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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22화 (22/197)

#제22화

콰앙!

깨깽!

갑자기 난입한 칼의 일검에 눈을 잃은 다이어 울프는 분기탱천하며 지면에 몸을 굴렸다.

“여, 여긴 왜?”

눈물을 흘리고 있던 클로이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반면, 칼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왜 가만히 있는 거야?”

“그, 그게 다리를 물려서.”

클로이는 면목 없다는 듯 피가 철철 흐르는 다리를 붙들었다.

상처가 작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칼은 주변을 살폈다.

이미 에블린과 프랭크를 비롯한 나머지 팀원들은 종적을 감췄고, 다이어 울프들은 세뇌를 당한 듯 맹목적으로 칼에게 적의를 표하고 있었다.

한두 마리까지는 제압이 가능하지만, 이 모든 늑대들을 상대하는 것은 지금의 칼에게는 불가능했다.

씨익.

하지만 그렇게 궁지에 몰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혹시 산짐승들 만날 수 있으니까, 이것 꼭 챙겨 가.

왜냐하면 릴리가 이미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참견을 잘하는 여자라니까.”

칼은 피식 웃으며 배낭에 있는 향 주머니를 모닥불을 향해 던졌다.

화악!

가루에 불이 붙자, 기하급수적으로 커진 불길.

동시에 아주 잠깐이었지만, 불길 너머에서 지독한 악취와 가루가 섞인 연기가 피어올랐다.

컹! 컹!

후각이 마비된 다이어 울프들은 고개를 흔들며 눈에 들어간 이물질을 빼내려고 했다.

“쿨럭, 쿨럭. 이게 뭐야?”

클로이가 기침을 하며 힘겨운 표정을 지을 때, 칼은 그녀를 그대로 어깨에 짊어졌다.

“서, 설마 나, 날 구하려는 거야?”

클로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칼을 쳐다봤다.

칼은 경계심 어린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다…….

“지금은 숨 쉬는 것에만 집중해.”

라고 말한 뒤, 그대로 자리를 박찼다.

*  *  *

“……말도 안 돼.”

습격이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가자, 닐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도망간 프랭크 일당은 당연히 안중에도 없었다.

정작 목표였던 칼이 기가 막힌 솜씨로 늑대 한 마리의 숨통을 끊었을 때 전율에 휩싸였다.

정보에 따르면 아직 검술의 기초도 갖추지 못한 애송이라고 했건만, 저 움직임은 보통 실력자가 아니었다.

“검술이 중요한 게 아니야. 저건 죽이는 데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이라고.”

이게 말이 되나 싶기도 했지만, 닐은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딜 가든 정점의 재능을 타고난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오늘 닐은 아직 재능이 개화되지 않은 천재를 만난 것뿐이다.

“크크크크. 이거 건성건성 끝내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재밌게 됐어. 어린 새싹을 짓밟는 것은 정말 개운하단 말이지.”

닐은 즐겁게 웃으며 다시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  *  *

쏴아아아아.

칼이 이동한 곳은 협곡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폭포가 있는 강가였다.

클로이는 땀을 가득 흘리며 시름시름 앓고 있었고 칼은 상처 난 클로이의 다리에 약을 바른 뒤, 붕대를 감아 주고 있는 참이었다.

“아까는 날 버리고 가는 게 정답 아니었어?”

살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동료에게 배신당했다는 분노에 그녀는 눈물이 맺힌 상태로 칼에게 물었다.

칼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난 기사가 될 사람이니까. 눈앞에서 여자나 아이가 위험에 처하면 외면할 수는 없어.”

“겨, 겨우 그것 때문에? 그런 건 하지 않아도 기사가…….”

칼은 눈에 힘을 주며 그녀를 쏘아봤다.

“이건 내 긍지가 달린 문제야. 너의 편협한 관점으로 판단하지 마.”

묘한 압박에 클로이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칼은 계곡물에 세안을 한 뒤, 앞머리를 위로 쓸어 올리며 이야기를 마저 했다.

“물론 이 기준은 정도를 벗어난 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해 두라고.”

“……이상한 녀석.”

클로이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칼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건 너희들의 광기지.”

칼의 반박에 클로이는 움찔하더니 곧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파르테스에 다니면서 구태여 세력을 형성하고 누군가를 배척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보아도 잘못된 행동이지만.

손익관계로 봐도 무척이나 손해였다.

장래에 타국의 귀족이 될 학생과 적이 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첼레투스 학파의 광기는 파르테스를 뒤덮었다.

데제스는 자신의 뜻을 거스른 학생을 배척할 뿐만 아니라 뒤로는 그들을 제거할 음모까지 꾀하고 있었다.

물론 타깃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녀가 알기로 아마 칼 역시 그 타깃 중 하나일 것이다.

파르르르.

그녀는 몸을 떨며 입을 뗐다.

“……그건 데제스의 목표가 세계 정복이기 때문이야.”

