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오닉스 스퀘어 학파.
검술 대회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칼은 검술 연습에 매진했다.
지금 그는 목검을 든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사락!
바로 그때 사철나무의 잎사귀가 바람에 의해 우수수 떨어졌다.
파앗!
단 한 번의 검격에 잎사귀가 모조리 부스러졌고, 그 가루는 바람에 실려 유유히 날아갔다.
“어떻게 저게?!”
갈수록 일취월장하는 칼의 실력에 로웰은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맥캘리는 쯧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럴 거면 그냥 힘으로 패지 그러냐?”
“알고 있다고.”
지금 하는 수련의 목적은 맥캘리가 사전에 염료를 칠한 잎사귀 한 장만을 정확히 찾아내서 베어내는 거였다.
수련 중 칼은 잎사귀의 궤적과 이동 경로는 정확히 예측했지만.
가장 중요한 필요한 만큼만 힘을 사용하는 걸 못 해서 애를 먹고 있었다.
평소라면 건방진 말투로 대답했겠지만.
가르치는 데 있어서만큼은 맥캘리를 존중하기에, 칼은 서툴게 변명을 늘어놓진 않았다.
‘이럴 때는 예의 바르게 오만하단 말이지.’
평소답지 않은 그 모습에 맥캘리는 마음이 불편했는지 입을 열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다. 제자야.”
“아직 더 할 수 있어.”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게 분했는지 칼은 목검을 으스러질 듯 잡았다.
그 고집스런 모습에도 맥캘리는 팔짱을 끼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나와 하는 훈련은 당분간 중지야. 지금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해.”
“다른 방법이라니?”
“현재 너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대련을 통해서 훈련과 실전의 괴리감을 메우는 거야. 이것만큼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으니 네가 스스로 방법을 찾아봐야지.”
“……실전인가.”
칼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미 끝나버린 검술 대회를 떠올렸고, 생각을 간파한 맥캘리의 인상은 절로 험악해졌다.
“아, 그놈의 검술 대회는 이야기도 꺼내지 마라. 짜증 나 죽을 뻔했으니까.”
“왜?”
칼의 반문에 맥캘리는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에!!!”
“나?”
칼 당사자는 눈치채지 못 했지만, 이번 검술대회에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칼이었다.
검술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검을 내팽개치고 주먹으로 상당한 실력자를 때려눕힌 무위.
오만한 시선으로 모두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눈.
학생들 사이에서는 재수 없다는 소리도 있었지만, 관객들의 눈으로 봤을 때 칼은 아직 제 실력조차 드러내지 않은 신비한 검사였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이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검술 대회의 우승자인 모리스였다.
보통 때라면 우승자를 축하하는 축제가 성대하게 펼쳐져야 했다.
그러나 모리스는 오히려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어쨌든 칼에게 관심을 가진 부유한 상인들과 기사들이 느닷없이 맥캘리를 찾아와 오닉스 스퀘어를 후원한다거나, 자신의 자녀를 오닉스 스퀘어로 받아달라고 부탁해 오기도 했다.
그중에는 심지어 칼과 자신의 딸 사이에 중매를 서줄 수 있냐는 이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큰 곤욕을 치른 것은 학파의 수장인 맥캘리였다.
‘아! 생각만 해도 짜증나네!’
맥캘리는 그때의 회한과 분노를 담아 입을 열었다.
“재수 없기는 하지만, 넌 다방면으로 재능이 뛰어나니 포섭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해.”
빠직!
“아아, 그러셔.”
칼이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맥캘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뭐 어쨌든 스승으로서 과제를 내준 거니, 잘해보라고.”
“노력하지.”
실전을 경험하라는 과제에 칼은 잠시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맥캘리는 턱을 매만지며 칼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걸 안 물어봤는데, 검을 휘두르는 이유가 뭐야?”
굳이 검이 아니어도 되잖아.
그런 뉘앙스가 담긴 말투였다. 이에 칼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난 기사가 돼야 하거든.”
“……그거 진짜였냐?”
남의 꿈을 비웃으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칼이 설마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맥캘리는 속으로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모처럼 제자에게 기사가 가져야 할 소양과 마음가짐에 대하여 가르쳐주기로 마음먹었다.
