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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31화 (31/197)

#제31화

이실리아의 해안은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천혜의 입지를 가지고 있었다.

풍부한 해양 자원과 아름다운 바다.

그 입지를 활용하여 무역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재능 있는 사람들을 대우하여 마법, 검술, 외교술, 의학, 점성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재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그들이 제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할 수 있게 하여 근래에는 유학의 중심지라고 불릴 정도로 교육의 부흥을 이뤄냈다.

그리고 오늘은 이실리아가 왜 외교의 중심지라고도 불리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날이었다.

뿌우우우.

호각 소리와 함께 안개 속에서 거대한 배들이 물밀어 들어왔다.

이실리아 곳곳을 방위하던 함대의 제독 클리브스는 기가 찬 표정으로 감상을 내뱉었다.

“올해도 메뚜기 떼처럼 몰려드는군.”

“제, 제독님. 그 발언은 위험합니다.”

그의 보좌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누군가 그 이야기를 들을까 노심초사했다.

지금 오는 배들 안에는 하나같이 각국의 귀족이나 고위 인사가 탑승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클리브스 제독의 발언을 누군가 엿듣는다면, 자칫 외교적 문제로 번질 수가 있었다.

“이것 참 실언을 했어.”

클리브스는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수상한 녀석들은 있었나?”

“탑승할 때 모두 소속을 확인했습니다. 크게 이상은 없었으나, 자신의 배로 오겠다는 연락이 세 군데에서 왔습니다.”

“하아, 고집불통들 같으니라고.”

클리브스는 한숨을 쉬며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후룩 들이켰다.

이실리아에 이렇게까지 많은 귀족들이 몰려오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파르테스에서 열리는 검술대회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우승을 한 자는 늦느냐 빠르냐의 차이일 뿐, 소드 마스터가 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각국의 사람들은 자국의 학생을 응원하거나 혹은 뛰어난 성적을 거둔 자를 포섭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물론, 그러한 인재 유출에 민감한 파르테스에서는 학생들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게 했지만…….

그들이 건네는 조건에 혹하는 학생들도 꼭 있기 마련이었다.

“제, 제독님!”

보좌관은 다시 한번 초조한 안색으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이런 또 실언을 했군. 그래서 직접 자기 배를 끌고 온다는 대단한 양반들은 누구지?”

클리브스의 질문에 보좌관은 서류를 건네준 뒤, 입을 열었다.

“먼저 신성 국가, 산크투아리움에서 방문하기로 한 바흐훈트 추기경입니다.”

“여왕 폐하께서 골치가 썩겠군.”

“두 번째는 아벤트로트의 보석 여왕, 마미안트 후작 부인입니다. 듣기로는 직접 행차하고 있다고 합니다.”

“끄응, 또 오는군.”

마미안트 후작 부인.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광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거기서 나는 금, 은, 구리, 오리하르콘 등, 다양한 광물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기에 보석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그녀는 해마다 한 번 이실리아에 방문해 엄청난 거금을 쓰고 가는 귀한 고객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실리아의 여왕 예카테리나 2세가 마마안트를 직접 마중을 나간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붉은 사신이 온다고 합니다.”

흠칫!

단지 이명을 들었을 뿐인데.

클리브스는 낯빛을 심각하게 굳히며 소리쳤다.

“그 전쟁 중독자가 왜 이 평화로운 이실리아까지 쳐들어오는 건데?!”

“쳐, 쳐들어오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검술 대회 때문에 오는 거라고 합니다.”

보좌관의 해명에 클리브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네,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군.”

보좌관은 억울했는지 곧장 항변했다.

“농담이 아닙니다. 최근에 ‘새벽의 이슬’을 정리한 붉은 남자와 관계가 있을 듯싶습니다.”

클리브스는 자신의 모자를 벗고 머리를 위로 쓸어 올렸다.

“빌어먹을 슈타크 일가 놈들! 사고만 쳐봐. 바로 추방시켜 버리겠어.”

나른해 하던 그는 의욕이 가득한 눈으로 보좌관과 주변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했다.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경계 태세를 높여! 긴장 놓고 있으면 죽을 줄 알아!”