“그 녀석 출신은 알고 있는 건가?”

칼의 질문에 클로이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만나게 되면 그의 배경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어. 애초에 뭐든지 할 수 있는 남자가 대체 뭐 때문에 아카데미라는 곳을 온 것 같아?”

“타국에 자신의 세력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건가.”

“……맞아. 그리고 실제로 데제스의 의도대로 그를 추종하는 세력이 늘어나고 있어. 이 대열에 참가하지 않으면 내 미래는 분명 어두울 거야.”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칼은 피식 웃었다.

“원래 산다는 것은 투쟁의 연속이고 어떤 선택을 하던 그건 본인의 자유지. 근데 네 말만 들어 보면, 데제스가 꿈꾸는 세계 정복의 끝에는 허무밖에 남지 않을 것 같은데?”

“……그걸 네가 어떻게.”

“난 지옥을 겪어 본 남자니까.”

“지, 지옥이라니?!”

클로이는 크게 놀라 눈을 부릅떴다.

전생에 마왕이었던 시절, 칼은 스스로 세계를 파멸시켰다.

남은 거라곤 우중충한 분노, 그리고 마음속 깊이 꺼려지는 어떤 해괴한 감정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 감정의 실체를 몰랐으나…….

지금은 그 감정이 후회라는 확신이 들었다.

‘과거는 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현재는 바꿀 수 있다.’

눈을 감고서 마음을 다잡은 칼은 눈을 번뜩 떴다.

“내 이름은 칼리언트 슈타크다. 데제스가 누군지 모르지만, 내가 갈 길을 가로막는다면 부수면 그만이야.”

“슈, 슈타크! 루, 루콘 최강의 무가.”

칼의 가문을 들은 클로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칼은 무척이나 음산한 웃음을 띠며, 클로이에게 말했다.

“네가 기억해야 될 건 슈타크가 아니라 칼리언트 슈타크. 그 이름 자체야.”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클로이는 졌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클로이 맥도웰. 드로시아 왕국의 제3왕녀야.”

“고귀한 출신이 큰일 날 뻔했군.”

칼은 별 흥미 없다는 듯 붕대로 자신의 손목을 감았다.

상처는 없지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대비해 미리 준비를 해 두려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해 줄게.”

칼은 자연스럽게 손을 그녀에게 내밀었고, 클로이는 붕대를 감아 주며 말했다.

“드로시아는 상대적으로 약소국가야.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지. 그리고 태어난 공주들은 정략 도구로써 혼인을 해야 해. 이곳에 온 것도 사실 그런 이유야. 그래도 칼리언트 당신의 말을 듣고서 조금 용기를 얻었어. 계속 지면서 살아가지 않으려면 강해져야 하겠네.”

그녀는 칼을 보며 살포시 웃고 있었다.

질끈!

클로이가 붕대에 매듭을 짓자, 칼은 그대로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알면 됐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저 벼랑 근처에 숨어 있어.”

“뭐, 뭐 하려고?!”

클로이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삐이이이이.

칼은 고막을 자극하는 묘한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입을 뗐다.

“끝장을 봐야 하는 상대가 있거든. 다시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아, 알았어.”

클로이는 움찔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고 칼은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타닷, 타닷, 타닷.

귓가에는 아까보다 훨씬 많은 다이어 울프 무리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  *  *

어두컴컴한 밤.

이제는 불씨조차 없어 완전히 암흑 지대이지만.

스스스스.

칼의 심홍색 눈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식별할 수 있었다.

희끄무레하게 깔린 안개 너머로는 무지하게 큰 다수의 늑대 그림자가 있어 위압감을 줬지만.

그 앞에 선 칼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의외의 것이었다.

“아아, 기분이 좋군.”

아직 마력이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아 죽일 수 있는 개체 수는 분명 한계가 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신의 숨통을 끊으려고 하는 존재들이 근처에 있다는 것이 칼에게 색다른 쾌감을 안겨 주었다.

은은히 풍겨오는 혈향.

겔겔 침을 흘리며 보이는 흉포한 살의.

아이러니하지만 칼에게 있어서는 존재의 이유를 부각시켜 주는 자리가 바로 이곳이었다.

스릉!

칼은 등반 전에 지급 받은 롱소드를 꺼내 들며 피리 소리가 들려오는 진원지를 살폈다.

삐이이이익!

커엉! 커엉! 커엉!

아까부터 거슬린다고 생각했던 피리 소리가 다이어 울프들을 자극했고.

크르르르, 커엉!

다이어 울프들은 일제히 칼을 덮치기 시작했다.

서걱!

칼은 몸에서 은은히 붉은 빛을 발하며 늑대 중 한 마리의 가슴을 벤 뒤…….

콰앙!

그대로 다이어 울프 무리를 향해 걷어찼다.

깨앵! 깨앵!

죽은 동료의 몸에 부딪힌 녀석들은 산산이 흩어졌다.

