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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8화 (18/197)

#제18화

해가 중천에 이를 즈음.

칼은 수련복을 갖춰 입은 채, 파르테스의 연무장에서 학생들과 나란히 줄을 섰다.

그리고 수련 교관이자 검술 교관으로 채택된 남자가 학생들에게 말했다.

“리자크 바우만이다.”

낮고 굵은 목소리에 학생들은 일순간 긴장했다.

“수련을 하기에 앞서 검을 잡는 너희들의 자세를 묻고 싶군. 자네!”

리자크에게 지목된 학생은 움찔! 몸을 떨며 답했다.

“네, 네.”

“검이란 뭐지?”

“약자를 지키기 위해 들어야 하며, 자신의 이상을 위해 휘둘러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범적이고 정석적인 답변.

“틀렸다.”

그러나 리자크는 싸늘한 목소리로 그의 답을 일축했다.

“그, 그럼…….”

“이건 죽이기 위한 살인 무기다. 잘 휘두르면, 명예와 부가 자연히 따라올 뿐이지. 프랭크!”

“네!”

리자크의 호명에 제일 앞에 있던 프랭크는 뒷짐을 진 상태로 답했다.

그 모습은 학생이라기보다 군인 같아 보였다.

“나는 내 안목과 편의에 따라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눈다. 그 기준이 뭐라고 생각하나?”

씨익.

마치 짜고 친 것처럼 프랭크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강함입니다. 약하면 도태되고 강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리자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정확하다. 따라서 오늘 난 강자와 약자를 분류해 수업을 시작할 거다. 약자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도, 약자에게 부질없는 희망을 가지게 만드는 것도 인력 낭비니까.”

“…….”

단호한 선언에 학생들은 일제히 긴장했다.

지금은 바야흐로 검을 잘 휘두르고 마법을 잘 부리는 자가 각광을 받는 시대였다.

파르테스에 있는 대부분 학생들은 귀족 출신이기는 하지만.

도태돼서 무능하다고 평가받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암담한 공포 그 자체였다.

피식.

학생들의 정신을 궁지로 몰고 간 리자크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신의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뼛속 깊이 새겨 줄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하암.”

나른해 하는 하품 소리가 학생들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

학생들은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하품을 한 이를 바라봤다.

그곳에는 심홍색의 머리칼과 눈동자를 지닌 칼이 한쪽 눈에서 찔끔 눈물을 흘리며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빠직!

리자크는 분노하며 칼에게 슬쩍 한마디를 던졌다.

“이름이 뭐지?”

“칼리언트입니다.”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나?”

“지루한데, 언제 시작합니까?”

당찬 요구에 학생들 전원이 휘둥그레 눈을 떴다.

심지어 프랭크마저 뜨헉 하는 소리를 내며 경악할 정도니, 지금 분위기는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었다.

리자크는 분노로 불타는 동공으로 칼을 쏘아보며 말했다.

“칼리언트. 수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묻고 싶군. 검이란 뭐지?‘

칼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입을 열었다.

“똑같은 말을 뭐 하러 두 번이나 합니까?”

쿠쿵.

더 할 말이 없다는 듯한 대답에, 순간 학생들은 같은 생각을 했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반면, 리자크는 머릿속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다른 이 같았으면공포에 질려 자신에게 말도 못 걸었을 텐데, 저놈은 공포에 질리기는커녕 매우 특이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눈치 없는 것은 기본이요.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지 않나.

심지어 그 말대꾸도 무척 건성인 게, 심히 거슬렸다.

“아무래도 정말 심심한 것처럼 보이군. 그렇다면 심심하지 않게 해 주지! 전체 웃통 벗고 연무장 30바퀴를 돈다. 알겠나?!”

“네!”

그 기세에 압도된 학생들은 한목소리로 크게 답하며 일제히 뛰기 시작했다.

리자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검지로 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넌 30바퀴 더 추가다.”

‘내가 뭘 잘못했나? 그래도 저놈 눈치까지 살필 필요는 없지.’

칼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네’라고 짧게 답한 뒤, 달리고 있는 동기들에게 합류해 구보를 시작했다.

*  *  *

약자는 도태된다.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면 정예병이 맨 앞에 서는 게 보통이지만, 리자크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매우 부적절한 진형이다.

