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파르테스에 치러지는 검술 대회.
이것은 파르테스에서 개최되는 학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며 기다리는 축제였다.
이실리아의 건국 신화에 따르면, 정의의 여신 프리데아가 이실리아에 자리 잡은 거대한 기생 수목인 타라와 그 나무를 가꾸고 지키는 거대 거인 게어트너를 상대로 승리했다고 한다.
프리데아. 이실리아 최초의 여왕.
이실리아의 수도 중심지에서는 그녀의 동상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타라와 게어트너에게 승리한 날이 바로 이실리아의 건국 기념일이며, 그날을 기리기 위해 매년 검술 대회가 열렸다.
수천 년 동안 이어진 이실리아의 검술 대회는 세계적인 행사가 됐다.
각국의 학생들은 검술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둬 자국에 그 명성을 떨치기 위해 일부러 파르테스에 입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중요한 행사에 깊은 의미를 두지 않고 참가하는 것이 바로 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검술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맥캘리에게 검술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려 하고 있었다.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진영.
휙! 휙!
정원에서 목검을 휘두르던 맥캘리는 지친 표정으로 칼에게 말했다.
“억, 허억, 허억. 봤지, 이 저질 체력을……. 난 너한테 검술 못 가르쳐.”
맥킬리는 칼의 억지를 꺾기 위해 자기를 비하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지만.
“좀 더 열심히 하면 되겠군.”
칼은 고집을 꺾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가?! 이놈아!! 끝까지 고집을 부릴래? 에잇!”
맥캘리는 지면에 목검을 집어 던지며 발끈했다.
“…….”
로웰과 릴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기에 얌전히 지켜보는 것을 선택했다.
칼은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내 말의 취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어. 꼬맹이 스승의 막춤을 배우겠다는 게 아니라고.”
빠직!
“오호라. 이놈이 가면 갈수록 기어오르는 데 도가 텄구나!”
맥캘리는 가까스로 인내했다.
귀 끝이 빨간 것을 보니, 본인 또한 검을 휘두르던 자신의 모습이 민망한 게 분명했다.
그녀는 애써 부끄러움을 감추며 입을 뗐다.
“확실히 네 말대로 그랜드 마스터의 검술 교본을 가지고 있긴 해. 하지만 보안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어떻게 안 거야?”
“지난번에 혈도술을 가르쳐줬잖아. 그래서 오닉스 스퀘어 마나 연공식을 바탕으로 한 검술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흐음, 그게 어째서 내가 갖고 있다는 사실이 되는 거지?”
“그랜드 마스터의 발자취를 좇는 게 꼬맹이 스승 목표니까. 하지만 검술 연구만큼은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연구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을 거야.”
“끄응. 너 나 좋아하냐?”
속내가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빨개진 맥캘리는 얼굴 근육을 꿈틀거렸다.
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제안을 할게. 검술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나를 이용해서 교본에 있는 그랜드 마스터의 검술을 재현해줘.”
“…….”
꿀꺽!
칼의 제안에 맥캘리는 대답 대신 고인 침을 삼켰다.
칼의 제안은 분명 그녀의 연구에 있어 획기적인 발전의 토대가 될 게 분명했다. 또한 칼의 말대로 그녀는 그랜드 마스터라는 영웅에 심취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모두가 포기한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수장을 자처하며 마나 연공식을 연구 중인 것이 아닌가.
하지만 검술 연구만은 지지부진했다.
몸을 움직이는 건 그녀하고는 전혀 맞지 않았는데, 검술이란 이론만으로는 분석이 불가능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칼의 협조가 있다면, 그녀는 검술을 재현하는 게 가능했다.
맥캘리가 검술 이론의 해석과 분석을 하면, 칼은 분석한 이론을 몸으로 시연한다.
잘만 된다면 전설상의 그랜드 마스터의 검술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수천 년에 사라진 검술을 부활하는 거였다.
꿈같으면서도 낭만적인 얘기지만.
“안 돼,”
홱!
맥캘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왜?”
칼의 질문에 맥캘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구배지례를 하면 가르쳐주지. 망나니 제자야.”
“…….”
전직 마왕의 체면상, 어찌 고개를 수그릴 수 있을까.