콰앙!

그와 동시에 칼은 전신에서 마력을 분출했다.

카앙! 카앙!

그러자 마나 브레이크가 일어나며 다이어 울프들에게 걸렸던 세뇌가 해제됐다.

[피리를 불고 있는 녀석에게 안내해라. 죽기 싫으면.]

칼은 정신을 되찾은 다이어 울프에게 경고를 가했고.

움찔!

다이어 울프들은 그 기세에 겁을 집어먹고서 일제히 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칼 역시 대열에 가담해 단숨에 늑대 무리와 발을 맞췄다.

*  *  *

“이상해.”

한편 닐은 하루 종일 발생하는 이상한 상황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놈. 괴이한 일을 벌인 놈.

그가 그리 평가를 한 이는 닐이 있는 곳을 향해 거침없이 발을 옮기고 있었다.

‘오지 마!’

삐이이이익!

닐은 가까스로 혼란을 다잡으며 피리를 불었다.

크르르르, 커엉!

세뇌가 된 다이어 울프들은 어김없이 그의 명을 따랐으나.

칼에 의해 세뇌가 풀린 다이어 울프들이 동료의 목을 물어뜯으며 대치를 벌이는 바람에 칼의 발을 붙들 수 없었다.

서걱! 콰앙!

칼은 가장 거슬리는 개체의 목을 벤 다음 그대로 걷어차 머리를 날려 버렸다.

‘이상해. 이상해. 이건 말이 안 돼.’

거리는 점차 좁혀져 가고 닐의 동공은 더욱 확대됐다.

삐이이이익!

다급하게 더 많은 다이어 울프들을 불러들였지만.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어둠 속에서 붉은 참격이 무수히 많은 빗금을 그리며 급속도로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참격이 스쳐 지나간 곳에는 어김없이 다이어 울프들의 시신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내.

칼의 심홍색의 눈은 닐을 정확히 포착했고, 동시에 입꼬리가 음산하게 올라갔다.

‘오, 오지 마!!’

결국 상황은 반전되었고 겁에 질린 닐은 서둘러 피리를 불었다.

삐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뒤에서 어슬렁거리던 블루 혼 다이어 울프가 그대로 칼의 몸을 들이받았다.

끼기깃.

콰아앙!

뿔로 거칠게 들이박는 일격에 칼의 롱소드는 그대로 토막이 났고 칼의 몸은 지면을 굴렀다.

“우두머리가 있었군.”

칼은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전투태세를 취했지만.

주륵.

상처가 꽤나 심했는지 머리에서부터 선명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크크크크, 아직 어리군. 섣불리 적의 진영에 오다니. 해치워!”

닐은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가까스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카아아아앙!

블루 혼 다이어 울프는 그대로 입을 벌려 칼을 공격하려고 했다.

덥석!

그러나 그 이빨이 닿기 전에 칼은 다이어 울프의 이마에 박힌 뿔을 양손으로 붙들며 힘겨루기를 펼쳤다.

까드드드득!

그러나 그 힘이 우두머리 앞에서는 크게 소용이 없었는지…….

스슥, 스슥.

칼의 발이 지면의 흙과 함께 뒤로 밀렸다.

“크크크크크. 소용없어. 너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건 오랫동안 내가 공들여서 사로잡은 몬스터니까.”

하지만 이에 대해 돌아온 답은 괄시와 비웃음이었다.

“습격하려면, 좀 더 일찍 했어야지. 내가 이 기술을 완성하기 전에.”

“뭐?”

황당해서 반박을 하려는 순간.

콰칭!

무언가 깨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칼의 손목에 있던 팔찌가 끊어지며 실들이 허공 곳곳에 흩어졌다.

콰아아아아아앙!

이내 팔찌에 내재돼 있던 마력이 한꺼번에 발산되더니…….

콰칭! 콰칭! 콰칭!

주변 일대에 일제히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켜 다이어 울프들의 세뇌를 풀어 버렸다.

빠직!

콰앙!

그 직후 칼은 블루 혼 다이어 울프의 뿔을 부러뜨린 뒤,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켰다.

“마,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닐은 지면에 그대로 피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안개, ‘브로켄의 망령’ 속에 펼쳐진 칼의 그림자가 언뜻 여섯 장의 날개를 지닌 거대한 악마의 형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키만 해도 어림잡아 족히 50미터는 되어 보였다.

꿀꺽!

그 모습을 바라보던 닐은 생각했다.

……다가가서는 안 된다.

저것은 살육을 거듭해 온 악마다.

한낱 인간인 그가 승패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히익!”

결국 전의를 상실한 닐은 피리를 버리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콰직!

어느샌가 칼의 손에 들려 있던 다이어 울프의 뿔이 그의 심장을 관통한 상태였다.

울컥!

주륵.

그대로 무릎을 꿇고 토혈을 하던 닐은…….

“아, 악마.”

라고 중얼거리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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