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2화 (12/197)

#제12화

광장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각 학파의 마법들은 칼의 마력에 닿자마자, 깨져 버렸다.

“…….”

각 학파의 수장들은 너무 놀라 벙찐 표정을 지었고.

스윽.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예카테리나 2세마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칼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 깨달은 맥캘리는 경악을 금치못했다.

“……마나 브레이크.”

때때로 마법사들이 마법을 구현할 때, 좌표 계산이나 마력의 컨트롤을 실패해서 마법이나 마력이 흐트러지며 깨지는 현상.

깨진 마력의 파편들은 칼의 주변에서 흩날리며 반짝이고 있었다.

“……예쁘다.”

고고해 보이는 그 모습에 릴리는 저도 모르게 한마디를 남겼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누군가 중얼거린 말에 스첼레투스의 학파, 수장 첸 리들러가 칼에게 다가가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지금 자네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고 있나!”

두근두근.

흥분으로 인해서 그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이 박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학파의 수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그동안 공들여 온 연구 성과를 선보이는 자리다.

한데, 느닷없이 나타난 이 의문의 전학생으로 인해 그들의 마법이 허무하게 깨졌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피식.

다그치려는 기세에 칼은 한쪽 입꼬리를 비틀며 말했다.

“오닉스 스퀘어의 연구 성과를 보인 것뿐입니다.”

“마,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게 오닉스 스퀘어의 연구 성과라고?”

첸 리들러는 경악하며 맥캘리를 쳐다봤다.

도리도리!

맥캘리는 좌우로 고개를 저으며 극단적으로 부인했다.

“아니에요.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거랑은 전혀 무관해요.”

칼은 당황하는 맥캘리를 대신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오닉스 스퀘어의 마나 연공식은 소유자 본인이 지니고 있는 마나의 고유 특성을 각성시키는 것.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것은 제 마나의 특성입니다.”

“……그, 그런?!”

웅성웅성.

주변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냐고 수군덕거리기 시작했고.

칼은 리들러의 옆을 지나쳐 에리얼에게 다가갔다.

꿀꺽!

잔뜩 긴장한 에리얼은 고인 침을 삼켜 넘겼다. 대체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까 싶은 불안감 때문이었다.

설마 맥캘리의 연구를 망친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걸까?

초조해하며, 그를 바라볼 때.

칼은 자연스럽게 에리얼과 어깨동무를 하며 입을 뗐다.

“오늘은 여기 있는 에리얼 학생의 협력 덕분에 이 자리를 빛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발판이 돼 줄 테니까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달라 했거든요.”

“그게 무슨……?!”

에리얼은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칼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어라? 그러면 방금 전의 공격은 일부러 나를 향한 건가?”

“?!”

그 말을 들은 스첼레투스 학생들의 얼굴이 빳빳하게 굳었다.

그것은 학파의 수장인 첸 리들러 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금 전, 그들이 소환한 스켈레톤 킹이 칼을 공격한 것은 예측하지 못한 변수였다.

통제 불능의 상태.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면, 칼이 일으킨 마나 브레이크 특성 때문에 소환 마법이 깨지며 스켈레톤 킹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칼은 이 점을 교묘히 이용했다.

만약, 여기서 스첼레투스 학파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흑마법의 위험성을 인식한 주변의 사람들이 꺼려 할 것이다.

이는 자연스레 스첼레투스에 대한 악평이 급속도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사건을 어떻게든 무마하려면, 칼의 거짓말에 동참해야 했다.

“바, 바로 그렇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오닉스 스퀘어 학파가 훌륭한 이론을 가지고도 지지를 받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여겨…….”

결국 사건의 수습을 위해 첸 리들러가 급히 나섰고.

에리얼은 자그마한 소리로 칼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이 개자식.”

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에리얼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 이제 어떻게 하냐? 조만간 버려지겠는데?”

“…….”

음산한 한마디에 에리얼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데제스의 분노한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탁탁.

칼은 얼어붙은 에리얼의 어깨를 두 번 정도 두들긴 다음 첸 리들러의 옆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횡설수설하는 그에게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첸 교수님께서 보시기엔 오늘 학회에서 제일 훌륭한 연구 성과를 보인 것은 어느 학파라고 생각하십니까?”

왈칵!

순간 첸 리들러는 울화통을 참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오늘의 무대를 빛낸 학파는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다, 당연 오닉스 스퀘어라네.”

