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 마왕은 갱생이 어렵다-10화 (10/197)

#제10화

오닉스 스퀘어의 기원은 동방의 그랜드 마스터가 전수한 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랜드 마스터.

그것은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최강자에게 주어지는 칭호로…….

마법의 경지로는 10서클.

검의 경지로는 소드 마스터를 초월하는 검강을 구현하는 단계였다.

“……사실 그건 개소리에 불과해.”

그러나 이런 배경에 대해서 쯧 혀를 차며 이의를 제기하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수장인 맥캘리 교수였다.

수련을 위해 마련된 훈련장.

현재 그녀는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이번에 제자로 들인 칼에게 학파의 배경과 목표를 설명하는 중이었다.

“오닉스 스퀘어가 추구하는 마나 연공 방식은 사람이 본디 지니고 있는 선천적 마나의 특성을 일깨우는 거야.”

“특성?”

“예를 들면 이런 거지.”

그녀는 준비된 그릇에 담긴 콩에 마력을 부었다.

선홍빛으로 일렁이는 마력이 콩을 파고들자, 이리저리 흔들리던 콩은 쩌적 소리를 내며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세상에.”

수업에 같이 참관하던 릴리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칼은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바로 간파했다.

“그러니까, 꼬맹이 교수의 마나 특성은 ‘생장’이라는 거고, 그 특성을 일깨운 방법이 지금의 마나 연공법이라는 거지?”

빠직!

“오호라. 미친 제자야. 언제까지 이 스승을 ‘꼬맹이 교수’라는 애칭으로 불러 줄 거니?”

“정정해 줄까?”

“에휴, 됐다. 마음대로 해라.”

‘싸가지 없는 제자 같으니.’라고 맥캘리는 중얼거리며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애초에 칼과 자신의 관계는 일반적인 사제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부족함을 메워 주는 관계.

학파의 배경을 설명한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연구하고 있는 마나 연공식을 바탕으로 수련하는 것을 수업이라고 치면, 어느덧 두 사람이 수업을 시작한 지도 열흘이 넘어가고 있었다.

맥캘리는 지그시 눈매를 좁히며 칼을 바라보았다.

‘마나를 다루는 센스만큼은 천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칼의 경우는 지금까지 봤던 이들과 전혀 달랐다.

대다수의 사람은 체내에 마나를 쌓아 가며 그것을 자신에게 적합한 마력으로 연단해 극의에 이른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이 남자의 마나는 다른 이들과는 그 궤도가 판이했다.

마나의 양은 적었지만 그 농도가 지나치게 짙고 위용이 넘쳐 살벌할 정도였다.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한다면 몸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한 마나였다.

만약 이 마나를 마력으로 정제하는 데 성공하면, 맥캘리의 연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 남자가 이곳에 온 목적은 결국 나를 만나기 위해서야.’

그녀가 구태여 칼에게 그가 지니고 있는 마나의 정체에 대해서 묻지 않는 것은…….

칼이 그것을 꺼리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약 곤혹스런 질문에 칼이 떠난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극심한 손해니까.

세상 그 누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쏘냐.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선을 넘는 짓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뿐이다.

씨익.

상황이 이쯤 되니, 맥캘리는 가슴이 두근두근해졌다.

‘처음이야.’

엘리트주의에 빠진 자들과의 숨 막힌 경쟁.

그리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낯선 학파의 연구를 계승하는 일은 지금껏 보람도 없고 고통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래도 여왕 폐하께서 부탁하신 일이니, 이 학파는 어떻게든 부흥시켜야만 해.’

학파 계승 이래, 그녀는 처음으로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칼에게 말했다.

“미친 제자야. 가급적 학회가 열릴 때까지, 마나 특성을 일깨우는 데 주력하도록 하는 게 좋을 거다.”

그 말에 인상을 홱 찌푸린 칼은 그녀가 어제 자신에게 건네준 마나 연공식과 계통도를 돌려주며 입을 뗐다.

“어제 그려 준 마나 계통도, 세 군데 정도 틀렸으니까 수정이나 해.”

“크아아아아아악! 복덩어리라고 생각했던 거 완전 취소! 역시 재수 없어. 이 자식!”

맥캘리는 다시 한번 분노하며 기염을 터뜨렸다.

옥신각신.

투덕거리는 칼과 맥캘리를 보는 릴리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수준이 너무 높아.’

처음에 칼이 어째서 수석인지 의문이 가서 접근했지만.

이 열흘간 지켜본 결과, 칼리언트는 수석이 될 만했다.

성격은 완전 괴팍하고 오만하기 그지없지만.

일반적으로 약자를 괄시하는 스첼레투스 학파의 학생들과 비교하면 질 자체가 달랐다.

