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파르테스에서는 이 년에 한 번.
여덟 학파에서 연구 성과를 선보이는 학회가 개최된다.
학회의 목표는 두 가지로…….
첫 번째는 파르테스가 최고의 학문 기관이라는 것을 외부에 알리는 것.
두 번째는 이실리아가 국가에 대한 차별 없이 교육을 행하는 중립국임을 알리는 것이다.
중계 무역으로 부를 쌓는 만큼, 타국의 신뢰를 저버리는 일은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실리아의 목표일 뿐.
정작 학회의 주인공인 여덟 학파는 경쟁의 승자가 되기 위해 광적으로 집착을 하고 있었다.
연구 성과에 따라 책정되는 예산이 천차만별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타 학파에 밀려 패배하는 굴욕을 겪기 싫어서였다.
그리고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욱 특별한 학회가 될 예정이었다.
왜냐하면 이번 학회에는 이실리아의 여왕인 예카테리나 2세가 참석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학회가 개최되기 전.
예카테리나 2세는 누군가와 긴밀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학교생활은 할 만하던가요?”
따뜻함이 묻어나는 말투.
그 음성에 상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위험한 점이 많이 있어요.”
여왕과 이야기를 나누는 이의 말투에는 경고가 서려 있었다.
예카테리나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질문을 던졌다.
“……어떤 점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나요?”
“올해 학회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타국에서 온 학생들은 학파에서 쟁취한 지식을 분명 자국을 위해서 활용하겠죠.”
“그런 것쯤은 늘 있는 일이니까 신경 쓰지 않아요. 그보다 혹시 눈길이 가는 이는 있나요?”
“……지켜본 결과, 흥미가 가는 사람이 세 명 있어요.”
“어떤 자들인가요?”
인영은 먼저 한 손가락을 펴며 말했다.
“한 명은 세컨드 프린세스라고 불리는 릴리. 학업 성적이 매우 우수할뿐더러 ‘룩스 루나에’에서 에이스라고 불리고 있어요. 실수로 자신은 귀족은 아니라고 발설하는 바람에 주변에서 조롱과 힐난을 받고 있죠. 파벌에 들어가면 간단히 끝날 일이지만 그러지 않더라고요. 중립국인 이실리아에서 반드시 섭외해야 할 인재 1순위예요.”
“그 정도로 말하는 걸 보니, 기대가 되는군요.”
긍정적인 반응에 인영은 피식 입꼬리를 올리더니, 이번에는 두 번째 손가락을 폈다.
“두 번째 인물은 칼리언트예요.
파르테스에 입관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성적은 무려 그 데제스푸아르랑 동급인 1위. 게다가 소속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오닉스 스퀘어에 들어가고 나서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요. 성격은 조금 난폭한 것 같지만요.”
말을 하고 난 인영은 생각했다.
‘음, 조금 난폭하다는 말이 맞겠지? 얼마 전에 스첼레투스 학파 애들하고 한바탕한 것 같지만, 그렇게 크게 벌인 것도 아니고.’
그 모습을 보며 여왕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그렇게 자신의 판단을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뭔가 사고를 칠 것 같아 불안해서 시선이 가는 것 같기도 해요.”
“마지막은 누군가요?”
마지막 질문에 인영은 다른 의미로 심각한 눈빛을 띠었다.
“……데제스푸아르요.”
“역시. 작년부터 쭉 경계를 했던 것 같은데, 어떤 점이 눈에 띄었나요?”
“색깔이 다양해요. 폭군과 성군의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는 데다가 그림자처럼 조용하게 파벌의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요. 소속돼 있는 스첼레투스 학파의 수장도 그에게 왠지 물들고 있는 것 같고요.”
“스첼레투스의 수장이 세뇌 마법에 걸릴 리는 없는데, 참 특이하네요.”
“그만큼 데제스의 매력이 철철 넘친다는 거죠. 학업도 마법도 이미 교수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는 터라 수업 참석도 제멋대로예요. 저도 이 3개월간 간간이 스쳐 지나가며 얼굴만 봤을 뿐이에요. 그는 수업에 거의 참석하지 않아요.”
“이번 학회에서는 얼굴을 보일까요?”
“잘 모르겠어요.”
“역시 그렇군요.”
예카테리나 2세는 인영의 말에 수긍하는 듯 보였다.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요?”
“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를 보았어요. 저에게 마치 그는 색깔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요.”
“…….”
종잡을 수 없는 말에 인영은 침묵을 지켰고, 예카테리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갔다.
“당신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는 모든 사람한테 다른 인상을 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말한 거예요.”
