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화
칸투버그의 기백에 칼의 몸이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흑마법의 부작용으로 마침내 인간이 아닌 것으로 전락한 칸투버그는 현재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꿈틀, 꿈틀.
파앗!!!
순간 칸투버그의 등에서 4개의 촉수가 튀어 나왔다.
[하하하하하, 기분 최고야! 이거라면 널 죽일 수 있어! 방금 전에 벌레를 통해 너를 봤다. 너 더 이상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데 쓰는 촉매가 없는 거지? 하하하하하! 그렇다면 내가 압도적으로 우위야!!!]
음성에는 미세한 마력이 담겨 있었는데…….
파르르르르.
그 힘의 파장으로 인해 몸이 떨리면서 무겁게 느껴졌다.
‘오래 끌면 곤란하겠어.’
상대는 일반적인 인간의 역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타락한 흑마법사.
객관적으로 봤을 때 칼이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다.
‘트리거 촉매도 다 소진했고, 체온도 올라가고 있군.’
게다가 트리거의 반동으로 몸에 부작용까지 생긴 상태였다.
이기기 힘든 이유는 이래저래 많았지만.
그는 구태여 변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타앗!
지금은 어떻게든 칸투버그를 퇴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기 때문이다.
[크크크크, 한껏 놀아줘 볼까? 여기가 내 실험실이라는 것을 잊었나 보군. 본 스피어!]
콰콰콰콰콰쾅!
순간 실험실에 즐비해 있던 뼈들이 일제히 창의 형상을 이루더니, 칼을 향해 날아들었다.
피핏!
본 스피어 몇 개가 팔다리를 스치며 피가 튀었다.
쇄액!
칼은 고속으로 날아드는 본 스피어를 양손으로 하나씩 붙잡아낸 뒤, 다른 본 스피어를 쳐내며 자리를 박찼다.
콰콰콰콰콰쾅!
하지만 칼은 칸투버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칸투버그의 등에서 솟아난 꿈틀거리는 촉수에 마력이 집중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포이즌 보그!]
콰콰콰콰콸!
순식간에 반경 10미터 지대가 독에 의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치이이이이익!
녹아내린 암석 바닥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뒤에서는 본 스피어가 날아왔고, 정면에는 독의 늪이 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상황.
파앗!
칼은 독의 늪을 향해 본 스피어를 투척했다.
치이이익! 푸욱!
수심이 깊지 않았는지, 본 스피어는 늪 한가운데 그대로 꽂혔다.
타앗!
칼은 곧장 몸을 튕겨 늪 가운데 꽂힌 본 스피어를 향해 뛰어들었다.
[뭐?!]
대체 무슨 꿍꿍이지?
당황한 칸투버그는 잠시 그 광경을 지켜봤다.
포물선을 그리며 차분히 본 스피어에 발을 갖다 대는 칼.
꽈악!
타앗!
이어서 칼은 본 스피어의 탄력을 이용하여 몸을 튕겨 단숨에 늪을 뛰어넘더니…….
푸욱!
곧장 칸투버그의 안구에 본 스피어를 찔러 넣었다.
검붉은 색의 혼탁한 피가 튀었다. 칸투버그는 양손으로 눈을 감싸며 절규했다.
[크아아아아악! 이 개자식! 눈을! 눈을!! 크아아아아악!!!]
“썩은 건 도려내야지.”
칼은 지체하지 않고 본 스피어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지만.
칸투버그는 한발 먼저 빨리 마법을 발동했다.
[꺼져! 니블 버그! 데스 포그!]
위이이이이이잉!
칸투버그의 전신에서 돋아난 구더기는 순식간에 벌레로 변태하더니, 일제히 칼을 습격했다.
너무 작아 어찌 보면 검은 모래알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문제는 바로 지금부터였다.
본 스피어의 창날이 칸투버그의 목에 다다르려는 찰나.
스스스스스.
니블 버그들은 일제히 본 스피어를 갉아먹으며 단숨에 칼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니블 버그들이 몸을 완전히 뒤덮자…….
[크하하하하하하.]
검은 안개 속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칸투버그가 음산하게 웃었다.
[끝이다. 벌레들이 네놈의 몸을 목만 남기고 모조리 갉아먹을 거다. 그리고 네놈의 목은 데제스님에게…….]
그가 한껏 야망에 부풀어 오른 순간.
“데제스가 왜 거기서 튀어나와?”
칼의 목소리가 칸투버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어, 어떻게?! 분명 벌레한테 먹혔을 텐데!]
의문에 대한 해답은 곧장 눈앞에 펼쳐졌다.
벌레들 속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는 붉은 마력, 그것은 점차 확산되더니 이내…….
콰아아아아앙!
벌레들이 모조리 터져 나갔다.