제일 앞줄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능한 이들을 방패막이로 세워야 한다.

눈먼 칼에 귀중한 자원을 잃을 수는 없는 일.

그는 지금까지 그런 방법으로 이겨 왔고, 이제는 그것을 당연한 진리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제까지 지켜 왔던 자신의 신념을 잠깐 의심했다.

“헉, 헉, 헉.”

30바퀴를 뛴 학생들은 탈진해서 정신을 차리기 급급했다.

한데, 그를 가장 열 받게 만든 칼은 50바퀴를 넘긴 이 순간에도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구보를 하고 있었다.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씨익.

입꼬리에는 웃음이 걸리기까지 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모습에 자극을 받은 학생들이 칼의 뒤를 쫓고 있다는 것이다.

‘거슬리는군.’

재능 없는 것들은 명령받은 대로 방패막이나 하면 된다. 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왔던 리자크는 자연스레 무능한 학생들을 자극하는 칼리언트를 보고는 아랫입술을 말아 깨물며 분개했다.

그는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칼리언트의 기세를 꺾을 필요를 느꼈다.

파앗!

그때 60바퀴를 모두 뛴 칼이 리자크의 앞에 섰다.

“60바퀴 다 끝났습니다.”

리자크는 칼과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홱 돌리며 모두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선별 기준에 따라 기초가 된 녀석들은 검술 훈련을 바로 진행할 거고, 나머지는 체력 훈련에 매진한다.”

“네!”

학생들의 당찬 대답을 들은 뒤, 리자크는 칼을 흘깃 보며 말했다.

“칼리언트. 너는 괘씸죄를 추가해서 훈련량을 남들의 세 배로 한다.”

“그러죠.”

마치 그게 다냐는 듯 올려다보는 그 시선에 리자크는 발끈 화를 낼 뻔했지만.

가까스로 화를 참았다.

시간은 아직 너무나 많고 앞으로도 이 녀석 정도는 충분히 골려 줄 수 있었다.

*  *  *

공통 과목인 검술 수업에 참가한 칼은 지금까지와 궤가 다른 일상을 보냈다.

매일 혹사에 가까운 근력 훈련과 지구력 증강 훈련 등이 이어졌다.

그로 인해 팔다리는 물론 등과 어깨의 근육들이 끊어질 것처럼 괴로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욱신욱신.

몸의 수분은 메말라 가고 그 자리를 통증이 대신 채우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어느덧 해가 지고 다시 저녁이 찾아왔다.

시녀인 레인은 오늘도 엄청난 양의 식사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칼은 칠면조 다리를 뜯어 입안으로 꾸역꾸역 넣고 있었다.

“고, 공자님 천천히 드세요. 그러다 체해요.”

“배고픈데 어떡해.”

그래도 레인의 말을 대충 들을 생각은 없는지, 손가락에 묻은 기름을 쭉 빨며 고개를 들었다.

앞에는 식사에 초대받은 릴리가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또 왜?”

“왜긴 왜야? 너답지 않게 부조리에 시달리고 있잖아. 그 교관, 명백히 파르테스의 교육에 반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너 진짜 몰라?”

칼은 냅킨으로 자신의 입을 닦으며 말했다.

“어떤 걸 말하는 걸까나. 차별을 금기시하는 곳에서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거? 남들은 결코 소화할 수 없을뿐더러 근육이 망가질 만한 훈련을 진행시키는 거?”

“전부야, 전부. 알고 있으면 왜 감찰 위원회에 말하지 않는 거야?”

자신의 일도 아닌데도 릴리는 어지간히 분통이 터졌는지, 일어서서 따지고 있었다.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으니까.”

“도움이 되고 있다고?”

릴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지 반문했고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켜봤을 때, 녀석의 검술은 조악한 실전 위주의 방식이야. 나한테 하등 쓸모없는 거지.”

“검을 휘둘러 본 적도 없다면서.”

“눈썰미 정도는 있어. 가문의 검술을 봤던 내 눈에 녀석의 검의 경지는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야.”

“그 무식한 체력 훈련은 어떤 점이 도움이 되는데?”

“마나 연공식을 연마하면서 같이 진행하고 있어. 때때로 혈관이 끊어지고 근육통이 와서 고생은 하지만, 마력을 이용해 일시적으로 통증을 완화시키고 곧장 재생력을 높여 근육을 늘릴 수 있지.”

