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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21화 (21/197)

#제21화

울창한 수목과 옥빛 폭포, 그리고 기암들이 들어찬 계곡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았다.

웅성웅성.

계곡 아래에서 그 경관을 지켜보던 학생들은 자연스레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숲이야 말을 타면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거지만.

이실리아에 위치한 이곳, 미스틱 마운틴의 풍경은 여타의 것과 달리 유난히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치를 구경하는 것도 한 사람의 등장으로 끝이 났다.

윗자리로 올라간 리자크는 학생들을 향해 격하게 호통을 쳤다.

“지금 놀러 온 거라 생각하나?! 즉각 정렬한다!”

후다닥.

그 소리에 학생들은 발을 옮겨 오와 열을 맞추어 줄을 섰다.

씨익.

리자크는 만족스런 웃음을 띠며 말했다.

“오늘부터 3박 4일 안으로 이곳과 반대로 위치한 훈련 장소까지 등반을 한다. 팀원은 5명으로 구성해 놨다. 자세한 건 각 조의 조장이 될 녀석한테 이야기해 놨으니, 그쪽에 질문하면 된다. 질문 있나?”

대다수는 리자크의 기세에 짓눌려 감히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못했지만.

스윽.

칼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손을 들어 올렸다.

꿈틀꿈틀.

단지 그것만으로도 리자크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긴장했다.

그러나 구태여 티를 낼 필요는 없었기에 입을 열었다.

“얘기해 보도록.”

“검술 훈련이랑 이거랑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

솔깃했는지 학생들은 긴장하면서도 리자크의 답변이 떨어지길 기다렸고,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칼에게 말했다.

“자네는 궁금한 게 많군.”

“전 맹목적으로 훈련하는 것보다 취지와 목적을 이해하고 훈련하는 게 더 좋아서요.”

‘여전히 한마디도 지지 않는군.’

그러나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리자크는 준비해 온 답변을 내놓았다.

“이번 훈련은 실전을 가장한 모의 훈련이다. 실력이 탁월해도 실전에서 못 써먹으면 끝이지. 그렇기에 장소 역시 실전과 가장 유사한 곳으로 선정했고, 그 훈련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더 질문 있나?”

“생각나면 하겠습니다.”

칼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고 리자크는 뒷짐을 진 채, 모두에게 말했다.

“훈련은 2시간 뒤에 시작한다.”

잠시 후.

선별된 조원들이 모였고 칼은 같은 조원이 된 네 명을 살폈다.

“자, 이왕 이렇게 모였으니, 서로 협조해서 잘 꾸려 나가 보자고.”

먼저 발언을 한 이는 조장으로 선택된 에블린이었다.

은백발의 머리카락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그는 ‘엘레멘탈 스피릿’ 학파의 일원으로 검술에도 나름 출중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은 인원들은 프랭크를 필두로 한 스첼레투스 학파의 일원이었다.

한 명은 뱁새눈을 지니고 있는 남성 얀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남청색의 머리칼을 지닌 여성, 클로이였다.

세 사람 모두 칼에게 반감을 가진 듯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그중 프랭크는 지금 당장이라도 주먹을 내지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칼이 그 기세에 굴할 일은 없기에, 먼저 툭 하고 한마디를 내뱉었다.

“뭘 봐.”

울컥!

또 한 방 먹었다는 생각에 프랭크가 발끈했지만, 재빨리 조장인 에블린이 곤란한 표정으로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지, 진정해. 여기서 싸워봤자 아무 의미 없는 거 알잖아. 의기투합해서 목적부터 먼저 달성하자.”

“쳇!”

프랭크는 별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자 에블린이 이번에는 칼을 바라보며 말했다.

“칼리언트도 이번에는 협력해 줬으면 좋겠어.”

칼은 대답 대신 에블린에게 물었다.

“지도는?”

“여기 있어.”

“여분의 지도는?”

“어, 없는데.”

칼은 지도를 스윽 훑어보기 시작하더니 이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일행에게 말했다.

“출발하지.”

“조장인 것처럼 명령을 내리지 마.”

프랭크가 미간을 좁히며 경고를 가했지만, 칼은 귀를 후비적 파며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이 자식이!”

“그만 싸우라니까.”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다는 말은 이때 쓰이는 것일까?

에블린은 두 사람을 만류하느라 한참 동안 진땀을 뺐다.

*  *  *

여차여차한 논쟁이 많았지만.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하니 칼의 조는 의외로 역할 분담을 잘해 나가며 미스틱 마운틴에 진입했다.

은은히 안개가 진 계곡.

안개의 인근에서는 다수의 인영이 연달아 텔레포트를 하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다가 사라졌다.

보기 드문 낯선 현상.

소름이 끼쳤는지 클로이는 안색이 새파래졌고, 얀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 반해, 칼은 무뚝뚝한 눈빛으로 에블린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건 뭐지?”