[마, 마나 브레이크! 어, 어떻게? 네놈에게는 더 이상 힘이 남지 않았을 텐데.]
칼은 오만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트리거는 마나 브레이크를 내가 원하는 만큼 편하게 일으키는 수단일 뿐이야. 이렇게 발동하면 나도 주체가 되지 않을 뿐이지, 불가능할 건 없어.”
주륵.
그 말과 동시에 칼의 몸 곳곳에서 출혈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벌레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게 아니야. 엄청난 양의 마력을 육신이 감당하지 못해서 상처를 입은 거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방대한 마력을 품고 있음에도 그 마력이 가지고 있는 흉포한 기질 때문에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니…….
마력을 다루는 자나 오러 유저, 그리고 마법사 등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비웃을 게 뻔했지만.
놀랍게도 그런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오만함과 분노가 실린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파르르르르.
한껏 몸을 떨며 칸투버그는 그제야 자신의 입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힘껏 발악해도 자신은 칼이나 데제스에게는 벌레 같은 존재라는 것을…….
[사, 살려주십시오. 주, 주인으로 섬길 기회를 주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은혜는 갚겠습니다.]
칸투버그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목숨을 구걸했다.
칼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내 목을 갖다 바쳐서 데제스에게 충성을 증명하려는 놈이 왜 나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거지?”
[그, 그건!]
칼은 그를 한껏 비웃으며 말했다.
“그건 쓰레기가 자기가 쓰레기라는 것을 다시 입증하는 것밖에 되지 않아.”
[…….]
그제야 진실을 깨달은 칸투버그는 멍하니 넋을 놓다가…….
[으아아아아아악!]
곧 진심으로 격노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칼을 죽이려 했다.
쇄액!
콰앙!
하나, 그보다 일찍 칼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할버드를 손으로 쥐어 칸투버그의 몸을 양단 내버렸다.
보통이면 즉사할 일격이었을 터.
……두근, 두근
럼에도 불구하고 칸투버그의 맥박은 미미하게나마 뛰고 있었다.
[나, 난 죽지 않아.]
온몸이 완전히 두 동강이 났는데도 어떻게 말을 하는 건지는 몰라도, 칸투버그는 끈질긴 집착을 보였다.
“다시 한번 할래?”
칼은 상관없다는 듯 스윽 칸투버그를 쳐다봤다.
파르르르르.
칸투버그는 겁에 질린 듯 몸을 떨며 생각했다.
마치 지금까지는 놀아준 거였다는 듯이, 나른한 시선에서는 여유가 드러났다.
‘다시 한번 싸우자고? 장난하지 마! 너 같은 괴물이랑 싸울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우, 웃기…….]
무어라고 말하기 위해 칸투버그가 입을 들썩였다.
뚝.
어느새 그의 심장은 멈춰버렸다.
* * *
타닷!
밤사이에 잡아들인 새벽의 이슬 단원들과 구속된 윈스턴 자작의 실토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게 된 치안대의 병사들이 수습에 나섰다.
그리고 왕실 근위대 소속의 기사, 에드윈 하딩턴은 새벽의 이슬의 우두머리, 칸투버그를 잡기 위해 별장에 들이닥쳤다.
뒤에 다수의 병사들을 대동하고 있었지만.
그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흑마법이라면 스첼레투스 학파를 통해 익히 봐왔던 만큼,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굳건한 결의가 무색하게 별장은 이미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항복한 문지기들은 무장 해제를 당한 뒤 상황에 대해 이실직고했다.
‘칸투버그를 잡으려는 자가 있다고?’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일이 일사천리로 뻗어나가자, 머리가 아파졌다.
‘일단 닥치고 칸투버그부터다.’
콰앙!
그는 남은 일은 보좌관들에게 처리를 맡기고 곧장 지하실로 가서 문을 박찼다.
“칸투버그! 여기 있는 건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나와서 항복한다면…….”
당당하게 적에게 경고를 날리려는 찰나.
에드윈은 보았다.
할버드의 창날에 찢겨져 나간 칸투버그의 시체들을 배경으로 온몸에 혈흔이 가득한 상태로 손에는 할버드를 손에 쥐고 있는 남자를.
심홍색의 머리칼과 눈동자.
마성을 불러일으키는 붉은빛 눈동자를 보며 말했다.
“……신원 확인을 하겠다. 네놈은 누구지?”
“파르테스 학생입니다. 소속은 오닉스 스퀘어, 이름은 칼리언트.”
간단명료한 자기소개에 에드윈은 믿기지 않는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열다섯도 채 돼 보이지 않는 소년이 칸투버그를 처리했다고?’
이실리아에서 악명을 떨치던 범죄자가 성인도 되지 않는 어린 소년에게 패배해 목숨을 거두다니…….
