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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23화 (23/197)

#제23화

마수 사역자, 닐과의 싸움을 마친 칼은 피곤한 표정으로 어깨와 팔, 다리 등의 관절을 돌려 보았다.

두둑, 두둑.

과격한 움직임으로 인해 근육 곳곳이 찢어졌고, 블루 혼 다이어 울프에게 공격당해 생긴 상처로 인한 출혈량도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극심한 대미지를 입힌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힘이었다.

이번에 새로 전수한 트리거를 발동했을 때, 그 반동으로 내장을 비롯한 근육 곳곳이 찢겨 나가 생긴 후유증으로 몸이 미미하게 떨렸다.

“인간 몸뚱이는 이래저래 불편하군.”

칼은 혈도 이곳저곳을 누르며 지혈을 시도했다.

동시에 오닉스 스퀘어의 마나 연공식을 운용해 치유력을 드높였다.

그러던 도중 허공에 일렁이는 실밥을 엄지와 검지로 붙잡고는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운용 폭이 엄청나게 넓은 힘이야.’

치유 중 칼은 트리거를 전수할 때 남긴 맥캘리의 말을 떠올렸다.

-이 힘은 자투리 마력을 한 곳에 저장시켰다가, 한꺼번에 발산하면서 개인이 지니고 있는 고유 마력 특성을 각성시키는 거야.

-고유 마력 특성이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것인 너한테는 정말 궁합이 좋은 기술이지.

-지금은 마력을 저장시키는 방법이 물건이나 어떤 유물에 새기는 식이지만, 좀 더 안정적으로 개선하면, 최후에는 몸에 마력을 저장시켰다가 발산하는 기술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야.

맥캘리가 최근에 개발한 기술, 트리거.

여기에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칼의 마력 특성까지 힘을 더하니, 그야말로 최강의 조합이 되었다.

전생, 마왕이었던 시절에는 굳이 무엇을 배우지 않아도 마력을 능수능란하게 다뤄 온 칼이었기에 너무나도 색다르게 느껴지는 힘이었다.

마나 연공법 ‘오닉스 스퀘어’부터 트리거까지.

이것들은 그야말로 인간이 만든 기술의 결정체로, 칼로 하여금 그들이 경이로운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꼬맹이 주제에 제법이야. 선물로는 뭐가 좋을까나.”

어느 정도 몸을 갈무리한 후.

칼은 쓰러져 있는 닐의 시체로 다가갔다.

크르르르르.

세뇌에서 벗어난 남은 다이어 울프들은 칼을 경계했지만.

쿠구구구구.

칼이 내뿜은 기세에 짓눌려 곧 몸을 수그리며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

푸욱!

칼은 닐에게 박힌 블루 혼 다이어 울프의 뿔을 빼내, 피를 닦아낸 뒤 그대로 천에 감쌌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블루 혼 다이어 울프의 뿔이니, 맥캘리에게 선물로 건네주면 좋아할 것 같았다.

물론 구한 경위를 알게 된다면 ‘야 이 또라이 같은 놈아!’라고 말하며 버럭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푸훗!”

칼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  *  *

어느새 날이 밝았다.

벼랑 근처에서 잠도 못 자고 대기하고 있던 클로이는 결단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찾으러 가야겠어.”

다리의 상처를 생각하면 다이어 울프들한테 물리는 끔찍한 사태를 겪을 수도 있으나…….

어차피 결과는 천천히 죽어 가느냐 혹은 물려 죽느냐, 둘 중 하나였다.

지도 없이 미스틱 마운틴을 누비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벼랑을 벗어나며 힘겹게 발을 내디뎠으나.

쿵!

균형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넘어졌다.

“뭐 하는 건지, 참.”

바로 그때, 넘어져 있는 그녀를 발견한 칼은 그대로 클로이를 양손으로 안아 올렸다.

“……칼!”

그에게 안긴 클로이는 울컥 울음을 터뜨렸다.

밤새 공포에 질려 있다가 안심이 되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칼이 이렇듯 살아 돌아와서 기뻤다.

“칼이라고 부르지 마.”

반면, 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호칭의 정정을 요구했다.

그를 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는 어머니인 사라 슈타크, 그리고 릴리아나뿐이었다.

사실 그 둘 역시 엉겁결에 애칭으로 불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용인하게 된 경우였다.

