 네가 우승하면 상금의 절반을 너한테 나눠줄게.”

“놀잇감이 돼 줄 생각은 없어. 꺼져.”

단호한 거부에 남자는 울컥해서 분노를 토해냈다.

“이딴 짓을 저질러놓고 뻔뻔하게!!!”

“뻔뻔한 건 네놈이지.”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이게 뭔지 알겠지?”

칼은 남자의 서재에서 찾은 장부를 흔들며 슬쩍 웃어 보였다.

당황한 남자는 눈을 부릅떴고, 칼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빚 외에도 지저분한 걸 참 많이 봤어.”

“그, 그게 무슨?!”

“매해 그렇게 엄청난 적자를 내면서도 숨을 쉬고 있는 게 용하다 싶었거든? 그런데 설마 ‘새벽의 이슬’과 인신매매를 한 당사자일 줄이야. 만약 관청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

“도, 돌려줘!”

그는 장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물론 그 손이 장부에 닿을 리는 없었다.

콰직! 콰앙!

대신 칼의 발이 그의 얼굴을 짓뭉개며 벽까지 날려 버렸다.

“커, 커헉!”

얼굴에 발자국이 찍힌 그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다 의식을 잃었다.

뒤늦게 들어온 슈미트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너 진짜 가차 없구나.”

아직까지도 그는 칼의 거침없는 행동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죽였어.”

죽이지 않은 건, 그의 신분을 유용하게 써먹을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꽈악!

슈미트는 미리 준비한 밧줄로 기절한 두 사람을 결박한 뒤, 창고에 쑤셔 넣었다.

“이제는 내 차례인가.”

그러고는 의미심장한 한마디 말과 함께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잠시 후.

슈미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비버상인 한 남자가 거실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칼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감쪽같은걸.”

“장인의 일족이라는 타이틀을 지녔으면,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슈미트는 비버 얼굴을 한 남자로 변장한 상태였다.

신장이야 원래 비슷했고, 목에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어 구속구도 보이지 않았다.

슈미트는 남자의 신분패를 살폈다.

“로비 크로이츠. 이게 녀석의 이름인가.”

“잘할 수 있겠어?”

칼의 질문에 슈미트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노예도 돼 보고 돈에 미쳐 날뛰는 짐승도 돼 보는 거지. 그나저나 너는 변장 안 하냐?”

“난 이 정도면 돼.”

칼은 벽에 걸려있는 파티용 가면을 착용했다.

눈 주위를 가리는 것 뿐이기에 딱히 변장이라고 하기 어려울뿐더러, 오히려 심홍색의 눈동자가 더 부각이 됐다.

그러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검도 대충 벽에 걸려있는 60센티 길이의 글라디우스를 들었다.

“……그거 좀 불편할 수 있는데.”

슈미트는 검투에 참가하는 다른 사람들의 팔과 검의 길이가 다소 길기에 불리하다고 말하려고 했다.

쩌저저저적!

콰아아앙!

하지만 칼이 휘두른 검에 벽난로 위로 기다란 선이 그어지더니 와장창 무너지자, 슈미트는 당황해 입을 쩍 벌렸다.

“?!”

‘이, 이 녀석 검술도 보통이 아니잖아.’

칼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더니 슈미트를 쳐다보며 말했다.

“슬슬 출발하지.”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칼을 보던 슈미트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으며 농을 건넸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우승해 보라고.”

“너무 쉬운데.”

시시한 일이라는 듯 말을 한 칼은 당당한 걸음으로 바깥에 준비된 마차를 타고 파놉티콘으로 향했다.

*  *  *

대저택 파놉티콘의 지하에는 거대한 광장이 있었다.

지하의 정중앙에는 검투 대회를 위한 원형의 경기장이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구경꾼들이 검투 대회를 구경할 수 있도록 관람석이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웅성웅성.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객들은 한껏 들떠서 검투사 중 누가 이길지 배팅을 했다.

그 모습을 가장 상석에서 지켜보던 이가 딱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계속 자극적인 것만 추구해서 좋을 건 없는데.”

보라색 연지를 바른 입에서는 조롱과 탄식이 흘러나왔다.

둥근 안경을 고쳐 쓰고 있는 그녀는 마미안트 후작 부인이었다.

크르르르.

주변에는 귀 끝이 뾰족한 도베르만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그녀는 그중 한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시종에게 말했다.

“정작 나는 그 흥분이란 감정을 느낀 지 꽤 오래됐단 말이지.”

“이번 대회는 참가자들의 수준이 높으니 기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럴까?”

시중의 말에 그녀는 진홍빛 눈동자로 무대를 살폈다.

때마침 경기장 위로 두 남자가 올라왔다.

한 명은 투구를 쓰고 있었는데 체격이 우락부락했다.

반면 다른 남자는 상대적으로 체격이 훨씬 왜소했는데, 심홍색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그 정체를 눈치챈 마미안트 후작부인은 깜짝 놀랐다는 듯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어머나. 슈타크 가문의 막내 도련님이 어째서 여기에서 어슬렁거리는 걸까.”

신분을 조작해 들어왔음을 간파한 시종은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퇴장시킬까요?”

시종의 질문에 마미안트 후작 부인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놔둬. 이래 봬도 나는 박력 있는 남자를 좋아하거든. 모처럼 흥미로워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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