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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26화 (26/197)

#제26화

콰앙!

느닷없이 찾아온 굉음은 폭발을 방불케 했다.

콰앙!

맹렬하게 휘두른 칼의 주먹에 얼굴을 맞은 새벽의 이슬 단원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잡아!”

아비규환 속에서도 새벽의 이슬의 단원들은 수적 우세를 이용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덥석!

콰앙!

칼은 쓰러진 단원을 무리를 향해 집어 던진 뒤, 자리를 박찼다.

화륵!

바로 그때 좌측에서 느닷없이 파이어볼이 생성됐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단원 중 한 명이 반지의 마법을 이용해 칼을 저격하려고 했으나, 칼은 왼쪽 팔에 착용한 팔찌를 들어 트리거를 발동했다.

콰앙!

다시 한번 붉은색 마나가 파문을 그리며 마나 브레이크가 일어났고, 파이어볼 마법진이 단숨에 파훼됐다.

“말도 안 돼!”

마법을 시전한 새벽의 이슬 단원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칼은 땅바닥에 있던 돌을 발로 차올려서 손으로 그것을 낚아챈 뒤.

쇄액!

옥상에 배치된 새벽의 이슬 단원을 향해 던졌다.

콰직!

고작 돌에 맞았을 뿐인데…….

“크아아아아아악!”

옆구리가 찢겨 나가는 큰 상처를 입은 단원은 상처를 끌어안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한숨 돌릴 여유를 갖게 되자, 칼은 주머니에서 트리거의 촉매용 팔찌를 꺼내 양쪽 손목에 착용했다.

팔찌에는 금세 붉은 마력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저장했던 마력을 한꺼번에 발산하면서 마나 특성을 각성시키는 기술, 트리거.

그 과정에서 마력을 담는 행위를 로드(load)라고 한다.

만약 평범한 이라면 이런 식으로 마력을 로드하지는 못 했겠지만.

칼에게 있어서 마력을 다루는 행위는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럽고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단점도 분명히 존재했는데…….

주륵.

마왕의 마력을 감당하지 못한 육신에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지금 일어난 머리 부근의 출혈도 그래서 생긴 거였다.

타닷!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쇄액!

거리를 질주하는 칼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 같았다.

그런 칼을 가로막기 위해 새벽의 이슬 단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칼은 겁을 집어먹기는커녕, 그대로 무리에 파고들어 기묘한 몸놀림으로 적들을 공격했다.

그 무위에 놀란 적들이 거리를 벌리며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면.

콰앙!

붉은색 마력이 원형의 파문을 그리며 퍼져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콰직! 콰직!

칼은 놀라서 벙찐 표정을 짓는 새벽의 이슬 단원들을 차례차례 제압하기 시작했다.

콰앙!

칼의 주먹에 나가떨어진 사람 중 한 명은 벽에 몸을 부딪쳤다.

“크아아아아.”

코뼈가 뭉개진 그는 얼굴 전체로 피가 흥건하게 흐르는 걸 느끼며 고통을 호소했다.

물론 여기서 안 그런 사람이 있겠냐마는.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유일하게 기절하지 않아서 칼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콰직! 콰직!

그리고 기절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잔학하게 동료를 진압하는 칼의 모습은 어떤 존재와 무척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아, 악마.”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식을 잃었다.

*  *  *

어느덧 산등성이 위로 해가 떠오르며 잔잔한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촤아아악!

한 건물에 들어선 칼은 거칠게 커튼을 열어젖혔다.

거기에는 싸구려 네글리제를 입은 여인이 겁을 집어먹어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얼굴 곳곳에는 멍과 굳은 핏자국이 여실히 드러났다.

“자, 잘못했어요. 이제 말을 잘 들을 테니, 그만.”

그녀는 눈가에 눈물을 머금으며 상대를 미처 확인하지도 않고 용서를 구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왜 사과하는 거야?”

“누, 누구세요?”

평소와 다른 남자의 목소리에 여인은 파르르 몸을 떨며 칼을 바라보았다.

“꺄아아아악!”

그러더니 비명을 질렀다.

몸 곳곳에 혈흔이 남아있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이 더 이상했다.

“시끄러워.”

“…….”

칼은 단 한마디로 그녀의 비명을 멈추게 하고선, 근처에 있는 옷을 집어 던지며 말했다.