“자, 자네 어떤 짓을 벌인 건지 알고 있나?”
“오늘 일이 불문에 부쳐질 거란 정도? 전 피곤하니까 이만 가보겠습니다.”
카앙!
칼은 할버드를 바닥에 내팽개친 다음, 에드윈을 스쳐 지나갔다.
덥석!
당황한 에드윈은 그의 손목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무, 무슨 소리야? 우리가 우습게 보여? 일단은 절차대로 얌전히 조사를 받도록 해.”
“이거 놓으시죠?”
칼은 거슬린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짜증스러운 눈빛에 담긴 살기를 느낀 에드윈은 화들짝 놀라 손을 놓아버렸다.
‘오러 유저인 내가 겁을 집어먹었다고?’
기백에 밀렸다고 할까?
칼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우드드득.
칼은 목과 어깨의 관절을 풀며 입을 뗐다.
“아마 진실이 드러나면 ‘칸투버그를 잡은 게 어린 소년이다.’, ‘그동안 이실리아의 군은 뭘 하고 있었느냐?’ 등 백성들의 질타와 원망을 받겠죠. 그렇다면 민심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사건은 불문에 부칠 수밖에 없고, 저한테 처벌을 주지도 못하겠죠. 과격한 방법을 쓰긴 했지만 골칫거리를 정리해줬으니까요.”
‘이, 이 녀석 앞뒤 생각도 없이 저지른 일이 아니었던 거야.’
에드윈이 당황하고 있을 때, 칼은 다시금 나른한 눈빛을 띠며 말했다.
“절차대로라면 조사를 받아야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사양하겠습니다.”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골칫거리를 정리해 줬으니, 이 정도 억지는 부려도 되잖습니까.”
칼은 피식 웃어 보였고, 에드윈은 수심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은 귀가하도록. 하지만 조사 중 필요하면 소환하겠다.”
“그러죠.”
에드윈은 염려스런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상처는 치료하고 가는 게 좋을 듯싶은데?”
“필요 없습니다.”
‘이것 역시 수행의 일환이니까.’
배려조차 거부한 칼은 오닉스 스퀘어의 마나 연공식을 시전하여, 천천히 체내에 있는 상처를 회복했다.
그 사정을 알 리 없던 에드윈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 나라에 위험분자가 한 명 더 들어왔군.’
에드윈은 마음 한편에 불안한 감정을 품었지만, 곧 이곳에 온 목적을 자각하고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신속히 사건을 정리한다.”
* * *
이실리아의 의료기술은 타국에 비해 훨씬 뛰어났다.
그 이유는 인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실리아의 제도에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저주를 해주하는 신전과 병을 치료하는 병원을 따로 나눈 게 가장 큰 요인이었다.
아직까지도 타국에서는 신전을 중심으로 병원에 운영하기 때문에 이실리아만큼 의료기술이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 점만큼은 꼭 배워 가야겠어.’
칸투버그를 처리한 칼은 곧장 두 모녀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병원에 들른 참이었는데……
칼의 모습을 본 병원 사람들이 기겁을 하는 바람에 강제로 치료를 해야 했다.
‘내 참 꼴사납게.’
그 결과 칼은 온몸에 붕대를 두르는 신세를 겪어야 했다.
저벅저벅.
치료를 마친 칼은 로웰의 권유로 병원 복도를 걸어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결과만 알려주면 되는데, 내가 거길 왜 가는 건데?”
“그래도 위험을 감수하고 구한 사람들이잖아.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대. 너도 궁금하잖아.”
“뭐…… 그렇긴 한데.”
칼은 순순히 그 사실을 인정했고, 로웰은 병실 문을 두들겼다.
“드,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얼굴이 많이 야윈 피르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이불 위에는 어린 피르가 새근새근 자는 중이었는데.
다시 만난 모녀는 기쁨에 눈물을 흘렸는지, 눈가에 눈물이 마른 흔적이 역력했다.
그녀는 칼과 로웰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은혜는 무슨. 가자.”
“벌써 가? 좀 더 이야기하고 가지?”
로웰과 피르의 어머니는 크게 당황해 움찔 몸을 떨었다.
“바빠.”
칼이 냉담하게 등을 돌린 순간.
“……고맙습니다. 기사님.”
잠결에 내뱉는 피르의 목소리에 칼은 잠시 멈칫거리다 얼마 안 가 다시 발을 뗐다.
“화, 화나신 거 아니죠?”
불안했는지 피르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로웰을 쳐다봤다.
피식.
로웰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입꼬리가 올라간 걸 보니까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요?”
“로웰!”
칼의 호통에 로웰은 몸을 움찔 떨며 일어났다.
“가, 갈게.”
그러고는 허둥지둥 칼을 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