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오닉스 스퀘어 학파 진영.
최근에 학회에서 엄청난 성과를 선보인 덕에 학생들은 너도나도 오닉스 스퀘어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파르테스 측은 학파의 수장, 맥캘리의 연구가 완성돼 논문을 제출되기 전까지는 학파에 새로운 인원을 선발하는 것을 보류하기로 했다.
그리고 현재.
칼로 인해 연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건만, 맥캘리는 아이러니하게도 복덩어리로 취급해줘야 할 제자, 칼과 옥신각신 다투고 있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무식하게 힘으로 돌파만 하려고 하니까 안 되지.”
현재 그녀는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칼의 마나 특성을 이용해 새로운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칼은 그녀의 타박에 움츠러들지 않고 반박을 했다.
“그것도 분명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의 심법은 중의적이라 해석이 두 가지 이상으로 나뉘게 되잖아. 게다가 우회하는 방법은 마나를 발출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차라리 벽을 허물어서 빠르게 마력을 발산할 수 있게 개도하는 게 더 나아.”
“네가 인내심을 가져보는 게 어때? 칼리언트 군.”
“제일 나를 닦달하는 건 당신이잖아. 그리고 여기 미미하게 혈도가 틀려. 수정이 필요할 것 같아.”
“으아아아아악!!! 진짜 재수 없어!!! 이 자식!”
한마디.
단 한마디도 지지 않는 제자의 발언에 맥캘리는 험악한 인상으로 칼이 지목한 부분을 수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누가 스승인 거야?’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릴리는 황당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다 차를 후룩 들이켰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이 소속된 학파인 룩스 루나에를 등한시하고 오닉스 스퀘어의 연구실을 자주 방문하고 있었다.
오닉스 스퀘어는 많은 지원을 받지 못해 학파의 규모가 작았고, 연구 시설 역시 허름했다.
하지만 릴리는 이런 케케묵은 시설에 있는 게 오히려 더 편했다.
‘출세해서 귀족 되기는 틀렸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빠직!
그때 맥캘리가 뜬금없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릴리를 쳐다봤다.
“저기, 릴리. 착각이었으면 좋겠다만, 지금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서, 설마요. 호호.”
릴리는 모른 척, 맥캘리의 시선을 회피했다.
‘감이 좋으시네. 맥캘리 교수님.’
맥캘리는 빤히 릴리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배우고 싶으면 언제든지 배우러 와도 돼. 딱히 오닉스 스퀘어 소속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 그래도 되는 건가요?”
은연중 오닉스 학파의 비전에 관심이 있었던 릴리는 휘둥그레 눈을 떴다.
타 학파의 비전을 파헤치는 것은 금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맥캘리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뗐다.
“국적, 연령, 성별. 그딴 걸 가려 가면서 제대로 된 인재를 육성하기는 어려워. 확실히 여기는 고등 교육 기관이기는 하지만, 배운 것들을 어떻게 발전시키느냐는 본인의 역량이야. 무엇보다 오닉스 스퀘어의 심법을 익힌다고 해서 지금 배우고 있는 룩스 루나에의 마나 심법에 심각하게 영향을 주지는 않을 테니까. 딱히 상관없어.”
“……교수님.”
릴리는 감동한 듯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말은 끝까지 들어 봐야 된다고…… 그녀는 검지를 들어 칼의 이마를 콕콕 찍으며 말했다.
“너에게 안정적으로 심법을 전수해 주기 위해서 이 무식하게 튼튼한 놈을 호되게 굴려 먹을 테니까 절대로 걱정하지 마!”
“아아, 거북이처럼 굼뜨게 움직일 생각이 아니라니 안심이네.”
빠직! 빠직!
둘은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쳐다봤다.
파직!
일순간, 두 사람의 눈빛이 충돌하며 전격이 인 것 같았다.
‘진짜, 사제지간인 게 맞아?’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모습에 릴리는 다시 한번 당황한 표정을 짓다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칼에게 질문을 던졌다.
“칼. 근데, 공통 과목은 뭐로 선택할 거야?”
“공통 과목?”
칼은 그게 뭐냐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릴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자기가 관심 있는 것들 말고는 잘 모르는구나.’
“학파에서 마나 연공식을 익히는 것 외에도 마법을 익힐 것인지, 검을 익힐 것인지 선택을 해야 되거든. 가령, 나 같은 경우에도 룩스 루나에 심법과 검술을 익히고 있어.”
“학파의 마법을 익히는 게 더 낫지 않나?”