맥캘리는 두 손가락을 들며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기사가 되고 싶은 망나니 제자 분은 만약, 물에 나와 금괴 1톤이 떨어져 있고, 둘 중 하나만 건질 수 있다면 뭘 건질 거야?”
답이 아주 뻔한 질문.
맥캘리는 칼이 대답하면 그 뒤에 명언을 날릴 심산이었지만.
“굳이 꼭 주워야 하는 거야?”
“…….”
맥캘리의 미친 제자는 나른한 표정으로 늘 그랬던 것처럼 예상을 초월한 답변을 내놓았다.
잠시 머리가 멍해진 맥캘리는 차분하게 마음을 다스렸다.
‘후후후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간다는 답변은 생각도 못 했는데.’
빠직! 빠직!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오랜만에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지나가는 똥개냐?! 줍긴 뭘 주워! 그리고 너 같은 게 주워준다고 해서 내가 쫓아갈 것 같냐?! 지조가 있지!!! 로웰, 너는 누구를 구할 거냐?!”
맥캘리는 쌍심지를 켜며 로웰을 홱 쏘아봤다.
“다, 당연히 교수님입니다.”
기세에 짓눌린 로웰은 황급히 답변을 내뱉었고.
쇄액!
맥캘리는 손가락으로 로웰을 가리키며 칼에게 말했다.
“하다못해 이런 가식이라도 떨어보든가. 이놈아!!! 제자란 놈이 귀여운 구석이 없어! 앙!”
“가, 가식이라니요?”
졸지에 이중인격 쓰레기로 전락한 로웰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칼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맥캘리에게 말했다.
“금괴 1톤이라고 해도 그냥 돌덩어리잖아. 그런 유치한 질문 하지 마.”
“…….”
진지한 눈빛에 단호한 어조.
‘이, 이 녀석이 웬일로 이런 기특한 소리를 하는 거지?’
“그, 그럼 너는…….”
“푸딩이다.”
“푸딩?”
뜬금없이 뭔 소리래?
푸딩.
식사 후 디저트로 아주 먹음직스런 과자인 그것은 맥캘리가 선호하는 간식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레인이 만든 판나코타는 가히 일품이었다.
우선 생크림과 우유, 그리고 설탕을 뭉근한 불에 살살 익힌다.
그리고 차갑게 굳힌 후 마무리로 딸기잼을 얹으면 완성되는, 먹음직스런 빛깔이 참으로 독보적인 음식.
지금 그녀의 앞에는 그 하얀 푸딩, 판나코타가 놓여 있었다.
칼은 맥캘리가 방심한 순간을 틈타…….
“냠.”
그것을 손으로 집어 한입에 넣고는 우적우적 씹어 목구멍으로 삼켰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맥캘리는 마치 귀신을 본 사람처럼 창백한 안색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피식.
칼은 얄궂게 웃으며 그런 맥캘리에게 말했다.
“꼬맹이 스승이 물에 빠지면 먹지 못한 푸딩부터 건져서 내 뱃속으로 집어넣어야지.”
“뭔 개소리야! 죽고 싶어!!”
분노한 맥캘리는 눈이 뒤집혀 라이트닝 마법을 난사했다.
콰콰콰콰콰쾅!
칼은 검술을 익힐 때, 같이 익혔던 보법을 이용해 그녀의 뇌전을 모조리 피해내며 자리를 박찼고.
“으아아아아! 푸딩의 원수! 게 섰거라!!!”
맥캘리는 흥분한 나머지, 손목에 있는 트리거의 촉매를 발동시키려고 했다.
“교, 교수님! 그것만은 안 됩니다!”
사태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로웰이 다급하게 그녀를 만류했다.
* * *
오닉스 스퀘어 진영 외곽.
‘으윽! 달아!’
맥캘리를 골리려고 일부러 평소에 즐기지 않던 단것을 먹은 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후회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레인은 쀼루퉁하게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그렇게까지 맛없게 드시면 서운하다고요.”
“다음에 내 거는 담백한 걸로 해놔.”
“네! 다음에는 공자님 입맛에 맞게 준비해 놓을게요!”
도전 의욕이 샘솟았는지 레인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으아아아아!”