거짓말이 아니라는 듯 칼은 소매를 걷어 자신의 팔목을 보여 주었다.

팔뚝에는 그 전에 볼 수 없었던 굵은 혈관 줄기와 매끄러운 근육이 자리 잡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릴리는 저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그러고 보니까. 칼, 전이랑 인상이 달라졌네.”

옛날에는 비실비실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는데.

지금은 준수하면서 다부진 체격을 가진 또래 남자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조금 조금 잘생긴 것 같기도 하고.’

칼의 매력을 인정하는 게 조금 분했지만, 여기에 차분함만 갖춘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었다.

“노력은 계속하고 있으니까.”

“…….”

그 말에 릴리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짓다 씨익 웃고 말았다.

태도는 조금 오만하지만, 칼이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는지 그녀 스스로 보지 않았는가.

노력에 대한 보상이 확실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웃어?”

“그냥. 엉뚱하고 위험해 보일 때도 많지만, 칼이 노력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안심이 됐어.”

“…….”

평소에는 당연한 것이라며 넘어갔을 테지만.

오늘따라 어째서인지 릴리의 칭찬이 기분이 좋아 칼은 저도 모르게 씨익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호호호, 쑥스러워하는 거야? 보기 드문 모습인데.”

“……시끄러워.”

하지만 괜스레 속내가 들통났다는 생각에 칼은 그녀의 눈을 홱 피했다.

*  *  *

날이 밝고 다시 검술 훈련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투정을 부리던 학생들도 의욕을 발해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리한 훈련으로 인해 다소 낙오되는 이들도 일부 있었다.

“허억, 허억.”

가장 먼저 나가떨어진 학생은 짙은 고동색 머리에 밤색 눈을 가진 소년, 로웰이었다.

콰앙!

그는 대련이란 명목하에 현재 프랭크에게 처절하게 농락을 당하고 있었다.

“뭐야? 벌써 끝난 거야? 로웰, 일어나. 심심풀이라도 제대로 상대해 줄 테니까. 이번이 가문에서 주는 마지막 기회잖아. 첩의 자식은 근성도 없는 건가.”

꽈악!

프랭크의 조롱에 로웰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화의 분위기상 프랭크는 로웰의 가문 배경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다……시.”

로웰은 힘겹게 목검을 세우며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이미 체력이 한계에 도달했지만, 포기할 의사는 없는 듯 보였다.

“아아, 진짜 그 눈빛 얼마나 성가신지 알아? 마치 언젠가 날 이기겠다는 듯 보이잖아.”

로웰이 자세를 가다듬기도 전에 프랭크는 힘껏 목검을 휘둘렀다.

“위, 위험.”

이대로 있다가는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정작 교관인 리자크는 팔짱을 낀 채,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질끈!

모두가 눈을 감으며 고개를 돌린 순간.

콰앙!

어디선가 날아온 반으로 부서진 목인장이 주륵 미끄러지며 프랭크의 발을 강타했다.

우당탕!

콰앙!

“크아아악!”

프랭크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고꾸라졌고, 그가 들고 있던 목검은 아슬아슬하게 로웰의 머리칼을 스치더니 땅을 세차게 때리며 나가떨어졌다.

“누구야?!”

빠직! 빠직!

프랭크는 이마에 핏대를 잔뜩 세우며 목인장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칼이 반쪽만 남은 목인장 앞에 서 있었는데, 그는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프랭크에게 말을 던졌다.

“자주 넘어지는 거 보니까, 너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랑 달리 하체가 꽤 부실한가 봐.”

“또 네놈이냐?”

한 번은 참고 넘어갈 수 있으나 두 번은 기만과 도발이다.

프랭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앞으로 나서려고 했으나, 그보다 일찍 리자크가 칼의 앞에 섰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반응에 칼은 어깨를 으쓱이며 부서진 목인장을 엄지로 가리켰다.

“비싼 학비를 내고 다니는데, 관리가 영 엉망인데요. 이곳 관리는 교관님께서 하시는 거 아닙니까?”

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리자크의 추궁에 또 다른 도발로 답했다.

빠직! 빠직! 빠직!

난생처음 겪어 본 상황에 리자크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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