“물론 그것도 가능하지만, 어디까지나 마나 연공식을 체득한 것뿐이지 마법이나 검술로 진로가 정해진 건 아니잖아. 대륙에서 손꼽히는 소드 마스터들은 대부분 가문 비전의 마나 연공식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검술이 편할 것 같군.”
“그래도 기초는 익혔나 보네.”
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휘둘러 본 적은 한 번 정도.”
정확히는 오크 로드의 목을 베었을 뿐이다.
전생에 마왕이었던 시절에는 강대한 마력으로 찍어 누르고 주먹과 다리를 휘둘렀다.
“그럼 검을 선택한 이유가 뭐야?”
칼은 한쪽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그래도 가문이 무가거든. 장래에는 기사가 되는 게 목표니 검 정도는 휘두를 줄 알아야지.”
원대한 포부의 선언.
그 말에 감탄이 나오는가 싶었지만.
“…….”
“…….”
릴리와 맥캘리는 어처구니없다는시선으로 칼을 쏘아봤다.
“무슨 문제가 있나?”
칼의 물음에 맥캘리가 콧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스승인 내가 말하는 건 좀 그렇지만 망나니가 어떻게 기사가 돼?”
“화를 다스리는 법을 먼저 배워야 되지 않을까?”
빠직!
“호오.”
이마에 핏대가 도드라진 칼은 처음으로 고뇌라는 것을 했다.
뭘까? 이 기분은?
분명 걱정하는 시선으로 보는데, 묘하게 약을 올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화를 낸다면 도발에 넘어가는 것 같지만, 마왕이라는 특성상 가만히 넘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고로 절대자에게 프라이드란 목숨을 걸고 지켜야 될 정도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이번에 검술 과목에서 1등을 한다면, 어떻게 할 거지?”
투지에 불타는 칼의 눈빛에 두 여인은 그대로 압도당할 뻔했다.
하지만 맥캘리는 자존심 때문인지, 금방 이성을 되찾으며 칼에게 말했다.
“흐, 흥! 도발에 도발을 가하시겠다. 좋다, 이거야. 만약 네가 그 정도 성과를 이루면 3성을 익힐 수 있는 약을 만들어 주지.”
“마력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만.”
찌릿!
칼의 반박에 맥캘리는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
“마력이 충분하면 뭐해? 내재된 마력을 더 발산했다가는 육체에 치명적인 손실을 주는데. 내가 너에게 만들어 줄 약은 너의 마력을 중화시키고 육체를 강화시켜 줄 거야.”
“그렇다면야.”
칼은 한층 의욕을 더 불태우며 이번에는 릴리를 쳐다봤다.
흠칫!
그 시선에 놀란 릴리는 어깨를 움츠리다 곧 새침한 표정으로 말했다.
“참고로 말해 두는데, 난 여기에 장학금을 받고 다니는 서민이라서 그 정도로 값진 선물은 못 해 준다고.”
“흐음, 그럼 방법이 있지.”
칼은 음산하게 입꼬리를 올렸고, 릴리는 약간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어떤 건데 그래?”
두근두근.
어떤 말이 튀어나올지 벌써부터 긴장이 됐다.
저 입에서 터무니없는 발언이 튀어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리의 선물을 사는 걸 도와줬으면 좋겠어.”
“선물?”
그러나 막상 그 입에서 떨어진 조건이 너무나 가벼워 릴리는 조금 놀랐다.
칼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누군가한테 선물을 주는 건 처음이라서 말이지. 잘 모르겠어.”
“흐음, 그렇구나. 알았어. 그러면 그렇게 할게.”
의외로 순진한 요구에 릴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요구라면 애초에 내기의 승패랑 상관없이 충분히 어울려 줄 수 있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져갈 때.
칼은 아차 싶었는지 입을 열었다.
“기왕지사 사는 김에 너랑 꼬맹이 스승의 선물도 사지?”
“응?”
“가, 갑자기 왜?”
‘내 생일이 교수님이랑 같았나? 내 생일은 겨울이라서 아직 멀었는데.’
맥캘리와 릴리는 이유를 묻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칼을 쳐다봤고, 칼은 팔짱을 끼며 오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일이 선물 건네는 거 귀찮잖아. 그런 말을 일 년에 세 번이나 들을 수는 없지.”
그 말을 한 직후.
빠직!
발끈한 두 여인의 눈 밑이 어두워졌다.
거지도 아니고.