“네!”

그의 명에 병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거대한 범선, 아이스베그는 순풍을 타고 거침없이 바다를 질주하고 있었다.

돛에는 슈타크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배가 향하는 목적지는 바로 이실리아였다.

갑판 위에서 이실리아의 푸르른 해안을 보고 있던 루드거 슈타크는 바다 냄새를 맡으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랜만에 일에서 해방된 느낌이군.”

쪼르륵.

그는 집사가 따라주는 와인을 마시며 이실리아의 정취에 취해 있었다.

루드거는 노쇠한 집사, 와튼을 바라보며 피식 웃으며 말을 건넸다.

“뭔가 궁금하다는 표정인데?”

와튼은 크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백작님께서 전장도 아닌데 이렇게 먼 곳까지 온 것은 처음이라 조금 놀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뭔가 여러모로 재밌는 일이 펼쳐질 것 같지 않나? 경치도 좋고 두루두루 볼거리도 많다던데 말이야.”

루드거의 말에 와튼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루드거가 기대하고 있는 부분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막내아들이라는 점을.

오랫동안 냉혹한 슈타크 가문의 가주로서 지내온 탓인지, 루드거는 본인이 칼에게 가진 기대감에 대해서 눈치를 채지 못한 듯 보였다.

이곳에 올 때도 그저 바다가 보고 싶다는 황당한 이유를 늘어놓은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구태여 언급할 필요는 없었기에, 와튼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실리아에는 아주 볼거리가 많으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암, 그렇고말고.”

루드거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표정을 지은 바로 그때.

팔락!

아이스베그의 양쪽에서 산크투아리움을 상징하는 깃발과 아벤트로트를 상징하는 깃발이 펄럭이며 아이스베그와 동등한 크기의 범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루드거는 두 척의 배에 탑승한 이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산크투아리움의 범선에서는 한쪽 눈을 안대로 가린 채 사제복을 갖춰 입은 미중년의 남자가, 아벤트로트의 범선에서는 분홍색의 드레스를 갖춰 입고 안경을 쓴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고, 그녀의 주변에는 커다란 도베르만 두 마리가 호위하듯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호오. 예상외의 거물들이 몰려드는군.”

한눈에 그들을 알아본 루드거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와튼에게 물었다.

“만약 녀석이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그 즉시 알테어로 귀환시킬 걸세.”

의도치는 않았지만 각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만약 여기서 칼이 모자란 모습을 보인다면 루드거는 미련 없이 옛날의 냉혹한 군주로 돌아갈 것이다.

꿀꺽!

그 사실을 알기에 와튼은 긴장으로 고인 침을 삼키며 칼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편애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와튼은 내심 칼을 응원하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는 한없이 순진무구하고 귀여운 아이였지만.

검에 대한 재능이 없어 가문에서 낙오되고 외면당한 아이.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내면과 외면 모두 성장한 칼은 직접 루드거를 설득하여 파르테스 아카데미에 편입하는 데 성공했다.

처음에 루드거를 상대로 협상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철렁했단 말인가.

그 많은 루드거의 아들과 딸 중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일을 막내아들인 칼리언트 슈타크가 이루어냈다.

마음 같아서는 장하다며 등을 두드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검에 대한 재능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어렵게 얻은 두 번째 기회도 수포가 된다.

‘어떻게든 승리해 주십시오. 막내 도련님!’

와튼은 루드거 몰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칼을 응원했다.

*  *  *

파르테스 검술 대회의 참가 인원은 총 64명.

참가자들은 대회가 펼쳐지는 경기장 아래에 있었다.

경기장 위로는…….

대회 취지에 맞게 대회 시작 전 정의의 여신, 프리데아를 기리기 위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먼저 이실리아의 전통 복장을 갖춰 입은 무희들이 춤을 추며 무대의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다.

이후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이실리아의 공주인 에리가 횃불을 든 채, 성화대에 다가가 불을 붙였다.

화르르르륵!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과 함께 예카테리나 2세가 검술 대회의 개막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자…….