칼은 아직까지 맥캘리의 분노가 쏟아져 나오는 장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꼬맹이 스승에게는 내가 방금 먹은 것의 두 배를 만들어서 건네주고.”
“네!”
레인은 활기찬 미소를 지으며 소매를 걷어붙였다.
분노한 맥캘리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빨리 손을 써야 했기 때문이다.
“공자님은 외출하실 건가요?”
“이제 곧 검술 수업 시간이니까. 나가야지.”
너무 당당한 땡땡이 선언에 레인은 조금 당황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면서 칼에게 인사를 전했다.
“다녀오세요.”
칼은 말없이 손을 흔들며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그대로 유유히 파르테스를 빠져나갔다.
* * *
활기찬 오후.
시장은 교역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인파가 붐볐다. 칼은 그곳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수업 중인데 이리 당당해도 될까 싶지만.
전 과목 1위인 데제스가 수업을 가리며 빠지고 있으니, 공동 1위인 칼 역시 꿇릴 게 없어서 당당했다.
정정. 원래 당당했다.
‘결국 검술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서는 실전을 겪어야 한다는 건데.’
걸음을 옮기던 칼은 진지하게 검술 실력을 늘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타악!
뒤에서 칼을 염탐하고 있던 소매치기가 빠르게 칼을 스쳐 지나가면서 그의 지갑을 낚아챈 뒤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완벽한 성공이야.’
두둑한 칼의 지갑에 소매치기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우드득!
그 손목이 돌아갈 때까지는 말이다.
“크아아아아악!!!!”
엄청난 고통에 소매치기는 탈골된 자신의 손목을 붙들며 울부짖기 시작했지만.
“끄웨에에에엑!!!”
칼은 그를 짓밟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여전히 그의 눈은 초점이 모호했다.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소매치기를 진압한 것이다.
“이, 이 자식 뭐야?”
당황한 동료들은 나이프를 들어 일제히 칼을 급습하려 했지만.
칼은 날아오는 나이프를 곧장 뺏어 들어 단숨에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칼이 휘두른 나이프에 부딪힌 칼날들이 유리가 깨지듯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이어서 칼은 뒤쪽으로 나이프를 던져버렸다.
푸욱!
“히익!!!”
나이프는 정확히 벌러덩 쓰러진 소매치기 중 한 명의 가랑이 사이에 꽂혔다.
조금 더 위쪽에 꽂혔다면,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가 싹둑 잘렸을 것이다.
소매치기는 놀라 호흡을 갈무리하다…….
꼴까닥!
그대로 입에 게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순식간에 소매치기와 강도들을 진압했지만, 정작 칼은 자신이 그 일을 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일제히 동요하며 칼을 쳐다보았다.
이런 가운데, 칼은 아직까지 홀로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하아, 어떻게 하면 실전 검술을 익힐 수 있는 거지?”
“…….”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중년의 과일 장수 남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방금 자기가 한 게 실전 검술 아닌가?”
* * *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결과.
칼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알테어 사선으로 돌아갈 때까지 힘을 키우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지만.
지금 같이 성장이 더딜 때는 잠시 쉬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리하여 칼이 선택한 것은 조용한 바닷가에서 하는 낚시였다.
낚시 장비를 사서 도착한 곳은 보통은 진입하기도 어려운 해안에 위치한 암벽 동굴이었다.
처음에 칼은 낚시가 자신의 격정적인 성정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잔잔하게 낚싯줄의 흔들리며 파문이 그려지는 걸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쏴아아아.
철썩.
암반을 때리는 바닷소리에 마음을 편하게 가지던 중이었다.
드르르륵.
낚싯줄을 당긴 칼은 바다에서 대롱대롱 걸려 나오는 자그마한 드워프를 보고는 마음이 심히 복잡해졌다.
“꼬맹이 교수가 원하던 대로 인명구조를 하게 된 셈인가.”
맥캘리가 곁에 있었으면 ‘그거랑 이야기가 다르잖아! 바보야!’라고 빽 소리를 지를 게 뻔했다.
“일단 응급처치부터 해야겠군.”
칼은 물이 꽉 찬 드워프의 배를 발로 꼭 눌렀다.
“푸후후후훗!!!”
거친 압박에 드워프는 입 바깥으로 물 분수를 길게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