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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36화 (36/197)

#제36화

타앙! 타앙!

모루 위에 놓인 붉게 달구어진 철을 힘껏 두들긴다.

난쟁이는 박자에 맞춰 연신 철을 두들기며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것은 이제 곧 태어날 작품에 애정을 불어넣는 그만의 방법이었다.

손은 투박했고 가끔은 불똥이 튀기며 멋들어진 수염이 바스락 타기도 했지만.

무구를 만드는 그의 표정은 천진난만했다.

어떤 놈이 태어날까?

어떤 주인의 손에 들어갈까?

늘 그런 고민을 하며 대장장이 일을 사랑하는 그의 이름은 레밍호프.

라흐만 대륙에서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이름 높은 드워프였다.

그런 그에게 두 명의 수제자가 있었다.

파브로와 슈미트.

파브로는 레밍호프의 모든 기술을 터득해 세상이 인정하는 영웅에게 무기를 만들어주길 꿈꿨다.

반면 슈미트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보다는 농기구를 만들거나, 장식품 공예 선호했다.

타앙! 타앙!

어느 날, 기술을 배우던 중, 슈미트는 망가진 검을 고치는 레밍호프를 바라보았다.

치이이이익!

레밍호프는 달군 쇠를 물에 식히며 진중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스승님은 어째서 그렇게 무기를 함부로 대하는 자의 것을 고쳐주는 겁니까?”

“내가 만든 아이가 주인으로 섬기길 선택한 자니까. 두들기다 보면 알게 된다. 검이란 녀석들은 주인과 함께 승리와 영광을 쟁취하고 싶어 하지. 부모는 그 소리를 외면하지 못하는 거고.”

“에고라도 깃든 겁니까?”

실없는 말에 레밍호프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올 거다. 그런 고민이 좋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이해가 가지 않는지, 슈미트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타앙!

불똥을 튀기며 망치질을 하던 와중에 레밍호프는 불만 가득한 슈미트를 보며 말했다.

“슈미트.”

“부르셨습니까.”

“나는 철을 두들길 때면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말하지 않으셔도 뻔히 다 보입니다.”

“후후후후.”

빈정이 상한 슈미트의 대답에도 레밍호프는 미소를 띠며 만족해했다.

*  *  *

파브로의 배신으로 레밍호프는 목숨을 거두었고, 슈미트는 노예로 팔려나가 한 섬에 다다랐다.

짙은 어둠이 깔린 지하.

그곳에 갇힌 슈미트는 팔다리가 구속된 상태로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크르르르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눈이 충혈된 거대한 도베르만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얼추 열댓 마리가 넘는 도베르만은 날카로운 눈으로 슈미트를 잡아먹을 듯 쳐다보고 있었다.

“호호호호, 식사가 부족했니? 조금만 기다리렴.”

그러나 안경을 쓴 우아한 미인의 말에 도베르만은 꼬리를 살랑 흔들며 얌전히 고개를 수그렸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더니 숨을 헐떡거리는 슈미트를 바라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당신의 스승인 레밍호프가 제작한 검을 뛰어넘는 명검을 가지고 싶은데,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여성이 스승의 이름을 언급하자, 슈미트의 얼굴색은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자연스럽게 스승을 죽인 원수인 파브로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짙게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꺼져!!! 네놈들한테 만들어줄 건 하나도 없어!”

콰직!

그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치는 순간.

도베르만 한 마리가 슈미트의 허벅지를 깨물었다.

“끄아아아악!”

두두둑!

살점이 찢겨 나가는 고통에 슈미트는 괴로운 비명을 토해냈다.

우적우적.

도베르만은 주둥이에 피를 가득 묻히며 슈미트의 살점을 씹어먹었고, 여인은 그런 도베르만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타일렀다.

“팔은 절대 건드리면 안 돼. 저 팔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팔이니까.”

살점을 꿀꺽 삼킨 도베르만은 그 말을 이해했는지,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호호호, 아무래도 우린 대화가 필요할 것 같네요.”

여인은 다시 활기차게 웃으며 슈미트를 바라보았다.

진홍빛이 감도는 불길한 눈이 슈미트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분명 생각이 바뀔 거예요. 지금까지 제 요구를 거절한 남자는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요. 호호”

그녀가 상큼한 미소와 함께 웃음을 터뜨리자…….

오싹!

전신에 오한이 서린 슈미트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도망가야 해.