“‘브로켄의 망령’이란 현상이야. 이곳에 생장하는 수목인 헤인리히프의 유액이 햇빛에 반사되면 조금 특별한 안개로 변해 버리거든. 이렇게 생성된 안개 속에서는 작은 그림자가 크게 변한다거나 원근감이 뒤틀리는 등의 일이 일어나. 미스틱 마운틴이란 이명이 붙은 것도 이 ‘브로켄의 망령’ 현상 때문이야.”

해박한 설명에 칼은 그림자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그림자들은 벌레들의 그림자겠군.”

“마, 맞아. 그걸 어떻게 알아본 거야? 대부분은 너무 빨라서 그냥 음침한 망령이 스쳐 지나갔다고 생각하는데.”

“형체가 뻔히 보였거든.”

칼의 말에 주변에 있던 조원들은 ‘그게 말이 돼?’라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칼의 동체 시력은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에 프랭크는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흥! 때려 맞춘 주제에 기고만장하기는.”

“이동하지.”

물론 칼은 신경도 안 쓰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울컥!

와락!

결국 분을 참지 못한 프랭크는 칼의 멱살을 쥐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자꾸 뭐라도 된다는 듯 까부는데, 봐주는 것도 이제 슬슬 한계에 도달했거든? 여기서 한 명 정도 사라지게 만드는 일 따위는 식은 죽 먹기인 거 알고 있냐?”

씨익!

그 말에 칼은 반가워하는 웃음을 내비쳤다.

“왜 실성이라도 했냐?”

“그래서 언제 수작을 부릴 셈이야? 어떤 함정을 준비했는지 궁금해지잖아.”

오싹!

타인에게서 보지 못하던 색다른 반응에 프랭크는 일순간 겁을 집어먹었다.

“단단히 미친놈이군.”

“알면 건드리지 마. 혹시 계속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한 건가? 보여 줄까?”

두 사람의 기세가 한층 날카로워지자, 보다 못한 에블린이 다시 만류하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이러면 끝까지 도달하기도 힘들겠다. 그만들 진정해.”

그의 만류에 칼과 프랭크는 서로 고개를 돌렸다.

“지름길 없나.”

에블린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지금 그에게는 이 험한 훈련을 완수하는 것보다 두 사람의 싸움을 만류하는 쪽이 더 체력이 크게 소진되는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

삐이이이익.

산등성이 사이에서 들려온 묘한 소리가 고막에 닿았다.

‘피리 소리인가.’

칼은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쳐다보다 다시금 발걸음을 돌렸다.

*  *  *

미스틱 마운틴 서쪽 벼랑 부근.

저벅.

그곳에는 한 남자가 벼랑에 서 있었다.

한 손에는 피리를 들고 있던 중년의 남자는 귀찮다는 듯 모자를 푹 눌러쓰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리자크 녀석. 귀찮은 임무를 주는군. 보수가 시원찮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그는 여행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망원경으로 한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무리 중 유독 튀는 심홍색의 머리칼과 눈빛을 지닌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뜻 보면 인상이 사나울 뿐인 평범한 소년.

그러나 저 소년의 목숨에 걸린 가치는 무려 금화 이백 닢에 달했다.

어지간한 용병이 한 달 내내 열심히 굴러도 백 닢을 구하기 어려운 걸 생각하면, 소년은 분명 예사롭지 않은 가문 출신일 것이다.

귀족가의 자제를 함부로 건드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정체를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고사로 위장시켜 죽일 수 있는 게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들키지만 않으면, 쫓겨 다닐 일은 없겠지.”

씨익.

남자는 곧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피리 소리에…….

타닷.

암반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 수많은 늑대 무리가 남자의 앞에 집결했다.

쭈뼛쭈뼛 선 갈기는 마치 가시를 두른 것 같았고, 크기는 일반 늑대보다 두 배는 컸으며 훨씬 두꺼운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크르르르.

은은히 입에서 울려 퍼지는 하울링은 그들을 다루고 있는 남자마저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일반 동물이 아니라 몬스터, 바로 다이어 울프였기 때문이다.

크르르르르르.

“이번 타깃은 조금 연한 근육을 가진 애송이다. 자신 있지?”

남자는 웃으며 늑대들 가운데 제일 덩치가 큰 늑대를 바라보았다.

블루 혼 다이어 울프(Blue horn Dire wolf).

우두머리로 보이는 그 다이어 울프는 이마에 거대한 푸른 뿔이 나 있었고, 털 곳곳에서는 정전기가 파팟 튀기고 있었다.

주륵.

그 모습에 남자는 경외를 느끼면서도 긴장으로 고인 침을 삼켰다.

그의 이름은 닐 에드거.

뒷세계에서 알려진 이명은 마수 사역자로 조건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반드시 암살에 성공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이 미스틱 마운틴은 그에게 있어 최적의 암살 장소였다.

“크크크. 시작은 해가 질 때가 적당하겠군.”