“아, 알았어.”

냉혹하게 선을 긋는 한마디에 클로이는 조금 상처를 입은 듯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나 사소한 마음의 상처는 뒤로하고 그녀는 온몸이 피투성이인 칼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사, 상처는 괜찮아? 약은 별로 안 남았지만 치료하고 가자.”

“신경 꺼. 여기서 잠깐만 쉬었다가 바로 지정된 캠프로 이동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클로이를 바위에 앉힌 칼은 그대로 자신도 바위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피곤하구나. 누워서 자지.”

클로이의 권유에 칼은 듣는 둥, 마는 둥 잠에 빠져들었다.

“너는 일방적으로 대화하는구나.”

이제 어느 정도 칼의 대화 방식을 깨달은 클로이의 입가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누군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에 대해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독불장군.

반대로 남이 위험하거나 힘들어할 때면 그를 걱정하고 상냥한 행동을 보인다.

물론 의도를 들키기 싫은지 입으로는 괴팍하고도 험한 말을 내뱉지만.

아마 곁에 있는 이들이라면, 금방 칼의 배려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위험한 매력을 가진 남자네…… 칼.”

괜스레 한마디를 더 남기자, 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잠이 들었다.

*  *  *

미스틱 마운틴의 안개가 차츰 옅어져 갔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종착지인 캠프까지 도달한 상황.

“수고했다.”

리자크는 힘겨운 표정으로 캠프에 도착한 무리에게 가볍게 한마디를 남기며 노심초사하는 얼굴로 캠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애타게 학생들의 안전한 귀환을 바라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그는 자신에게 기어오르는 희대의 반항아, 칼리언트가 행방불명 되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기원하는 사람이었다.

훈련 도중 사고로 징계를 받을 각오도 한데다, 심지어 뒷세계의 암살자인 마수 사역자 닐과 결탁까지 하지 않았던가.

‘또 아무렇지도 않게 성공해 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데.’

바로 그때.

울타리 너머로 프랭크, 얀, 에블린이 보였다.

웅성웅성.

“남은 두 명은 어디 간 거야?”

학생들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분명 어려운 시험이었지만, 누군가 다칠 정도로 위험한 일은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내 세 사람은 리자크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실룩.

희열로 인해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지만, 리자크는 가까스로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며 조장인 에블린에게 물었다.

“남은 두 명, 칼리언트와 클로이는 어디 갔지?”

에블린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갑작스럽게 다이어 울프들을 만나는 바람에 서로 떨어졌습니다.”

“다이어 울프?”

“……네.”

‘클로이까지 예상은 못 했지만, 뭐 리들러 님께서 알아서 잘 무마해 주시겠지.’

마침내 칼이 죽었다는 사실에 리자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그 골칫덩어리의 방해를 받지 않고 데제스의 명대로 움직일 수 있겠어.’

그러나 아직은 표정을 풀 수 없었기에,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알았다. 일단 귀환하는 대로 수색대를 요청해서 찾아볼 테니, 너희는 몸을 추스르고 있거라.”

이걸로 끝…….

이라고 생각한 순간.

웅성웅성.

학생들 사이에서 느닷없이 소란이 일어났다.

“조용히 하지 못해!”

미간을 좁힌 리자크가 그들에게 호통을 쳤다.

“하, 하지만 교관님. 저기에 칼리언트와 클로이가!”

“뭐?!”

당황한 리자크가 즉각 고개를 돌리자, 클로이를 업은 칼이 빛무리와 함께 캠프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대체! 닐 이 자식 일을 대체…….’

리자크는 정신을 수습하지 못했고.

“너, 대체 어떻게?!”

프랭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칼을 보며 말을 더듬었다.

마른 피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험난한 사투를 겪은 듯 보였지만, 몸은 건재했다.

칼은 클로이를 내려놓은 뒤.

프랭크의 앞에 서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왜? 살아 돌아와서 아쉽냐?”

발언이 떨어진 직후.

콰앙!

칼의 주먹이 프랭크의 안면에 꽂히며 압도적인 프랭크의 거구가 지면을 뒹굴었다.

졸지에 허용한 기습에 프랭크의 코와 입에서는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이게!”

눈이 뒤집힌 프랭크는 마찬가지로 칼에게 주먹을 날렸다.

양팔로 가드를 한 칼은 별 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콰앙!

