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6화
“많이 먹어. 칼.”
식탁에는 쿠키와 케이크 등의 다과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준비한 여인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는데…… 아마 여기 있는 것들은 그녀가 직접 만든 것처럼 보였다.
‘불편하군.’
그녀의 상냥함에 칼리언트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다.
여인의 이름은 사라 슈타크.
수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 엘리엇 영주의 딸로 우연히 그곳을 방문한 루드거의 마음에 들어 인연을 맺게 됐다.
절망에 사로잡혀 있던 몸의 원주인에게 유일하게 자신의 편인 어머니 사라는 한 줄기의 빛이었으나.
알테어로의 파견이 결정된 이후로 그는 자신을 지켜 주지 못한 사라를 원망하며 공기 취급했다.
‘남에게 지켜지고 싶었다는 건가.’
세상의 모든 고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했던 칼리언트에게 있어서는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사라가 자신의 몸을 안았을 때, 가슴이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칼리언트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본 상냥함에 당혹스러웠다.
그녀는 무엇 하나 바라지 않고 그저 그가 무사하다는 것에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이해가 안 가.’
싱숭생숭한 기분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칼리언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칼. 그렇게 인상 찌푸리면 주름 생긴다. 쿠키를 구웠는데, 먹어 보겠니?”
사라의 자상한 말투에 칼리언트는 어쩔 수 없이 아삭 소리를 내며 쿠키를 먹었다.
혀에 달콤한 맛이 감돌았다.
동시에 칼리언트의 안색은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달아!’
“맛있지?”
아들의 표정을 읽지도 않는지 반색하는 그녀의 모습에 칼리언트는 시선을 살짝 회피하며 말했다.
“……단 건 싫어합니다.”
쿠쿵.
대답을 들은 사라의 눈망울이 다시금 촉촉이 젖어 들었다.
“흑. 너무해! 칼. 근래 계속 차갑게 굴더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좋아하던 쿠키도 싫다고 거짓말할 필요는 없잖니.”
“거짓말 아닙니다. 진짜 맛없습니다.”
“우웃!”
칼리언트의 평에 사라는 순식간에 토라졌다.
나이에 맞지 않는 천진난만함에 칼리언트는 정신이 산만해졌다.
피식.
그러다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살포시 안은 그녀의 행동에 다시 당황했다.
본래의 그라면, 정색하며 떨어졌겠지만.
사라의 몸이 미미하게 떨려 오는 게 느껴져 차마 그러지 못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그녀는 같은 말을 되뇌며 칼리언트가 무사하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최전선, 알테어에 막내아들이 파견되었으니, 칼리언트의 유일한 안식처라고 할 수 있는 그녀 역시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실 루드거 백작과의 동행을 자처한 것도 아들인 칼리언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슬슬 불편합니다.”
“칼. 안 본 사이에 많이 차가워졌어.”
사라는 다시 토라진 표정으로 칼리언트를 쏘아봤다.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정말 남자는 빨리 어른이 되나 보네.”
사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칼리언트에게 떨어져 그 맞은편에 앉아 대화를 재개했다.
“백작님께서 잘 이야기해서 알테어에서 빠질 수 있게 해 볼게. 쓸데없는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서 행복하게 살자, 칼.”
“그거라면 이야기는 끝냈으니,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야기라니? 칼, 네가? 백작님이랑 이야기했다고?”
칼리언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백작과 있었던 이야기에 대해 털어놓았다.
잠시 후.
“말도 안 돼. 칼! 너는 검에 대해서는 엄마인 내가 봐도 재능이 없어. 또 험난한 파르테스 생활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사라 치고는 모진 말이었지만, 칼리언트는 무덤덤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시작해 보기 전에는 누구도 모르는 겁니다.”
“무, 물론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네가 쟁취하려는 게 뭔데?”
‘쟁취라…….’
목적을 묻는 한마디.
본래의 목적은 차이트의 뜻에 따라 이 세상에 위협을 가하는 자를 찾아 해치우는 거지만.
솔직히 말해 봤자, 믿지 못할 거기 때문에 몸의 원주인이 일기장 마지막 문구에 새겨 넣은 한 문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당당히 기사가 돼서 인정받고 싶어.
단 한 번도 이야기를 해 보지 못했지만.
이것 또한 칼리언트가 이 몸으로 살아가면서 반드시 이뤄야 할 숙원이었다.
딱히 거짓말도 아니었기에, 칼리언트는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기사가 되려고 합니다.”
“기사?!”
사라는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 세계에서 기사 작위를 받는 것은 한 나라의 귀족과 버금가는 지위에 오름을 의미한다.
기사는 그만큼 소수의 핵심 인력으로 취급받는다.
그 때문에 각자 지닌 무위를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고는 했는데, 이것은 라흐만 대륙 전체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것이었다.