“옷 입어. 가자.”

“어, 어디로요?”

“피르한테. 안심해,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으니까.”

울컥!

칼의 말에 그녀는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양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파르르르르.

눈가가 떨렸다.

“피르, 피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구슬프게 딸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빠져나갈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이곳에서 이런 식으로 구원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잠시 후.

칼은 천으로 몸을 감싼 여인을 안고서 환락가 거리를 전력으로 질주했다.

“하아, 하아.”

긴장이 풀린 그녀의 체온이 급속도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잦은 구타와 부족한 식사 때문으로 보였다.

그 사실에 칼의 이마에 핏대가 도드라졌다.

아픈 것도 마음이 편해야 아플 수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히, 히익!”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칼의 살벌한 모습을 보고 겁을 집어먹거나 엉덩방아를 찍었다.

화재가 일어났는지 여러 건물들에서 연기와 재가 한가득 피어올랐고, 거리 곳곳에는 불구가 된 도적들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었다.

길거리에서 칼을 마주친 로웰 또한 그 광경을 보며 믿기지 않는 듯 동공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전날 밤 칼의 시녀인 레인이 전달한 편지의 내용을 읽고 이곳까지 막 도착한 참이었다.

처음에는 뜬금없이 환락가로 오라는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레인에게서 사정을 들은 후에는 오히려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같이 불러 줬으면 싶었는데.’

하지만 그는 애써 서운한 마음을 감추며 입을 열었다.

“……칼, 이거 진짜 네가 한 거야?”

이실리아에서 그동안 골칫덩어리로 여겨 온 새벽의 이슬을 고작 반나절 만에 이렇게 완벽하게 제압하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죽여 버리고 싶었어.”

“그러면 학교생활이 곤란해질 텐데.”

“그래서 팔다리만 불구로 만들어 놨어. 다시 활동하지 못하게.”

“…….”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문제가 될 거 같은데?’

로웰은 굉장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곧장 화제를 바꿨다.

“내가 도와줄 일 있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칼은 로웰에게 자신이 구한 여인을 건네주었다.

“병원까지 데려다줘. 제일 중요한 일이야.”

여인의 안색을 살핀 로웰은 긴장을 풀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표정을 굳었다.

“알았어. 혹시 뭐 더 필요한 일 있어?”

“오늘 수업은 결석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리자크 교관이 분명 벌점을 매길 텐데…….”

“하라 그래.”

“…….”

벌점이 지속해서 쌓이게 되면 징계로 퇴학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칼은 마치 남 일처럼 답한 뒤, 등을 돌렸다.

“어, 어딜 갈 건데?”

“일을 벌였으니, 마무리는 지어야지.”

“끄아아아악!”

칼은 기절한 척하는 새벽의 이슬 단원 중 한 명의 머리칼을 잡고 질질 끌며 어디론가 이동했다.

“…….”

로웰은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 곧장 자리를 박차 병원까지 달리기 시작했다.

*  *  *

밤사이 소동으로 인해 사람이 부재중인 한 건물.

칼은 그곳에 거의 불구가 된 새벽의 이슬 단원을 앉혀놓고 입을 열었다.

“칸투버그의 소재를 알고 싶은데.”

“크윽! 퉷!”

오기가 생겼는지, 단원은 피가 섞인 가래침을 뱉었다.

콰앙!

그 순간 칼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작렬했다.

“크아아아아악!”

쩌적! 쩌적!

얼굴 뼈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끔찍한 격통에 그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칼은 테이블을 덮고 있는 천에 주먹을 닦으며 말했다.

“고문은 즐기진 않지만, 누구보다 너를 고통스럽게 해줄 순 있지. 너가 여기 있는 환락가를 관리하고 있는 조직의 간부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어설픈 수작 부리지 마. 자결을 하려면 마음대로 해. 얼마든지 살릴 수 있으니까.”

칼의 으름장에 그는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외견만 보면 아직 성인도 아닌 것 같은데.

내면에 품고 있는 어둠은 범죄자인 자신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색깔도 깊이도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카, 칸투버그보다 더 위험한 자야.’

하지만 그는 냉정했다.

이미 새벽의 이슬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 줬던 환락가는 이 남자에 의해 쑥대밭이 된 상태다.