“우와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갈채가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무대에서 내려가는 에리 바라보며 수군덕거렸다.

“저게 이실리아의 공주야?”

“우와아아, 왠지 엄청나게 아리따운 미녀일 것 같은데.”

“그러게, 얼굴을 보지 못해 아쉽네.”

“우승하면 혼약을 치를 수 있다는 소문도 있는데.”

“흐음, 데릴사위도 나쁘지 않겠네.”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교양 있는 행동, 그리고 빼어난 몸매 등.

참가자들은 에리를 보며 자신들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에리는 누군가에게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오오오오! 분명 나한테 인사한 거겠지.”

“아니야! 나야.”

칼의 앞에 있던 참가자들은 설레는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흥분했다.

바로 뒤에 있던 칼은 뚱한 표정으로 에리를 쏘아봤다.

‘일부러 그러는 거야, 저 녀석.’

인사를 해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받아줄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노골적으로 한쪽만 쳐다보며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빠직!

결국 칼은 눈치껏 살살 손을 흔들어 주었고, 그제야 그녀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야. 금세 공주랑도 친해졌나 봐?”

때마침 곁에 있던 프랭크는 비웃음이 담긴 눈으로 칼을 쳐다보며 말했다.

“머리 똑똑한 서민이랑 한 나라의 공주라…… 크크크크, 양손의 꽃을 쥔 기분은 어때?”

대결을 하기 전 흔히 하는 조롱에…….

“어디서 개가 짖나?”

칼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귀를 쑤셨다.

빠직! 빠직!

그 태연한 반응에 프랭크는 주먹을 몇 번이나 쥐고 펴기를 반복했다.

그는 이날을 위해서 여태껏 칼을 방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으면 돼.’

기왕 이렇게 된 거, 프랭크는 이 수모와 굴욕을 좀 더 감수하기로 했다.

그 모든 것을 해방할 장소는 바로 경기장 위였다.

무대 위에서 시합이 펼쳐지는 순간.

저 거만한 얼굴은 겁으로 가득 차고, 눈물을 글썽이게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프랭크는 분노가 해소될 때까지 절대로 폭력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  *  *

검술 대회의 관람석.

맥캘리의 교수 특권으로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릴리는 긴장하며 무대를 지켜봤다.

‘잘할 수 있겠지.’

칼의 승리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데제스와 그 무리들이 이 대회를 틈타 무슨 짓을 벌일지에 대한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일은 없을 테니까, 안심해도 돼.”

우연의 일치인 건지 그녀가 속으로 생각할 때,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휘익!

깜짝 놀란 릴리가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백발에 청명한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이 서 있었다.

“데, 데제스. 네가 여기에 왜?”

“옆에 앉아도 되지?”

승낙이 떨어지지도 않았음에도 데제스는 태연하게 릴리의 옆자리에 착석했다.

“거, 거긴 맥캘리 교수님의 자리인데.”

“잠깐만 있을 거야.”

릴리는 미간을 좁히며 입을 뗐다.

“……무슨 꿍꿍이야.”

“그냥 검술 대회를 즐기러 왔을 뿐이야.”

“즐기러 왔다면서 작년 우승자가 왜 이번 검술 대회에는 참가하지 않은 걸까?”

“가끔은 참가하지 않고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데제스의 말에 릴리는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대화를 하면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부드러운 말투임에도 묘하게 상대를 얕잡아 보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던지는 말마다 치명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는 듯하여 대화하는 내내 경계를 늦출 수도 없었다.

“시작했군.”

그러나 오늘만큼은 정말로 별 꿍꿍이가 없는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무대를 주목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칼과 프랭크가 서로를 노려보다가…….

콰아앙!

곧장 검을 부딪쳤고, 그로 인해 금속음이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깜짝 놀라 귀를 막은 릴리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말을 더듬었다.

“왜, 왜 진검인 거야?”

“글쎄. 아무래도 그게 더 재밌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

이에 데제스는 프랭크에 대한 걱정 대신 흥미가 가득 찬 눈으로 대답하며 경기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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