기사의 등급은 마나에 대한 숙련도와, 발산할 수 있는 오러의 농도 등을 기준으로 나뉘었다.
이때 마나를, 오러에 쓰기 적합한 마력으로 정제시킬 수 있는 경지를 지칭할 때 보통 ‘성(成)’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하급 기사는 4성급 이하, 중급 기사는 6성급 이하, 상급 기사는 8성급 이하, 그리고 최상급 기사는 그 기준을 매기기 어려워 9성급 이상으로 분류되었다.
작위나 지니고 있는 금전과 상관없이 순수한 무위와 경지로 인정받는 존재.
그것이 바로 기사였다.
그렇기에 대중은 기사를 칭송하며 세계 곳곳에 기사도 문학이 널리 퍼져 있었다.
정정당당하며 검을 숭배하는 경이로운 초인.
물론 현실은 대중이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다르지만, 어쨌든 기사는 무척이나 각광받는 요직인 것은 분명했다.
“기사가 되면, 뭐 할 건데?”
방금 전까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사라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뭐 하지?’
딱히 진짜 목적은 아니었지만, 칼리언트는 기왕지사 이 세계의 남자들이 선망하는 야망을 뱉기로 했다.
“외적을 물리치고 세계를 정복하는 거죠.”
“……칼.”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라는 무척이나 실망한 듯 안색이 차갑게 변했다.
동시에 주변의 분위기 역시 가라앉아 버렸다.
‘뭐가 잘못된 거지?’
칼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사라에게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나는 정치나 전쟁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지금 당장 뭔가를 이루는 것보다 약자를 지킬 줄 아는 게 기사의 덕목이라고 생각해.”
“그렇습니까?”
“칼, 만약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사람들이 누굴까?”
의외로 진지한 질문.
그러나 딱히 생각해 보지는 않았던 사안이었기에, 칼리언트는 처음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역시 계급이 낮은 병사들 아니겠습니까?”
“전쟁 중에서 병사들이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
틀렸다는 지적에 칼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지그시 좁히며 물었다.
“어머니께서 생각하시는 정답은 뭡니까?”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은 힘을 쓸 수 없는 여자와 아이들이야. 힘이 없기에 유린당하기 쉬운 대상이지. 재물을 빼앗기거나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노예가 되고 겁탈을 당하기도 해. 난 칼이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뒀으면 좋겠어.”
“…….”
칼리언트는 잠시 깊은 고심에 빠졌다.
전생에 마왕이던 시절에 수없이 전쟁을 치렀지만,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상황이다.
왜냐하면 마족은 남성체, 여성체 가릴 것 없이 서로를 죽이려고 들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힘으로 짓누르지 않는 이상 말을 듣지 않는 반항적인 족속들.
칼리언트는 거기에 환멸을 느끼고 설득 대신 멸살을 선택했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만약, 어미가 그런 상황에 처했어도 너는 야망을 위해 날 외면할 거니……?”
진지하게 자신과 눈을 마주한 사라를 보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죽는다면, 가슴이 무척 괴로울 것 같았다.
그렇기에 칼리언트는 자신의 가치관을 재정립할 수밖에 없었다.
“약자를 수호하는 기사가 되겠습니다.”
“후후.”
칼리언트의 확답에 사라는 만족스런 웃음을 띠며 칼리언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야 내 아들이지.”
칼리언트는 뚱한 표정을 짓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
“칼이라고 안 불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칼리언트의 말에 크게 충격을 받은 듯 몸이 경직되었던 사라는 곧 세차게 칼리언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싫어! 칼, 칼, 칼, 칼. 내 아들인데, 왜 못 부르게 하는 건데! 칼!”
“하아.”
원망 섞인 반응에 칼리언트, 아니 칼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갱생이란 걸 빨리 끝내야 되겠군.’
* * *
칼을 파르테스에 편입시키기 위해 루드거는 아는 인맥을 동원해 추천장을 넣었다.
그리고 3년 동안 지휘관의 부재를 메우기 위해…….
슈타크의 기사이자, 칼리언트의 형제인 라마스와 프루아에게 알테어로 올 것을 명했다.
그리고 시간이 한 달 가까이 흘러갔을 때쯤.
두 형제가 알테어에 도착했다.
영지민과 가신들의 눈을 확 사로잡는 적색의 머리칼과 눈이, 그들이 슈타크 가문의 혈통임을 입증해 주고 있었기에 굳이 신분 패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제들 사이엔 확실한 차이점도 있었다.
장남인 라마스의 머리와 눈은 적색에 갈색이 약간 가미된 색깔을 띠고 있었다.
신장은 약 190센티미터, 얼굴은 준수한 미형이었으며 전체적으로 몸의 밸런스가 좋았다.
반면, 넷째인 프루아는 대체로 어두운 적색의 머리와 눈을 지니고 있었으며…… 눈매는 무척이나 살벌해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 목울대가 꿈틀거리며 튀어나온 음성에는 한껏 불만이 뒤섞여 있었다.
