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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32화 (32/197)

#제32화

검술 대회의 첫 번째 시합.

칼은 대진표를 살폈다. 프랭크의 말대로 그는 첫 시합에서 프랭크와 맞붙게 되었다.

그는 가볍게 팔다리의 근육을 풀어주며 대기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로웰은 연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까지 긴장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이 대회에는 모리스와 프랭크라는 강력한 우승 후보가 있잖아.”

“아, 그 녀석도 있었군.”

칼은 뒤늦게 기다란 흑발을 지닌 남성을 떠올렸다.

아마 데제스의 오른팔이 아닐까 싶은 남자로…… 현재, 그는 눈을 감은 채 잠잠히 명상을 취하고 있었다.

“긴장도 안 되나.”

로웰은 괜스레 자신만 긴장하고 있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가자들은 검을 쥐며 마음을 다잡거나, 긴장을 풀기 위해 연신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수준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던 칼은 따분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지루해.”

“……칼. 그래도 너무 풀어지진 말라고.”

칼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던 로웰은 곤란한 웃음을 지었다.

“긴장할 만한 구석이 있어야 말이지.”

그리 말한 칼은 슬쩍 프랭크를 쳐다봤다.

씨익.

어째서인지 프랭크는 아주 음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재밌는 걸 꾸미는 것 같네.’

바로 그때 관리원 중 한 명이 급하게 칼에게 달려왔다.

“죄, 죄송합니다.”

그는 칼에게 허리를 숙여 사과를 전했다.

“무슨 일 있나요?”

로웰은 칼 대신 사과한 이유를 물었다.

“그게 제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칼리언트 님의 목검이 사라졌습니다.”

“오호, 꽤 많이 아끼던 건데, 그게 어디 갔을까?”

칼이 정면을 보니, 어느새 프랭크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것 참 우연이네. 나도 목검을 잃어버린 참인데.”

“프랭크! 너!”

그의 의도를 눈치챈 로웰은 눈에 쌍심지를 켜며 분노했다.

칼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하고는 프랭크에게 물었다.

“그래서 용건은?”

“기왕 이렇게 된 거…….”

타앙!

프랭크는 미리 준비했던 진검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말했다.

“진검으로 해보는 건 어때?”

갑작스러운 제안에 두 사람 사이에 있던 관리원이 끼어들었다.

“위, 위험합니다. 사고라도 나면…….”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을 때는 괜찮잖습니까.”

프랭크는 관리원의 어깨를 두들기며 잇몸을 히죽 드러냈다.

참견 말고 꺼지라는 제스처에 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좋아.”

그리고 칼은 이에 대해 동의했다.

“우와아아아아!!!!”

둘의 대화를 들은 주변 참가자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그동안의 검술 대회에서 진검으로 승부를 가린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자식, 어디까지 간덩이가 부은 거냐.”

물론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프랭크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실상 겁을 주려는 의도였지만 칼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프랭크는 그대로 등을 돌렸고, 칼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래야 싸울 맛이 나지.”

“지, 진짜로 즐기고 있구나.”

로웰은 칼의 대범함에 다시 한번 감탄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  *  *

세계 최고의 축제인 이실리아의 검술 대회에는 위험한 규칙도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중 한 가지를 꼽는다면, 단순히 실력을 겨루는 대회임에도 진검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합의를 해야만 했다.

당연히 상대를 죽이는 것은 금물.

만약 이 규정을 어겼을 시에는 이실리아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첫 시합부터 진검 사용이 확정된 경우는 전무후무했다.

칼과 프랭크는 온몸에 갑주를 착용해야만 했다.

‘슬슬 나갈 때인가.’

칼은 검자루를 쥐었다 펴기를 반복하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이윽고 경기장에 오르는 순간이 찾아왔다.

“프랭크 입장!!”

심판의 호령과 함께 프랭크는 거대한 대검을 들고서 경기장 위에 올랐다.

그 웅장한 기세에…….