‘옜다, 먹고 떨어져라.’라는 듯한 칼의 말투에 당연히 분노가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맥캘리에서 릴리 순으로 갈굼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오냐! 좋다! 네 이놈! 하늘 같은 스승에게 감히! 만약 니가 지면, 여기에 지금 있는 것만 한 크기의 오두막을 새로 지어! 연구실도 좁았는데 아주 잘됐네.”
“그리고 칼, 네가 싫어하는 단 것들 위주로 음식을 준비할 테니까 다 먹어야 돼. 돈은 물론 네가 직접 내는 거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녀들의 기세에 전생에 마왕이었던 그는 조금 놀라 뒷걸음질 쳤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정작, 본인은 그들이 왜 화가 났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듯 보였다.
그리고 어째서 대마왕인 자신이 이곳에서 갈굼을 받고 있는지…… 참으로 의문이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차이트와 약속한 ‘갱생’을 할 수 있을지 참 의문스러웠다.
‘갱생은 정말 어려워.’
“하아.”
이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큰 부담을 느끼며 한숨을 쉬었고.
빠직!
그 나른한 태도에 더욱 화가 난 두 여인은 동시에 소리를 쳤다.
“한숨 쉬지 마!”
* * *
파르테스 학장실.
세계 각국에서 인정을 받은 자만이 이 방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책상 위에는 페트로 스타니슬라프라는 이름이 새겨진 명패가 올라와 있었고, 자리에는 새하얀 눈썹과 수염을 가진 노인이 있었다.
세계에서 백색의 마도사라고 불리는 그는 파르테스에다가 누구도 깨뜨리지 못한다고 일컬어지는 결계, 라우라크를 생성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본래 그의 국적은 이실리아가 아니지만.
그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어마어마한 것을 알고 있는 이실리아는 갖은 노력 끝에 그를 학장의 자리에 앉혔다.
파르테스의 학장은 이실리아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후작급의 대우를 받으며…….
예카테리나 2세조차 알 수 없는, 파르테스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들의 신상 정보를 유일하게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 말은 즉이곳의 입학 허가는 오로지 그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양심에만 판단을 맡기는 거라, 자칫 잘못하면 차별을 낳을 수 있는 위험한 제도지만.
페트로는 결코 자신의 특혜를 사리사욕에 이용하지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의 정점을 이룬 그에게 세속적인 욕구는 하잘것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페트로는 최근에 받아들인 학생으로 인해 제법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흐음. 슈타크 그 애송이의 추천서만 믿고 받아들였는데, 생각 외로 엄청난 짓을 저지르고 다니는군.”
이번에 받은 서류에는 칼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내용이 가득했다.
타악!
더 보기 귀찮았는지, 페트로는 쓰레기통에 그대로 서류들을 던졌다.
그리고 그 서류 더미를 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쯧쯧. 선만 넘지 않는다면 얌전히 있을 놈인데. 하긴 요 녀석 성격도 만만치 않기는 하겠지. 칼리언트 슈타크.”
씨익.
골치가 아프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벌어지는 학교의 변화가 나쁘지 않은지 그는 입꼬리를 싱긋 올렸다.
바로 그때.
똑똑.
문 너머에서 누군가 노크를 해 왔다.
“들어오게.”
허가가 떨어지자, 문이 벌컥 열리며 거구의 남자가 들어왔다.
키는 약 2미터. 다부진 체격에 용병같이 털털한 복장을 갖춰 입은, 거친 금발과 수염을 가진 남자.
페트로는 눈매를 좁히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먼 길을 오느라 수고했네. 리자크 바우만.”
“저야말로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기는 3년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 걸출한 인재를 양성해 내겠습니다.”
절도 있게 인사를 하는 그의 이름은 리자크 바우만.
이번에 파르테스에서 공통 과목인 검술 교관 중 한 명으로 초빙되었다.
소드 마스터는 아니지만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오러 유저인데다…….
전장에서 일반 병사가 오러 유저와 싸울 수 있게끔 검술의 역량을 끌어올려 주었으며 전술과 전략 또한 해박했다.
그의 숱한 경험은 파르테스 교관이 되기에 충분했다.
페트로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젊어서 좋군. 하하하, 뭐 너무 무리하지 말고. 여독이 많이 쌓였을 테니, 그만 쉬게나.”
“그럼,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리자크는 그대로 문으로 향했고, 페트로는 슬며시 미간을 좁히며 입을 뗐다.
“데제스에게는 수업에 잘 참여하라고 전해 주게나. 많이 친한 것 같던데. 하하하하.”
고개를 돌린 리자크는 잇몸을 씩 드러내며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요령 피우는 제자가 없도록 힘껏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