시비를 걸면 철저히 짓밟아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만들어 놓을 뿐이지, 결코 약자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맥캘리는 눈치채지 못했을 테지만, 그녀가 끼니를 거르지 않게 매끼 식사를 자신의 시녀를 통해 전해 주는 상냥함도 간간이 엿보였다.

사락.

지금도 맥캘리가 울분에 찬 표정으로 살피는 마나 계통도에는, 어떤 이유로 그녀의 이론이 틀어졌는지가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얼추 봐도 심도 있는 지적.

적어도 학생 중에서는 데제스를 제하고는 저렇게까지 교수와 논쟁을 벌일 수 있는 학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세컨드 프린세스인 그녀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러워.’

릴리는 다시금 질투에 휘말렸지만, 가까스로 부정적인 감정을 집어삼키고 배움에 임했다.

“교수님,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씨이, 뭔데?”

울상이었던 맥캘리는 릴리를 쳐다봤고, 릴리는 고민하던 것을 솔직히 물었다.

“파르테스의 다른 일곱 학파는 마나 특성에 따라 분류됐는데, 오닉스 스퀘어가 추구하는 마나 특성은 다른 학파와 어떻게 다른 건가요?”

맥캘리는 진지한 눈빛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설명에 들어갔다.

“예를 들면 이런 거지. 사람은 기질과 성격으로 삶이 변하거든. 이게 어떤 건지 릴리는 잘 알고 있지?”

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맥캘리의 질문에 답했다.

“기질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있는 특성이고 성격은 살면서 터득해 나갈 수 있는 대처 자세로 배웠어요. 예를 들면 기질이 드센 사람은 차분한 성격을 연습해 가질 수 있고, 내성적인 사람도 연습을 통해 외향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처럼요.”

“비슷한 맥락이야. 허무나 4대 원소, 태양과 달 등의 마나의 속성으로 분류하는 건 다른 학파들의 방식이야. 오닉스 스퀘어가 추구하는 것은 마나 연단법을 통해 사용자 본인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마나의 특성을 일깨우는 거지. 예를 들자면…….”

쭈욱.

맥캘리는 얌전히 앉아서 경청하고 있던 칼의 볼을 쭈욱 잡아당겼다.

빠직!

칼의 이마에는 핏대가 잔뜩 솟구쳤지만, 맥캘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재개했다.

“이 미친 제자의 마나 속성이 불이라고 가정해 봤을 때, 이 녀석은 활활 타오르는 산불처럼 사납기 그지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그렇지만, 불의 종류가 산불밖에 없을까?”

“……아니요. 촛불은 무척 조용하게 타고, 요리를 위해 타오르는 불꽃은 은은하면서도 적당하게…… 아!”

대답하는 도중, 릴리는 그제야 맥캘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았다.

오닉스 학파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은 마나의 고유 성질이었던 것이다.

다른 학파들의 경우 추구하는 속성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게 학생들을 가르친다. 반면, 오닉스 스퀘어는 학생이 지닌 마나의 고유한 성질을 일깨우고 발전시킬 수 있게 돕는 것이다.

릴리는 자연스럽게 오닉스 스퀘어 학파의 비전을 깨달았다.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이른 나이부터 안성맞춤의 교육법을 찾아내 단숨에 성장시킬 수 있어.’

어째서 이실리아가 많은 예산을 들여 이 학파를 부활시키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난 제법 신임 받는 몸이라고.”

릴리가 경외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맥캘리는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다가 다소 부끄러운 듯, 그녀는 제자들의 시선을 회피했다.

탁.

그때, 칼이 맥캘리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칭찬하마. 원하는 결과에 도달할 때까지 힘껏 도와주지.”

빠직!

맥캘리는 안면 근육에 팍 힘을 주며 다시 한번 노기를 터뜨렸다.

“오냐! 이 미친 제자 자식아! 꽤나 심심했나 본데, 2차전 시작이냐? 받아주마! 덤벼!”

그녀는 길이가 짧은 팔로 칼에게 주먹을 홱홱 내질렀고.

칼은 예상했다는 듯,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고 거리를 벌렸다.

“……스승과 제자 맞지?”

그 광경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릴리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찼다.

*  *  *

맥캘리와 강의가 끝이 나고, 칼은 본격적으로 그녀에게 교육을 받은 대로 마나 연공법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짜악!

수련 첫날, 달력 한 장이 찢겨 나갔다.

맥캘리의 연구를 바탕으로 마나를 연단하기 시작한 첫날, 개량된 연공법 ‘오닉스 스퀘어’를 익히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마나가 거칠게 역류해 치솟아 토혈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맥캘리가 안절부절못하다가 가까스로 안정시켜 주었다.

짜악!

수련 사흘째, 달력이 찢겨 나갔다.