“저는 꽤나 위험한 사람을 관찰하고 있는 거네요.”
인영은 처음으로 여왕에게 불평불만을 내뱉었다.
“힘들면 언제든지 말해도 돼요. 그만둔다고 하면 전 환영이에요.”
여왕의 차분한 어조에 인영은 말렸다는 듯 곤혹스런 눈빛을 띠었다.
“사양할게요. 열심히 해 볼게요.”
“늘 지켜보고 있답니다.”
“…….”
예카테리나 2세의 말에 인영은 동공을 파르르 떨다 이내 걸음을 옮겨 자취를 감췄다.
* * *
광장에는 학회를 위해 여덟 학파가 각각 진영을 이루고 모여 있었다.
스첼레투스 학파의 진영.
현재, 이곳의 학생들은 발표는 뒷전이고 수군거리기에 바빴다.
무리 중 한 명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에리얼에게 물었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에리얼? 감찰 위원회에서 우릴 찾아내면 어떻게 해?”
에리얼은 개의치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지들이 무슨 수로 우리를 찾아낼 건데.”
그들은 어젯밤 소동을 일으켰다.
소동을 일으킨 장소는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연구실.
에리얼을 필두로 이들은 맥캘리 교수가 준비한 연구 자료를 엉망진창으로 훼손한 다음 경고의 문구까지 남기고 떠났다.
이것은 몹시 중대한 사안으로 들켰다가는 퇴학을 면치 못할 테지만.
에리얼은 자신 있었다.
“증거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겠지. 그렇지만 우리는 끝까지 발뺌하면 그만이야. 왜인지 알아?”
“왜, 왜?”
“우리한테는 데제스가 있잖아.”
자신이 벌인 일의 뒤처리를 남에게 맡기겠다는, 뻔뻔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스첼레투스 학파의 학생들은 그것이 진리라는 듯 표정이 밝아졌다.
데제스푸아르.
성도 출신 배경도 모르지만, 그의 영향력은 교수들은 물론 파르테스의 일부를 장악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데제스를 따르는 파벌은 더욱 커졌고, 그중 일부는 도를 넘은 악질적인 행위를 일삼았다.
에리얼은 양손을 빼 들며 자신의 생각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았다.
“힘이 있는 자는 용서를 빌 필요도 없어. 죄를 지어도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로 바꿀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무척 줄을 잘 잡은 거야.”
“그, 근데, 에리얼.”
“왜?”
“데제스는 이 사실을 알고 있어?”
“아니. 어차피 안 들키면 그만이잖아.”
“…….”
그의 말에 주변 학생들 얼굴은 사색이 됐다.
데제스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을 했다가는 설령 같은 파벌이어도 분노를 피해 가기 쉽지 않다.
자신의 파벌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데제스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지켜 내지만, 함부로 자신을 앞세워 위세를 떠는 자들에게는 그만한 페널티를 안겨 주기도 한다.
“어? 저기 맥캘리가 왔다.”
바로 그때.
맥캘리가 어두운 표정으로 오닉스 스퀘어 진영에 당도했다.
심신이 무척 지친 듯한 그녀는 연구 논문을 한 아름 안고 있었는데, 그 얼굴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한평생 한 연구를 하룻밤 만에 잃었으니, 무척이나 허망할 것이다.
에리얼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흥, 꼴좋네. 그런 멍청한 놈을 제자로 받아들인 것부터 인생 구겨진 거지.”
“생각해 보면, 오닉스 스퀘어는 예산만 좀먹고 성과는 좀처럼 못 냈잖아.”
“그러게. 그 정도 연구 예산을 차라리 스첼레투스에게 주었다면 더 잘 활용했을 텐데.”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학생들은 그녀를 비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에리얼은 저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째서 그 녀석이 안 나온 거지?’
머릿속에 스쳐 간 한 남자의 이미지는 홍련을 연상케 했다.
불타오르는 심홍색의 눈동자.
굳건한 고집이 서려 있는 그 눈빛은 타협은 모른다는 듯 무척이나 고강했다.
칼리언트.
데제스와 동점으로 수석을 차지한 이 의문의 전학생은 처음 만나자마자, 에리얼 자신의 얼굴에 주먹을 내지르는 만행을 일으켰다.
아직까지도 그때 느낀 통증을 떠올리면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칼리언트에게 가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뭘까?
섣불리 싸움을 걸었다가는 퇴학을 면치 못한다.
뒤에서 치려고 해도, 동료들이 그에게 협조해 줄 명분이 부족했다.
데제스라면 ‘둘이 결투를 하는 게 어때?’라며 나올 게 뻔했기 때문이다.
