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5화
루드거 슈타크.
그는 다른 백작들보다 훨씬 강한 권세를 누리는 변경백이면서 동시에 추앙과 공포를 한 몸에 받는 소드 마스터였다.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그는 웬만한 일로는 놀라지 않지만.
지금은 안 본 사이에 확 달라진 자신의 아들, 칼리언트 슈타크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모습이야.’
오랫동안 백작가를 섬기던 루크조차도 두 부자의 상봉에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늘 움츠러진 상태로 아버지를 맞이하던 칼리언트가 그와 나란히 앉아 무덤덤하게 홍차를 마시고 있다니…….
슈타크 백작가의 사람들이 들었다면,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코웃음 쳤을 것이다.
심지어 평소 루드거를 대할 때는 칼리언트뿐만 아니라 모든 아들들이 벌벌 떨며 눈치를 보기 급급하다는 걸 생각하면, 실로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루드거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아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안 본 사이에 많이 달라졌구나.”
루드거의 말에 칼리언트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안 좋은 부분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니, 절로 달라진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변화는 보기 좋지.”
이게 내 아들이 맞나?
루드거는 의심스런 표정으로 미간을 좁히며 칼리언트를 바라보았다.
적색의 머리, 그리고 이전보다 한층 활활 타오르는 것 같은 심홍색의 눈동자.
슈타크 가문만의 유전적인 특색이 확연히 드러나는 칼리언트를 구태여 부정할 이유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꺼림칙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반면, 루드거를 지켜보고 있던 칼리언트의 속마음은 심드렁했다.
얼핏 보는 것만으로도 루드거의 행동 관념이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자신의 핏줄이어도 약한 이들은 배제한다. 시련을 내리고 그것을 통과하면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지만, 시련을 통과하지 못하면 죽어도 상관없다.’
이게 정말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생각이 맞나 의심이 들었지만.
애초에 칼리언트는 그를 아버지로도 여기지 않을뿐더러 루드거의 그런 생각은 마족의 가치관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거리낄 것은 없었다.
잠깐 사이에 칼리언트에 대한 파악을 마친 건지, 루드거는 훗 하고 웃음을 지으며 박제된 오크 로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물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구나.”
“마음에 드셔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영지 운영은 엉망진창이구나. 이런 상황에서 타국의 침략을 받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루드거가 전신의 기도를 살며시 열자…….
쿠구구구구.
“흐읍!”
그 압도적인 기운에 주변의 가신들은 숨이 턱없이 막혀 왔다.
‘……완전 억지야.’
뒤에서 두 부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루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애초에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도 매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으로, 성인도 되지 않은 아들을 보내는 정신 나간 작자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일이 잘못 돌아가 몬스터나 타국의 병사에게 알테어 성을 빼앗긴다면, 그것은 이 나라, ‘루콘’에 어마어마한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곳에 자신의 아들을 밀어 넣었다는 것은 그 아들을 믿어서가 아니라 빨리 배제하기 위함일 것이다.
후룩.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루드거의 압박에도 칼리언트는 느긋하게 차를 마신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흥미롭다는 듯이 루드거는 기운을 거둬들이며 칼리언트에게 반문했다.
“제안? 어떤 제안을 할 거지?”
“저에게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호오, 엉뚱한 핑계로 알테어를 벗어나려는 수작이냐?”
‘예상대로군.’
루드거의 얼굴에 잠깐이지만, 실망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다른 형제들에게는 가문의 비전을 전수하거나, 검에 통달할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까?”
“너에게는 검의 재능이 없다. 그러니 검에 매진할 시간도 필요 없지.”
“저도 그런 줄 알았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생각?”
씨익.
칼리언트는 얄궂게 입꼬리를 올리며 도발 같은 한마디를 던졌다.
“아버님의 안목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말이죠.”
콰아아앙!
그 한마디에 루드거는 안면 근육에 힘을 주며 누그러뜨리던 기운을 폭발시켰다.
“오호라. 못 보던 사이에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지, 진정하십시오. 백작님.”
당황한 병사들은 일제히 그를 만류하려고 들었지만.