지금까지 만난 상대랑 격이 다른 괴물이었다.

*  *  *

“쿨럭!”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슈미트는 삼켰던 바닷물을 토해내며 슬며시 실눈을 떴다.

“…….”

심홍색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지닌 소년이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누, 누구지? 날 잡으러 온 노예상인가.’

일단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슈미트는 다시 눈을 감고서 소년의 반응을 기다렸다.

소년, 칼은 슈미트의 옷에 걸린 낚싯바늘을 떼어낸 뒤.

“귀찮은데, 갖다버리자.”

슈미트의 몸을 굴려 그대로 바다에 담그려고 했다.

“푸후후후!!! 버리지 마! 나 살아 있어!!”

다시 한번 익사 체험을 할 뻔한 슈미트는 손을 허우적거리며 최대한 바다에서 멀리 떨어졌다.

“허억, 허억! 인간이 맞냐? 네놈! 멀쩡히 살아 있는 드워프를 왜 버려!”

……이 녀석은 악마인가.

슈미트는 헐떡거리며 경멸 어린 시선으로 칼을 쏘아봤다.

“그러게 기절한 척을 왜 하냐?”

“그, 그건.”

자신이 정신을 차렸다는 걸 간파하고 한 행동임을 깨달은 슈미트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가 목에 두르고 있는 노예용 구속구를 최대한 감추려고 했다.

팔락.

칼은 위투를 벗어 그의 얼굴에 던졌다.

“가, 갑자기 뭐야?”

“필요 없으면 돌려주든가.”

“크흠. 피, 필요하지. 빌려줘서 고맙다.”

슈미트는 칼의 외투를 걸친 뒤 옷깃을 세워 구속구를 가렸다.

잠시 후.

타닥.

꼬챙이에 꽂힌 생선이 모닥불 위에서 자글자글 익으며 구수한 냄새를 풍겼다.

주륵.

슈미트는 입에서 침을 겔겔 흘리며 생선이 완전히 익기를 기다리다가…….

파앗!

익자마자 게걸스럽게 생선의 살점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식욕이 딱히 없던 칼은 그런 그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어디서 길을 잃은 거냐? 꼬맹아.”

울컥!

그 발언에 심히 기분이 상했는지, 슈미트는 입안에 가득한 음식물을 꿀꺽 삼키고서 말했다.

“꼬맹이는 누가 꼬맹이야? 너보다 나이를 먹어도 한참 먹었어.”

“몇 살인데?”

“올해로 백서른셋이다!!”

인간이 백서른셋 정도까지 나이를 먹으면 몸이 노쇠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칼은 아직 앳된 티가 묻어나왔다. 그래서 슈미트는 칼을 자신보다 어린놈이라 판단을 했으나…….

“내가 더 많아. 까불지 말고 먹기나 해.”

“…….”

칼의 무뚝뚝한 반박에 말문이 막힌 슈미트는 깨작깨작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

식사가 끝난 뒤.

칼은 암반에 등을 기댄 채로 잠을 청하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두워졌는데도 어째서인지 돌아갈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슈미트는 아직까지도 경계 어린 시선으로 칼을 힐끔힐끔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궁금하지 않아? 왜 노예가 바다 한가운데서 튀어나왔냐라던가, 아니면 이름이 뭔지라도.”

딱히 추궁하거나 이야기를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을 걸어온다면, 자연히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칼은 진지한 눈으로 슈미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생전 처음 낚아본 대어니까. 실러캔스 어때?”

실러캔스.

그것은 고대 시절에 라흐만 대륙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거대한 물고기를 칭하는 이름이었다.

“멋대로 개명하지 마!! 물고기 취급하지도 말고!!!”

진지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망가졌다. 슈미트는 다시 버럭 화를 냈다.

‘끄응. 어째 이 녀석의 페이스에 자꾸 말려드는군.’

슈미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이름은 슈미트. 위대한 대장장이 일파 중 하나인 달빛의 행진 출신이지. 얼마 전까지 이실리아에 있는 지하 검투장 파놉티콘에 갇혀 있었지만.”

“새벽의 이슬처럼 범죄 단체가 운영하는 곳인가?”

“범죄는 아니야.”

슈미트는 목에 두르고 있는 구속구를 손으로 꽈악 쥐며 분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노예는 어딜 가나 있는 거고, 지하 검투장은 합법적인 사업이니까.”