잠시 당황했던 칼은 곧장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레인을 보고 말했다.
“오늘 저녁은 뭐지?”
“음, 님파 산맥의 고산 지대에서 키운 송아지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랑 데캉트 지방에서 만든 유명한 포도주를 준비하려고 했어요.”
“집어치우고 드레싱 소스도 없는 샐러드로 대체해.”
“…….”
칼의 말에 모두가 얼굴을 심각하게 굳혔다.
고기를 버리고 드레싱 소스도 뿌리지 않은 샐러드를 먹으라니…….
평소에 삼시 세끼를 모두 레인에게 의존하고 있던 맥캘리는 창백한 안색으로 칼에게 말했다.
“비, 비겁한 놈.”
“평생 샐러드.”
“으아아아아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해!!!”
결국 맥캘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칼에게 검술을 전수해 주기로 했다.
참고로 레인의 음식 솜씨는 웬만한 요리사보다 훨씬 뛰어났다.
정작, 그녀 자신은 자신의 실력이 그렇게까지 좋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지만.
어쨌건 가까이서 그 혜택을 누리고 있던 맥캘리에게 있어서 레인의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맥캘리는 칼과는 늘 티격태격하는 남매처럼 지내고, 릴리나 로웰에게는 진지한 충고를 해 주는 스승의 역할을 했으며 레인에게는 친절하고 따스하게 대해주고 있었다.
물론 그런 행동이 밥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릴리는 음식을 가지고 맥캘리를 협박하는 칼을 한 번 바라보더니 으스스 몸을 떨며 한마디를 남겼다.
“……무서운 놈.”
* * *
검술 시합까지는 앞으로 한 달.
그전까지 부지런히 검을 휘둘러 검술의 기초를 갈고 닦아도 모자란 상황이었지만.
‘이런 검술 수업은 처음 보네.’
릴리는 자신의 예상과 다른 풍경에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맥캘리는 야외에 놓인 책상에서 안경을 쓴 채, 검술 교본을 해석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타닥.
그 옆에서는 레인이 모닥불에 장작을 넣어 주변을 따뜻하게 해 주고 있었다.
우웅.
책상 주변에서는 맥캘리가 마법으로 만들어 낸 빛의 구체가 일렁이고 있었다.
칼은 맥캘리가 해석을 마칠 때까지, 가부좌한 상태로 오닉스 스퀘어의 마나 연공식을 연마하고 있었다.
물론 검술 훈련이란 취지에 맞게 연무장에는 다수의 목검과 목인장이 놓여 있었다.
“칼. 이리 와서 이야기 좀 들어볼래?”
해석을 마친 맥캘리는 교본서에 적힌 그림과 자세를 취할 때, 마나를 어떻게 운용해야 하는지 설명해줬다.
“이렇게 하는 건가.”
검을 집어 든 칼은 교본의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하다가…….
타앗!
순식간에 찌르기를 취하며 목각인형의 머리를 찔러 넣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
의자에 앉아 이를 지켜보고 있던 로웰은 눈을 부릅떴다.
“……깔끔해.”
웬만한 상대는 아마 저 찌르기를 보지도 못하고 미간이 찔려 즉사할 것이다.
그러나 맥캘리는 안경을 고쳐 쓰며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 기술 하나만 보면 흠잡을 데가 없지만, 다른 기술과의 연계를 고려하면 부적합한 거 같아. 그리고 마나를 운용하면 공격이 너무 과격해져. 최소한의 힘으로 다시 한번 시전해 봐.”
“그러지.”
고개를 끄덕인 칼은 뒤이어 횡 베기, 종 베기, 상단 찌르기, 하단 베기, 회피하며 반격하기 등의 검술을 취했다.
맥캘리는 처음에는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봤지만, 칼의 검술 실력은 날이 갈수록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1일차.
날을 꼬박 새우기는 했지만, 기초 자세를 다듬는 데 성공했다.
5일차.
기초 수련을 거듭하던 칼은 점차 마나를 운용하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7일차.
목인장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로웰은 스스로 칼의 검술 상대를 자처했다. 처음에는 칼이 탁월한 동체 시력과 센스로 로웰에게 승리를 거뒀지만.
‘죽을래?’