와아아아아아!

각진 경기장 관람석에서 관객들의 환호가 일제히 쏟아졌다.

뒤이어 칼의 이름이 호명됐다.

“칼리언트 입장!!!”

칼은 무덤덤하게 무대 위에 올라섰다.

와아아아아!

프랭크 때와 마찬가지로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더니, 이내……

“프랭크!”

“프랭크!”

“프랭크!”

많은 사람들이 프랭크의 승리를 기원하며 힘껏 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중층의 관람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루드거는 빠득 이빨을 갈았다.

“어떻게 하면 저것들 입을 다물게 할 수 있지?”

“하하하. 지, 진정하시죠. 그러다 국제 문제로 번집니다.”

와튼은 루드거를 진정시키느라 애먹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백작님께서 응원하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러나 입을 열다가는 감당치 못할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아서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경기장 위에서 심판은 다시 한번 규칙을 강조했다.

“시작!”

그러고 이어지는 시합 시작 선언에 기다렸다는 듯 칼과 프랭크는 동시에 거리를 좁히며 각자의 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카아아아아앙!

불똥이 튈 정도의 강렬한 금속 충돌음이 경기장 위를 장악했다.

와아아아아아!

“첫 경기부터 진검이라니!”

“저 녀석 프랭크보다 작은데 괜찮을까?”

“꺄아아아아! 그래도 난 저 애가 더 잘생겼으니까, 저 애 응원할래.”

“무슨 소리? 잘생긴 건 남자다운 프랭크지.”

관중들은 여러 이유로 편을 가르며 칼과 프랭크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을 겨루던 중, 프랭크는 씨익 웃으며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넌 뒤졌어!”

불끈!

프랭크는 칼을 죽이고 싶어서 혈안이 되었는지, 팔다리의 근육을 팽창시키더니…….

“으아아아아아!!!”

거센 포효와 함께 칼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칼은 다급히 발뒤꿈치로 몸에 제동을 걸었지만, 애초에 체중과 완력에서 크게 밀리는지라 그대로 몸이 튕겨 나갔다.

타닷!

그는 균형을 잡으며 어렵지 않게 지면에 착지했다.

오싹!

순간 등골을 스쳐 지나가는 서늘한 감각에 고개를 들어 올리니…….

후우우웅!

어느새 들이닥친 프랭크가 양손으로 대검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칼은 다급히 검을 역수로 쥐며 프랭크의 검격을 흘려보냈다.

키이이이이익!

팔 근육이 끊어질 것만 같은 매서운 검격을 불똥을 튀기며 가까스로 막아내는 칼.

프랭크는 발을 앞으로 내밀며 대검을 마치 목검처럼 가볍게 휘둘렀다.

카앙! 카앙! 카앙! 카앙!

허공에서 파열음이 빗발치듯 울려 퍼졌다.

칼은 그의 검격을 흘려보내며 아슬아슬한 대치를 유지했지만.

주르르륵!

완력 자체에서 크게 밀리기에 결국 몸이 기우뚱 흔들리며 자연스레 뒤로 밀려났다.

칼은 어쩔 수 없이 수세를 굳히며 생각했다.

‘그동안 큰소리칠 만큼의 실력은 있었네.’

프랭크.

출신도 가문도 알 수 없지만, 패도적인 검술이 특징인 이 괴력의 거한은 전투 센스도 일반적인 학생의 범주를 벗어났다.

카카카카카카캉!

그리고 연달아 검격을 주고받으며 깨달은 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사람을 죽여 본 검술이다.’

보통은 급소를 찌를 때 망설임이라는 게 있을 법도 한데.

프랭크는 칼의 급소를 노리는 것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 말은 즉, 그는 지금 사고로 위장해서 칼을 죽이려고 한다는 뜻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니, 칼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슬쩍.

무심코 관람석을 쳐다보니, 그곳에서는 데제스가 싱긋 웃으며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릴리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주먹을 꼭 쥐었다.