“어째서 아버지가 그런 덜떨어진 놈을 위해 우리를 이곳에 불러들였을까요?”
“녀석도 마지막 발악이 하고 싶은 거겠지. 기한은 3년이라고 들었다.”
“칫!”
프루아는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3년이란 시간은 공훈을 쌓고 한창 지지 기반을 만들 수 있는 값진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무자비한 땅에서는 그럴 기회가 결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벅, 저벅.
바로 그때.
그들의 맞은편에서 가방을 메고 있는 한 소년이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적색 머리와 눈동자.
소년 역시 슈타크 가문의 혈통 특색을 이어받았으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특성은 제대로 지니고 있었다.
불길을 연상케 하는 심홍색의 머리칼과 눈동자.
몸은 약골이었지만, 기세만큼은 어째서인지 두 형제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다.
처음 소년과 눈을 마주쳤을 때.
‘이 녀석은 누구지?’
두 형제는 똑같이 위화감과 생소함을 느꼈다.
그들이 칼이 자신들의 동생이라는 것을 자각하기까지는 약 3초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반갑습니다. 형님들.”
칼의 환대에 프루아는 조롱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놈 때문에 우리가 이 썩어 빠진 땅에서 머물게 됐구나. 임무가 끝나면, 네놈한테 그 대가를 받아 내겠다.”
“…….”
칼은 무어라고 말하려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동생이 겁을 집어먹었다고 생각했는지, 프루아는 더욱 칼을 괄시하며 말했다.
“그러니 울며불며 형님 소리를 내뱉으며 애원할 필요 없다. 어차피 우리에게 형제란 허울뿐인 관계에 불과하니 말이야.”
프루아는 조소를 터뜨리며 칼의 반응을 살폈다.
이제 지레 겁을 집어먹고 용서를 구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허울뿐이라서 다행이네. 남모르게 죽어도 슬퍼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야.”
하지만 칼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척이나 은유적인 절연 선포였다.
“너 뭐라고 했어?”
비위가 거슬린 프루아는 눈꼬리를 치켜올렸고, 칼은 입가에 선명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알테어를 부탁하지. 너무 엉망진창으로 만들지는 마.”
“야, 너 미쳤어?”
어처구니가 없던 프루아는 저도 모르게 검에 손을 올렸다.
“성급한 짓 하지 마라.”
라마스는 기도를 해방하며 프루아의 기세를 억눌렀다.
창문 너머에서 루드거 백작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슈타크 가문 내에서 동족상잔은 늘 벌어지는 일이지만.
가주가 지켜보고 있는 곳에서 그런 행동을 벌였다가는 가문의 위광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추방할 명분을 주게 된다.
칼은 교활하게도 그 상황까지 고려하고 프루아에게 도발을 가한 것이다.
라마스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칼을 보며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안 본 사이에 많이 교활해졌구나. 칼.”
“세상일이 험하다 보니, 달라지게 되더라고요.”
“굳이 우리에게 접근해서 도발을 가하는 이유가 뭐지? 얌전히 수그렸으면, 눈에 띌 일은 없었을 텐데.”
“가주 욕심은 없으니까 경계하는 건 그만하시죠. 자꾸 그러면 꼴사나워 보입니다.”
두둑!
예상치도 못한 도발에 라마스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나하고도 연을 끊어봤자, 좋을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 반대겠지. 너희들이랑 엮이면 기분 더러운 일들만 가득하니까. 가급적 나 건드리지 마. 건드리면 죽인다.”
희번덕!
말을 마친 칼리언트는 두 사람을 노려보며 내면에 잠들어 있는 마왕의 마력을 일깨웠다.
스팟!
그와 동시에 위기감을 느낀 두 형제는 동시에 검을 빼 들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들은 언제든지 물러날 수 있도록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왜들 그러실까. 뒤꽁무니를 빼려는 쥐새끼들처럼…….”
저벅.
칼은 그런 두 형제를 비웃으며 그대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주륵.
그동안 두 형제는 이마에 흥건히 식은땀을 흘리며 칼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그와는 반대로 칼은 순간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주륵.
뒤늦게 이마 위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력을 살짝 개방했을 뿐인데, 육신이 버티지 못하고 그새 상처를 입은 것이다.
“아아, 짜증 나는군. 일단 이 약골 몸부터 단련해야겠어.”
목표를 되새긴 칼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차로 향했다.
“고, 공자님. 그새 형제분들하고 다툼이 있었나요?”
칼을 기다리고 있던 시녀, 레인은 크게 놀라 손수건을 꺼내 들었고.
“신경 꺼.”
칼은 신경질적으로 그녀에게 손수건을 빼앗아 얼굴을 닦은 뒤, 마차에 올라탔다.
목표는 대륙 최고의 교육 기관, 파르테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