스윽.
칼리언트는 방해하지 말라는 듯 손을 들며 병사들을 제지했다.
‘……?’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에 병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칼리언트는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파르테스에 보내 주십시오. 그곳에서 3년 동안 시간을 보낸 뒤, 다시 한번 알테어 영지로 돌아와 지금까지 혈족이 이루지 못한 성과를 내 보이겠습니다.”
“…….”
당당한 요청에 루드거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게냐? 파르테스는 다른 의미로 살아남기 어려운 곳일 텐데.”
파르테스.
그곳은 중계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섬나라, 이실리아에 위치한 아카데미였다.
국적, 성별, 학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고도의 학문과 검술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이곳의 커리큘럼을 수료한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세의 시대에서 위명을 떨치고 있었다.
중립을 유지하는 이실리아의 특성상 파르테스에서 활동하는 수련생들은 권위를 내세울 수 없고, 가문의 후광을 등에 업을 수도 없었다.
그저 순전히 자신의 실력으로만 위에 올라서야 한다.
이것은 루콘에서 최강의 무가로 일컬어지는 슈타크도 마찬가지였다.
칼리언트의 형제 중 수료를 마친 이는 고작 세 명.
물론 파르테스를 수료한 칼리언트의 형제들은 기사 작위를 받아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서 최고였던 건 아니다.
이것은 루드거에게 있어서 실로 굴욕일 수밖에 없었다.
“네가 거기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냐?”
“최고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빠득!
루드거는 이를 갈며 말했다.
“자신도 없으면서 나에게 무모한 도발을 걸었다는 거냐?”
“최고가 아니라 최강이 되면 그만이잖습니까. 언제부터 남들의 평가에 사로잡히셨습니까?”
“…….”
칼리언트의 말에 루드거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다.
최고가 아닌 최강…….
어째서 지금까지 그 말을 생각하지 못 했을까?
이것이야말로 슈타크 가문의 가치관과 부합되는 말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자신은 언제부터 남들의 평가로 얻는 명성에 사로잡혀 있던 걸까?
제아무리 아카데미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도 실전에서 활약을 못 하는 경우는 분명 있다.
애초에 파르테스를 수료한다는 것은 쓸 만한 인간인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일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하자, 루드거는 절로 칼리언트의 의도를 깨달을 수 있었다.
칼리언트는 파르테스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증한 다음 알테어란 실전 무대에서 활약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에게 말을 건 것이란 말인가.’
의외로 치밀한 계획에 당황한 루드거는 자신도 모르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칼리언트를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앙상하고 볼품없는 체격.
이런 몰골로 과연 최강의 무인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스윽.
무심코 아래를 보니, 쓰다듬고 있던 박제된 오크 로드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무척이나 살벌하게 포효하는 듯 보이지만.
안면 근육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 감춰진 감정을 얼추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천하의 오크 로드가 어째서 저런 비실한 인간에게 공포를 느꼈을까?
게다가 이걸 선물로 주다니.
‘의도가 뻔한 선물이야.’
자신이 한 말은 결코 허세가 아니다.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칼리언트는 오크 로드의 머리를 루드거에게 갖다 바친 것이다.
‘제법이군.’
씨익.
분노로 가득 찼던 루드거의 눈에는 어느새 미미한 희열과 기대감이 들어찼다.
“3년의 시간을 주지. 그동안 알테어는 라마스와 프루아에게 맡겨 두마.”
라마스와 프루아.
그들은 칼리언트의 배다른 형제임과 동시에 슈타크 가문에서 배출한 기사들이었다.
스물일곱 살인 첫째 형 라마스는 소드마스터로 현재는 전선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었고, 스물한 살인 넷째 형 프루아는 파르테스를 수료했으며 최연소 소드마스터로 장래가 촉망되는 기사였다.
물론 이런 대단한 두 형제도 아버지인 루드거를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멀었지만 말이다.
“감사…….”
협상이 타결되자, 칼리언트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는 아주 약간 사소한 부분을 간과했다.
“실패의 대가는 네놈의 목이면 되겠느냐?”