그는 렌즈를 통해 칼을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  *  *

해가 지고 미스틱 마운틴에는 어둠이 깔렸다.

타닥, 타닥.

칼의 조는 야영을 하게 되었다.

칼은 마나 연공식을 연마 중이었고, 불침번을 서게 된 클로이는 그런 칼을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보지.”

눈을 감고 있음에도 어떻게 시선을 감지한 건지, 칼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클로이는 주변을 살피다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넌 어째서 얼굴 한 번도 보지 못한 데제스에게 적의를 보이는 거야?”

“딱히 적의를 표한 적은 없어. 은연중 그놈의 속내가 짐작돼서 불쾌한 것뿐이지.”

“속내?”

칼은 눈을 뜨며 말했다.

“나는 파르테스에서 최고의 권세를 얻길 원한다. 나에게 반하는 짓은 하지 마라, 정도. 근데 그러기는 싫거든.”

“그건 아직 네가 데제스를 몰라서 그래.”

대꾸를 하던 클로이는 저도 모르게 팔을 떨었다.

안색이 창백한 걸로 보아 공포에 빠진 것 같았다.

“넌 왜 그 녀석을 따르는 거지?”

칼의 질문에 그녀는 자신의 팔을 꽉 쥐며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따라야 되는 위치상의 관계라는 게 있는 거야. 죽고 싶지 않으니까, 먹이로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따를 수밖에 없는 거라고.”

“약자군.”

“그래. 난 약자야.”

칼은 위로 대신, 냉담하게 한마디를 남겼다.

“강해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단정 짓지 마라. 꼴불견 같으니까.”

사륵.

그리고 불이 꺼지려는 찰나.

칼이 모닥불에 장작을 던지자 다시금 불이 화악 피어올랐다.

크르르르르.

그와 동시에 귓가에 짐승의 울음소리가 스쳐 지나가더니…….

파팟!

한 마리의 다이어 울프가 칼을 향해 덮쳐들었다.

“도, 도망가!!!”

기겁한 클로이가 새파래진 안색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푸욱!

칼은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 들어 다이어 울프 주둥이에 힘껏 내리꽂았다.

깨개개갱!!!

예상치 못한 강한 완력에 다이어 울프는 당황하며 뒷걸음질 치려고 했지만.

우드드득!

칼은 양손으로 다이어 울프의 목을 감싼 뒤, 들어 올렸다.

그로 인해 다이어 울프는 목뼈가 분쇄돼 숨통이 끊어졌다.

“무슨 일이야!”

뒤늦게 천막에서 검을 든 프랭크가 튀어나왔다.

커엉! 커엉!

그와 동시에 다이어 울프 한 마리가 프랭크에게 기습을 가했지만.

콰직!

깨갱!

프랭크는 대검을 가차 없이 다이어 울프의 복부에 꽂아서 꼬치로 만들어 버렸다.

커엉! 커엉!

뒤이어 두 마리의 다이어 울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서걱! 콰앙!

프랭크가 대검을 한 번 휘두르자, 그 궤적에 닿은 다리와 가슴 등이 베여 나가떨어졌다.

“숫자가 꽤 많네.”

프랭크는 얼굴에 튄 붉은 피를 닦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크르르르르르.

어둠 사이로 빛나는 적색의 눈들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랭크 다음으로 천막에서 빠져나온 에블린은 동요하며 동공을 떨다가 모두에게 소리쳤다.

“최소한의 식량만 가지고 도망가! 뒤돌아보지 말고 빨리!”

그의 명에 얀이 모두의 배낭을 바리바리 싸 들고 힘껏 달렸다.

스팟!

그런데 다음 순간, 칼이 순식간에 그들을 앞질러 달려 나가고 있었다.

“?!”

‘대체 언제?!’

그 기민한 움직임에 놀란 팀원들은 동공을 부릅뜨다가…….

“자, 잠깐만!”

뒤늦게 동료인 클로이가 늑대 무리에게 포위당하는 것을 눈치챘다.

경황이 없는 터라 벌어진 실수였다.

프랭크는 미간을 좁히며 쯧 혀를 찼다.

“그냥 간다.”

“하, 하지만.”

당황한 에블린이 그를 만류하려고 했지만, 프랭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대로 늑대 밥이 되고 싶어?! 빨리 달려!”

그의 윽박에 에블린과 얀도 별수 없다는 듯 다급하게 발을 움직였다.

“하아.”

바로 그때, 앞에서 누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당사자는 물론 칼이었다.

칼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데제스한테 전해라. 너희는 다 머저리들이니까 이제부터 시비 걸면 인정사정없이 패 버릴 거라고.”

그리 말을 한 직후.

스팟!

칼은 그들과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더니…….

콰직!

들고 있는 롱소드로 클로이에게 달려드는 다이어 울프의 눈가를 벤 뒤, 그대로 머리를 발로 걷어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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