그는 애써 대인배 흉내를 내며 대답했다.

바로 그 순간.

“웃기지 마! 그 연구는 이단이야!”

“신성한 학회에서 남의 연구를 깡그리 깨부숴 놓고서는 뭐가 어쩌고 저째?”

다른 학파에서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이의제기를 했다.

맥캘리 교수는 당황해서 진땀을 뺐고.

빠직!

칼의 이마에 핏대가 두드러졌다.

전생 시절이었다면, 말이 많다는 이유로 싸그리 박멸시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그럼 너희가 연구를 대충 한 거지. 2년 동안 뭐 했어?”

라고 마지못해 한마디를 내뱉었다.

“…….”

“…….”

그 발언은 교수를 비롯해 학생들에게 침묵을 불러왔다.

‘내가 뭘 들은 거지?’

평소 칼과 같이 지내던 릴리마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지경이었다.

잠시 후.

“이, 이런 건방진!”

“저 자식 대체 이름이 뭐야?”

욕설만 빼고 할 수 있는 모든 비난이 칼에게 쏟아졌다.

콰앙!

칼은 전신의 마력을 분출시키며 한 발로 땅을 있는 힘껏 내디뎠다.

일순간 마력의 파장이 주변 곳곳에 퍼져 나갔고, 주변은 다시 침묵했고 그 틈에 칼은 입을 열었다.

“오닉스 스퀘어의 칼리언트다.”

그 한마디는 많은 뜻을 전달해 주었다.

불만이 있으면 나와라, 난 피하지 않는다.

불타오르는 듯한 심홍색의 눈빛은 당혹은커녕, 오히려 도전과 비난을 받아 주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오싹!

일순간이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칼의 기세에 알 수 없는 오한에 시달렸다.

상황이 이쯤 되니…….

‘난 망했어! 저 녀석 그냥 미친 게 아니고 아예 생 또라이였어.’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맥캘리는 양손으로 머리를 붙들며 절규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기에 이 상황을 중재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이다.

적막한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은 웃음을 터뜨리며 한순간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호호호호호, 열정이 넘치는 학생이네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쳐다보니, 맥캘리의 정면에서 예카테리나 2세가 걸어오고 있었다.

스윽.

그와 동시에 파르테스 학회에 모여 있던 이들 전부가 예의를 갖추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예카테리나 2세는 모두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닉스 스퀘어는 옛적에 그랜드 마스터가 남겨 둔 심법을 계승한 학파, 하지만 마나 연공법의 대부분은 소실된 상태였죠. 그걸 여기 있는 맥캘리 교수가 기나긴 연구를 통해 복원을 하는 중이었어요.”

“…….”

따뜻한 음성에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솔직히 힘든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떻게든 되살리고 싶은 역사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오늘 저는 기적을 보았죠.”

어느 순간 예카테리나 2세의 발끝이 맥캘리의 앞에 도달했다.

“당신의 연구는 제자를 통해서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됐어요. 오늘 이 자리를 빛내 준 모두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어느 것 하나 차등을 둘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성과지만, 이 자리에서 가장 빛난 것은 맥캘리 교수의 포기하지 않은 자세라고 생각해요.”

울컥!

맥캘리의 머릿속으로 그동안 고생했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세월을 알고 이해해 준 예카테리나 2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써 눈물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떨어뜨렸지만.

뚝뚝.

바닥으로 눈물이 떨어졌다.

“오늘의 주인공은 당신이에요.”

예카테리나 2세 역시 감격한 듯 말하며 그녀의 목에 메달을 걸어 주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멍한 표정을 지었을 때.

짝짝.

가장 먼저 릴리가 손뼉을 마주쳤다.

짝짝짝짝짝짝!

뒤이어 에리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주변에 있던 이들 역시 두 사람의 박수 소리에 호응하여 일제히 손뼉을 쳤다..

*  *  *

학회가 무사히 끝난 뒤.

칼은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낀 상태로 눈을 감고 있었다.

스스스스.

체내에서는 붉은 마력이 출렁이며 살집을 비집고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오닉스 스퀘어의 마나 연공식에 의해 잔잔히 가라앉았다.

‘2성의 성과는 제법 괜찮아. 몸도 이제는 어느 정도 생각대로 움직여 주고.’

칼은 이번 성과에 제법 만족한 듯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바로 그때.