‘지금이다!’

칼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했다는 것을 깨달은 프랭크는 눈을 번뜩였다.

스릉.

그의 검 끝에 오러가 맺혔다.

“?!”

이어지는 프랭크의 공격에 칼은 눈을 부릅떴고.

쇄애애액!

콰아아앙!

칼의 검 끝이 그대로 토막 나며, 사선으로 길쭉하게 칼의 가슴이 베였다.

흉갑이 박살 나며 칼은 그대로 뒤로 고꾸라졌다.

“칼!!”

깜짝 놀란 릴리는 큰 소리를 내었다. 동시에 로웰과 맥캘리, 그리고 예카테리나 2세와 같이 앉아 있었던 에리스 역시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오러!”

“저 나이에 벌써 오러를 생성한다고?”

“아, 아니 그보다 상대는 괜찮은 거야?”

“우와아아아! 첫 경기부터 장난 아니네.”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혼란에 빠졌다.

꽈악!

관중석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루드거는 자신도 모르게 의자의 손잡이를 으스러뜨리며 이를 갈았다.

정작 칼을 벤 당사자인 프랭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빠득!

프랭크는 같잖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어나. 베인 느낌이 하나도 없었어.”

타앗!

그 말에 칼은 가뿐하게 몸을 일으켰다.

“아아, 오러도 쓸 줄 아는구나. 제법이네. 칭찬해줄게.”

빠직!

“죽을 뻔했던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가증스런 놈.

압도적인 우위를 선보였음에도 프랭크의 표정에서 만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유는 뻔했다.

갑옷을 완전히 박살 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정작 베인 부위에는 혈흔이 살짝 맺혀있을 뿐이었다.

‘얕아. 분명 죽일 각오로 베었는데.’

프랭크는 긴장하는 표정으로 칼에게 물었다.

“네놈도 오러를 쓸 줄 아는 거냐?”

“아직은.”

칼은 솔직하게 자신의 경지를 알려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빠직!

그의 반응에 프랭크는 지금이 검술 대회 중이라는 것조차 망각하고 소리쳤다.

“근데 주제도 모르고 어디서 자꾸 기어올라! 얌전히 굴복해!! 무릎을 꿇어!! 이 패배자야!!!”

스르르르릉.

감정이 격화되자, 프랭크의 검신에 오러가 맺히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죽이겠다는 의도가 명백했음에도 칼은 여유를 갖고 말했다.

“일전에 리자크가 검의 존재 이유가 죽이기 위해서라고 했잖아. 네 생각도 그렇겠지?”

“그렇다면?”

칼은 나른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답변을 하자면, 이거라고 할까?”

그리고 순간 칼은 검을 뒤로 던졌다.

푸욱!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검은 그대로 땅에 박혔고.

“…….”

관중들은 믿기지 않는 광경에 경직된 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이 순간만큼은 프랭크조차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열었다.

“……뭐 하는 짓이야?”

콰드드드득!

칼은 균열이 일어난 흉갑을 손으로 우악스럽게 쥐어뜯으며 말했다.

“죽이는데, 검이든 주먹이든 오러든 뭔 상관이야? 그리고 너는 내가 검을 휘두를 가치도 없어.”

빠직!

분노가 절정에 다다랐는지, 프랭크는 증오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칼리언트!!”

오러를 두른 프랭크 검이 칼의 명치로 향했으나…….

퍼억!

콰아아앙!

그보다 일찍 칼의 주먹이 프랭크의 안면에 꽂혔고, 육중한 프랭크의 덩치가 지면에 연거푸 튕기며 나가떨어졌다.

“이, 이게 무슨?!”

의식이 혼탁해진 프랭크는 희뿌예진 눈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일까?

일순간이지만 칼의 모습이 여섯 장의 날개가 달린 거대한 악마처럼 보였다.

칼은 타오르는 듯한 심홍색의 눈으로 프랭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일어나, 새꺄. 지옥이 뭔지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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