바로 루드거가 칼리언트의 예상 이상으로 냉혈한이라는 것이었다.
“배, 백작님!”
웅성웅성.
갑작스런 루드거의 발언에 루크를 포함한 가신들이 당황해했다.
칼리언트 역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곧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웃어?’
그 광경을 본 모든 이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느 누가 이들의 대화가 부자간의 대화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들의 대화는 마치 서로 물고 헐뜯는 과격한 짐승들의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 구도에서 상대를 수세로 몰고 가는 것은 칼리언트인 듯싶었다.
“더한 것을 가져가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그럴 일은 없으니까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무심한 표정으로 할 말을 마친 칼리언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어머니도 같이 왔으니, 찾아뵙거라.”
“알겠습니다.”
칼리언트는 정중히 예를 갖춘 뒤, 그대로 물러났다.
뚜벅뚜벅.
바깥으로 향하는 칼리언트의 발소리는 중후하게 울려 퍼지며 슈타크의 가신들을 긴장시켰다.
특히 가장 가까이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루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턱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세상에, 저 약골 공자가 변경백을 상대로 협상에 성공했다고?’
좀처럼 믿기지 않는 사실에…….
쭈욱.
가신들 중 절반 이상이 서로의 볼을 꼬집어 늘려 보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것은 우악한 악력으로 인한, 살갗이 통째로 찢겨 나갈 것만 같은 아픔이었다.
루크는 한쪽 눈에 찔끔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꿈은 아니네.”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놀란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전까지 협상을 진행하던 루드거 본인이었다.
스윽.
그는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살펴봤다.
오랫동안 검을 쥐어 온 무장답게 거칠고 딱딱한 굳은살이 박여 있었지만, 여태껏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이 손에는 땀 한 방울 맺힌 적이 없었다.
한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지금 그의 손은 땀으로 촉촉이 젖어 있었다.
머릿속에는 아직까지 칼리언트의 심홍색의 불꽃과도 같은 눈동자가 남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것만 같은 섬뜩한 눈빛.
그 눈은 결코 자신 따위를 보지 않았다.
‘이 내가 발판이 된 기분이었어.’
그 눈은 그가 아닌 보다 먼 미래를 보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장애물 따위는 가볍게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품은 채 말이다.
아주 잠깐이지만, 루드거는 막내아들 의 기백에 밀린 것이다.
칼리언트가 떠난 뒤에야 그 사실을 자각한 그는.
“크흣.”
서서히 떨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하하하하하하!”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웃음을 터뜨렸다.
* * *
루드거와 협상을 마친 뒤.
“어머니라…….”
칼리언트는 그 어떤 때보다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족은 마계의 거대한 나무, 세피로트의 열매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한 때부터 세피로트의 양분을 흡수하며 성장하는데…….
마왕이었던 전생의 그가 태어났을 때는 세피로트의 양분이 급격하게 말라 가지와 뿌리가 앙상해지기까지 했다.
다행히 같은 시기에 태어난 것은 그 자신밖에 없었기 때문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마족의 근본인 세피로트가 메말라 죽었으리라.
어쨌든 이런 경위로 마족은 집단활동이 가능한 종족이지만, 가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마족 역시 타 종족처럼 번식이란 행위는 가능했지만,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마족은 전투와 광기로 이루어진 종족.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 거지, 누군가를 지키는 삶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차피 슈타크 가문의 삶도 마족과 그리 다르지 않을 테니까.’
칼리언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어머니가 머무는 방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칼리언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
아무도 없는 건가?
침묵이 길게 이어지자, 칼리언트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달칵!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초췌한 인상의 여인이 몸을 날리며 칼리언트를 꼭 끌어안았다.
“칼. 몸은 괜찮니? 아픈 데는 없고.”
그녀는 울먹이면서 칼리언트의 얼굴을 이곳저곳 만지며 건강상태를 살폈다.
“…….”
당황한 칼리언트는 대꾸도 하지 못하고 생각했다.
감히 마왕의 얼굴에 손을 대다니…….
‘전생에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 자꾸 일어나는군.’