맥캘리의 잔소리에 순수하게 검술로 시합을 펼치게 되었다.
그 결과 로웰의 검격에 칼이 검을 놓치면서 판정패를 당했다. 오기가 생긴 칼은 혼신의 힘을 다해 로웰과 검술을 훈련했다.
보름이 지날 때쯤.
교본의 해석에 지친 맥캘리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꼈고.
그동안 검술 역량이 로웰보다 다소 쳐졌던 칼은 압도적으로 로웰을 이기게 되었으며.
마력을 운용하며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체득했다.
그리고 현재.
콰앙! 콰직!
칼의 검에 실린 힘을 이기지 못한 로웰의 목검이 완전히 박살 났다.
“허억, 허억! 졌어.”
진 게 분했는지, 로웰은 이를 갈았지만…….
씨익.
마냥 질투의 감정만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이었다.
로마노프 가문에서 검술을 수련할 때는 검을 쥐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날 정도로 괴로웠다.
그런데 지금은 무섭도록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칼에게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맥캘리에게 전수한 검술을 익히니, 어느새 성장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고작 20일도 안 돼서 저 경지에 다다랐다고?”
검술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릴리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반성했다.
‘성적과 평가를 신경 쓰는 게 아니라 철저하게 스스로의 성장에만 집중하고 있어.’
릴리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맥캘리는 슬쩍 그녀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누구나 그래.”
“네?”
깜짝 놀란 릴리는 맥캘리를 쳐다봤고, 맥캘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성과와 평가는 단언컨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해. 보이는 성과에 따라 아낌없이 지원을 받는 곳도 있고 이곳처럼 소외되는 곳도 있지. 평가에 쫓기는 것은 당연한 거야.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명성을 떨치고 싶은 것도 당연한 거고. 그러니까 자신이 부족하다고 자책할 필요 없어. 넌 이미 저 망나니 제자를 챙겨줄 정도로 대인배의 품성을 갖추고 있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그녀의 칭찬에 릴리는 쑥스러운지 얼굴을 긁적이면서 배시시 웃고 말았다.
처음 칼과 만나게 된 계기는 그에 대한 질투였지만.
칼과 지내는 동안, 그녀는 주변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성장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1등에 대한 집착과 강박 관념.
그녀는 서민의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 쳤다.
물론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발버둥 치는 것에 급급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갖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을 뿐이었다.
변화는 그녀에게만 찾아온 것이 아니다.
에리도, 로웰도 칼과의 만남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무엇보다 암묵적으로 학교를 지배하고 있던 스첼레투스의 지배 체계에 점차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씨익.
릴리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칼이 와서 정말 다행이에요.”
“비단 너의 생각만은 아니지.”
맥캘리는 공감한다는 듯 피식 웃었다.
그러나 여운은 그렇게 오래 가지 않았다.
콰직!
검술을 펼치던 도중 칼이 입구 부근에 있는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간판을 박살 냈기 때문이다.
빠직!
맥캘리는 깃펜을 집어 던지고서, 진검을 뽑아 들었다.
“이 우라질 놈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한도 끝도 없지!”
“자, 잠깐!”
맥캘리가 진검을 들자, 당황한 칼은 뒷걸음질 치다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쇄액!
“교, 교수님 왜 저한테 검을!!”
“연대 책임이다!”
어차피 잡을 방법도 없기에 맥캘리는 로웰에게 검을 휘둘렀고, 로웰 역시 줄행랑을 쳤다.
체력이 부족하니 잡힐 리 없다는 판단이었지만, 그것은 엄연히 착각이었다.
외모는 어렸지만 맥캘리는 엄연히 한 학파의 수장이자, 고서클의 마법사였다.
“후후후, 나한테 기어오른 대가를 받아라.”
흥분한 맥캘리는 검을 버리고 마법을 시전했고, 순식간에 허공에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이어서 전격이 일렁였다.
“제, 제정신이야!”
칼은 진심으로 경악했고.
맥캘리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트리거까지는 발동하지 않으마. 망할 제자야.”
그녀는 외침과 함께 칼과 로웰에게 라이트닝 마법을 쏟아냈다.
콰콰콰콰쾅!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된 연무장을 보며 릴리는 경직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음, 와서 다행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