그 우악스러운 공격을 막아낸 팔에서 엄청난 격통이 일어났다.

의지와 상관없이 그 힘에 밀려 거리가 1미터나 벌어졌다.

팔이 저릿저릿했다.

‘인간의 몸은 짜증 나는군.’

평생 아픔이란 것을 느끼지 못했던 칼에게는 실로 불쾌한 감각이었다.

그때.

재빨리 정신을 차린 리자크가 득달같이 달려들려는 프랭크의 몸을 붙들며 만류했다.

“가만히 있어! 프랭크!”

“하지만 저 자식이 먼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서 소명한 뒤에 처벌하겠다.”

프랭크는 씩씩거리며 어쩔 수 없이 발을 멈추었다.

이번에도 주변의 제지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칼리언트.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프랭크에 대한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듣고 징계 수위를 정하겠다.”

칼은 주머니에서 빼 든 손수건으로 주먹을 닦으며 나른한 어조로 요구했다.

“불문에 부쳐 주십시오.”

빠직!

리자크의 이마에는 다시 한번 핏대가 솟아났다.

‘불문에 부쳐 달라고?’

모두가 보고 있는 앞에서 이렇게 당당히 폭력을 행사해 놓고는, 어쩜 저리 뻔뻔한 요구를 할 수 있는 걸까.

이것은 교관인 그를 향한 반항, 그 자체였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화를 토해내기 직전, 그는 목소리를 내리깔며 경고를 가했지만.

“입을 여니까 말이 되는 거죠.”

칼은 듣는 시늉도 채 하지 않으며 천천히 에블린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왜냐하면 이건 저희끼리의 사소한 애정 표현이거든요.”

“카, 칼! 왜 그래?”

에블린은 당황한 듯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런 그를 칼은 심홍색의 눈으로 마주 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연기해도 돼. 억지로 겁쟁이 흉내 낼 필요 없어. 내가 다 무섭잖아, 데제스.”

쿠쿵.

그 발언이 떨어진 직후.

음산한 한기가 주변을 뒤덮었다.

오싹!

그 광경을 지켜보던 리자크와 프랭크도 식겁했는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와 동시에 에블린의 푸른 동공에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일순간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찾아왔다.

에블린, 아니 데제스는 조그만 소리로 칼에게 말했다.

“흐음, 어떻게 알았을까? 아카데미에서 내 얼굴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을 텐데.”

“누군가 밀고한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거야?”

“불가능해.”

여러 의미로 날 거스르는 건 불가능하다는 뉘앙스를 주는 대답이었다.

칼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그 말은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에게 암시를 걸었다는 말로 들리는데.”

“?!”

거기까지 간파당할 것은 예상 못 했는지, 데제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멀쩡한 건, 프랭크나 리자크 교관 정도겠지. 등반을 하는 내내 프랭크가 너의 말만큼은 고분고분 따르더라고.”

“때려 맞췄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해?”

칼은 오히려 도발적으로 질문을 던졌고 데제스는…….

탁!

어깨동무를 한 칼의 손을 쳐내며 슬그머니 떨어졌다.

그러고는 흥미롭다는 듯 칼을 쳐다보며 말했다.

“넌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괴팍한 데다 반항아 기질이 다분해. 교화도 불가능하고.”

“날 갱생시킬 수 있는 건 빌어먹을 꼬맹이 한 명 빼고는 없어.”

“포섭이 되지 않는 포악한 적이라……. 앞으로 학교생활이 재밌을 것 같군.”

그렇게 대화를 끝마친 후.

거짓말처럼 정적이 사라졌다.

칼과 데제스의 말을 들을 수 없었던 학생들은 아직까지 수군덕거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데제스는 리자크에게 다가가 말 몇 마디를 내뱉었다.

그 말에 리자크는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새파래진 안색으로 파르르 몸을 떨었고, 다시 에블린의 흉내를 내기 시작한 데제스는 그에게서 떨어졌다.

칼은 피식 웃으며 리자크에게 다가가 한마디를 던졌다.

“그래서 징계는 있습니까?”

“오, 오늘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 속히 부상을 치료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그러죠.”

리자크의 명에 칼은 클로이와 함께 의료동으로 향하며 데제스를 쳐다봤다.

우연의 일치인지 데제스도 칼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씨익.

두 사람은 서로를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보며 입가에 조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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