“어디 가서 농땡이를 치나 싶더니만, 여기 있었군. 이 미친 제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맥캘리 교수가 쌍심지를 켜며 칼을 노려보고 있었다.

“주인공이 연회에 빠지면 되나?”

뒤풀이 파티에 참석해야 할 그녀가 나왔다는 것이 칼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시기와 질투가 넘쳐나고 진심으로 축하받지도 못하는 자리에서 뭐 하냐? 아니 그보다 네가 깽판 쳐 놔서 아니꼽게 보는 시선이 더 많았어.”

‘하긴.’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간간이 나오는 본인의 성질에 칼은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갱생은 어렵군.’

이런 식으로 해서 정말 갱생할 날이 오기나 할지 모르겠다.

“내 덕분에 너도 강해지고 있다는 것 실감하고 있지? 그렇다면 진심으로 날 경외해.”

다시 시작된 맥캘리의 요구에 칼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떻게 경외해 주면 되는 거지?”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맥캘리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랜드 마스터의 일기를 참고해 보니 동양에서는 제자가 스승으로 섬기기로 한 자에게 구배지례를 한다고 하더라고.”

“구배지례?”

“아홉 번 쪼그려 앉아서 절하라는 의미야.”

“훗.”

칼은 자신도 모르게 허탈하면서도 상쾌한 웃음을 내비쳤다.

탁.

그러고는 맥캘리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한마디를 남겼다.

“꿈 깨라. 꼬맹아.”

빠직!

“이 미친 제자가!!!”

둘은 다시 옥신각신 말다툼을 하며 연구실로 유유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초승달이 떠오른 밤.

파르테스에서는 그동안 공훈이 없었던 오닉스 스퀘어의 이번 성과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누군가는 시기와 질투를 연달아 내뱉었지만, 그저 소리 없는 메아리로 묻혔다.

그 대신 주변 곳곳에서 슬그머니 한 인물이 대두됐다.

애칭은 칼, 본명은 칼리언트.

그는 마나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강력한 마나 보유자로 그 힘은 장차 기사로든, 마법사로든 분명 대단한 업적을 남길 게 틀림없었다.

그 때문에 칼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려고 하는 자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으며…… 누군가는 칼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영입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

빠득!

그러나 파르테스의 출입문에서 서성이던 에리얼은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그 개자식!”

현재, 그는 자퇴를 꾀하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스첼레투스 학파에서 자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획은 순식간에 수포로 돌아갔다.

미리 대동한 시종들을 데리고 빠져나가려는 찰나.

“우웁!!!”

수풀 근처에 숨어 있는 인영들이 에리얼의 코와 입을 막고 기절시켰기 때문이다.

잠시 후.

우당탕!

허름한 오두막 안쪽으로 던져진 자루에서 에리얼이 빠져나와 뒹굴었다.

“우웁!”

재갈이 물린 에리얼은 몸부림을 치며 재갈을 풀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복면을 쓴 이들은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풀어 줘.”

한 사람의 말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고요한 가운데, 들려오는 한마디에 재갈을 입에서 뗄 수 있었던 에리얼은 동공을 파르르 떨었다.

“서, 설마?!”

옆을 살펴보니 전신이 어두컴컴한 그림자에 싸인 남자가 있었다.

오싹!

금빛 광채가 뿜어져 나오는 그의 눈과 시선을 마주한 순간, 에리얼은 안색이 새파래져 무릎을 털썩 꿇었다.

“요, 용서해 줘. 데제스,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자산을 전부 기부하면 될까?”

애걸복걸하는 그를 향해 데제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턱에 괴었다.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침묵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꿀꺽!

에리얼은 고인 침을 삼키며 데제스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았다.

“학파와 너의 명성을 괄시한 그 녀석의 숨통을 끊어 놓을게. 기필코!”

“…….”

데제스는 대답 대신에 몸을 일으켜 성큼성큼 걸어갔다.

복면을 쓰고 있던 무리들은 그 뒤를 따랐는데, 그중 한 명이 에리얼에게 귀띔을 해 주었다.

“이게 데제스가 마지막으로 주는 기회야.”

그 말을 끝으로 주변에 있던 모든 인기척이 사라졌다.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몸을 떨던 에리얼은 주먹을 꽉 쥐며 증오의 말을 읊조렸다.

“그 개자식. 반드시 죽여 버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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