“그래서 너는 어떻게 탈출한 건데?”

“감시하던 보초가 잠시 한눈을 팔 때, 마차에서 뛰어내린 다음 그대로 벼랑에 몸을 던졌지.”

“흐음.”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사연이라도 말할 수 있어서 속이 후련해진 슈미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그대로 내뱉었다.

“후유. 어린 너에게 이런 말을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만, 어쨌든 구해줘서 고맙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날 믿고 좀 더 도와주면 안 되겠냐?”

“뭘 도와줘?”

“돈 좀 꿔다오!”

꿔다오! 꿔다오! 꿔다오!

슈미트의 음성은 동굴의 벽을 튕기며 울려 퍼졌다.

“…….”

구해준 사람한테 돈까지 빌려달라는 것은 무슨 염치인 건지…….

칼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내심 양심의 가책을 느낀 건지, 슈미트는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머리를 지압하듯 꾹 눌렀다.

“진정해라! 슈미트. 아무리 급하더라도 어린 녀석에게 돈을 빌리는 건 좀 아니지.”

“너 되게 재밌는 물고기구나.”

“멋대로 종족 변경하지 마!!”

다시 한번 슈미트의 음성이 메아리를 칠 때였다.

“찾았다. 저기 있어!”

“아, 다행이다! 살아 있었어!”

횃불을 든 무리가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제, 젠장!”

진퇴양난.

도망갈 곳이라고는 험난한 바다밖에 없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슈미트는 다급히 횃불과 돌멩이를 들어 저항의 의사를 드러냈다.

“조심해. 저래 봬도 상당히 힘이 센 드워프야.”

“순식간에 구속구를 풀고 장정 두 명을 제압한 다음에 도망갔다니까.”

“걱정하지 마!”

추격자는 총 다섯.

그중 로브를 쓴 한 명이 완드를 들며 마법을 영창하자…….

쩌저저저적!

순식간에 고드름 형태의 얼음 화살이 완성됐다.

마법사는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어차피 손만 무사하면 된다고 했으니, 다리는 날려버려도 돼”

‘……여기까지인가.’

마법에 대항할 방법이 없던 슈미트는 이를 갈며 분개했다.

“블리자드 애로우!!”

마법사는 망설임 없이 슈미트의 다리를 향해 블리자드 애로우를 날렸다.

질끈!

너무 빠른 속도에 피할 겨를이 없던 슈미트는 눈을 감으며 움찔 몸을 떨었다.

바로 그 순간.

파앙!

칼의 손목에 있는 팔찌가 끊어졌고, 동시에 붉은색의 거대한 파동이 퍼져 나오더니 블리자드 애로우를 분쇄했다.

“마, 말도 안 돼! 완벽하게 영창을 했는데. 어째서?!”

자신의 마법이 깨지자, 마법사는 경악하며 칼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빠직!

하지만 그의 판단은 한발 늦었다.

칼이 손에 들고 있는 돌멩이를 던져 마법사의 다리를 무참하게 부러뜨렸기 때문이다.

“끄아아아아아악!!!”

그는 부러진 다리를 땅에 붙인 채로 고통을 호소했고.

칼은 천천히 걸어 그들의 앞에 다가섰다.

“지들 다리가 부러지면 이렇게 눈물 콧물 짜면서, 왜 남의 다리가 부수는 건 당연하게 여기는 건지, 참나.”

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고.

“이 개자식이! 감히 우리를 방해해!!!”

아직까지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추격자들이 일제히 칼을 덮쳤다.

잠시 후.

풀썩!

주제도 모르고 날뛴 대가로 칼에게 얻어맞은 추격자들은 흰자위를 들어내며 의식을 잃었다.

“어, 엄청나게 강하잖아. 너.”

가까스로 살아남은 슈미트는 아직까지도 전율하고 있었다.

반면, 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쓰러진 추격자들의 품을 뒤적거리더니…….

짤랑짤랑.

그들이 소지한 돈을 한 자루에 모아 그대로 슈미트에게 던졌다.

“이, 이건!”

슈미트는 감동한 얼굴로 칼을 올려다봤다.

“안내인으로 널 고용하고 싶어. 선택은 네 자유야.”

“…….”

감동은 실망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슈미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시선으로 칼을 쳐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네 돈도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 어디로 가고 싶은데?”

그래도 돈이 급한지라 칼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씨익.

칼은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불길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지하 검투장에는 어떻게 하면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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