‘지면 손해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고심 끝에 에리얼은 오닉스 스퀘어와 함께 칼리언트가 있을 자리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방법이 없으니까 도망친 건가.”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무려 예카테리나 2세가 보는 앞에서 농땡이를 친 것일 테니.
칼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생각보다 시시하게 끝나겠는데.”
에리얼은 실망과 희열이 뒤섞인 미소를 지으며 다수의 학생들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 * *
잠시 후, 파르테스의 광장.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학회가 본격적으로 개최됐다.
관람을 하기 위해 온 예카테리나 2세는 면사를 쓴 채, 우아하게 걸어 의자에 착석했다.
울컥!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맥캘리는 그대로 고개를 수그렸다.
기대에 보답을 해 주지 못 하는 게 이렇게 큰 고통이거늘, 맥캘리의 옆에는 위로해 줄 이조차 없었다.
“오지 않는 게 다행이지. 왔으면 그거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 했냐고 화부터 버럭 냈을 텐데.”
그러나 괜스레 눈가가 시큰해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
학회를 진행하던 사회자의 호령과 함께 각 학파들은 자신의 연구 성과를 내놓았다.
“엘레멘탈 스피릿.”
호명과 함께 불, 바람, 물, 땅의 마법이 조화를 이루며 광장을 화려하게 꾸몄다.
잇따라 다섯 학파에서 참신한 성과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번 학회에서 사실상 우승이 확정된 학파의 이름이 호명됐다.
“스첼레투스”
쿠구구구.
어두운 마나를 몸에 두른 학생들이 동시에 흑마법을 펄쳐 보였다.
웅성웅성.
가장 음산한 마법인 만큼 학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봤고.
화아아아아악!
흑색 불길 너머로 거대한 스켈레톤 킹이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앙!
스켈레톤 킹이 광장에 발을 딛자 지면이 미미하게 떨리기까지 했는데, 그 압도적인 모습에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흑마법을 익히는 게 조국에 좋은 건가.’
‘전쟁에 활용하면 정말 유용하겠어.’
마치 현혹이라도 된 것처럼 스첼레투스의 연구 성과에 사람들이 감탄을 내질렀다.
“…….”
스켈레톤 킹의 모습에 넋을 놓고 있던 진행자는 화들짝 놀라 다음 학파를 호명했다.
“마지막, 오닉스 스퀘어!!”
“오오! 드디어 피날레인가!”
“오닉스 스퀘어? 그게 어디 학파지?”
기대감 서린 사람들의 환호에 맥캘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딱히 피날레를 장식할 생각이 없었는데.’
미루고 미루다 보니 결국 마지막이 오고 말았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맥캘리는 정신이 아찔해져 주저앉을 뻔했다.
탁.
바로 그 순간.
“내 스승이라면, 이런 데서 꼴사납게 쓰러지지 마.”
어디서 나타난 건지 칼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뒤,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터벅터벅.
“어? 어.”
당황한 맥캘리가 손을 뻗어 칼을 붙들려고 했으나.
스스스스스스.
칼은 아랑곳하지 않고 전신에서 붉은 마력을 발산했다.
“뭐야? 겨우 한 명이야?”
“그냥 걷기만 하는 거야?”
지켜보던 관중들의 반응은 호기심과 괄시, 두 가지로 나뉘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려는 거야?’
룩스 루나에 진영에서 행사에 참여하고 있던 릴리는 고인 침을 삼키며 칼을 지켜봤다.
모두의 시선이 칼에게 집중된 그 순간.
화아아아아악!
붉은 마력이 광장 전체를 뒤덮었다.
꿈틀.
체내의 마력 특성을 일깨우는데 성공한 칼은 나지막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완성이다.”
그 말을 한 직후.
콰쾅! 콰쾅! 콰쾅! 콰쾅! 콰쾅! 콰쾅! 콰쾅!
각 학파가 선보이던 마법들이 깨져 나갔다.
“뭐, 뭐야?! 어째서 마나 브레이크가!”
각 학파의 수장들은 당혹을 금치 못했다.
기이한 현상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쇄액!
칼의 마력에 반응한 스켈레톤 킹이 스첼레투스 학생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습격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 스켈레톤 킹이 제어가 되지 않아요!”
학생들은 일제히 당황했지만, 스켈레톤 킹은 아랑곳하지 않고 칼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꺼져.”
그걸 본 칼이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팔을 휘젓자…….
콰아아아앙!
붉은 마력의 파장이 스켈레톤 킹을 휩쓸어 버리더니 단숨에 깨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