무심코 정신을 차렸을 때, 오닉스 스퀘어가 1성에 도달하면서 체내에 자리 잡힌 노폐물이 빠져나갔다.

몸은 한층 더 가벼워졌고, 폭주할 것만 같던 마나가 마력으로 변화했다.

성과는 분명 있었지만, 1성 달성의 영향으로 하루 종일 고열에 시달리며 고생했다.

짜악!

수련 열흘째, 달력이 찢겨 나갔다.

칼은 왜 성급한 짓을 하고 난리냐는 맥캘리의 지적에 옥신각신 다투었다. 그래도 스승의 충고에 따라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시선으로 체내를 두루두루 살피며, 요동치는 마력을 몸 곳곳에 퍼뜨려서 부작용을 잠재웠다.

짜악!

수련 한 달째, 달력이 찢겨 나갔다.

마력에 대한 통제가 어느 정도 강해지자, 신체의 능력이 놀랄 정도로 상승했다.

공통 수업인 기초 무예 수련을 하루 종일 했음에도 지치기는커녕 오히려 활력이 더욱 솟구쳤다.

빈약하기 짝이 없던 몸은 점차 굴곡이 지며 불어났다.

짜악!

다시 일주일이 지나 달력이 연달아 찢겨 나갔다.

어느덧 학회까지 앞으로 하루가 남았다.

칼의 성장은 순조로웠지만, 맥캘리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학회에 내보여야 하는 논문의 핵심인 마나의 특성을 칼이 아직 일깨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칼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짜증 나는군.’

그것은 맥캘리가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약자로 살아 본 적이 없기에, 성장이란 것이 얼마나 보람차면서도 답답한 일인지 처음으로 체감했다.

더군다나, 스승인 맥캘리가 실망하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가부좌 자세로 마나를 연단하던 도중.

“이제 그만.”

스스스스.

맥캘리의 중지 선언에 칼은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명쾌하면서도 발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친 제자. 넌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러다 몸에 과부하 걸리면 나만 욕먹는다. 오늘은 쉬어.”

“……알았어.”

칼은 이마에 흥건히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분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만 가 봐.”

툭툭.

맥캘리는 칼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찝찝하게 만드는군.”

수척해진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칼은 인상을 찌푸렸다.

*  *  *

만 하루가 지나, 드디어 학회에서 연구 주제를 발표하는 날이 밝았다.

릴리는 자신이 속한 학파보다도 오닉스 스퀘어의 연구가 더 신경이 쓰여, 결국 이른 아침에 맥캘리를 찾아왔다.

끼익!

“교수님, 준비 다 하셨어요?”

문을 열고 평소처럼 반갑게 인사를 하려던 릴리는 순간, 심하게 경직된 얼굴로 맥캘리의 방을 살폈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연구실 벽 전체에 휘갈겨 쓴 글씨였다.

「썩 꺼져버려. 쓸모없는 거머리!」

또한 맥캘리가 지금껏 힘겹게 준비해 온 논문이 갈가리 찢겨 있었다.

“…….”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맥캘리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빠득!

“대체 누가?! 지금 당장 감찰 위원을 불러올게요!!!”

격분한 릴리가 성큼성큼 걸어 나가려고 하자, 맥캘리는 그녀의 소매를 꼭 붙들었다.

“됐어, 됐어. 아깝기는 하지만 다시 준비하면 되는 거고.”

“뭐가 돼요! 백업해 둔 것도 없잖아요. 대체 교수님이 뭘 했다고!”

“그야 나, 쓸모없는 사람 맞잖아. 예산이나 와구와구 처먹는 쓸모없는…… 잘 됐어. 이참에 포기하고 내려놓자. 그 녀석한테는 말하지 마. 내가 논문을 잘못 준비해 온 거로 해서 창피만 좀 당하면 되니까.”

“……교수님! 분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릴리는 젖어 들 것 같은 눈망울로 힘겹게 웃고 있는 맥캘리를 쳐다봤다.

그녀는 입을 우물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분해.”

주륵.

이내 참았던 눈물이 거침없이 쏟아졌고, 릴리는 그대로 맥캘리를 끌어안아 주었다.

*  *  *

흐느끼는 맥캘리의 울음소리가 오두막 벽을 넘어 미미하게 전달됐다.

그러나 칼의 마음에 와닿는 감정은 결코 미미하지 않았다.

두두두두둑!

격분에 휘말린 칼의 이마에는 핏줄이 한가득 돋아났다.

지금 당장이라도 맥캘리의 연구를 개판으로 만든 작자들을 찾아내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죽이기만 하는 마족의 방식으로는 맥캘리의 슬픔이 해결되지 않는다.

‘찾아라. 칼리언트 슈타크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보복 방법을…….’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은 칼은 이후의 대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