빠득, 빠득!

그 사실에 그는 다시 한번 이를 갈며 분노했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이 남자에게 협력해야 했지만,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우리의 뒤에 누가 있는지 모르나 본데, 네놈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협상 결렬인가.”

덥석!

꽈악!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칼은 남자의 머리를 손아귀로 으스러질 듯 옥죄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격통에 그는 끔찍한 비명을 토해냈다.

그런 그에게 칼은 조금도 힘을 풀지 않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사고를 쳐봤자 이 나라에서 추방당하기밖에 더 하겠어? 그리고 네놈들의 뒷배야 부패한 고위급 관료 정도나 되겠지. 근데 귀족이라도 상관없어. 왜 그럴 거라고 생각해?”

“모, 몰라. 크아아아아악!!! 이것 놔줘!”

“정답은 말이야.”

피식.

칼은 살포시 입꼬리를 올리며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내 뒷배가 훨씬 세기 때문이야.”

*  *  *

파르테스와 인접한 곳에 있는 이실리아의 궁전.

오늘 에리는 학생의 신분을 벗고 에리스 폰 이실리아 왕녀로서 복장을 갖춰 입고 누군가와 체스를 두는 중이었다.

타악, 타악.

맞은편에 앉은 그녀의 체스 상대는 윈스턴 자작이라고 불리는 남자로…….

배불뚝이 두꺼비 같은 인상이었다.

그는 사근사근하게 에리에게 말을 걸며 체스를 두고 있었다.

“허허허허, 그나저나 의외입니다. 웬만하면 신분을 노출하지 않는 공주님이 저하고 체스를 두기 위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다니 말입니다.”

“저도 가끔 해소할 부분은 해소해야 돼서 말이죠.”

“호오, 이 늙은이와 만나면 어떤 부분이 해소되는 겁니까?”

그는 은근슬쩍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에리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작. 재밌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고 있어요.”

“어떤 이야기입니까?”

“예를 들면, 왕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적 집단인 ‘새벽의 이슬’의 후원자가 당신이라는 이야기? 아니면 칸투버그가 당신의 자택에서 발견됐다는 것도 있고요.”

“…….”

일상적인 말투였지만, 그 말이 함축하는 바를 생각하면 웃어넘기기가 어려웠다.

주륵.

어느새 윈스턴 자작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하하하, 공주님께서도 재밌는 농담을 하십니다.”

스릉.

자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은 일제히 윈스턴 자작의 목에 창날을 겨누었다.

“고, 공주님. 살려 주십시오!!!”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윈스턴 자작은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하고 목숨을 애원했지만.

탁.

에리는 자신의 퀸을 상대방 킹을 찌를 수 있는 위치에 배치하며 입을 뗐다.

“체크 메이트.”

“히끅!”

그 말이 묘하게 자신을 압박하는 것 같아 윈스턴 자작은 파르르 몸을 떨었다.

에리스는 예리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개가 자꾸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른다면, 철저하게 짓밟아 줘야죠. 외부에 대해서는 친화적인 정책을 유지하는 이실리아지만, 내부의 규칙은 엄격하다는 걸 잊으셨나 보네요.”

“공주님!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제 전 재산을!!”

“목 잘 닦고 기다리세요.”

에리는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윈스턴 자작의 말을 끊었다.

“크아아아악! 이럴 수 없어!!!”

윈스턴 자작은 그대로 병사들에게 구속당해 끌려갔다.

잠시 후.

주변이 어느 정도 고요해지자, 그녀를 호위하고 있던 기사가 입을 열었다.

“환락가는 칼리언트 슈타크에 의해 말 그대로 박살이 났습니다. 중상자가 많긴 한데 전부 새벽의 이슬 단원으로 추정됩니다.”

찻잔을 들고 향을 맡고 있던 에리는 활짝 웃으며 기사에게 말했다.

“어머, 오늘 사건은 도적단들끼리 내부 권력 다툼 때문에 벌어진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요?”

“…….”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곧 에리의 의도를 간파한 기사는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제가 착각했습니다. 공주님의 말씀대로입니다. 그럼 저는 물러나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호호호”

잠시 후.

자신의 방에 홀로 남은 에리스는 한숨을 푹 쉬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정말이지, 너무 요란하게 사고를 치진 말라고. 칼리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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